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38화 (138/235)

138화

페르일은 약탈의 계곡에서 하루 이상을 이동한 뒤에 명상을 통해 마나를 회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곧 그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소모된 마나를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세 명의 중급 전사들을 돌아보았다. 한참 동안 그들이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결국 혀를 차고 말았다.

“그만하고 모두들 일어나라.”

페르일이 명령에 중급 전사들은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페르일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펴보더니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마나 회복이 잘 안 되지?”

“네. 주인님. 죄송합니다.”

세 명의 중급 전사가 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페르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게 소리쳤다.

“간이 포털 장치를 설치해라. 이만 돌아가자.”

그의 말이 떨어지자 중급 전사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배낭에서 분해된 간이 포털 장치를 꺼내 조립했다. 포털이 완성되자 페르일은 미련을 두지 않고 그 길로 야스간을 떠나고 말았다.

*  * * * *

약탈의 계곡에서 수련을 하며 보낸 시간이 육십일이 지났다. 진우는 수련을 잠시 중단하고 눈물의 연못에서 세 번째로 물자 보급을 받았다. 야스간의 날씨가 겨울에 들어서는지 아침저녁으로 제법 공기가 쌀쌀해지고 있었다.

처음 물자를 보급 받을 때 모필로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보냈던 새로운 가죽 옷은 진우가 지구에서 가지고 온 것보다 촉감이 훨씬 부드럽고 활동하기에 편했다. 그 점에 대해 최대한의 손짓 발짓을 동원해서 칭찬과 감사의 표시를 전했더니 세 번째 보급을 받을 때는 보급품 중에 제법 넉넉하게 만든 겨울옷이 세 벌이나 들어 있었다.

최상급 헌터가 된 이후로는 더 이상 추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진우였지만 그들의 성의가 고마워 특별히 맹수 가죽을 한 장 더 건넸다. 물품을 전달하러 왔던 야스간 인은 처음에는 극구 사양하다가 그가 거의 강제로 가죽을 떠맡기자 나중에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근 진우의 수련에는 제법 진척이 있었다. 이제는 숨 쉬는 기둥이 호흡을 할 때에도 예전처럼 마나를 크게 뺏기지는 않게 된 것이다.

체내에 마나가 가득 차 있는 상태를 기준으로 했을 때, 계곡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무렵에는 매일 정오와 자정마다 절반이 훨씬 넘는 마나를 잃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사분의 일 이하로 크게 떨어졌다. 하루에 잃는 마나의 양이 5,000P 밑으로 내려간 것이다.

“하지만 마나 기관에 있던 마나도 슬슬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인다는 게 문제란 말이야.”

진우의 마나 기관에는 백만P가 넘는 마나가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 수십일 동안 하루에 2만P에 가까운 마나를 잃다보니 저장되었던 마나의 삼분의 이 정도가 이미 숨 쉬는 기둥의 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최근에야 빼앗기는 마나의 양이 크게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수십 일 정도를 더 버티면 끝이었다.

“결국 케이튼처럼 마나가 풍부한 행성에 들러서 한 번쯤 마나를 회복해야 하나?”

소모된 마나를 모두 보충하려면 아무리 마나가 풍부한 행성이라고 해도 적어도 며칠 동안은 쉬지 않고 명상에 몰두해야 했다. 저수지가 크면 물을 비우는데도, 또 채우는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되도록 가지고 있는 마나 기관이 텅 비기 전에 수련을 끝내고 싶었지만,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플레비크 인들이 금방 다시 올 줄 알았는데, 녀석들이 소식이 없네.”

그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점이 진우로 하여금 마나 소모를 줄이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다. 공터에서 플레비크 전사들의 흔적이 발견된 뒤로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전에도 마나를 일정 수준까지 보충해 놓아야 했다. 그러자니 밤마다 자는 동안 마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마나의 소모량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플레비크 인들이 접근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진우는 자기 전에 마나를 채우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마나 기관에서 필요한 마나를 꺼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훈련을 시작했다.

다행히 본래 몸 안에 있던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훈련이 거듭되면서 마나 기관에서 꺼낸 마나로 몸 전체를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지금 상태로는 그들이 자신이 있는 동굴을 발견하기 전까지 약간의 시간만 벌 수 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마나를 채운 상태에서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아 있었지만 진우는 그 방법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대책 없이 마나가 탈진된 상태에서 그냥 자는 것도 위험했고, 그렇다고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 그들을 기다리며 밤마다 한정 없이 마나를 소모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하루라도 빨리 수련의 경지를 높이는 것밖에 없었다. 진우는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마나 통제력을 늘이기 위한 수련에 몰두했다.

*  * * * *

블리젠 행성을 지배하고 있는 상급 전사 투르가는 페르일이 직접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얼굴 가득히 성미 고약한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가 호기심이 발동할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페르일이 궁궐을 연상케 하는 그의 거처를 방문해서 고개를 숙이자 그는 대뜸 질문부터 던졌다.

“마나 구속 필드를 달라고? 그걸 어디다 쓰려는 거지?”

그러자 페르일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부탁했다.

“제가 이번에 지구인 가운데 동조에 든 상급 전사 하나를 복종시키는 일을 맡았다는 얘기는 들으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현재 머물고 있는 행성이 조금 특이해서 그 장치가 없으면 제대로 싸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을 해결하고 나면 다음에는 제가 투르가님의 부탁 하나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블리젠 행성의 원주민들은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집단으로 전투를 할 때 자기편에게 몸에 있는 마나를 자유롭게 전해줄 수 있는 독특한 집단 전이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서로 상대의 마나 전이를 막기 위해 일정한 장소 내에서는 외부와 마나를 주고받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마나 구속 필드라는 장치를 고안해 냈다.

블리젠 행성인들끼리 전쟁을 할 때에는 매우 효과적인 장치였지만, 제작이 쉽지 않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투르가는 블리젠 행성을 점령한 뒤에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과정에서 마나 구속 필드를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여러 개 확보했다. 마나 스톤을 가공해서 만든 엄지손톱 크기의 그 장치는 일종의 소모성 아이템이었다.

전투 시에 그것을 공중으로 던지면 허공에서 폭발하면서 반경 40m 가량의 반구 내부를 10분가량 마나 구속 지역으로 만들었다. 투르가가 그런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페르일은 약탈의 계곡에서 마나를 빼앗기는 경험을 하고 나자 그 장치를 빌리기 위해 직접 블리젠 행성으로 온 것이었다.

페르일이 거듭해서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자 투르가의 입가에 다시 악동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미소를 띠운 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페르일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갑자기 풋 하고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살다보니 천하의 페르일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하는 모습을 다 보는구나. 좋다. 장치를 빌려주지. 다만 그 대가로 따로 부탁을 한다기보다는 미리 약속을 하나 하자. 만약 이번에 네가 지구인을 복종시키는데 실패한다면, 다음 차례는 내가 나서는 것으로 하지. 네가 그 사실을 본성의 세 분 지도자에게 허락을 맡는다면 다른 조건 없이 장치를 빌려주겠다.

어떠냐?”

페르일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실패한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그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죽고 난 다음에야 그 지구인을 누가 처리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 * * *

페르일이 본성에 연락을 취해 투르가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 허락을 받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진우는 모필로 마을로부터 네 번째로 물자 보급을 받았다. 그 사이 진우의 마나 통제력은 더 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 쉬는 기둥이 호흡을 할 때마다 여전히 마나를 조금씩 뺏기고 있었다.

“그냥 마나 통제력만 키워서 대항하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건가?”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련을 할수록 확실히 마나를 통제하는 힘은 늘어났다. 그러나 처음에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통제력이 최근에는 수련을 해도 거의 향상되지 않았다.

수련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답답할 정도로 성장이 느려졌다. 그런 상태가 보름 이상 계속되자 진우로서도 자신의 수련 방식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동조의 단계를 완성하고 지배의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방법이 단순하게 마나를 다루는 통제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동조를 완성하는 것이 단순히 통제력을 극대화시키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라는 말인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문제는 그걸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진우는 헌터 학교에 있을 때부터 조승운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최상급 헌터가 된 이후로는 남에게 특별히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미 주변의 다른 이들은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는 모든 것을 혼자의 노력과 깨우침으로 헤쳐 나가야 했다. 그러자니 지금처럼 풀어낼 방법이 마땅치 않은 벽과 마주쳤을 때에는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  * * * *

진우가 그렇게 날마다 새로운 수련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때, 모든 준비를 마친 페르일이 다시 야스간 행성의 사막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다른 전사들을 대동하지 않은 혼자의 몸이었다.

첫 탐색 때의 경험을 통해 중급 전사까지는 이곳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는 약탈의 계곡까지 며칠 동안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체내의 마나를 온전히 유지할 수가 없었다.

비록 노예이기는 하지만 중급 전사들은 귀한 자원이었다. 공연히 데리고 왔다가 싸움 도중에 죽기라도 한다면 그의 손해였다.

페르일은 처음 야스간 행성에 왔을 때처럼 다짜고짜 약탈의 계곡 한 가운데로 진입하지 않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는 계곡 중심의 공터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 이르자,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주변의 마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진우의 마나 탐지에 의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될 걱정은 없었다. 이곳에서는 탐지를 위해 몸 밖으로 마나를 뿌리는 순간 여지없이 뿌려낸 마나가 계곡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때문에 마나를 이용한 탐지가 불가능했다. 자신이 그렇다면 공터에서 수련 중이라는 지구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끈기 있게 자리를 지키며 마나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 결과 매일 정오와 자정, 하루에 두 번씩 주변의 마나를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힘이 공터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건 아마도 전에 보았던 그 구멍 뚫린 바위의 짓이 틀림없겠군.”

며칠 동안 머물면서 공략을 위한 귀중한 정보를 얻었지만, 그러는 사이 상급 전사인 그도 결국 가지고 있던 마나를 모두 잃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또 다시 미련 없이 계곡을 빠져나와 자신의 행성으로 귀환했다.

“다음에 올 때는 제대로 한 판 해 보자고, 친구.”

그는 비록 긴 시간을 투자하고도 여전히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다음번에 와서 승부를 건다면 자신이 훨씬 유리한 상태에서 싸움에 임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보다 훨씬 일찍 상급 전사에 든 자신도 공터 바깥의 계곡 안에서조차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마나를 모두 잃었다. 공터 중심이라면 아마 하루를 견디기도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지구인은 벌써 수십일 째 수련을 하고 있었다.

프레일은 지구인이 자신처럼 주기적으로 계곡을 벗어나 마나를 회복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처음 약탈의 계곡에 찾아갔을 때 지구인이 자리를 비웠던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다면 마나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마나가 없는 빈 몸으로 하는 수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몸을 쓰는 격투술 같은 것밖에 없었다.

상급 전사들에게 그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공터로 진입했을 때 강진우라는 지구인이 그곳에 머문 지 최소한 하루 이상만 지난 상태라고 해도 무조건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거기다 마나 구속 필드를 펼치고 싸우면 마나량도, 단계의 경지도 높은 나의 필승이지.”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귀환하는 포털을 탔다. 진우가 가지고 있는 마나 기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그로서는 엄청난 착각에 기반한 자신감이었지만, 사실 그게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게다가 프레일은 두 번에 걸쳐 미리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정도로 신중을 기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루살카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루살카는 동조 단계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별한 계획도 없이 성급하게 진우를 찾아갔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프레일은 일단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 마나를 완벽하게 회복시킨 후 드디어 세 번째로 야스간 행성을 방문했다. 그는 이번 만큼은 생각보다 오래 끌어왔던 승부를 끝장내고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상급 전사에게 종속의 낙인을 찍을 자신이 있었다.

프레일은 도착하자마자 신속하게 약탈의 계곡으로 이동해 빠른 속도로 중앙의 공터로 진입했다. 일부러 정오 무렵에 시작되는 숨 쉬는 바위의 호흡 시간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 공터에 도착한 그는 막 명상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우를 발견했다. 그의 얼굴에 득의의 웃음이 어렸다.

“누구냐?”

자신을 향해 묻는 지구인을 향해 그는 씩 웃었다.

“네 주인님이 되실 분이다.”

============================ 작품 후기 ============================

아는 분이 겨울 동안 따뜻한 남쪽 나라로 피신갔다가 오겠다고 하더니 요즘 태국에 있다고 카톡을 보냈더군요. 거긴 따뜻해서 좋은데 추운 한국에서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더군요.

저야 요즘 진우 따라 이 행성 저 행성 떠돌고 있지요. 차마 그렇게는 말을 못하고 저도 여행다니며 잘 있다고 했습니다. 그양반 돌아와서 어딜 다녔나고 물어보면... 글쎄요... 야스간에 있었다고 해야 하나요, 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