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45화 (145/235)

145화

진우는 차르돌의 등껍질 위에 나지막한 집을 한 채 건설했다. 그는 잠이 번쩍 깰 정도로 사납게 몰아치던 태풍이 잠잠해 지자, 배낭에서 단단하고 매끄러운 강화 플라스틱 판들을 꺼냈다.

그것은 조립할 수 있도록 미리 지구에서 만들어서 가져온 것이었는데, 모두 이어 붙이자 높이가 1m 정도에 불과한 납작한 이글루 같은 집이 만들어졌다.

조립이 끝나자 이번에는 이글루의 밑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는 고정용 구멍 속에 마나를 동원해 꽤 길고 굵은 나사못을 박아 넣었다. 차르돌의 등껍질이 워낙 두껍고 단단해서 그런지, 수십 개가 넘는 나사못을 박아 넣었는데도 녀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드디어 타르코스가 해일이 밀어닥쳐도 버틸 수 있다고 자신했던 임시 거처가 완성되었다.

토바르의 바다 역시 무니악처럼 민물에 가까웠다. 자료에 의하면 다양한 무기 염류가 꽤 녹아있다고는 했지만, 진우가 느끼기에는 오히려 무니악의 바다보다 그 농도가 더 낮은 것 같았다.

시험 삼아 그냥 마셔봤는데, 그다지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몸에 해롭지 않아 식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행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바다가 모두 마실 수 있는 물이라는 게 진우로서는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 가운데에는 오히려 무니악보다 더 사나운 놈들이 많았다. 토바르의 물속에 잠수해서 며칠 동안 수련하는 동안 아직 최상급 마수에 해당하는 녀석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수련을 하는 와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다양한 포식자들 때문에 진우는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작은 놈들은 그냥 주변의 물을 마나를 이용해 작은 송곳 모양으로 얼린 다음에 쏘아 보내는 방식으로 사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법 큰 녀석들은 예전에 사용했던 마나 폭탄을 이용해 몸속에서 폭발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더 편했다. 마나 창 이상의 크기로 주변의 물을 수십 개 이상 얼리는 것보다는 그 편이 더 확실했고 효율도 좋았다.

그래도 그런 녀석들의 공격이 수련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좋은 점이었다.

‘어쨌든 주변의 물에 녹아 있는 마나를 동조시키는 훈련은 되니까. 그리고 활발히 움직이면서 물속에 오래 있는 것 자체가 수련의 첫 번째 단계이기도 하고.’

현재 진우가 수련하고 있는 것은 토바르에서 활동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것, 즉 물속에서 오래 견디기였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지구의 생물은 근본적으로 산소를 받아들여 호흡을 해야 했다. 진우는 그걸 위해 먼저 주변의 산소를 능동적으로 투과시키는 마나막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산소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마나막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나막의 성질을 그런 식으로 변화시키는 것 자체는 이미 동조 단계에 든 진우로서는 몇 번의 시행착오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만 할 경우 몸 주위로 엄청난 크기를 지닌 공기방울 모양의 마나막을 둘러쳐야 했는데, 그래서는 물속에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산소가 저절로 스며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이는 마나막을 만들었다.

다행히 야스간에서의 경험이 그것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마나 자체가 능동적으로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를 잡아들이지 않으면 이 상태로 물속 깊이 잠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 다음 단계는 피부로 호흡을 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신체의 성질 자체를 일부 변화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폐호흡을 통해 허파 안에 공기를 빨아들인 후, 허파 꽈리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모세 혈관을 통해 공기 중에 녹아 있던 산소를 받아들이고, 피 속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했다. 그런데 피부 호흡을 하려면 공기나 물속에 녹아 있던 산소를 피부를 통해 직접 모세혈관 속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로 모세 혈관 속에 있던 이산화탄소를 피부를 거쳐 밖으로 방출해야 했다. 진우는 여러 차례의 시도를 통해 피부 자체의 성질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어 피부 전체를 얇게 덮고 있는 마나막의 일부를 변형시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늘고 부드러운 마나침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이 전신의 모세 혈관 속으로 직접 파고들게 했다. 그러자 마나막을 통해 흡수된 산소가 그 마나침들을 통해 혈관 속으로 직접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굳이 숨을 쉬지 않아도 물속에서 견디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는 동안 토바르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  * * * *

“이곳에도 문명을 건설한 종족이 있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그들을 찾아가야겠군.”

소위 말하는 토바르 인들을 찾는 일은 진우의 수련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일었다. 니코레임 인들이 지구를 방문한 이래로 우주에 지구인 말고도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진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니코레임 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행성에 사는 지성체들을 만난 경험이 없었다.

오직 진우만이 플레비크 인과 야스간 인들을 만나 본 것이었다.

“지성체들이 하나같이 지구인들처럼 사지를 지니고 이족 보행을 한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단 말이야. 그게 무슨 지성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은 아닐 텐데.”

진우의 생각이 꼭 맞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이족 보행을 함으로써 두 손을 자유롭게 놀릴 수 있게 된 것이 지능의 발달에 굉장히 큰 기여를 했다고 보았다.

손을 이용한 복잡한 조작이 가능해지자, 그것이 지능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더 나아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구를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문명이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자료에 나와 있는 바에 따르면 토바르 인들은 두 발 대신 지느러미가 달린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물속에서 이족 보행을 할 리는 없었지만, 대신 인간처럼 강하고 탄탄한 두 팔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손가락은 네 개라고 했다.

진우는 물속에서 자유롭게 호흡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차르돌의 등에 만들어 놓은 거처에 올라가 오랜만에 헌터 패드를 켰다. 그곳에 있는 자료를 통해 근처에 있는 토바르 인의 거주지와, 수련에 적당한 심연의 구멍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토바르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사방이 모두 물밖에 없는 똑같은 풍경만 계속되는 곳이라 주변에 기준으로 삼을만한 지형지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우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하늘에 별이 뜨자 헌터패드를 삼각대에 고정시켜 세 시간 동안 십분 간격으로 토바르의 밤하늘 사진을 찍었다.

정교하게 만든 나침반으로 미리 방향을 잡고 하는 작업이었다.

“그나마 토바르에 지구처럼 자극이 존재한다는 게 다행이지.”

헌터 패드는 진우가 찍은 사진에서 나타난 별자리의 위치를 토대로 계산을 하더니 현재의 위치와 부근의 토바르인 거주지, 그리고 수련에 적당한 심연의 구멍이 있는 곳을 차례로 표시해 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진우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졌다.

“사흘이나 더 가야 해? 그것도 기껏 만들어 놓은 거처를 포기하고?”

현재 차르돌이 이동하고 있는 방향은 자신이 가야할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대로 차르돌의 등껍질 위에 머물면서 조금 더 토바르인의 거주지와 가까운 곳까지 이동하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헌터 패드의 계산에 의하면 그럴 경우 앞으로 한 달 동안 더 이곳에 그냥 머물러야 했다.

진우로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없군. 내일 해가 뜨면 바로 거처를 뜯어서 이동하는 수밖에, 쩝.”

다음날 애써 만들어 두었던 거처를 몽땅 해체해 다시 배낭 속에 집어넣은 그는 헌터 패드가 일러준 방향을 향해 잠도 자지 못한 상태로 사흘을 더 헤엄쳐야 했다. 덕분에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마나 동조를 이용해 주변의 물을 밀어내며 이동하는 것은 아주 능숙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  * * * *

토바르 인들의 거처는 보통 수심 5,000~6000m 사이의 해저에 건설되어 있었다. 평균 수심이 십 킬로미터 정도에 달하는 토바르의 바다에서는 비교적 고지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만해도 지구라면 수백 기압에 이르는 엄청난 압력이 작용하는 곳이었지만, 중력이 강한 이곳 토바르에서는 천 기압이 넘는 압력을 감수해야 하는 깊이였다. 그 정도면 정상적으로 생물이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강한 압력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맑은 바닷물이라고 해도 보통 태양 광선은 수심 200m 아래로는 도달하지 못했다. 지구라면 수심 300m 아래로는 완전한 암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점은 토바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토바르의 바다에도 빛을 이용해 살아가는 여러 가지 생물들은 거의 수심 100m가 못 되는 바다 표면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토바르에는 수심 오륙천 미터의 깊이는 물론, 그보다 더 깊은 곳에도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토바르의 바다 깊은 곳에는 마나와 광물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발광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토바르 인들 역시 자신들의 거처에 엄청나게 많은 발광체들을 달아 빛을 밝혔는데, 그 때문에 진우가 사진 속에서 본 토바르 인들의 거처는 마치 어둠 속에서 떠오른 환상이나 신기루처럼 몽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진우가 볼 때에는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 풍경이 진우로 하여금 굳이 토바르인들을 방문하고 싶어하게 만든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저게 뭐야?”

그런데 진우가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이동한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수중 도시가 아니었다. 그가 헌터 패드에 표시되었던 좌표를 따라 찾아간 곳에서 처음 목격한 것은 엄청나게 커다란 해양 마수 한 마리가 토바르 인들이 해저 속에 건설한 넓은 도시의 건축물들을 마구 파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진우는 예상치 못한 장면에 물속이라는 것도 잊고 입을 떡 벌리다가 하마터면 물을 먹을 뻔 했다. 기가 막혔다. 그리고 갑자기 짜증섞인 분노가 울컥 치밀었다.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 절경을 기대하고 갔던 곳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는 우중충한 공장지대를 발견한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동화 속의 용궁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온 진우의 눈앞에는 여기저기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물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웬만한 고래 서너 배는 되어 보는 엄청난 크기의 괴생물체가 몸과 꼬리를 이용해서 토바르인들의 거주지에 대항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묘한 형태의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놈의 근처에는 토바르 전사로 짐작되는 이들이 새카맣게 달라붙어 돌로 만든 듯한 날카로운 창으로 녀석의 몸을 찌르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전사들이 들고 있는 창에 마나를 발현시키고 있었지만 진우가 보기에 그들의 공격으로는 괴물을 상대하기에 무리인 것 같았다.

놈이 한 번씩 몸을 틀거나 꼬리를 휘저을 때마다 마나까지 선명하게 맺힌 그들의 창이 속절없이 부러져 나갔고, 근처에 있던 전사들의 몸이 여지없이 튕겨져 나갔다.

“이 개자식이~~!!.”

상황이 어떤 지는 굳이 누굴 붙잡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명백해 보였다. 어떤 이유로 놈이 토르바인들의 거주지를 습격했는지를 알 수 없었지만, 그대로 보고 있다가는 아무래도 그들의 도시 자체가 마수에 의해 거의 파괴될 것 같았다.

그것은 진우에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자료에 의하면 토르바 인들의 거주지에서는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진우가 편히 숨을 쉬며 쉴 수 있는 곳을 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상황을 파악하자 다짜고짜 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으로 보아 적어도 최상급 마수가 틀림없었다. 이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그저 제법 강한 전사를 많이 모으는 것으로는 별 소용이 없었다.

진우는 급히 달려들면서도 일단 동조를 이용해 녀석의 체내에 있는 마나에 대한 동결을 시도했다. 놈은 최상급 마수답게 제법 강하게 진우의 동조에 저항했지만, 그래도 능력의 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진우의 동조가 효력을 발휘하자, 녀석의 몸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던 마나가 조금씩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진우는 그와 동시에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물속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창 수십 개를 만들어 내었다.

“가라.”

진우가 손짓을 하자 주변에 떠 있던 팔뚝 굵기의 마나창들이 일제히 마수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퍽, 퍽, 퍽, 퍽.

마수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가죽은 엄청나게 질기고 두꺼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진우의 마나창을 완벽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수십 개의 창이 몸을 파고들자 일방적으로 토바르 인들의 거처를 파괴하던 녀석의 몸이 고통으로 인해 미친 듯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진우는 재빨리 사납게 발광하는 놈에게 달라붙어 녀석의 몸 안에 있는 마나를 탐색했다. 놈의 마나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파악되자, 그는 곧바로 놈의 몸 속 여기저기에 십여 개에 달하는 마나 폭탄을 설치했다.

하나하나가 농구공보다도 큰 것인데다가 마나 결정화까지 시도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폭탄 속으로 응축되어 들어갔다.

부욱~~

진우가 미리 정해 놓은 시간이 지나자 거대한 놈의 몸 여기저기가 둔탁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결국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마수의 몸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의 몸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와 물속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치며 저항하던 놈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치명적인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잠잠해졌다.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놈의 몸이 축 늘어지면서 조금씩 물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뼈가 무거운 놈인가 보네. 죽어도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가라앉는 것을 보니.”

진우가 다소 급하게 마수를 사냥하느라 손실이 많았던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몸을 추스르고 있는 동안 그의 주변으로 여전히 돌창을 손에 쥔 토바르 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경악과 공포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