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13. 행성 토바르
행성 토바르는 전체가 온통 물로 뒤덮인 물의 행성이었다. 행성 전체에 물 위로 솟아오른 육지가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포털도 물 위에서 1m 가량 떨어진 허공에 생성되었다.
풍덩
덕분에 진우는 포털을 통과하자마자 제법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그대로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몸에는 일상복이 아니라 어깨가 다 드러난 상의와 무릎 바로 위까지만 내려오는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일반적인 잠수복보다는 훨씬 얇지만 물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여줄 수 있는 매끈한 재질로 만든 특수 복장이었다.
등에는 평소 가지고 다니던 것보다 훨씬 큰 배낭이 매달려 있었다. 배낭의 옆에는 공기를 잔뜩 불어넣은 길쭉한 모양의 부요가 달려 있어 진우가 물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토바르의 바다에 떨어지자 진우는 사방에서 몸을 조이는 압력 때문에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포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미리 준비했던 대로 얼른 몸속의 마나를 운용시켜 중력에 대한 적응을 시도했다. 이곳의 중력이 지구보다 강했기 때문이었다.
행성 토바르는 반지름이 지구의 1.3배 정도 되었는데, 자전 주기가 지구보다 약간 느렸다. 그래서 실제로 느껴지는 중력은 지구의 두 배 정도였다. 중력이 아주 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나를 이용해 몸을 적응시키지 않고 움직이기는 불편했다.
게다가 중력이 강하다 보니 물을 헤치고 나가는 데에 드는 힘도 지구보다 많이 들었다. 아마 이곳에서는 제아무리 뛰어난 수영 선수라고 해도 지구에서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건 뭐, 말만 바다지, 낭만하고는 거리가 멀군.”
외계 행성의 바다 구경이라면 행성 무니악에서도 실컷 했었다. 하지만 토바르의 바다는 낭만적인 휴양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행성 전체에 걸쳐 수시로 태풍이 발생했고, 서로 정반대 방향에서 토바르를 공전하는 두 개의 달 때문에 조석 간만의 차이도 심했다.
육지가 없으므로 밀물과 썰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엄청난 양의 물이 밀려다니는 바람에 하루에도 몇 번씩 넓은 지역을 덮는 해일이 발생하고는 했다. 지구나 무니악의 바다보다 훨씬 거칠고 위험한 곳이었다.
바다에 있는 풍부한 플랑크톤 덕분에 대기 중의 산소는 숨쉬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풍부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진우는 다른 무엇보다도 산소가 아닌 마나를 이용해 호흡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전투 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기술이었지만, 일단 토바르에서의 수련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수련을 해야 하는 장소가 바다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토바르는 중력으로 인해 지구보다 훨씬 구형에 가깝고 표면이 비교적 밋밋한 행성이었다. 행성 전체의 질량으로 따지면 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았지만, 표면에 큰 굴곡이 없다보니 지구처럼 낮은 곳에 물이 고여 따로 바다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아예 행성 전체가 완전히 물에 덮여버리고 말았다.
바다만으로 이루어진 물의 행성. 그곳이 토바르였다.
토바르를 덮고 있는 바다의 평균 수심은 십 킬로미터가 넘었다. 지구의 각 대양 평균 수심이 3,000~4,000m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이곳의 바다는 엄청난 깊이를 자랑하고 있는 셈이었다. 당연히 물 밑으로 내려갈수록 엄청난 압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어떤 곳은 깊이가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는 큰 해저산맥이나 골짜기가 거의 없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행성 곳곳에 이른바 싱크홀처럼 갑자기 중심을 향해 수직으로 파고 들어간 깊은 구멍이 존재했던 것이다.
진우는 토바르에서의 수련을 위해 그런 곳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잠수해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일단 차르돌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
차르돌은 토바르에 살고 있는 거대한 바다거북 같은 생물이었다. 녀석은 지름이 백여 미터에 이르는 원형의 넓은 등껍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웬만한 칼로는 힘껏 내리쳐도 흔적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하지만 평평한 배를 덮고 있는 껍질은 등보다 훨씬 질기고 견고했다.
차라리 단단하기만 한 등껍질은 힘으로 부수는 것이 가능했지만, 배는 오히려 그보다 훨씬 상처를 입히기 어렵다는 것이 이곳을 다녀간 헌터들의 경험담이었다.
“그러니 하루 종일 물에 떠 있어도 밑에서 공격하는 놈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몸의 앞에는 최대로 벌릴 경우 무려 30m 이상의 길이로 찢어지는 큰 입을 가지고 있는 머리가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거대한 노처럼 생긴 긴 꼬리가 길게 뻗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몸 주위를 뺑 돌아가며 나 있는 수백 개에 달하는 지느러미였다.
차르돌은 머리와 꼬리 이외에는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 대신 몸통에 달린 수많은 지느러미를 움직여 이동이나 방향 조절을 했다.
진우가 차르돌을 찾는 이유는 녀석이야말로 육지가 없는 토바르에서 진우가 유일하게 올라가 쉴 수 있는 쉼터였기 때문이었다. 차르돌은 물의 행성에 사는 생물들 가운데 물밑으로 잠수하지 않고 항상 물 위에 떠 있는 몇 안 되는 종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그 중에서도 가장 몸이 컸다. 몸집과는 달리 고래처럼 의외로 작은 생물들을 큰 입으로 물과 함께 빨아들여 먹고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상대에게는 공격적이지 않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녀석을 찾기 전에는 잠 잘 생각을 말아야하니 일단 차르돌을 찾는 게 먼저지.”
마나를 운용하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이니 잠자면서도 마나를 돌릴 재주를 익히기 전에는 일단 차르돌을 찾아 쉴 곳을 마련해야 했다. 아무리 동조 단계에 든 헌터라고 할지라도 진우 역시 사람이므로 잠을 자야 했고, 자는 동안에는 토바르의 중력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물의 행성인 토바르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물이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힘이 좋은 새라도 늘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어딘가에 내려서 쉬어야 하는데, 사방이 온통 물로 뒤덮여 있으니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니 애초에 물에 사는 생물 말고는 다른 것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따라서 언제나 물 위에 떠 있는 차르돌의 등껍질 위에 올라가면 다른 공격의 위험 없이 편하게 쉴 수 있었던 것이다.
* * * * *
“본성으로부터의 전언입니다. 진우라는 지구인이 토바르 행성으로 갔다고 합니다.”
노예로 부리고 있는 중급 전사 가운데 한 명이 블리젠 행성의 투르가에게 플레비크로부터 연락이 왔음을 알렸다. 웬만한 궁궐보다 훨씬 큰 곳을 오직 혼자만을 위한 거처로 사용하고 있던 투르가는 식사 후의 느긋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가 보고를 받고는 의자에 기대었던 등을 천천히 일으켰다.
플레비크 시간으로 삼 개월이 넘게 야스간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던 지구인이 어느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모양이었다.
“콴톤 의장이라는 니코레임 인에게 새로운 연락이 온 건가? 그렇다면 그 자가 야스간에서 하고 있다던 수련을 모두 끝냈다는 얘기군. 그런데 녀석을 복종시키겠다고 야스간으로 갔던 프레일로부터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지?”
“네. 이미 한 달 전에 야스간으로 향한다고 소식을 전해왔는데, 그 뒤로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자신의 행성으로 귀환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최대한 억양의 고저를 죽인 목소리로 대답하는 말을 들은 투르가의 고개가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였다.
“흠, 그렇다면 역시 프레일이 지구인에게 당했다는 얘기이겠군.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뜻밖인 걸? 설마 플레비크의 상급 전사를 상대해서 쓰러뜨릴 수 있는 자가 있다니 말이야. 동조에 든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결국 경험을 쌓은 기간에 비해 놀라운 실력을 지닌 자였어. 이젠 그 자의 실력을 확실히 인정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게 판단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투르가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보고를 하던 중급 전사는 투르가에게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자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고 물었다.
“본성에서는 다음으로 지구인을 상대할 수 있는 자격을 주인님께 드리는 걸로 결정을 했습니다. 토바르 행성으로 직접 가시겠습니까?”
그러자 투르가가 얼굴에 슬쩍 웃음을 띄우며 물었다.
“그곳이 온통 물로 뒤덮인 행성이라고 했지?”
“네. 아스탄이라는 자의 말에 의하면 땅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냥 나둬. 나한테 물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기술이 없으니, 그런 곳에서는 나도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어. 토바르보다는 녀석이 다음에 들르기로 되어 있는 행성 쪽이 더 마음에 들기도 하고 말이야. 이 다음에 녀석이 갈 곳이 아마 매덤 행성이라고 했지? 그 신기한 기술을 가진 종족들이 산다는 곳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 토바르는 그냥 건너뛰고 조금 기다리도록 하지. 어차피 프레일의 죽음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녀석이 정말 죽었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프레일이 지배하던 행성에 있는 노예들의 낙인이 해제될 거야. 그때 가서 움직이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좋겠어. 괜한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잖아? 지구인을 상대하는 것은 그때 가서 하는 게 적당할 것 같아.”
중급 전사는 투르가의 말에 깊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잠시 후 조금은 머뭇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주인을 옆에서 보좌하는 입장에서 말을 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 그래도 프레일님을 해칠 정도라면 무시하기 어려운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대로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조금 위험할 수도...”
그러나 그의 말은 갑자기 크게 터져나온 투르가의 웃음소리 때문에 끊기고 말았다.
“하하하,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위험하다라? 그래 위험하기는 하지. 그런데 말이야, 토바르에 가면 강진우라는 그 녀석을 어떻게 찾지? 이번에도 야스간 행성에 있다는 약탈의 계곡처럼 녀석이 있을 곳이 확실히 정해지기라도 한 건가? 어디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말을 꺼낸 중급 전사의 고개가 급히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그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투르가는 그런 노예를 슬쩍 내려다보더니 손가락으로 앉아 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심연의 구멍이라고 했나? 녀석이 수련을 한다는 장소 말이야. 그런데 토바르에 그런 구멍이 수백 개도 더 된다면서? 아스탄 녀석도 그 지구인이 정확히 어느 구멍에서 수련을 할지는 알 수 없다고 하잖아. 우리가 아는 건 그저 녀석이 바다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밖에 없단 말이지. 내가 지금 당장 포털을 타고 토바르에 간다고 한들, 그 넓은 행성의 바다 속을 모두 뒤질 수도 없잖아. 그리고 설사 만난다고 하더라도 물속에서 싸움을 하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어.”
그는 자신의 말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고개를 밑으로 숙이고 있던 중급 전사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딱딱하게 긴장한 자세로 명령에 따라 몸을 일으키는 그를 보며 투르가는 음험한 기운이 잔뜩 어린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그 지구인이 찾아갈 다음 수련 장소는 위치가 확실하잖아? 매덤 행성에 있는 만물의 벽이라고 했나? 그곳에서 녀석을 처리하는 게 더 나아. 그리고 누가 녀석을 그냥 내버려둔다고 하던가? 한 달 정도 더 기다려도 프레일로부터 소식이 없으면 미리 그곳에 가 있을 작정이다. 준비하고 있는 놈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준비하고 있다가 놈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게 더 낫지. 내가 잘 모르는 곳에서 싸우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녀석이 내가 잘 아는 곳으로 오게 하는 게 맞아.”
그는 말을 마치더니 다시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하지만 웃음을 터트리는 그의 눈빛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다. 보고를 하던 중급 전사는 그의 눈빛을 보고 자신이 조금 전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섰다가 간신히 물러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 *
진우는 무려 엿새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토바르 행성을 뒤진 끝에 드디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바다 거북, 차르돌을 찾을 수 있었다. 녀석은 대체로 짙은 구름에 덮여 있는 토바르의 하늘이 모처럼 구름을 뚫고 따가운 햇살을 내비치고 있는 바다 위에서 마치 일광욕을 하듯 등을 활짝 내놓고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반갑다, 친구야.”
차르돌로서는 진우와 친구가 될 생각이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며칠 동안 잠 한 숨 자지 못하고 토바르의 바다를 살피고 다니던 그로서는 녀석의 넓은 등판을 보자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보다 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등에 매고 있던 완전 방수 배낭의 무게가 갈수록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던 무렵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가지고 왔던 고무보트가 있기는 했지만, 며칠 동안 경험했던 토바르의 폭풍이나 해일을 생각한다면 그것에 의지해서 이곳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잠이 든 사이에 해일이 밀려오더라도 버틸 수 있으려면 놈의 등 위에 몸을 묶어서라도 확실히 고정시켜야 했다.
차르돌은 진우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등껍질 위로 올라오는 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진우는 녀석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몸속의 마나를 운용해 물을 차고 공중으로 도약했다. 지구보다 두 배가량 되는 중력을 받고 있는 그가 제법 높은 곳까지 뛰어올랐다가 떨어졌지만, 차르돌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역시 믿을만 하네. 해일도 견딘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겠는 걸?”
녀석의 등 위에 올라서 두꺼운 등껍질을 쿵쿵 내리치며 믿음직한 미소를 짓던 진우는 잠시 후, 배낭도 풀지도 않은 채 그대로 엎어져서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 중간에 태풍이 덮치지 않았다면 그 자세에서 하루 이상 꼬박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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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바르 행성에서의 일은 되도록 짧게 하고 바로 다음 행성으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재미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