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53화 (153/235)

153화

“찾았다.”

사흘 동안 만물의 벽 뒤편 산등성이에서 꼼꼼하게 마나 탐색을 실시한 결과, 진우는 기어코 과거에 통로로 사용되었을 것 같은 곳의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본래 통로의 입구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은 이미 주변이 완전히 붕괴되어 겉으로 볼 때에는 인근의 지형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진우조차도 의심을 가지고 마나를 이용해 세밀하게 주변을 탐색하지 않았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이미 무성한 풀로 뒤덮이고 나무마저 몇 그루 뿌리를 박고 있는 곳을 걷어내자, 과거에 토사가 무너져 내려 빈 공간을 채운 듯한 흔적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진우는 땅에 직접 손을 대고 마나를 안으로 흘려 넣었다. 그러자 중간 중간 경계가 불분명한 곳이 있기는 했지만 과거에 통로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지형이 땅 속으로 뻗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의 암석이나 흙이 한쪽으로 무너지며 원래 있던 공간을 채워버리는 바람에 지층의 흐름이 갑자기 부자연스러워진 곳이었다. 그런 곳이 거의 1Km 가까이 길게 이어지면서 절벽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가고 있었다.

“이건 또 당분간 팔자에도 없는 두더지 신세를 면치 못하겠네.”

진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에 마나를 잔뜩 집어넣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십여 미터는 일단 손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진입부가 충분히 확보되자, 그 다음부터는 수련을 겸하여 마나를 사용해서 땅을 뚫기로 했다. 토바르에서 배운 물질 변환 기술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알마크 산의 땅을 파는 것은 토바르 행성에서 암석을 변환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어려웠다. 토바르의 경우 뎅게스 시 인근의 암반이 대체로 일정한 구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광물의 성질을 파악하거나 그에 맞는 마나를 부여하는 것이 비교적 간단했다. 하지만 알마크 산을 이루고 있는 지층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가 과거의 통로였던 곳으로 짐작되는 곳을 파고 들어가는 동안에도 서로 다른 성격의 지층이 여러 개 나타났던 것이다.

진우는 지층이 바뀌고 새로운 암반이 나타날 때마다 서로 다른 암반의 성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마나의 배합을 찾아내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암반 자체가 다양한 성격의 광물들이 섞여서 이루어진 것이기는 했지만, 기반을 이루는 주요 광물을 변환시키면 전체가 부드럽게 변해 그 다음부터는 파내기가 쉬웠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파낸 것들을 결국 통로 입구까지 가지고 나가서 버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땅을 파내는 시간보다 파낸 것을 입구까지 가져다 버리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하다가는 끝이 없겠다.”

땅 속으로 굴을 파내려간 지 열흘 가량이 지났을 때 진우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과거에 통로였던 곳을 일일이 파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뚫고 지나가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이틀 전부터는 새로운 암반을 지닌 지층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진우는 최대한 마나를 일으켜 넓은 범위에 걸쳐 주변의 암석을 부드럽게 변환시킨 뒤, 그것을 파내지 않고 직접 몸으로 뚫고 들어가기로 했다. 남아 있는 길이로 보아 그런 식으로 관통을 하며 들어가더라도 숨이 막혀 죽기 전까지는 충분히 지하의 공터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의 결심을 한 그는 일단 들고 있던 배낭을 입구 인근의 땅속에다 묻었다. 암반을 직접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부피가 제법 나가는 배낭까지 짊어지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먼저 자신의 몸 주위에 마나를 결정화시켜 견고한 방어벽을 만들었다. 앞뒤가 뾰족한 유선형의 방어벽이었다.

그 상태에서 전면의 암석에 마나를 불어넣어 돌의 성질을 부드럽게 바꾸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의 암석들이 흐물흐물할 정도로 부드럽게 변했다.

진우는 암반의 상태가 충분히 변했다는 판단이 들자 방어벽의 뾰족한 끝을 앞으로 한 채 몸을 회전시키면서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마치 푸딩 속에 떨어진 쇠구슬처럼 방어벽 채로 바위 속으로 쑥 파고들었다.

*  * * * *

“푸하~”

진우는 꼬박 12시간 동안 알마크 산의 땅속을 헤엄치듯 파고든 끝에 목표로 했던 공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는 여전히 공기가 있어 다행이긴 하네.”

문제는 단순히 오래 묵은 공기라서 그렇다고 치부하기만은 어려운 기묘하게 역겨운 냄새가 사방에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진우는 아무래도 되도록 빨리 일을 마치고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방이 꽉 막힌 공간이었으니 공기가 충분하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통로를 연 게 아니라 그냥 물속을 통과하듯 땅속을 뚫고 지나왔기 때문에 새로 공기가 들어올 곳도 없었다.

오래 머물기에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실험실이야?”

지구의 실험실처럼 첨단 과학 장비가 즐비하게 들어선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에 늘어선 가구며 선반은 비록 먼지가 두껍게 덮여 있기는 했지만 텅텅 비었다고 할 정도로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그러나 가구들이 늘어선 모양이나 미처 치우지 못해 그대로 두고 간 것으로 보이는 빈 병과 같은 몇 가지 기구들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연구실이나 실험실로 쓰인 곳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진우는 일단 천천히 공터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뚫고 들어왔던 곳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각각 세 개의 방이 있는 것이 보였다. 본래는 나무로 만든 문이 있었던 듯 했지만, 얼마나 시간이 오래 지났는지, 문짝들은 형체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 제 구실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먼저 주변의 방부터 확인하려고 걸음을 옮기다가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그가 뚫고 들어온 곳의 맞은 편 벽에 기묘한 모양의 수정들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수정의 수는 정확히 백 개였다.

“이건 만물의 벽에 새겨진 마수들이잖아?”

수정들은 만물의 벽처럼 최하급 마수인 파릴을 비롯하여 최상급 마수인 유데르하까지 모두 백 가지 마수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모양과 관계없이 수정의 크기가 모두 비슷하다는 점과, 최하급 마수인 파릴이 새겨진 위치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험실이 만물의 벽 뒤편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벽에 붙은 수정들은 아마도 순서대로 만물의 벽에 있는 마수들의 음각과 일대일로 대응이 되는 것 같았다.

수정들은 특별한 기운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진우는 그 수정들에 일일이 손을 대어 마나를 주입시켜 보았다. 하지만 어떤 수정도 그의 마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헌터 패드를 꺼내들었다. 거기에는 예전에 매덤 행성을 다녀갔던 헌터들이 기록해 놓은 만물의 벽에 대한 자료가 있었다.

“그러니까... 페릴의 조각에 마나를 불어넣을 때는... 흠. 그렇단 말이지.”

진우는 자료에 나와 있는 대로 자신의 마나를 변화시켜 다시 페릴의 수정에 마나를 주입시켜 보았다. 그러자 예상했던 것처럼 페릴의 수정이 그의 마나를 받아들여 불그스름한 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같은 마나를 다른 수정에 불어넣으면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우는 헌터 패드에 나와 있는 자료를 일일이 확인해 가며 무작위로 십여 개의 수정을 상대로 마나를 주입시켜 보았다. 모든 수정이 마나의 벽에서 발산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마나에만 반응을 했다.

“내 마나가 본래 어떤 물질이든 잘 흡수되는 편인데, 이 수정들은 조금 특이하네.”

수정들이 만물의 벽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진우는 일단 벽에 붙어 있던 수정들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확인해 보기로 하고 공터 양옆의 방들을 먼저 살피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각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발견한 것은 이미 뼈만 남은 열 몇 구의 시신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한 그의 얼굴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여기서 일하던 연구원들인가? 근데 왜 다 여기서 죽어 있는 거지?”

백골들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지듯이 쓰러져 있는 것이 가장 많았지만 어떤 것은 책상에 엎드린 채로 백골이 되었고, 침대에 기대어 있거나 아예 그 위로 기어 올라가 잠들 듯이 누워 있는 것도 있었다.

진우는 백골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다가 그만 눈을 찡그리고 말았다.

“이건... 모두 독살을 당했나 보네.”

의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확인한 백골들의 뼈가 모두 약간씩 변색되어 있었다. 독극물에 의해 죽은 시체의 경우 뼈의 색이 검은 색이나 짙은 푸른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다.

시체들의 자세도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자세로 보아 대부분 죽기 전에 몹시 괴로워한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강한 독에 의해 일행이 한꺼번에 몰살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진우는 혹시 이들이 남긴 기록이 있을까 싶어 각 방을 샅샅이 살피고, 마나를 이용해서 은밀히 감추어진 빈 공간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다행히 마지막 방에서 침대 위에 혼자 누워 있는 백골을 보았을 때, 침대 옆에 자그마한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을 혼자 쓴 것도 그렇고, 조금 남아 있는 옷의 천이 다른 이들이 입고 있던 것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진우는 시체가 누워있던 침대 옆면에서 작은 비밀 서랍을 발견하고 그것을 열었다. 안에는 제법 두툼한 종이 뭉치와 함께 죽기 전에 백골의 주인이 급히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가 한 장 있었다.

진우는 그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헌터 패드를 이용해 번역해 보았다. 사진을 분석한 헌터 패드는 다른 때보다 오랜 시간을 들여 간단한 문장을 띄웠다.

“글로다인 때문○ ○○ ○○○. 복수○ ○○○ ○○한다?”

진우는 한 줄에 불과한 문장에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뜻의 동그라미 부분이 절반이 넘는 걸 보고 기가 찼다.

“뭐야 이거? 번역 정확률이 48%야? 절반도 안 되잖아?”

진우는 편지를 치우고 종이 뭉치를 살펴보았다. 종이 뭉치에는 복잡한 수식과 그림이 페이지마다 잔뜩 그려져 있었고, 그로서는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된 설명이 그림마다 길게 붙어 있었다.

게다가 그 양이 백 페이지 가량 되었는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만지면 곧 부서질 것 같았다. 진우는 일단 종이 뭉치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일일이 사진을 찍어둔 다음에 그것을 편지와 함께 품속에 넣었다.

백골이 있던 방에서 나온 진우는 벽에 붙은 수정을 보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일단 그것들도 모두 떼어내서 가져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 수정들을 상대로 마나를 주입시키는 연습을 하면 나중에 만물의 벽에 있는 암각을 봉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가 수정을 벽에서 떼어내자 수정이 붙어 있던 자리 뒤에 새끼손가락 굵기의 금속봉이 깊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 또 뭐지?”

금속봉의 끝에 손가락을 대고 힘으로 잡아 뽑으려고 했지만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지 진우의 힘으로도 빼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금속봉을 뽑는 것을 포기하고 그 가운데 하나만 물질 변환을 이용해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에 일부를 끊어내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 금속봉을 만든 재료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모든 일을 마치자 그는 처음 들어올 때 했던 것과 같은 방법을 이용해서 공터를 빠져나왔다. 진우는 공터를 바져 나온 뒤 자신이 열흘 동안 뚫느라 고생했던 통로를 미련 없이 무너뜨려버렸다.

다음에 혹시 다시 들어갈 일이 있더라도 그냥 처음부터 땅을 관통해서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게 진우가 마하르의 음식점 예렉에 앉아서 퉁명하게 음식을 주문하던 시간으로부터 대략 보름 전쯤의 일이었다.

공터를 빠져나온 뒤 만물의 벽 근처의 여관에 다시 숙소를 정한 진우는 그곳에서 무려 열흘 넘게 묵으면서 날마다 수정에 마나를 주입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면서 이따금 만물의 벽을 찾아가 조각된 마수에 따라 알맞게 변형시킨 마나를 멀리서 쏘아 보냈다. 그는 꽤 긴 시간을 들여 여관과 만물의 벽을 오가며 연습한 결과, 모든 조각에 무리 없이 마나를 흡수시킬 수 있게 되자 비로소 그곳을 떠났다.

진우는 먼저 부근에서 제법 비싼 값을 주고 매덤 행성의 대표적인 탈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아틀리를 하나 구했다. 그것을 타고 사흘 동안 움직인 뒤에 도착한 곳이 이곳 마하르의 예렉이었다.

*  * * * *

진우가 조금은 쌀쌀맞은 태도로 자신의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을 놓고 간 하즈멧을 힐끗 보고는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식당의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사내 둘과 여자 하나가 들어왔다.

“거기 예쁜 아가씨. 우리 주문 좀 받아줘요.”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사내 하나는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얼굴에 웃음을 가득히 문 채로 하즈멧을 불렀다. 그러자 뚱한 표정으로 서 있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일행이 앉은 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어서오세요. 저희 예렉에는 맛있고 영양가가 높은 요리가 아주 많답니다. 수백 가지가 넘는 요리가 가능....”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약간 마르고 얼굴에 뚜렷하게 각이 진 젊은이가 불쑥 주문을 했다.

“저기 혼자 앉아서 식사하는 분과 같은 것으로 삼 인분 주세요.”

하즈멧은 오늘따라 이상한 손님들이 많다면서 속으로 투덜거리며 주방으로 주문을 전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일행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다짜고짜 자신과 같은 요리를 시키는 것을 보고 혼자 쓴웃음을 지었지만 별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다. 그러자 그의 귀에 방금 주문을 마친 일행이 저희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 가운데 여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런데 헤이둑. 그 절벽은 왜 하필 이름이 만물의 벽이야? 마수 조각만 잔뜩 새겨져 있다며? 그럼 마수의 벽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아?”

진우는 갑자기 그들의 입에서 만물의 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카리엘.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만물의 벽에서 나오는 마나는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의 근본이 되는 거야. 백 가지 마나가 서로 섞여서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는 거라고.”

아마 수염이 덥수룩한 이의 이름이 헤이둑인 모양이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카이젤이라는 여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헤에~. 그럼 마수들의 마나가 이 세상의 근본이 된단 말이야?”

그러자 헤이둑이 갑자기 풋 하고 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내 말은 마수들 역시 이 세상을 이루는 백 가지 마나를 근본으로 살아간다는 뜻이지. 마수 한 마리만 해도 한 가지 종류의 마나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야. 하지만 각각의 마수들마다 중심이 되는 마나는 있게 마련이거든. 말하자면 만물의 벽에서 나오는 마나는, 각각의 조각에 묘사되어 있는 마수들이 중심으로 삼는 마나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어떤 조각의 봉쇄에 실패하게 되면 그 조각에서 나오는 마나의 영향을 받은 마수가 그 해에 늘어나는 거야.”

헤이둑의 설명을 들은 카리엘은 ‘아하’ 하며 납득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어떤 조각에서 마나가 방출되면 그 해에는 그 마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나를 근본으로 하는 다른 생물들도 늘어나는 거야?”

그녀의 말을 들은 헤이둑이 ‘오호’하며 감탄하더니 그녀를 칭찬했다.

“카리엘이 머리가 좋구나.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서 시필릭에서는 기지개의 달이 되어도 술사를 보내지 않잖아. 그 나라에는 마수가 거의 없는데다가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국가거든. 봉쇄에 실패한 조각이 많을수록 풍년이 드는 농작물이 많아지기 마련이지. 그래서 시필릭에서는 사실상 매년 봉쇄에 실패하는 조각의 수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소문도 있어.”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자기 나라만 괜찮으면 되나? 옆의 나라에서 마수가 늘어나면 결국 시필릭으로 녀석들이 넘어올 수도 있잖아.”

“그래. 그래서 시필릭 인근의 나라들이 그렇잖아도 그들의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서 불만을 터트리는 모양이더라. 그렇더라도 시필릭에게 억지로 술사를 파견하도록 강요할 수도 없으니까 할 수 없지.”

그때 여태까지 아무 말도 없이 잠자코 있던 각진 얼굴의 사내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도 사냥꾼인 모양이네.”

그 말에 일행의 시선이 모두 진우에게로 쏠렸다. 진우는 식사를 하다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허리에 매달린 검에 그들의 눈이 멈추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기에 여기서 혼자 다니는 사냥꾼을 다 보네. 어이 형씨. 괜찮으면 이리로 와서 함께 식사라도 합시다.”

진우는 자신을 향해 소리치며 보르는 헤이둑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보냈다.

‘이거 참. 미치겠네.’

들을 줄만 알았지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진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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