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66화 (166/235)

166화

예선전은 세 개의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나 전달력을 측정하는 첫 번째 종목에 이어 물질 변형 능력을 확인하는 두 번째 종목,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나 회로를 그리는 기술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세 번째 종목이 있었다.

세 종목에 대한 심사는 한 명당 두 시간이 넘지 않아 끝날 수 있도록 고안되었는데, 특히 마지막 시험인 마나 회로 그리기에는 따로 엄격한 제한 시간이 주어졌다. 시간 내에 과제로 주어진 작업을 완수해야지만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간 내에 끝냈더라도 그려 놓은 마나 회로가 실제로 작동되지 않을 때에는 전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었다.

진우는 첫 번째 종목과 두 번째 종목에서 아주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만 순조로운 것이었고, 시합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는 결과였다.

마나 전달력의 측정 방식은 지름 10Cm에 길이가 30m 가량 되는 긴 쇠기둥의 한쪽 끝을 잡고 마나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쇠기둥은 커다란 거치대 위에 길게 누워 있었는데, 특수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흰 색의 측정용 기둥은 마나가 주입되면 색이 붉게 변했다. 하지만 마나 투과력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술사 선발 대회가 생긴 이래로 기둥의 반대편 끝까지 모두 붉은색으로 변화시키는데 성공했던 사람은 없었다.

가장 먼 거리까지 기둥의 색깔을 변화시켰던 사람도 마나 투과의 길이가 20m를 채 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오~~”

진우의 차례가 되어 그가 봉의 한쪽 끝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자 시합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감탄과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진우의 손이 닿아 있는 부분부터 점점 색깔이 변하던 봉이 오래지 않아 반대편 끝까지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던 것이다.

기둥 전체를 모두 변화시킨 최초의 인물이 등장하자 다른 쇠기둥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고 있던 참가자들마저 고개를 돌려 진우를 쳐다보았다. 사실 평범한 일반인들보다는 참가자를 비롯한 술사들의 놀라움이 더 컸다.

“역시 잘 하는군.”

일부러 예선이 치러지는 강당까지 와서 진우가 측정에 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투르가가 짧게 말을 내뱉었다. 함께 보고 있던 이티삿도 비록 주인의 적수이기는 하지만 진우의 실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저 봉을 끝까지 붉게 변화시키는 사람이 나올지는 몰랐습니다.”

이티삿의 말에 진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던 투르가의 눈빛이 어느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띠며 중얼거리듯이 말을 뱉었다.

“그 정도는 해 줘야 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한 보람이 있지. 큭.”

그의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  * * * *

물질 변형 능력에 대한 측정은 시험장에 놓인 네 가지 물질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예선전의 두 번째 종목이 치러지는 시험장에는 제법 커다란 시험대 위에 각각 물을 담은 그릇과 쇳덩어리, 바위와 통나무가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물건이 놓인 차례대로 물을 얼리고, 쇠를 녹여야 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성공했다. 그러나 바위를 부드럽게 만드는 일부터는 중급 술사의 능력이 필요했다.

아직 중급에 이르지 못한 참가자들의 모두 이 단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과제를 하나라도 성공시키지 못할 경우 다음 과제로 진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토바르에서 암석 변환 기술을 완벽히 익혔던 진우에는 너무나 쉬운 과제였다.

마지막으로 통나무에서 새로운 줄기가 돋아나게 하는 과제에서는 중급 술사들마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카딘이 그렇게 열심히 죽은 나무를 살리는 연습을 시킨 거였군.“

진우는 시험장까지 따라왔던 카딘이 잔소리에 가깝게 거듭거듭 강조했던 여러 가지 기술 가운데 식물의 생장을 빠르게 하는 방법이 언급되었던 것을 기억했다. 실제의 예선전에서 출제된 통나무에서 새 줄기를 돋아나게 하는 과제는 중급 술사들마저 어려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본질적으로는 식물의 생장을 빠르게 하는 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진우가 두 번째 시험까지 모두 월등하게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무난하게 치러내자, 참관하고 있던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그에게 집중되었다. 진우는 평소에 남들의 눈길을 받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객들의 환호에 슬쩍 손을 들어 화답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만물의 벽에 도전할 자격을 얻기 전까지는 자의반타의반일지라도 어느 정도 유명세를 쌓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우도 싫은 기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들였다.

“마나 회로 그리기만 큰 실수 없이 성공시키면 예선 참가자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겠는 걸?”

헤이둑 일행도 투르가처럼 진우가 시합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미즈락이 휘파람을 불며 진우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들은 애초에 진우가 좋은 술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러게요. 사냥꾼의 마나로는 물을 얼리는 것도 불가능한데 상급 사냥꾼이었던 진우가 언제 저런 기술을 다 배웠는지 모르겠네요.”

카리엘도 그렇게 미즈락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헤이둑은 그들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역시 진우의 술사로서의 솜씨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를 처음 만난 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헤이둑이 가지고 있던 상식이 계속 깨져나고 있었다.

*  * * * *

마나 회로 그리기에서는 모두 다섯 가지의 마나 회로를 제한 시간 안에 완성해야 했다. 회로를 그리는 작업이 끝나면 심사위원들 앞에서 마나를 불어넣어 작동 여부를 검사받아야 했다.

마나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면 일단 그 과제는 기본적인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마나 회로 그리기의 과제는 특별한 회로의 모양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야 하는 작업의 성격만을 지시하는 형태로 주어졌다.

출제된 과제는 주방용 조리 장치, 냉동 장치, 조명 장치, 마나 동력 장치, 그리고 통신 장치의 다섯 가지였다. 참가자들은 과제에서 제시된 용도에 맞는 마나 회로를 그리되, 각각의 용량이나 세부적인 용도는 자신의 능력에 맞게 결정할 수 있었다.

당연히 좀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장치의 바탕이 될 수 있는 마나 회로를 완성할수록 더 높은 점수가 주어졌다. 다시 말해 똑같은 마나 동력 장치를 만들더라도 자전거 크기의 물건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마나 회로와, 지구의 트럭보다 더 커다란 운송 기구를 작동시킬 수 있는 마나 회로 사이에는 점수의 격차가 매우 컸다.

마나 회로를 크게 그릴수록 더 강력한 장치를 만들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진우는 굳이 회로 자체를 크게 그리지 않았다. 그가 그린 회로는 모두 한 뼘 정도 되는 크기를 넘지 않았는데, 그러면서도 일단 작동되자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가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이 그린 마나회로를 작동시키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마나 회로가 그려진 금속 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힘을 느끼고 전율하다시피 했다.

조리 장치는 그 특성상 무조건 강한 열을 뿜어내게 할 수 없었지만, 그가 그린 냉동장치용 마나 회로가 작동되자 시험장 전체가 순식간에 싸늘한 기운에 휩싸일 정도로 강력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바람에 진우를 평가하기 위해 옆에 서 있던 시험관이 급히 회로를 차단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다른 참가자들이 주로 소리만 전달할 수 있는 통신 장치용 마나 회로를 그리는 데에 그친 것에 반해, 진우가 그린 것은 영상과 소리를 동시에 전할 수 있는 회로였다. 심지어 전송이 가능한 거리도 다른 참가자들보다 훨씬 길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종 결과가 발표되어야 확실히 알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예선을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 진우의 본선 진출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는 그가 과연 몇 등으로 본선에 진출할 지가 더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를 향한 주변의 수근거림이 커지자, 지켜보고 있던 투르가는 다소 긴장하면서도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저 친구가 거둔 성적을 널리 알리도록 해라. 최대한 빨리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부하들을 다 동원해. 과장도 적절히 섞어 소문도 내고 말이야.”

투르가는 진우의 마지막 시합이 끝나는 것을 보고는 이티삿과 함께 강당을 떠나며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지시했다.

*  * * * *

진우는 예선전 첫날 시합을 끝냈기 때문에 나머지 나흘 동안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시합을 마친 뒤로 카딘의 집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마수 모양의 수정에 마나를 불어넣는 연습이 아직도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수련에 열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예선전 기간까지 주변에 대한 관심을 끊고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제하이어 일대에서는 ‘지누’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급속도로 널리 퍼지고 있었다.

예선전이 모두 끝나자 최종 본선 진출자를 가리는 한편, 본선 경기장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시 이틀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진우는 그 동안에도 지하의 수련실에서 수정을 대상으로 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제는 동시에 마나를 주입할 수 있는 수정의 개수를 칠십 개 이상으로 늘리고 있을 때에 카딘이 수련실로 찾아왔다.

“아버지가 널 좀 보자고 하셔.”

그녀의 말에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바님께서? 무슨 일로?”

“몰라. 자세한 건 말씀을 안 하시고 그냥 보자고만 하셔. 지금 집무실에 계시니까 삼층에 올라가면 바로 만나 뵐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할래?”

마침 수련의 진전이 다시 주춤거리고 있었으므로 진우는 수련을 잠시 중단하고 바바를 만나기 위해 삼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의 집무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바바는 진우가 노크를 하고 들어서자 두 손을 활짝 펴고 그를 환영했다.

“어서 오게. 그냥 쉬어도 되는 때에도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네. 지금 제하이어 일대에는 자네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를 않아. 들리는 소문으로는 수백 년 만에 가장 뛰어난 술사가 나타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야. 그 사람들이 자네가 술사 자격증을 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기절초풍할 걸세. 하하하하.”

바바는 진우가 술사 선발 대회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본선에 진출하게 된 것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진우는 수백 년 만의 가장 뛰어난 술사라는 말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로서도 본선에서의 일을 조금이라도 쉽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바바가 전한 소문은 너무 지나쳤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크게 소문이 난 것 같았다.

진우를 향해 소리를 내며 웃던 바바는 진우의 표정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챘다.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전하던 그는 진우의 표정이 편하지만은 않은 것을 보더니 오히려 다행스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처음에는 즐거운 표정으로 진우의 성과를 축하하던 그가 문득 얼굴 표정을 굳히며 진우에게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얼굴을 보니 자네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으니 내친 김에 말을 하겠네. 내 생각에는 최근의 소문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어. 사실 그것 때문에 자네가 바쁜 줄 알면서도 일부러 보자고 한 것이네. 자네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지나치게 부풀려진 측면도 있고 말이야. 나는 그 점이 걱정이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 자네 혹시 뭔가 짐작 가는 점이 없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우의 머리 속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글로다이트에는 같이 마수 사냥을 했던 헤이둑 일행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에 대한 소문이 비록 의도적으로 퍼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습니다.”

바바는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우려와 걱정이 서려 있었다.

“자네에 대한 소문 가운데 험담이나 비난은 거의 없네. 오히려 칭찬과 감탄 일색이지. 그것 자체야 나쁠 게 없는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도 어려워. 자네는 외국인에다가 상급 사냥꾼이야. 심지어 나이도 어리지. 그런 자네가 술사 선발 대회에서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야. 사람들은 영웅에게 환호하기도 하지만, 그들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거든. 그런데도 자네에 대해서는 나쁜 이야기가 거의 들리지 않아. 마치 누가 나서서 일부러 그런 말들을 차단하는 것처럼 말일세.”

그는 말을 하다가 두 손을 뻗어 진우의 손을 붙잡고는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내가 너무 걱정이 많은 것일 수도 있지만 본선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는 자네도 조금 조심했으면 좋겠네. 별로 근거 없는 짐작이기는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아무래도 이번 일에는 왕실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아. 글로다이트에서 의도적으로 이렇게 빠르고 넓게 소문을 퍼트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 밖에는 없거든. 하지만 나도 왕실이 왜 그런 일을 꾸미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조금은 주변을 살피고 조심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의 간곡한 당부에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바의 집무실을 물러나오면서 진우의 표정도 조금 심각했다.

‘왕실이라. 왕실이 왜 나에 대해 그런 신경을 쓰는 거지?’

그는 처음 바바의 말을 들었을 때 플레비크에서 온 상급 전사가 혹시 이 일에 관련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특별히 인간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이곳에서 누군가 자신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수작을 부린다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플레비크 전사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이 너무 일을 단순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진우는 수련실로 돌아와 여전히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카딘에게 바바의 말을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곳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지누는 평지에서 돌출한 돌부리와 같아. 연고도 없고 나이도 어린 사람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 유명세를 타고 있잖아. 상급 마수를 쓰러트려 젊은 나이에 벌써 상급 사냥꾼이 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술사 자격증까지 받아 선발 대회 예선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었으니까 말이야. 안면이 없어도 지누에게 미운 털이 박힐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어.”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인 바바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진우는 내심 그건 이번 일과 별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딘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지만, 그렇다면 지금처럼 칭찬과 감탄이 섞인 소문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에 가득 찬 모략이나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어야 했다.

‘내가 유명해 지기를 바라는 사람, 혹은 내가 유명해지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되는 사람이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 배후가 플레비크 전사일 거라고 생각하기에도 근거가 약했다.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외계의 행성에서 온 전사에게 단독으로 이런 일을 꾸밀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나 자신이나 모두 이곳은 연고 없는 낯선 행성에 불과했다.

‘정말로 그가 이번 일을 사주했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녀석이 벌써 이곳에 도착해서 글로다이트 왕국의 실세 가운데 몇 명을 노예로 삼았을 경우야. 그렇다면 최악인데...’

그는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의해 종속의 낙인이 찍힌 대상이 제발 글로다이트 국왕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그럴 경우 자칫하면 개인이 아니라 글로다이트라는 나라 전체를 자신의 적으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염려를 하고 있을 때 이미 글로다이트의 국왕은 투르가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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