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41화 (141/235)

141화

프레일의 시체는 다음 보급일에 맞추어 눈물의 연못까지 달구지에 싣고 나가 깨끗하게 화장시켰다. 죽은 시체를 그대로 버려두는 게 마음에 걸려 일찍 처리하고 싶었지만, 공터에서는 강력한 마나 흡인력 때문에 아무래도 마나를 이용해 시체를 깨끗하게 태우는 것이 어려웠다.

진우는 눈물의 연못에서 그의 시체를 태우고 난 뒤 그 재를 부근에 뿌려주었다. 자신의 적이었기는 했지만 죽은 이의 시체를 함부로 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느새 하나의 습관이나 의식처럼 되어 버렸다.

프레일이 죽고 난 뒤에도 진우는 공터를 떠나지 않고 두 번의 보급을 더 받았다. 눈물의 연못가에 보급품을 내려주고는 별 말 없이 고개만 꾸벅 숙이고 돌아가는 모필로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진우는 그들의 말없는 성의에 속으로만 감사를 전했다.

야스간에 온 지 벌써 백 이십 일이 지나고 있었다. 지난 보급 때에는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하더니 이제는 눈물의 연못에도 엷게 살얼음이 낀 모습이 보였다.

겨울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보급품을 싣고 다시 공터로 돌아온 진우는 그곳의 중심에 여전히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숨 쉬는 기둥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걸 그냥 부숴버려?”

요즘 그가 하고 있는 고민이었다.

프레일을 처치하고 난 뒤에도 한동안 진우는 새로운 플레비크 전사가 오지 않을까 싶어 경계심을 풀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그 뒤로 한 달가량이 더 지났는데도 아무도 접근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새로운 전사가 이곳을 찾아올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하긴 프레일이 다른 행성까지 찾아가 장치를 빌리면서 이곳의 고약한 상황을 알려주었으니, 그들도 자신이 좀 더 전투가 용이한 다른 행성으로 옮겨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진우는 주변에 대한 경계를 조금 늦추고 자신의 수련에 더욱 정신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최근에 진우는 약탈의 계곡에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마나를 이용해 원하는 곳을 탐지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처럼 마나를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트리는 방식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럴 경우 여지없이 퍼트린 마나가 숨 쉬는 기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밖으로 내보내는 마나를 가느다랗게 결정화시키는 방법을 이용하여 제한된 방향과 범위 내에서는 탐색이 가능했다. 결정을 만들면서 그것이 한 방향으로 길게 성장하도록 하면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었다.

그것을 길게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양쪽 계곡을 통해 내보내면 적어도 계곡의 입구까지 이르는 2Km 정도는 누군가 접근하고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있었다.

진우는 비록 자신을 쓰러트리고 종속의 낙인을 찍으려는 목적으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죽은 프레일에게 약간은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해치러 온 녀석이 내게 그렇게 귀한 선물을 줄지는 설마 몰랐지. 녀석도 그게 나한테 선물이 될지는 몰랐겠지만.”

진우는 프레일의 품속에서 꺼낸 가공된 마나스톤을 이용해 마나 구속 필드를 두 번 더 펼쳐보았다. 마나 구속 필드가 매번 허공에 결정구조의 격벽을 만들 때마다 모든 정신을 집중시켜 그것을 관찰한 그는 드디어 자신의 마나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완전히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나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그의 타고난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마나 구속 필드와 같은 육각형의 벌집 구조를 재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매번 숨 쉬는 기둥이 호흡할 때마다 조금씩 뺏기던 마나의 유출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체내의 마나를 동원해 주변에 방어벽처럼 마나를 둘러쳐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정화가 익숙해지자 굳이 방어벽을 칠 필요가 없었다.

피부 위를 얇게 흐르는 마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마나를 뺏기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수준에 이르게 되자 더 이상 약탈의 계곡과 마나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하지 않아도 체내의 마나를 완벽하게 보존할 수가 있었다.

마나의 손실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 그가 야스간에 훈련을 온 일차적인 목표였다. 타르코스 소장은 그것만으로도 훈련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라고 했다. 예전에 이곳을 거쳐 간 니코레임의 동조 헌터들도 딱 그 정도의 수련을 마치고는 다른 행성으로 이동했었다.

그러나 진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다음 단계의 훈련으로 넘어갔다. 그는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마나 손실을 완전히 막을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손이나 검에 마나를 형상화 시킨 채 하루 종일 그것을 휘두르며 전투 기술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전투를 하는 도중에도 집중을 잃지 않고 발현되는 마나의 결정화를 유지하는 기술을 익히기 위한 수련이었다.

또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한 번의 보급을 더 받았다. 그렇잖아도 간당간당하던 마나가 조금씩 계속 빠져나가는 것이 다소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매일 몸을 움직이면서 손발을 놀리고 형상화 시킨 검을 휘둘렀다. 그런 훈련을 시작한 지 또 다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렀을 때, 드디어 진우는 하루 종일 검을 형상화시켜 휘두르더라도 마나를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야스간에 올 때 혼자만의 계획으로 잡고 있었던 두 번째 단계의 훈련이 끝난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의 훈련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을 때, 진우는 가져온 검에 마나를 주입해서 시험 삼아 숨 쉬는 기둥의 한쪽 모서리를 슬쩍 내리쳐보았다. 그러자 전에 힘으로만 베었을 때는 흠집도 나지 않던 기둥의 모서리가 여지없이 잘라져나갔다. 일격에 기둥을 두 동강 낸다든가 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지만, 계속 내리치면 기둥을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지금 확 박살을 내 버려?”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애증이 뒤섞인 대상이기는 했지만 사실 진우의 입장에서는 굳이 숨 쉬는 기둥을 부술 필요까지는 없었다.

게다가 아직 자신이 야스간으로 오면서 계획했던 훈련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약탈의 계곡이 가지고 있는 마나 흡인력을 이겨내고, 허공에 마나를 동조화시켜 형상화시키는 세 번째 단계의 훈련이었다. 프레일과 싸울 때 한 번 성공시키기는 했어도, 그런 거칠고 엉성한 방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동조를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동조를 통해 허공에 원하는 대로 마나를 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벌집 모양의 결정구조 하나만으로는 힘들었다. 어떤 모양으로 마나를 형상화시키려 하느냐에 따라 마나 손실을 가장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결정의 구조가 조금씩 다 달랐다. 그래서 진우는 한 달이 넘게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십여 가지의 서로 다른 결정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매섭게 살을 파고들던 추위가 어느덧 한 풀 꺾여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마나 동조를 통해 허공에 결정화된 창이나 송곳을 만드는 훈련을 하면서 진우는 마나 기관 속에 저장되어 있던 마나를 거의 바닥까지 박박 긁어내야 했다. 마나가 완전히 비워질 경우 혹시라도 해가 있을까 싶어 최후의 일부를 남겨두기는 했지만,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이제 현재 몸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그렇게 쓸 수 있는 마나를 모두 끌어내면서까지 훈련을 한 덕분에 그는 허공에 십여 개의 마나창을 띄울 수 있었다.

그 이상의 마나창을 만들려면 아무래도 마나를 더 보충해야 할 것 같았다.

“마나 폭탄을 만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거야 어차피 터트릴 수도 없는 거니까.”

폭탄의 표면만 살짝 결정화시키는 방법으로 동조를 사용하면 이곳에서도 마나 폭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것을 일단 터트려버리면 사용한 마나를 회수할 방법이 없었다. 마나창이나 마나 송곳의 경우도 일단 만드는 데까지는 마나 손실이 없이 시전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걸 다시 마나로 흩어서 체내로 갈무리할 때에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마나를 잃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  * * * *

약탈의 계곡에서 결정화의 방법을 이용하여 동조까지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이제 목표로 했던 수련이 거의 완료되었다. 진우는 슬슬 지구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마나를 처음부터 결정화시키는 방향으로 흡수하는 것은 안 될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체내에 일종의 마나 스톤이나 마나 크리스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발상은 간단했다.

머릿속에 구체적인 결정의 구조와 모양을 하나의 심상처럼 그린 다음에 몸 안 어느 한 부분을 겨냥해서 그런 결정을 구체화시키는 쪽으로 의지를 발동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주변의 마나를 흡수해 결정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마수는 가능하지만 인간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마나 스톤 생성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구름 속의 얼음 알갱이가 주변의 수증기를 흡수하면서 눈의 결정으로 자라듯이 대기 중의 마나가 흡수되면서 몸 안에 마나의 결정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화된 마나가 숨 쉬는 기둥의 흡인력에 견디는 것처럼, 결정화를 위해 움직이는 마나는 녀석이 끌어당기는 힘을 무시하고 몸 안으로 모여들지도 몰라.”

그리고 그 방법을 조금 더 발전시킨다면, 전투 중에도 상대방의 마나를 그런 식으로 빨아들이는 게 가능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마나를 그런 식으로 흡수한다고 해서 그게 꼭 유리하게 작용할 지의 여부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나를 보충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대의 마나를 소진시키는 것만으로도 전투를 유리하게 이끄는 것은 가능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진우는 잠시 마음속에 품었던 귀환을 뒤로 미룬 채 다시 체내에 결정화된 형태로 마나를 축적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련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바닥에 앉아 명상을 하면서 심상 속에 원하는 결정의 모양을 그린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였다.

그런 식으로 심상을 통해 주변의 마나를 조정하는 일은 진우가 그동안 수많은 수련을 통해 익숙하게 해 오던 일이었다. 더구나 그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마나를 결정화시키는 방법을 수련하면서 그의 마나 통제력은 처음 야스간에 올 때에 비해서 크게 향상된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뜻밖에도 아주 순조롭게 몸 안을 향해 주변의 마나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약탈의 계곡에서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련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드디어 몸 안에 깨알보다 작은 조그만 결정이 형성되기 시작한 순간, 정오나 자정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숨 쉬는 기둥에서 예의 그 깊은 호흡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흐~읍~

그와 동시에 공터의 중앙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흡인력이 발생했다.

“으윽.”

진우는 마치 온몸의 마나가 일순간에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엄청난 힘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황한 그가 미처 체내에 끌어들였던 마나를 갈무리하기도 전에, 간신히 만들어 놓았던 마나 결정이 순식간에 흩어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결정은 헛되이 사라지고, 하마터면 체내에 남아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마나도 몽땅 빨려나갈 뻔 했다. 진우가 간신히 피부에 결정화된 마나를 씌워 더 이상의 마나 이탈을 막았을 즈음해서, 때 아니게 시작되었던 기둥의 호흡 역시 그쳤다.

“뭐야, 이건?”

난데없는 현상에 당황하던 진우의 눈이 갑자기 동그랗게 변했다.

“어라? 이건, 설마?”

스스로도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놀라운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루에 두 번, 정오와 자정을 제외하고는 호흡을 하지 않던 숨 쉬는 기둥이 갑자기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체내에 마나 결정화를 시도한 일과 관계가 있는 현상이었다. 이런 일은 보통 마나 크리스털이 주변의 다른 마나 크리스털과 강하게 동조를 할 때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숨 쉬는 기둥의 밑에 어쩌면 또 다른 마나 크리스털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는데?”

진우는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들고 숨 쉬는 기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검에 마나를 주입하고는 거침없이 숨 쉬는 기둥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그가 수십 번 가량 기둥을 내리치자 기둥 전체에 조금만 실금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둥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기둥이 무너진 자리 밑에는 기둥과 비슷한 재질로 보이는 암반이 구멍이 숭숭 뚫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엷은 붉은 빛을 띤 투명한 수정 같은 것이 뾰족한 끄트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짐작대로인가? 하지만 이 녀석은 왠지 그냥 마나 크리스털로 보이지는 않아. 그렇게 보기에는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세.”

진우는 일단 밖으로 고개만 내밀고 있는 수정을 모두 파내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일이 쉽지 않았다.

수정이 몸을 묻고 있는 암반은 숨 쉬는 기둥보다 더 단단했다. 게다가 다 파낸 뒤에 느낀 것이지만 생각보다 수정의 크기도 엄청나게 컸다.

진우는 무려 사흘을 작업한 뒤에야 수정 전체를 지상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완벽한 결정이라고 보기에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서 조금 어설픈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엷은 붉은 빛깔에도 불구하고 속이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모든 부분이 투명했다.

문제는 그 크기가 가장 긴 쪽으로는 진우의 키에 거의 근접할 정도로 엄청나다는 점이었다. 그 거대 결정의 한 가운데에 마치 불꽃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조그만 보석이 하나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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