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65화 (165/235)

165화

만물의 벽을 봉쇄하는 술사들을 선발하는 대회가 가까워지자 글로다이트의 수도인 제하이어는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북적이기 시작했다. 수도에는 제법 여관이 많았는데도, 웬만한 곳은 타국에서 온 대회 참가 인원들로 의해 빈 방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진우의 대회 출전 소식은 이미 제하이어에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가 몇 달 전 매덤 행성 최고의 마수인 유데르하를 쓰러트렸다는 것만 해도 사람들을 놀라게 할 일이었는데, 그 당사자의 나이가 지나치게 젊다는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상급 사냥꾼 자격증을 가진 그가 술사 자격증마저 얻어서 대회에 출전한다고 하자 너도나도 진우에게 관심을 쏟았다. 타국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제법 신분이 높은 이들은 그가 카딘의 저택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의 아버지인 바바에게 방문하고 싶다는 연통을 끊임없이 넣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 양반이 적지 않게 곤욕을 치르고 있지.’

바바는 진우의 수련을 위해 그 모든 방문 신청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진우는 자신으로 인해 너무 번잡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만 카딘의 집에서 나가겠다고 말을 했다가 카딘과 그의 오빠인 세자베에 의해 거의 강제로 다시 주저앉혀지고 말았다.

아직도 더 훈련을 해야 하는 게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지금 시내로 나갔다가는 묵을 방도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물론 카딘의 집안으로서도 왕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왕족의 입장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그다지 편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카딘과 세자베를 중급 술사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진우를 극진히 대접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더욱 그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진우는 최근 다른 문제로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금쯤 플레비크에서 온 상급 전사가 나를 찾을 때가 되었는데. 이곳에 온 지 석 달이 지났으니 그들도 이제는 내가 매덤 행성에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야. 플레비크 인들은 이곳 사람들과 외모에서 차이가 많이 나니까 혹시 변장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혹시 벌써 오래 전에 이곳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

프레일이 자신에게 당했다는 사실은 이미 플레비크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토바르 행성의 경우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고 치더라도, 매덤 행성에서는 자신이 만물의 벽에 도전할 것이라는 점을 그들도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플레비크 인들이 만약 이곳에서 자신을 쓰러뜨릴 생각이 있다면 최소한 프레일 이상의 상급 전사를 보낼 가능성이 있었다. 진우는 그들이 매덤 행성 자체를 정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럴 경우 수많은 플레비크 전사들의 침공으로 이곳은 삽시간에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이 매덤 행성에 재앙을 불러들인 꼴이 되는 것이다.

진우는 이번에도 플레비크 인들이 상급 전사 하나만을 보내기를 바랐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침공보다는 그 편이 낫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플레비크의 상급 전사가 이미 오래 전에 매덤 행성에 도착해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진우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쓰러트리기 위해 긴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일만 하더라도 꽤 신중하게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기회를 노렸었지. 이번에 상대하게 될 녀석은 그보다 더 치밀하게 준비를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게 맞을 거야.’

문제는 그가 언제 어떻게 준비를 해서 자신 앞에 나타날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상대가 자신을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자신의 대응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

만약에 상대가 마음을 바꿔 느닷없이 두 명 이상의 상급 전사를 보내기만 해도 자신에게는 아직 승산이 희박했다.

‘이번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면 아무래도 상황을 바꿀 방법을 생각해야겠어.’

앞으로도 수련을 마쳐야 할 행성이 두 군데나 남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남은 두 곳도 모두 찾아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료에 있는 내용으로 볼 때 자신이 지배의 단계로 올라서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상급 전사만을 상대하면 되었던 상황이 앞으로도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자신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고, 플레비크 인들도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신으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적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진우는 그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을 궁리할 필요를 느꼈다.

*  * * * *

의뢰를 이행하러 디블렛으로 갔던 헤이둑 일행은 두 달 만에 제하이어로 돌아오자마자 진우부터 먼저 찾았다. 진우도 여러 개의 수정에 동시에 마나를 주입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수련이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모처럼 그들과 함께 시내로 나가 저녁 식사 겸 술을 한 잔 하기로 했다.

“의뢰를 받으러 가기 전에 미리 선금을 내고 방을 예약해 두지 않았으면 수도 한 가운데에서 천막을 치고 잘 뻔 했다.”

식당과 주점을 겸하고 있는 여관 일층에서 함께 식사를 끝낸 뒤 술잔을 마주치던 헤이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꺼냈다.

“대회에 참가할 술사들만 온 게 아니라 그걸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카레일이 식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을 하자 미즈락이 흥 하며 코웃음을 쳤다.

“저 사람들은 술사 대회가 끝나고 나서도 만물의 벽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암각이 봉쇄되는 장면을 보려고 진을 치고 있을 걸. 이미 그곳의 여관은 모두 빈 방이 없을 거야. 사냥꾼 대회 같은 게 있으면 우리도 한 번 나가볼 텐데 말이야. 해마다 한 번씩 어디서 마수의 준동 같은 게 일어나지는 않나?”

그의 말을 들은 헤이둑이 표정을 엄하게 하며 미즈락을 나무랐다.

“허튼 소리 하지 마라. 그런 게 있으면 애꿎게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사냥꾼이 필요한 세상보다는 사냥꾼이 필요 없는 세상이 더 좋은 거야. 지금도 마수들의 숫자에 비해 사냥꾼들이 부족한 판인데, 마수의 준동 같은 게 생기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진우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어쩌면 바로 그 마수의 준동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냥 만물의 벽만 봉쇄하고 조용히 이 행성을 떠날까?’

만물의 벽을 아예 망가뜨리려고 결심을 하기는 했지만 갈등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어차피 이 행성은 단지 수련을 목적으로 온 곳이었다. 그리고 설사 만물의 벽을 봉쇄하지 않더라도 마수 형상의 수정을 가지고 연습하는 것만으로도 수련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의 행성의 운명에 섣불리 개입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못하네.’

물론 자신의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면 만물의 벽에 설치된 장치를 망가뜨리더라도 당장 마수의 준동 같은 것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지금보다 마수의 수가 늘어날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매덤 행성에서 사냥꾼을 체계적으로 양성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것은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 점이 진우의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했다.

“그런데 진우는 자신 있니?”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느라 미처 제대로 듣지 못한 진우가 고개를 들어 방금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쳐다보았다. 미즈락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하자 미즈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술사 선발 대회에 나간다고 했잖아? 대표로 선발될 자신이 있냐고.”

그 말에 진우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열심히 해 보는 수밖에 없죠 뭐. 저 술사 된 지 아직 몇 달밖에 되지 않잖아요. 설마 제가 떨어진다고 욕할 사람이 있겠어요?”

그러자 헤이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떨어진다고 욕할 사람이야 없겠지. 하지만 새파란 애송이가 겁도 없이 대회에 출전했다고 미리부터 욕할 사람들은 조금 있을 거다. 혹시 그런 얘기가 들리더라도 신경 쓰지 마라. 글로다이트 최고의 사냥꾼에게 감히 누가 대놓고 손가락질 하겠냐?”

그 말에 모두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우는 자신이 이곳에 온 본래의 목표가 최고의 사냥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최고의 술사가 되는 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함께 웃었다.

헤이둑 일행은 지구에 있는 최현이나 곤 클랜원들이 생각나게 할 정도로 짧지만 제법 정이 든 이들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다시 한 번 자신의 계획이 떠올라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진우가 아직 수련을 할 게 더 남아있다는 핑계를 대고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모처럼의 회포를 풀기 위해 마련되었던 술자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말았다. 헤이둑 일행은 얼핏 진우에게 뭔가 고민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지만, 그것이 단순히 술사 선발 대회에 관한 것이리라 짐작하고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괜찮아. 까짓 술사 대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게 없잖아? 그냥 경험이라고 생각해.”

헤이둑의 그 말을 끝으로 그날의 자리가 파했다. 진우는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그들과 헤어져 카딘의 저택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자신이 참 쓸 데 없는 일을 만들어 자꾸 팔자에도 없는 고민을 하며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일 년에 한 번 행성 전체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치러지는 술사 선발 대회는 술사 학교에 있는 커다란 원형 경기장에서 열렸다. 매년 실시되는 대회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장소였다.

실제로 원형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대회는 예선을 통과한 뒤에야 시작되었지만, 대회 첫날에는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에 모여 개회식을 진행했다.

“저기 있는 젊은 친구가 주인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누라는 외국인입니다.”

대회를 주관하는 부서는 투르가의 노예가 된 내무대신 이티삿이 수장으로 있는 내무부였다. 그는 참가자들에 섞여 경기장에 서 있는 진우를 향해 슬쩍 손가락을 가리키며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그의 옆에는 사무장의 자격으로 내무대신을 보좌하기 위해 투르가가 서 있었다.

투르가는 진우를 바라보며 입가에 슬쩍 미소를 떠올렸다.

“확실히 동조의 단계에 든 상급 전사구나. 마나를 통제하고 있어서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프레일을 쓰러뜨렸다니 최소한 녀석보다는 뛰어난 점이 있겠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티삿은 자신의 주인이 확실히 저 젊은 사냥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저 친구가 치를 예선에서는 저희 쪽 심판들만 참여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두었습니다. 그가 본선에 진출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투르가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본선에서도 확실하게 월등한 성적을 거두게 하는 것은 역시 어려운가?”

그러자 이티삿이 남의 눈치를 생각해 고개를 조아리지는 못하면서도 얼굴 가득히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쩔쩔맸다.

“죄송합니다. 본선 심사위원들은 저희 나라 사람들로만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들 모두를 매수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투르가는 차라리 심사위원 전부에게 종속의 낙인을 찍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가 혀를 차며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혹시라도 진우라는 지구인이 심판에게 의심을 품고 마나를 탐색하면 자칫 그들에게 찍은 종속의 낙인이 탄로날 수도 있었다. 그가 만물의 벽에서 암각의 봉쇄에 성공할 때까지는 최대한 자신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았다.

“나름 뛰어난 녀석이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이상은 성과를 거두겠지. 너는 그 성과가 되도록 크게 돋보일 수 있도록 일을 꾸며라.”

“알겠습니다.”

투르가의 지시에 이티삿이 남들이 눈치채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 시간 진우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내빈 인사들의 인사말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  * * * *

진우에게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던 개회식이 끝난 뒤에 바로 시작된 예선은 그 뒤로 오일 동안 계속되었다. 각국에서 밀려든 대회 참가자들의 숫자만 만 명이 넘었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든 인원을 한 자리에 몰아넣고 심사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하루에 이천 명 남짓한 인원들에 대해 술사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글로다이트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까지 초빙해 온 감독관들이 쉬지 않고 참가자들을 심사해야 했다.

“마나 회로 그리는 건 다 외웠지? 주어진 장치에 마나를 불어 넣어 활성화시키는 건 원래 잘 했으니까 문제없을 거고. 목소리 변조하는 방법과 식물의 생장을 빠르게 하는 것도 확실히 연습한 거 맞지? 물 얼리는 거 하고....”

“다 충분히 연습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카딘은 시험장까지 진우를 쫒아 와서는 계속해서 자기 딴에는 점검을 한답시고 거의 잔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진우는 그녀가 그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벌써 한 시간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그래. 진우는 잘 할 거야. 재능도 뛰어나고 열심히 연습도 했으니까. 솔직히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믿지 못할 정도니까 저런 어중간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질 리가 없을 거야.”

나중에 한 말은 진우에게 하는 건지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이 질 리가 없을 거라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도 얼굴 가득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카딘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씩 웃어주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이 속한 조의 심사가 시작되는 커다란 강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술사 선발 대회의 첫 예선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모처럼 친구들과 한 잔 하다보니 귀가가 몹시 늦었습니다. 이렇게 늦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미리 예약도 걸지 못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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