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14. 행성 매덤
진우로서는 지구로 귀환했을 때, 이것저것 새로운 기술에 욕심을 내느라 예상보다 토바르에 오래 머물렀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불과 삼 개월 만에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보는 타르코스는 속으로 역시 괴물이라는 소리를 되뇌었다. 진우의 성격에 성과도 없이 그냥 돌아왔을 리는 없으니, 이제까지 토바르에 수련을 갔던 다른 니코레임 헌터들과 비교하면 너무도 짧은 기간에 수련을 끝내고 온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진우가 토바르에서 거둔 성과는 그의 짐작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진우가 간략하게 귀환 보고를 하면서 처음 목표로 했던 수련을 다 마쳤다고 하자, 타르코스는 그가 토바르 해저의 막대한 압력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마나의 운용 능력을 발전시켰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진우는 토바르에서의 수련을 통해 어떤 압력이든 그대로 몸을 통과시키거나 오히려 그것을 활용해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마음을 먹고 마나 방어막을 강화시키면 수천 기압의 압력을 그대로 몸으로 이겨내는 것도 가능하기는 했다.
단지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뿐이었다. 게다가 아직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마나를 이용해 물질의 성질을 바꾸는 기술에도 조금 눈을 떴다.
모두 다 본래의 목표를 뛰어넘거나 아예 목표로 잡혀 있지도 않았던 성과들이었다.
타르코스는 토바르 행성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곧바로 다음 행성에 관한 계획으로 화제를 옮겼다. 조금 무정한 듯한 태도였지만, 서로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마당이었다.
“다음 목표는 매덤 행성이다. 그곳에서 만물의 벽에 도전하는 일인데, 이제까지 어떤 헌터도 완벽하게 성공한 적이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부분적인 성공만 거두더라도 매덤 행성인들은 몹시 고마워할 거다. 물론 너야 수련을 위해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타르코스의 말을 들은 진우는 기억을 더듬어 자료에 언급되어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타르코스가 말하는 만물의 벽이란 어떤 건물의 벽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매덤 행성에서 가장 높다는 알마크 산의 한쪽 사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절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높이만 해도 1Km에 가까울 정도인 만물의 벽은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로 뻗어 있었는데, 전체 절벽이 지상으로부터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땅 위에 솟아있는 병풍이나 성벽처럼 보일 정도로 표면이 고른 거대 절벽이었다.
그 절벽에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조각들이 암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정확히 백 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마수 형상을 하고 있는 그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실제 마수의 열 배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데르하라는 마수는 실물 크기조차 10여 미터가 넘는 괴물이었기 때문에, 그걸 10배 크기로 확대시킨 조각은 가장 긴 쪽의 길이가 100m가 넘었다. 눈이 좋은 사람은 절벽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형상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이 81 종류를 봉쇄한 거라고 하셨지요?”
진우의 질문에 타르코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첼스본님께서 그 기록을 세우셨지. 처음 만물의 벽을 수련 장소로 지목하셨던 마스바로크님께서는 60개를 간신히 채우고 그만 두셨어. 하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백 개 모두를 봉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네.”
만물의 벽에 새겨진 마수 모양의 암각에서는 매년 한 차례씩 거대한 마나가 방출되었다. 도대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모든 매덤 행성인들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는 것이, 한 해라도 암각에서 마나가 방출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 해에는 그 암각에 해당하는 마수의 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마수의 수가 다시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동안 그 마수가 많이 사는 지역의 사람들이 입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암각에서 방출되는 마나는 미리 봉쇄할 수가 있었다. 마나가 방출되는 시기가 한 달 정도 앞으로 다가오면, 평소에는 그저 짙은 황갈색의 암석에 지나지 않던 암각의 색깔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그때를 매덤 인들은 ‘기지개의 달’이라고 불렀다. 마수들이 잠에서 깨어나 본격적으로 활동하기에 앞서 기지개를 켜며 준비를 하는 기간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때야말로 암각에서 마나가 방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돌의 색이 붉어질 때를 기다려 암각이 내뿜는 것과 반대되는 성질의 마나를 쏟아 부우면 다시 본래의 색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암각을 봉쇄한다고 하는 것이다. 일단 봉쇄에 성공하면 해당 암각에서는 그 해에 마나가 방출되지 않았다.
문제는 암각의 색이 본래대로 돌아가려면 엄청난 양의 마나를 쏟아 부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한 번 시작하면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마나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봉쇄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었다. 만약 중간에 한 번이라도 마나 투여가 끊기게 되면, 오히려 지금까지 쏟아 부었던 마나로 인해 암각의 활성화가 빨라져서 다른 때보다 빨리 암각에서 마나가 방출되고는 했다.
그럴 경우 해당 마수에 의한 피해는 오히려 더 커졌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각각의 암각에서 방출되는 마나의 성질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었다. 백 종의 마수가 새겨져 있으니, 방출되는 마나의 성질도 백 가지가 있다는 뜻이었는데, 한 사람의 몸에서 그렇게 다양한 마나를 방출할 수 있었던 이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설사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기지개의 달이 다 끝나기 전에 백 개의 암각을 모두 봉쇄하려면 어마어마한 마냐량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놀라운 마나 회복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했다.
“술사라고 했나요? 기지개의 달이 되면 만물의 벽에 모여들어 암각을 봉쇄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매덤 행성에는 매년 기지개의 달이 올 때마다 암각을 봉쇄하는 일을 전문으로 맡은 사람들이 있었다. 진우는 그들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맞아. 매덤 행성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는데, 기지개의 달이 가까워지면 각지에서 만물의 벽이 있는 글로다이트로 술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하더군. 보통 기지개의 달이 되기 한 달 전부터 그 해의 술사들을 뽑는 대회가 열릴 거야. 암각의 종류가 백 개니까 백 명의 술사가 필요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 중에는 여러 개의 암각을 혼자서 떠맡기도 하는 모양이야.
타르코스는 말을 하다가 진우를 슬쩍 바라보고는 씩 웃었다. 마치 ‘너라면 혼자서 그걸 몽땅 맡는 것도 가능할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술사로 뽑힌 자가 자신이 맡은 암각을 성공적으로 봉쇄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 꽤 높은 지위를 차지하거나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군. 일반인들이 입을 수도 있는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그래서 술사라는 직책은 매덤인들에게 명예와 보상을 약속하는 자리야. 문제는 그들의 능력이 후손에게 이어지는 경향이 강해서 일종의 계급처럼 되었다는 건데... 그래서 술사 중에는 성격이 오만한 이들이 많아. 매덤 행성에 가게 되면 자네도 술사를 선발하는 대회에 참여해야 할 텐데, 어쩌면 충돌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네.”
충돌이 생기는 것 자체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우도 굳이 일을 귀찮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 다음 계급이 사냥꾼이고요?”
“맞아. 아무리 대회를 거쳐 술사를 선발한다고 해도 술사로 뽑힌 이들이 모두 암각의 봉쇄에 성공하는 해는 거의 드물어. 결국 기지개의 달이 끝나고 나면 봉쇄에 실패한 암각에서 마나가 방출되는데, 그로 인해 늘어난 마수들을 사냥하는 역할을 하는 게 사냥꾼들이지. 술사 다음이기는 해도 역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직업이야. 자네도 그곳에 가면 먼저 사냥꾼의 자격을 얻는 게 좋아. 그럼 활동하기가 편해지니까. 어차피 지금 가도 기지개의 달까지는 반 년 넘게 기다려야 하니 시간은 충분할 거야.”
그들이 외계인인 자신에게 사냥꾼의 자격을 주겠느냐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료를 통해 본 매덤 행성인들의 모습은 지구인들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외양은 얼핏 서양인들처럼 생겼지만 재미있게도 머리카락과 눈의 색깔은 한결같이 동양인처럼 검거나 짙은 갈색이었다. 심지어 남자와 여자라는 성의 구별조차 지구와 유사했다. 다만 남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키가 2m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체격도 좋았는데, 비록 190cm 정도이기는 해도 진우 역시 그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외형은 아니었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니코레임 인들보다 진우가 더 활동하기에 편한 곳이었다.
타르코스 소장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진우에게 예의 귓속에 넣게 되어 있는 통역기를 건네주면서 말을 덧붙였다.
“준비된 것이 있으니 이번에도 통역기를 주기는 하겠지만, 나로서는 자네가 그곳에 가서 만물의 벽이 있는 글로다이트 국의 언어를 배우는 것을 권하네. 거기서도 벙어리 행세를 하다가는 곤란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야. 매덤 행성은 나라마다 언어가 달라서 설사 자네가 글로다이트어를 서툴게 한다고 해도 그걸 문제 삼지는 않을 걸세. 글로다이트에는 만물의 벽 때문에 외국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거든.”
진우가 생각하기에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평소에도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토바르에서 뎅게스의 시장에게 배운 방법을 활용한다면 언어를 익히는데 걸리는 시간을 더 줄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지식을 후대에게 전승하기 위해 개발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특히 기억력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유난히 강점이 있었던 것이다.
* * * * *
지구에서는 이틀 밖에 머무르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소현과는 거의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그가 토바르의 바다 밑을 헤엄쳐 다니고 있는 동안, 소현은 어느새 헌터 학교를 졸업해서 어엿한 전문 헌터가 되었다.
그것도 하급 헌터였다. 진우의 도움 덕분인지 소현은 졸업을 하고 전문 헌터 자격증을 딴 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기어코 마나를 각성했다.
헌터 학교 졸업생 가운데 진우 다음으로 빠르게 하급 헌터가 되는 기록을 세운 셈이었다.
본인은 그 사실이 너무나 기뻤고 사방으로부터 축하도 많이 받았지만, 정작 진우가 지구에 없어 그동안 다소 맥 빠지고 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그가 귀환하자 은근히 그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소 소현답지 않은 행동이기는 했지만, 진우는 처음 만나던 때에 이미 소현이 마나를 각성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몸에서 전해지는 마나의 기운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헌팅을 다닐 건가? 벌써 하급 헌터가 되었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가 제법 있지 않나?”
그러자 소현은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제의는 많이 받았어. 하지만 경험을 위해 필드에 나가는 것 말고는 네 일이 다 끝날 때까지 되도록 헌팅은 자주 나가지 않으려고. 일단 곤 클랜의 화정이 언니가 함께 데리고 다니겠다고 하셨어. 형부도 그러라고 하셨고.”
김상곤의 부인인 박화정은 진우와 소현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현을 마치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했다. 그녀의 성격이 밝고 화통했고, 소현도 곤 클랜과 진우와의 관계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금세 친자매처럼 친해졌다. 그래서 김상곤에 대한 호칭도 형부라고 할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소현이 헌터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박화정의 집으로도 자주 놀러갔고, 그녀가 바쁠 때에는 가끔씩 소현이 그들의 아이를 돌봐주기도 했다.
“곤 클랜은 상위 그룹에 속하는 클랜이기 때문에 위험한 지역에 대한 의뢰도 제법 받을 텐데?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저는 어떤 헌터도 다닐 수 없는 지역만 골라 다니는 주제에 진우는 소현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었다.
“당연히 너무 위험한 데는 갈 수가 없지. 하지만 곤 클랜이라고 해도 매번 험한 곳만 다니는 것은 아니니까, 조금 무난한 곳에 헌팅을 가거나 의뢰를 받을 때만 따라가기로 했어. 내가 가고 싶다고 해도 위험한 곳은 언니나 형부가 데리고 갈 리도 없으니까 안심해.”
소현은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더니 문득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나 아무래도 전투보다는 치료 쪽으로 갈 거 같아. 화정이 언니가 내 몸속의 마나에서 느껴지는 감이 아무래도 그쪽인 것 같다고 했어. 나도 생물들을 연구하는 데에는 전투보다는 치료형 헌터가 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거라면 자신이 도와줄 수 있었다. 진우 역시 치료형 마나를 쓸 줄 알기도 했지만, 수련이 깊어갈수록 타인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유도하는 일이 점점 능숙해지고 있었다.
그는 수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다시 한 번 그녀의 마나를 살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현이 치료형 헌터가 되는 쪽이 자신으로서도 더 안심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직접 전투에 나서는 일이 적으니 다른 헌터들보다는 위험이 덜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검과 활을 가지고 갈 거라고? 총은 안 가지고 가고?”
진우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현이 불쑥 진우의 다음 행선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응. 총은 가지고 갈 수가 없어. 그 행성에는 아직 총기가 없거든. 그리고 거기도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있나 봐. 그래서 이번에는 검과 활을 주로 사용할 생각이야.”
사실은 이미 그런 무기가 필요하지 않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매덤 행성에서는 되도록 그들과 동화되어 생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으므로, 최소한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무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말로만 듣던 유데르하라는 최상급 마수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검이나 활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매덤 행성이란 곳은 어떤 곳이야?”
소현은 다른 때와는 달리 진우의 수련 장소에 대해 관심을 표시했다. 그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지구인들과 큰 차이가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동했다.
사실 그동안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뿐이지, 어딘지도 분명하지 않은 곳으로 진우가 수련을 떠난다고 할 때마다 그녀로서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는 곳은 환경도 그렇고 그곳에 산다는 외계인들도 지구와 비슷하다고 하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소현 만의 착각이었다.
진우는 매덤 행성에 대해 소현에게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매덤 행성은 지름이 지구의 삼분의 이 정도 되는 비교적 작은 행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은 지구와 엇비슷했다.
그것은 행성의 내부를 구성하는 물질이 지구보다 오히려 무거운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자전 주기는 지구와 비슷했지만 공전 주기는 오히려 지구보다 길었다.
600일이 조금 못되는 기간이 1년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스물 네 개의 달로 나누었는데, 그 바람에 한 달의 길이가 대략 25일 정도였다. 다만 ‘기지개의 달’만 다른 달보다 짧은 20일에 불과했다.
매덤 행성의 마나는 야스간보다는 풍부했지만 케이튼보다는 농도가 훨씬 약했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 가운데에는 마나를 각성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마나를 각성하는 데에 성공한 이들은 대부분 사냥꾼이나 술사가 되었는데, 평균적으로 따지면 술사의 수준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 번에 사용하거나 방출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나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사냥꾼과 술사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 두 가지 능력을 겸하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았다. 술사의 경우에는 전투 능력에 있어서는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마나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유용한 기술을 펼 수 있었지만 어떤 기술도 사람이나 마수를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없었다.
반대로 사냥꾼의 경우에는 마나를 이용하여 마수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나로는 만물의 벽에 있는 마수의 암각을 봉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만물의 벽은 사냥꾼들의 마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진우 네 마나도 만물의 벽이 거부하는 거 아냐?”
소현은 진우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진우는 그녀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까지 그곳을 방문했던 모든 니코레임 인들이 만물의 벽에 마나를 부여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아마 만물의 벽이 사냥꾼들의 마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조금 다른 데에 있는 것 같아. 아무튼 헌터와 사냥꾼이 같은 말이기는 해도 그렇다고 만물의 벽이 내 마나를 거부하지는 않을 거야.”
진우는 그날 헤어기지 전까지 소현으로부터 매덤 행성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아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었지만,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짠했다.
그녀가 헌터가 되면 함께 외계 행성을 탐험하면서 연구를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려면 얼마나 더 기다리게 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소현은 되도록 밝은 표정을 짓고 오히려 진우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진우는 그럴수록 그녀에게 더 미안했다.
“이번에 매덤 행성에 가면 조금 지난번보다 조금 더 오래 있어야 할 거야. 아무리 빨라도 반 년 안에는 돌아오지 못할 거 같아.”
진우는 그녀의 말을 듣다 불쑥 그렇게 말을 하고 말았다. 계속 말을 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정작 말을 뱉고 보니 참으로 뜬금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자 소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다 할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마주보며 말없이 웃는 것이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