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카딘은 의뢰를 받은 다음날부터 문서 번역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그녀는 진우에게 일과가 끝나고 나면 저녁을 먹은 뒤에 그의 일행이 머물고 있는 여관에 와서 매일 4시간가량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날그날 작업을 한 내용은 모두 이곳에 그대로 두고 가는 조건이었다.
“그러자면 번역에 필요한 자료를 이곳으로 좀 옮겨와야 할 거 같아요.”
간단한 외국어라면 모를까,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던 고대 문서의 경우 머릿속에 든 지식만으로 번역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카딘은 진우가 가지고 있는 문서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여러 가지 자료와 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걸 자신이 일하는 연구소나 숙소로부터 여관까지 옮겨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양이 여자가 혼자 들고 오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건 저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가서 도와드리면 될 거 같군요.”
헤이둑이 그렇게 말하자 뜻밖에도 진우가 손을 들어 자신이 돕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아니, 지누 자네가 굳이 가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시키면...”
헤이둑 일행은 진우가 상급 사냥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 이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진우를 쉽게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짐을 나르는 정도의 간단한 일에 그가 직접 나서겠다고 하자, 헤이둑은 당황해하면서 진우를 말렸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진우의 말에 멈칫하고 말았다.
“술사 학교, 보고 싶다.”
진우가 그렇게 말하자 헤이둑이 카딘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이도 어린 진우를 대하는 헤이둑 일행의 태도가 너무 조심스러운 것 같아서 의아했다. 하지만 상황을 잘 모르는 그녀로서는 가장 어려 보이는 진우가 나서서 도와주는 게 더 마음이 편했으므로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저녁 식사 전까지 술사 학교 정문으로 와서 역사학부의 카딘을 찾아왔다고 말씀하세요. 제가 경비대에 미리 얘기를 해 둘 테니까 들여보내 줄 거예요.”
카딘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일어서서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가자 미즈락이 진우에게 물었다.
“지누, 술사 학교에 관심이 있어?”
미즈락의 물음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리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술사 학교는 왜? 술사 자격증이라도 받으려고?”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진우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헤이둑은 그만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뭐? 술사 자격증을 받는다고? 지누 너는 사냥꾼이잖아. 사냥꾼은 술사처럼 마나를 운용할 수가 없어. 너 스승한테 그런 것도 배우지 않은 거야?”
술사와 사냥꾼을 겸할 수 없다는 건 매덤 행성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린 아이들도 아는 상식이었다. 사냥꾼과 술사는 마나의 성질이나 운용방식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상급 사냥꾼인 진우가 갑자기 술사 자격증을 받겠다고 하니, 헤이둑 일행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사냥꾼은 마나를 이용해서 신체나 무기를 강화시켰다. 물론 사냥꾼도 상급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마나를 이용하여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기는 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술사들의 기술과 유사한 몇 가지 재주를 부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뛰어난 사냥꾼은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었다.
그렇잖아도 상급 사냥꾼인 진우가 검과 활 모두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근거리 무기와 원거리 무기는 각각 마나를 싣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술사들은 마나를 발현시켜 외부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거나 마나 회로를 이용해서 복잡한 기계 장치들을 만들어 내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술사에게도 외모를 바꾸거나 두뇌를 활성화시키는 것처럼 신체에 마나를 부여하는 기술이 일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마나 운용은 신체를 강화시키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장치에 마나 회로를 그리거나, 처음 그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사냥꾼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활성화는 단순히 장치를 끄고 켜는 것과는 달리, 일종의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과 유사했다.
그런 일은 술사들만 할 수 있었다. 그들의 마나는 그렇게 세밀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운용되지 않았다.
사냥꾼들도 이미 술사에 의해 활성화된 장치를 가동시키거나 멈추게 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애초에 장치 자체를 활성화시킬 수는 없었다.
사냥꾼은 할 수 없고 오직 술사만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일 가운데 하나가 만물의 벽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 경우에는 만물의 벽이 오직 술사들의 마나만을 받아들였다. 사냥꾼들은 아무리 마나가 많아도 만물의 벽에 마나를 주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우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헤이둑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기지개의 달, 만물의 벽. 나도 참가한다. 봉쇄.”
헤이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 젊은 친구는 실력도 좋고, 그간 함께 지내면서 살펴본 결과 성격도 나쁘지 않았다. 비위카이 두 마리를 잡고 난 뒤에 받은 보상금과 사체 부산물을 팔아 얻은 수익의 반을 그에게 주었지만, 그게 하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동료로서 든든한 사람이었다.
사실 사냥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얻은 수익의 거의 전부를 그에게 주어도 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비위카이 두 마리도 그 혼자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한 달 가까이 의뢰를 이행하기 위해 함께 한 동료들의 몫을 챙겨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 정도 밖에 주지 못했다. 그래도 진우는 별 불만 없이 선선히 자기 몫을 웃으며 받아들였다.
외국인이고, 글로다이트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앞으로도 가능하면 함께 사냥을 다니고 싶은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렇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헤이둑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카리엘이 나서서 진우를 말리려 했다.
“저기, 지누야. 술사 자격증을 얻으려면 술사 학교에서 시험을 치러야 해. 네가 되고 싶다고 해서 그냥 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술사 자격증이 없으면 만물의 벽 봉쇄에는 참가할 수가 없어. 술사가 아닌 사람은 선발 대회에 신청조차 할 수가 없거든. 공부도 무지하게 많이 해야 해. 연습도 필요하고 말이야. 그러니 그런 생각하지 말고 먼저 사냥꾼 협회에 등록...”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우가 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기지개의 달, 만물의 벽. 나도 참가한다. 봉쇄.”
헤이둑 일행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진우의 고집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상 진우가 고집이 센 게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지만, 그들로서는 문서 번역의 일도 그렇고, 진우가 가끔 엉뚱한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더라도 사냥꾼이 술사 자격증 시험이라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들의 난감해 하는 표정을 본 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술사 자격증, 나도 받는다. 방법, 모른다. 어떻게?”
그러자 듣고 있던 헤이둑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내일 카딘을 만나면 그녀에게 물어보도록 해라. 그녀도 정식 술사이니 물으면 아마 자세하게 알려줄 거야.”
진우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들이 왜 이렇게 답답해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다만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자신이 술사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나 운용법은 매덤 행성의 사냥꾼이나 술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들에게 불가능한 일이 자신에게는 가능했던 것이다.
헤이둑이 카딘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은 진우를 상대로 답답한 설득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을 카딘에게로 넘기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진우의 입장에서도 사냥꾼인 이들보다는 현직 술사인 그녀에게 물어보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술사 자격증을 발부하는 곳도 술사 학교였다.
* * * * *
다음날 경비대를 거쳐 술사 학교의 역사학부가 있는 건물을 찾아간 진우는 그곳에서 미리 건물 입구에 나와 있던 카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진우를 보자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는 별말 없이 자신이 소속된 연구실로 그를 데리고 갔다.
대 여섯 명의 연구원들이 학부 교수의 지휘를 받아 일을 하는 그곳은 사방이 책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책장 사이사이에 놓인 책상 위에도 여러 가지 문서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 전형적인 책상물림들이 일을 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이미 가져갈 책과 자료들이 가득 담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진우가 그녀가 가리킨 상자를 번쩍 들어 연구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카딘이 그를 불렀다.
“저기, 일단 함께 저녁을 드시고 가실래요? 원래 일과가 끝나면 먼저 식사를 하고 나서 여관으로 가려던 생각이었거든요.”
진우는 턱밑까지 올라온 상자를 든 채 그녀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라면 여관에 가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우가 자신을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카딘이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이곳 식당 음식이 가격에 비해 괜찮거든요. 여관에서 식사를 해도 상관은 없지만 공연히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래요. 저는 여기서 저녁을 먹고 가는 게 편해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자 카딘이 앞장을 서서 그를 학교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식당은 학교에 있는 것 치고는 실내 장식도 그렇고 시설이 제법 괜찮아 보였다. 그러자 카딘이 상자를 내려놓고 자리를 잡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는 연구원이나 교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이에요. 학생들이 이용하는 식당은 따로 있어요. 학생 식당에 비해서는 분위기도 조용하고 음식도 제법 괜찮을 거예요.”
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딘은 그를 대신해서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더니 점원이 사라지자 진우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어제는 같이 계신 일행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말을 확실히 하지 않았는데요, 가지고 계신 문서가 만물의 벽에 관한 것이라는 건 알고 계시나요?”
아하, 이 여자가 그걸 묻고 싶어서 굳이 이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가씨였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딘의 표정이 약간 심각해지더니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지누님도 사냥꾼이라고 알고 있어요. 사냥꾼인 지누님의 스승이 어째서 그런 문서를 남겨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서는 술사들에게는 엄청난 보물이 될 수 있어요. 오히려 사냥꾼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을 거 같아요. 아마 문서에 그려진 장치도 술사들이 아니면 만들거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일 가능성이 커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진우의 표정을 살피더니 결심을 한 듯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는 그 문서는 정말 귀중한 거예요. 특히 저 같은 술사들에게는 그래요. 그래서 번역이 끝난 뒤에 그걸 지누님 혼자만 가지고 그냥 숨겨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게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그냥 공개하라는 뜻은 아니고요. 제가 번역을 다 마친 다음에 그 문서를 어떻게 하실 건지 혹시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
카딘은 진우가 원한다면 그 문서를 술사 학교나 협회의 검증을 받아 비싼 값에 팔수 있도록 주선해 줄 용의가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모자라면 술사 학교 교수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했다. 그녀도 나름 배경이 있는 가문 출신이라 진우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무엇보다 문서가 이대로 개인의 품속에서 사장되게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그만큼 어제 얼핏 살펴보았던 것만으로도 문서의 내용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진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 술사자격증. 술사 될 거다.”
카딘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이 멍청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냥꾼 주제에 술사가 되겠다고? 진우의 말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카딘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데 진우는 거기서 한술 더 떴다.
“가르쳐 주기, 부탁한다. 술사 되는 방법.”
조용하던 식당에 갑자기 탕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우의 말에 화가 난 카딘이 저도 모르게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숟가락을 들어 세게 내려친 탓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를 쳐다보자,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카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진우를 향해 으르렁대듯 말을 했다.
“사냥꾼이잖아요, 지누님은. 근데 무슨 술사가 되겠다는 거예요. 사냥꾼은 술사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몰라요?”
하지만 진우는 그녀의 말에 담긴 사나운 기색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된다. 술사. 가르쳐 주기. 나 한다.”
카딘은 잠시 진우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바보가 농담이나 장난이 아닌 모양이네. 그녀는 책망에 가까운 자신의 지적에도 진우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옆자리에 두었던 자신의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뒤적이며 찾았다.
조금 뒤에 그녀는 가방에서 손바닥 크기의 얇은 금속판 하나를 꺼내어 진우 앞에 내려놓았다.
“고집을 피우시니, 좋아요. 그럼 제가 간단한 테스트를 하나 할게요. 이 금속판은 제가 밤에 촛불 대신으로 쓰려고 만든 마나 등에 넣을 마나 회로판이에요. 아직 활성화시키기 전의 것이에요. 이 마나 회로판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나를 흘려 넣어 보세요. 만약 지누님이 술사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회로판이 활성화 될 거예요. 술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자질이 없다면 회로판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을 거예요. 그건 지누님이 술사가 될 소질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녀는 여전히 별 표정의 변화가 없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진우를 살짝 흘겨보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 회로판에 마나를 흘려 넣어보세요. 만약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다시는 술사가 되겠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기로 해요. 대신 활성화에 성공하면 지누님이 술사 자격증을 얻기 위한 시험 준비를 하는 걸 제가 도와드리기로 하지요. 어때요?”
카딘은 약간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에게서 마나 회로판을 건네받더니 그걸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마나를 회로판으로 흘려 넣었다.
카딘은 진우가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서도 내심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회로판이 활성화 될 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우가 마나를 흘려 넣기 시작하자 회로판에서 엷은 빛이 나더니 살짝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회로판 전체가 우윳빛에 휩싸는가 싶더니 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빛이 사라졌다.
모든 변화가 끝난 뒤의 회로판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다만 회로판 오른쪽 끝에 길게 세로로 그어진 선 전체가 하얀색으로 채워졌을 뿐이었다.
“저... 저게...”
카딘은 회로판의 선이 하얀색으로 채워진 것을 보고는 너무나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선이 채워졌다는 것은 회로판이 활성화되었고 당장 사용할 수 있도록 마나가 채워졌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즉 이제 금속판에 발광용 구술만 연결하면 언제든지 등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사냥꾼 아니었어요?”
그녀는 자신이 섣불리 착각한 거였나 싶어 진우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녀의 물음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 사냥꾼이다. 맞다. 나, 술사 될 거다. 가르쳐 주기. 약속했다.”
카딘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