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타타타타탕
서로를 향해 달려들던 프레일과 진우의 사이에서 철공소의 자동 해머가 연속으로 철판을 내리치는 것과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전신에 마나를 두껍게 두르고 공수를 주고받자 그 충격으로 인해 마나 구속 필드의 격벽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특히 공수의 핵심이 되고 있는 두 사람의 손과 발에는 눈으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형상화된 마나가 덧씌워져 있었다.
프레일과 진우 모두 몸에 두른 마나는 얼핏 보기에는 전체적으로 투명할 젤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상대와 부딪힐 때마다 접촉 부위가 순간적으로 짙은 색을 띄며 공격과 방어의 강도를 강화시켰다. 눈을 뜨고도 공격과 수비가 이루어지는 찰나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손발이 부딪혔다 떨어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접촉 부위의 마나 색깔이 흐려졌다 짙어지기를 반복했다. 동조 단계에 든 사람들답게 그 순간의 시간 속에서도 마나의 조정을 세밀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양쪽의 마나 색깔이 짙게 변할 때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터지면서 주변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손발을 둘러싼 마나의 모습 역시 각자의 의도에 따라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었다. 진우는 주로 오른손에 짧은 검이나 송곳 등으로 변형시킨 마나를 이용해 공격을 가하고, 반면에 상대의 공격은 왼손을 둘러싼 마나를 건틀릿이나 토시의 형태로 만들어 막아냈다.
그에 반해 프레일은 두껍고 긴 칼이나 무거운 해머 등의 모습으로 마나를 형상화시켜 파괴력이 큰 공격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방어 역시 라운드 실드 모양으로 마나를 응축시켜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동조 단계에 들어 마나의 운용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두 사람이기에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상대의 공격이 들어올지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나 구속 필드의 지속 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도 프레일과 진우 모두 상대의 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한 번도 적중시키지 못했다.
막상막하의 싸움이었다.
두 사람의 전투가 다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은 부상이나 피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방을 둘러쌌던 마나 구속 필드의 격벽이 희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마나 구속 필드가 사라지고 주변의 마나가 다시 숨 쉬는 기둥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자 두 사람은 잠시 전투를 멈추고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헉헉...”
진우는 동조 단계에 들어선 뒤로 언제 이렇게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불과 10분이 지나지 않는 승부였지만 매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긴장을 한 상태에서 공방을 주고받다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파김치처럼 풀어졌다. 하지만 그 점은 프레일이 더했다.
“지구인들도 개인 간의 전투를 자주 하는가?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가능한 거지?”
프레일은 마나 하나 없는 행성이라고 알고 있던 지구에서 어떻게 저렇게 싸움에 능숙한 녀석이 나타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싸움에서 힘과 속도는 승패를 가름하는 절대적인 요소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힘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거나 속도에서 크게 뒤처진다면 상대를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상대라면 역시 오랜 전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적절한 기술을 누가 더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 프레일은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지금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어왔던가.
“우리에게는 상대를 죽일 생각이 없이도 서로 연습하듯 전투를 하는 방식이 있어서 말이야. 그걸 대련이라고 하는데, 듣자하니 너희들에게는 그런 게 없다고 하더군.”
“상대를 죽이거나 복종시킬 생각이 없는데도 서로 싸운다고?”
“그래. 대련을 통해서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그걸 전하지.”
그런 바보 같은 싸움을 하는 놈들이 있다니. 프레일은 진우의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플레비크 인들에게 있어서 모든 전투는 곧 목숨을 건 행위였다. 그런데 연습이라니? 그들에게 연습이나 훈련이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상대에게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멍청한 플레비크 인은 없었다. 그래서 남의 연습을 훔쳐보다 들키면 그것은 곧 상대를 해치려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서 당장 싸움이 벌어지고는 했다.
“풋. 자신의 기술을 남에게 가르쳐 준다고? 그렇게 얼빠진 짓거리를 하는 놈들도 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구나. 그렇다면 네가 쓰는 기술이라는 것도 결국 그런 장난을 통해 배운 것이겠군. 역시 너는 진짜 전사가 아니었어.”
프레일은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을 하더니 품속에서 새로운 마나 스톤 하나를 꺼냈다. 역시 마나 구속 필드를 설치하기 위해 미리 가공된 것이었다.
“그런 얘기는 나를 쓰러뜨린 뒤에나 해야지. 나는 전사가 아니야. 헌터지. 그리고 어느 쪽의 방식이 더 뛰어난 것인지는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진우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정신을 바짝 긴장시키고 프레일이 손 위에 올려놓은 마나 스톤을 주시했다. 그런 진우의 모습이 잔뜩 긴장한 것으로 보였는지 프레일은 가소롭다는 듯이 진우를 슬쩍 바라보더니 마나 스톤을 허공에 던졌다.
마나스톤은 두 사람 사이의 허공을 날아오르더니 펑하고 터지며 순식간에 다시 주변에 마나 구속 필드를 펼치기 시작했다.
진우는 자신을 비웃는 듯한 프레일의 모습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린 채 허공에 마나 구속 필드가 구축되는 모습에 집중했다. 마나 스톤이 터지고 완벽하게 마나 구속 필드가 완성되기까지는 불과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진우에게는 그 과정이 느리게 재생되는 영상처럼 똑똑히 보였다.
허공의 한 점으로부터 마치 눈송이가 자라며 자신을 무수히 복제하듯이 수많은 결정이 만들어졌다. 진우는 그 결정들이 만들어지고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격벽을 만드는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저런 것이었군.’
진우는 마나가 결정화되는 모습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연필심으로 사용되는 흑연과 보석인 다이아몬드는 모두 탄소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연은 검은 색에 잘 부스러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다이아몬드는 투명하고 단단했다.
둘 사이의 결정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마나 구속 필드의 격벽에서 마나가 결정화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그동안 흑연은커녕, 마치 숯가루를 단단히 압축시키듯이 마나를 사용해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으려면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더 보고 연습을 많이 해야 하겠지만...’
진우는 마나 구속 필드가 완성되면서 프레일이 다시 공격을 해 들어올 기세를 갖추는 것을 보며 자신의 몸을 다시 짙은 마나로 감쌌다. 그러면서 손 주위의 마나만 살짝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운용했다. 그러자 그의 두 손에 덧씌워진 마나가 엷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최선을 다할 모양이군.’
프레일은 진우의 손에 씌워진 마나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며 긴장했다. 하지만 그는 진우가 단순히 자신의 손에 마나를 더 강하게 응축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날의 싸움에서 그가 범한 세 번째 실수였다.
“타앗.”
프레일은 강하고 짧은 기합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달려드는 탄력을 이용해 오른발을 쭉 펴서 진우의 아랫배를 향해 곧게 찔러갔다. 진우는 그의 발이 자신을 노리는 것을 보고도 몸을 틀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왼팔을 휘둘러 프레일의 발을 막았다.
캉
두 사람의 손과 발에서 날카롭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소리가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다시 두 사람의 동작이 적어도 수십 번은 변하면서 여러 차례의 충돌음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따다다다당
서로의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좁힌 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어지러이 손발을 부딪치던 두 사람의 몸이 어느 순간 다시 떨어졌다.
“으윽.”
프레일은 몸에 전해지는 고통이 조금 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급히 신음을 내뱉으며 진우를 향해 커다란 칼 모양으로 형상화된 마나를 휘두르고는 상대가 흠칫 몸을 피하는 틈을 타서 그로부터 떨어졌다.
물러선 프레일의 손과 발에서 녹색의 핏물이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진우 역시 상대를 향해 공격을 하지 않고 프레일의 몸에 난 상처를 살폈다.
자신이 어설프나마 새롭게 시도한 기술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성기고 간단한 형태로 결정화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응축된 마나 방어막을 제대로 파고들었군.’
그는 자신의 시도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심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나가 결정화되는 모습을 한 번 보았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완벽하게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였다. 아무리 진우가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지금도 주변의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마나 격벽에 나타나 있는 육각형 모양의 결정 구조를 살피며 조금씩 자신의 마나를 결정화시키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가 전투 중에 실전을 통해 자신의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프레일은 아마 화가 치밀어 몸을 떨었을 것이다. 두 번째 격벽이 설치되는 그 짧은 순간에 결정이 어떻게 자라고 생성되는지를 살필 수 있었던 것이 진우에게는 행운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프레일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던 진우의 마나가 갑자기 탄탄하게 쳐진 방어막을 뚫고 들어와 몸에 상처를 입히자 경악했다. 그러나 진우는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마나를 덧씌운 손을 칼끝처럼 세운 채 프레일을 향해 공격을 계속했다. 그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어린 것을 본 프레일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마나를 더욱 강하게 응축시키며 진우의 공격을 막아갔다.
캉, 캉, 캉.
한 번씩 공수가 교환될 때마다 프레일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두 번째 마나 구속 필드가 씌워진 지 5분가량이 지나자 어느새 그의 몸은 플레비크 인 특유의 녹색 피로 흥건히 젖고 말았다.
목 아래로는 상처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그의 몸은 어느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전투가 계속되는 상황이라 몸을 치료할 수도 없었던 프레일은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자신이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하압.”
그는 온몸의 마나를 한 손에 모아 손 바깥으로 창의 형상으로 마나가 길게 응축되게 했다. 그리고는 방어조차 도외시한 채 진우의 왼쪽 가슴을 향해 그것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의 발악에 가까운 힘이 담긴 공격에 진우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막아내면서도 몇 걸음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프레일이 빠르게 몸을 뒤로 물리더니 자신의 주위에 짙은 마나 방어벽을 겹겹이 치기 시작했다. 진우는 상대의 의도를 깨닫고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어째서 너희들은 하나같이 나보다 자신의 마나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진우의 말마따나 프레일은 자신이 진우보다 더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생각이었다. 같은 동조 전사라고 해도 수련의 기간에 따라 지니고 있는 마나량에는 어쩔 수 없이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었다. 더구나 소모되는 마나는 기술의 숙련도에 의해서도 달라졌다.
그는 진우가 동조 단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자신이 공터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숨 쉬는 기둥의 흡인력에 저항하느라 몸속의 마나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했다. 따라서 지금은 상대가 괴상한 기술을 써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끌 수 있다면 결국 저 건방진 지구인의 마나가 먼저 고갈되어 탈진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때를 기다리며 방어를 충실히 하고 진우가 먼저 지치기를 기다릴 작정이었다.
마나 구속 필드를 펼 수 있는 가공된 마나 스톤은 아직 두 개가 더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작전 변경이야말로 그가 범한 최후의 실수가 되고 말았다.
프레일이 방어 중심의 작전을 펴는 것을 본 진우는 공격을 서두르지 않고 몸 안의 마나 기관에 있던 마나를 최대한 끌어내었다. 그리고는 그 마나를 이용해 직접 허공 중에 마나로 이루어진 길쭉한 창을 만들었다. 거칠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미완성의 마나창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였다.
그는 한 손을 높이 들어 마나 창으로 하여금 방어벽 뒤에 숨은 프레일을 겨냥하게 만들었다. 마나 구속 필드로 보호되고 있는 지역 안에서, 이 싸움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자신의 마나를 직접 이용하여 동조의 기술을 사용한 것이다.
“동조....”
허공에 떠 있는 마나창을 보면서 프레일이 경악에 찬 음성을 내뱉으려는 찰라 진우의 손이 전면을 가리키며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마나창이 소리도 없이 날아가 프레일이 쳐 놓은 방어벽에 부딪혔다.
퍽, 퍽, 퍽, 퍽.
진우의 마나창이 프레일의 방어벽을 차례로 뚫고 들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마지막 소리는 방어벽이 아니라 다급하게 내뻗은 그의 손을 피해 왼쪽 가슴 한 가운데를 깊이 뚫고 지나갔다. 마나창이 파고드는 충격으로 인해 뒤로 넘어가던 그의 몸이 경악으로 인해 크게 확대된 눈을 하늘을 향한 채 우뚝 멈췄다.
프레일의 가슴을 뚫고 나가던 마나창이 뒤로 기울어진 그의 자세 때문에 땅속을 파고들며 박혔다. 그 바람에 프레일은 뒤로 쓰러지던 자세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신창에 꿰인 꼬치처럼 비스듬하게 매달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등을 꿰뚫고 나와 땅에 박힌 마나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프레일의 허리 아래로 순식간에 작은 피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진우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곁으로 다가오자 간신히 숨을 붙이고 있던 프레일이 애써 진우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 떻게?”
그러자 진우가 그의 품을 뒤져 남아 있던 마나 스톤 두 개를 꺼내더니 그것을 프레일의 눈 앞에 내밀었다.
“네가 가르쳐 줬잖아. 이걸로 말이야.”
프레일은 진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 진우가 마나 구속 필드를 통해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의 얼굴에 잠시 씁쓸한 미소가 어리더니 고개가 툭하고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흠... 드래곤 볼을 연상하는 분들이 몇 분 있더군요. 진우가 지배 단계에 들어서면 힘을 주는 순간 온몸이 금색으로 타오르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불끈 들었지만... 역시 그것은 참기로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