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47화 (147/235)

147화

톨이 다시 진우를 찾으러 온 것은 그가 잠에 빠져 든 뒤로부터 네 시간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덕분에 그는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모처럼 꿀맛 같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진우는 톨이 물 없는 방 바닥에 뚫려 있는 구멍 밖으로 손을 내밀어 물을 첨벙대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잠에서 깨자 그녀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입 주위를 막아 놓았던 천과 솜을 제거했다.

‘이러다가 나중에 허파로 숨 쉬는 방법을 잊어먹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진우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톨에게 다가가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홀에는 이백 명이 넘는 토바르 인들이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발광체가 빛을 밝히고 있는 홀은 마치 지구의 연회장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군중들의 한 쪽에 물러서서 혼자 떨어져 있던 시장이 진우의 손을 잡고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무대 비슷한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오늘 저희를 습격했던 굴록을 물리친 영웅이십니다. 동시에 백년 만에 이곳을 찾아 물 바깥의 세상에서 찾아오신 사냥꾼이시기도 합니다. 모두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장이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진우를 소개하자 홀을 채운 물이 거칠게 흔들릴 정도로 열렬한 환영의 몸짓이 뒤따랐다. 거창한 박수 소리 같은 것은 없었지만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요란하게 꼬리를 흔들며 그를 향해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저마다 입을 열어 진우에게 뭐라고 소리를 치는 것 같았지만 진우로서는 그들이 하는 얘기를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귀에 꽂은 통역기를 통해 간간히 번역되어 들리는 소리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단어들이 나열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요란한 몸짓이 조금 잠잠해지자 시장은 미소를 지으며 홀의 상석이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진우를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도시의 중요 인물들로 보이는 십여 명의 토바르 인들이 모여 있었다.

홀 여기저기에는 음식을 가득 담은 게딱지 모양의 커다란 그릇들이 놓여 있었는데, 시장이 데리고 간 곳에는 다른 곳보다 조그만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유난히 큰 그릇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에 담긴 음식은 물론 모두 날 것이었다.

‘나중에 지구로 돌아가면 당분간 회나 생선은 절대 먹을 것 같지 않네.’

시장이 안내한 자리는 물론이고 홀 전체에 특별히 의자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일행들이 모두 둥그렇게 음식이 담겨있는 그릇 주위에 몸을 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도시의 주요 업무를 맡고 있는 분들입니다.”

시장은 진우에게 십여 명의 인물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진우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반갑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행에 대한 소개가 모두 끝나자 다시 도시에 대해 자랑이 일부 섞인 소개를 장황하게 하던 시장이 문득 진우를 향해 조심스러운 말투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영웅께서도 혹시 심연의 구멍을 찾아 이곳에 오신 것인지요?”

진우는 다른 사람들이 그릇에 담겨 있는 날고기를 손으로 잡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앞에 한가득 담겨 있는 날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시장이 심연의 구멍을 언급하자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시장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는 어찌 대답을 할까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본래 목표가 그것이었고,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진우의 몸짓이 긍정의 표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시장은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던 토바르 인에게 슬쩍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시장의 신호를 받은 이가 진우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찬드라라고 합니다. 뎅게스의 경호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진우도 그의 몸짓을 흉내내어 두 손을 모아 마주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러자 찬드라가 그를 향해 엷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예전에 이곳을 방문한 사냥꾼들은 모두 심연의 구멍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심연의 구멍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뱉는 곳과 삼키는 곳이지요. 사냥꾼들마다 원하는 곳이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영웅께서는 어떤 곳을 찾고 계십니까?”

뱉는 곳은 구멍 바깥쪽을 향해 압력이 밀려나오는 곳이었다. 반면에 삼키는 곳은 바닥 쪽을 향해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했다.

얼핏 생각하면 그렇잖아도 물의 압력이 강한 곳에서 밑으로 잡아당기는 힘까지 작용하면 더 힘이 들 것 같았지만 진우의 수련에 더 도움이 되는 곳은 뱉는 곳이었다. 능력이 부족한 헌터들은 주로 삼키는 곳을 택하였지만, 진우는 이곳에 올 때, 처음부터 뱉는 곳에서 수련을 하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진우가 그런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고 있으려니까, 눈치 빠른 찬드라가 먼저 진우를 향해 질문을 했다.

“영웅께서는 삼키는 곳을 원하십니까?”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몸짓이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없었던 찬드라가 시장을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대신 말을 해 주었다.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네.”

그러자 찬드라가 다시 물었다.

“그럼 뱉는 쪽을 원하십니까?”

진우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자 바로 이어서 시장이 찬드라에게 진우의 몸짓을 번역해 주었다.

“뱉는 쪽을 원한다고 하시는군.”

찬드라는 조금 감탄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

“뱉는 곳 중에서 저희 뎅게스에서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심연의 구멍은 모두 세 개가 있습니다. 모두 깊이가 다르지요. 영웅께서는 어느 정도의 구멍을 원하십니까? 참고로 깊이가 깊을수록 수련을 하시기에 더 힘들 겁니다.”

진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홀의 바닥에 손가락을 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닥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돌로 되어 있었지만 그가 손가락에 마나를 일으켜 누르자 마치 진흙이 파이듯이 부드럽게 선이 그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경호대장 찬드라의 눈에 더욱 더 감탄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진우는 서로 다른 깊이의 구덩이 세 개를 그린 다음에 그 가운데에서 가장 깊은 곳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찬드라가 다시 두 손을 모았다.

“가장 깊은 곳을 원하시는 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언제쯤 출발하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진우로서는 이들이 도대체 어떻게 날짜와 시간을 구분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 말에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당장 출발하겠다는 뜻이었다.

심연의 구멍은 본래 자신이 직접 찾아갈 생각을 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려는지 했던 이들이 나서서 안내해 주겠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수련을 끝내고 물속에서 지내야 하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가 모두 끝난 듯하자 시장은 다시 손뼉을 쳐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전사로 보이는 토바르 인 하나가 입을 다문 커다란 조개껍질 같은 것을 들고 나타나더니 진우에게 다가와 그것을 열었다. 조개껍질 안에는 푸른색의 돌 하나가 들어있었다.

마나 스톤이었다. 진우가 그것을 보고 시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장이 웃음을 지으며 진우에게 말했다.

“오늘 영웅께서 처치하신 글록에게서 나온 마나 스톤입니다. 글록의 사체는 지금 해체 중이지만 먼저 마나 스톤을 꺼내어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영웅의 소유이니 받아주십시오.”

짐작대로 최상급 마수의 마나스톤이었다. 진우는 어떻게 감사의 말을 표시할 줄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그것을 받았다.

지구의 관례에 비추어 보아도 이것은 자신이 사냥한 마수에게서 나온 것이니 사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마수의 사체 운운한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특별히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설사 준다고 해도 수련을 하러 가는 마당에 그런 것들까지 가지고 갈 여유가 없었다.

문제는 그 생각을 전할 방법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엇다.

*  * * * *

다음날 진우는 토바르 인들의 전송을 받으며 뎅게스 시를 떠났다. 그의 앞에는 어제 보았던 찬드라가 꽤 커 보이는 돌창을 든 채 안내를 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들의 전송을 받으며 도시를 나서다가 전날 글록이라는 마수에 의해 무너졌던 도시를 복구하는 토바르 인들의 모습이 보이자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들이 무너진 건물들을 어떻게 수리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자신을 따라오던 진우가 가만히 멈추어서 작업을 하고 있는 토바르 인들을 쳐다보자 찬드라 역시 그를 재촉하지 않고 곁으로 다가왔다.

진우가 보고 있는 사이에 무너진 건물을 수리하고 있던 토바르 인 하나가 어디선가 작업 중인 건물과 비슷한 색깔을 띤 커다란 바위를 가져왔다. 그는 그것을 수리해야 할 부분에 가져다 대고는 마나를 운용했다. 진우의 눈에는 그의 손 주변을 짙은 색의 마나가 감싸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면 거의 상급 전사에 해당하는 양의 마나인데? 일개 건물 수리공이 어떻게 저렇게 강한 마나를 운용하는 거지?

진우가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지켜보고 있는 동안 수리공의 손에 들려 있던 바위가 마치 열에 녹은 플라스틱처럼 흐물흐물해지면서 기존의 건물에 들러붙었다. 그러자 수리공은 흐물흐물해진 바위를 이리저리 만져서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고는 손에다 다시 마나를 운용했다. 그러자 마나에 의해 물렁해지면서 거무칙칙한 색깔로 변했던 바위가 굳으면서 다시 본래의 색깔을 회복했다. 진우는 순간 그것이 바로 이 도시의 수많은 건물을 건설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그런 방법으로 도시를 건설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가 수리공의 작업 목습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자 옆에 서 있던 찬드라가 진우를 바라보더니 씩 웃었다.

“모든 토바르 인들이 저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의 건설을 맡은 이들만이 저런 기술을 발휘할 수 있지요. 정확히는 저런 기술을 쓸 수 있어야 도시의 건설과 수리를 담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저희 토바르 인들 가운데에서도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습니다.

지도자들 다음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요.”

그들이 운용하는 마나를 생각할 때 당연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을 들었다. 찬드라는 진우가 자신의 말을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잠시 머뭇거린 뒤에 다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저 같은 전사들의 마나를 사용하는 방법은 저들과는 또 다릅니다. 지위로 치면 도시에서 세 번째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존경을 받는 이들은 역시 시장님처럼 마나를 이용해 머리를 좋게 하는 분들이지요. 그분들이 뎅게스의 지도자입니다.”

진우는 마나를 이용해 머리를 좋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찬드라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찬드라가 씩 웃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지식을 전수하는 겁니다. 지도자들은 선대의 지식을 물려받아 그것을 후대로 전승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서 알아내야 했을 겁니다. 그러니 지도자들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것이지요. 그런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도시의 지도자들은 반드시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계승해야 하는 지식의 양이 워낙 많기 때문에 마나를 이용해 머리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에게는 문자가 없다고 했다. 기록을 남겨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지식은 구전을 통해 후대에게 전해져야 하는데, 그럴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는 지식의 양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모두 계승하려면 최소한 기억력 하나는 엄청 좋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는 말 그대로 지도자들의 머리가 좋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이 나면 꼭 한 번 그들의 마나 운용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찬드라와 진우는 깊은 바다 속을 무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헤엄쳐서 그가 말한 가장 깊은 심연의 구멍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했다. 심연의 구멍이 있는 위치는 그 근처에 도착하자 저절로 알 수가 있었다.

깊은 어둠에 잠겨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속에서 밝은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둥근 불빛이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두운 바닷가에 홀로 떠서 근처를 지나는 배를 향해 불을 밝히는 등대 같았다.

진우는 그 불빛이 바로 심연의 구멍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리 읽은 자료와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찬드라는 심연의 구멍에서 나오는 불빛이 보이는 곳까지 오자 진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안내해 드릴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심연의 구멍 입구에 가시려면 여기에서 한참을 더 밑으로 내려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로서는 더 이상 깊이 내려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저희들의 몸이 약해서 압력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심연의 구멍 바닥까지 내려가시려면 입구에서부터 다시 더 내려가셔야 합니다. 정확한 깊이는 저희로서도 알 수 없지만 전하는 얘기로는 깊은 곳의 경우 입구에서 물 위까지 올라가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지금 보이는 저 구멍이 가징 깊은 곳입니다. 구멍에서 나오는 빛의 색깔이 오렌지 빛이니까요. 그런 빛을 내는 구멍이 가장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

진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찬드라를 향해 두 손을 가슴에 모아서 인사를 했다. 짐작컨대 아마 그 자세가 이들이 취하는 자세 가운데 가장 공경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인사를 받은 찬드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진우와 마찬가지로 두 손을 모아서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진우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눈 아래로 조그맣게 보이는 오렌지 색의 구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의 시작이군.’

그는 빠르게 헤엄을 쳐서 구멍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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