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36화 (136/235)

136화

약탈의 계곡은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로 비좁게 파고들어간 벌판이 사막과 서로 만나는 경계지점에 있었다. 계곡은 꼭대기가 평평한 넓은 바위산을 두 쪽으로 깊게 가르며 지나가는 모양이었다.

산 자체의 높이는 500m가 채 되지 않을 정도여서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었지만 말 그대로 평지돌출이어서 경사가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엄청나게 큰 조개 관자 하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민망한 모습을 움츠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산 한 가운데를 약탈의 계곡이 동서로 파고들어 양쪽을 밀어내듯 지나가는 형국이었는데, 계곡의 중심에는 복숭아씨 모양의 공터가 있었다.

“계곡이 무너지면 꼼짝없이 그 안에 갇히겠는데.”

진우는 헌터 패드에 띄운 지도를 살펴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지도에 의하면 공터를 뺑 둘러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에워싸고 있어서 드나들 곳이라고는 양쪽을 통과하는 계곡을 지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명색이 동조 단계에 든 헌터이니, 진우 역시 평소라면 아무리 높은 절벽이라도 충분히 올라설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자료에 나와 있는 대로 그 안에서는 마나를 활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면 섣불리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진우가 남들과는 다른 근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특별한 장비도 없이, 단지 신체의 힘만으로 수백 미터의 절벽을 오르는 것은 힘들었다.

눈물의 연못을 떠나 약탈의 계곡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몸 안에 있던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조금씩 강해졌다. 그래도 계곡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무난하게 마나를 유출시키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진우가 계곡의 입구를 통과해 안쪽으로 진입하면서 미세하게나마 몸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체내의 마나에 대한 통제에 정신을 더욱 집중시켜 억지로 마나를 막자니 조금씩 달구지를 끄는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계곡에 들어서면서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회오리 모양의 구름이 계곡 중심의 상공을 덮은 채 널리 펼쳐져 있었다. 그 회오리의 중심 부근에 지도에 나와 있는 공터가 있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중심을 향해 모여든 우중충한 구름은 한 가운데에 이르러 소용돌이치며 그 끝자락을 지상을 향해 꼬리를 늘어뜨리듯 길게 뻗고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빛을 차단한 채 주변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저 구름들은 일 년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말이지.”

진우는 계곡을 통과해서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지자 혹시나 효과가 있을까 해서 주위에 마나로 이루어진 방어벽을 쳐 보았다. 하지만 곧 기겁을 하고는 얼른 그것을 취소시켰다. 마나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방어벽 자체에서 놀라운 속도로 마나가 이탈하면서 순식간에 방어벽이 얇아졌던 것이다.

“쩝. 결국 마나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기르기 전에는 함부로 마나를 밖으로 뿜어내서는 안 된다는 뜻이군.”

계곡의 중심에 접근할수록 몸 안의 마나를 온전히 가두어 두는 일만 해도 점점 힘겨워졌다. 그러다보니 마나를 발현시켜 신체의 근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거운 짐이 실린 달구지를 끌고 이동하려니 오랜만에 전신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신체적 능력만으로도 달구지를 움직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계곡의 바닥이 워낙 고르지 못한 탓에 달구지가 계속 요동을 쳤다. 평지에서 끄는 것보다 몇 배나 힘이 들었다.

덕분에 불과 2Km 남짓한 계곡을 통과해 중앙의 공터에 도달하는 데에만 몇 시간이나 걸리고 말았다.

진우가 다소 힘겹게 계곡 중앙의 공터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공터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높이 10m 정도의 길쭉한 바위였다. 그것은 누가 바닥에 기둥 하나를 쿡 박아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제주도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무암처럼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구멍들이 빼곡하게 뚫려 있었다.

“저게 숨 쉬는 기둥인가 보네.”

‘숨 쉬는 기둥’이라는 이름은 야스간 인들이 아니라 이곳을 방문했던 니코레임 인들이 붙인 것이었다. 계곡 전체의 이름이 약탈의 계곡이었지만 실제로는 기둥처럼 생긴 곰보투성이의 저 바위가 야스간 전체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주범이었다.

공터에 도착한 진우가 오랜만에 흘린 땀을 닦으며 쳐다보고 있는 지금도 그 구멍들 안으로 주변의 마나가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숨 쉰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빨아들이기만 하고 내뱉지는 않잖아?”

하지만 그는 공터에 도착한 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숨 쉬는 기둥이라는 이름이 공터 중앙의 바위에 딱 어울리는 명칭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타르코스 소장이 준 자료에는 하루에 두 번, 야스간의 시간으로 정오와 자정을 전후한 한 시간 가량은 숨 쉬는 기둥이 마나를 빨아들이는 힘이 다른 때보다 유난히 강해진다고 나와 있었다.

그 자료를 읽으며 그저 그런가보다 했는데, 진우가 도착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정오 무렵이 되자, 갑자기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 전체에서 마치 거인이 숨을 깊이 들이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흐~~읍~~

진우는 마나를 볼 수 있었다. 마나가 들이쉬는 깊은 숨소리가 들리자마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희미한 마나가 일순간 투명해질 정도로 순식간에 바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진우는 순간적으로 몸 전체의 피부가 밖으로 확 당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윽.”

피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몸 전체에서 갑자기 급격히 마나가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온몸의 숨구멍을 통해 희뿌연 안개 모양의 마나가 무엇에 홀린 듯 빠져나와 공터 중앙의 바위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진우는 다급히 몸 안의 마나를 통제해 그것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으나 숨 쉬는 기둥이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은 그의 통제력보다 훨씬 강했다.

“빌어먹을. 이건 마치 진공 펌프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네.”

진우는 동조 단계에 든 헌터였다. 같은 동조 단계의 헌터라고 해도 수련의 완숙도에 따른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마나에 대한 통제 능력이라면 헌터들 가운데에서는 현재로서 최고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능력으로도 몸 안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완벽히 막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숨 쉬는 기둥이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력했다.

바위가 숨을 들이쉬는 시간은 대략 1분에 한 번씩 반복되었다. 그런데 한 번 숨을 들이쉬면 20초가량은 주변의 마나가 온통 바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엄청난 힘이었다.

한 시간 가량 지나 숨 쉬는 기둥의 호흡이 모두 끝났을 때에는 진우조차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버티느라고 버텼지만 이미 체내의 마나가 거의 대부분 사라진 뒤였다.

물론 그의 체내에 있는 마나 기관에는 아직도 엄청난 양의 마나가 저장되어 있었으니 잃어버린 마나를 보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루에 두 번씩 계속 마나를 빼앗기다가는 다음 식량 보급일까지 몸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가 걱정될 정도였다.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해를 끼치는 것은 없지만, 이러다가는 마나가 남아나지를 않겠네.”

힘들기는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타르코스 소장의 말이 딱 맞았다. 게다가 이렇게 강력한 흡인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리 경고를 받기는 했지만 그는 이번 수련이 아무래도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 * * *

진우는 공터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계곡의 입구 쪽에 텐트를 쳤다. 바닥이 온통 바위투성이라 그것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만 해도 제법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은 곳이라 텐트 주변에 굳이 물고랑을 파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이었다.

배낭에 있던 짐을 꺼내 텐트 안에 정리한 뒤 주변의 돌멩이들을 쌓아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을 만들자 대충 야영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 취사용 연료와 버너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일단은 모필로 마을에서 챙겨 준 장작을 이용하여 불을 지피기로 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머물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져온 연료는 최대한 아껴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텐트 설치가 끝나자 숨 쉬는 기둥 가까이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상태에서 한동안 마나를 통제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두는 훈련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마나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살짝 줄어들기는 했다. 그래도 여전히 조금씩 새어나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수련하며 앉아 있자 어느새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때문에 주변이 밝지 않았는데, 사방을 둘러싼 절벽 탓에 평지보다 해가 지는 시간이 짧아 저녁이 일찍 찾아온 것이다.

“그나저나 잠자는 동안에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은 어떻게 막지.”

가지고 있는 자료에 의하면 자정에도 한 차례 숨 쉬는 기둥이 호흡을 한다고 했다. 그 때에 멋모르고 잠이 들었다가는 온몸의 마나가 다 빨려나가고 말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잠은 매일 밤 자정이 지난 다음에나 잘 수 있겠군. 하루에 두 차례씩이나 마나를 그렇게 많이 빨리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당분간은 마나 기관에 저장되어 있는 마나가 있으니 견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우는 그날 자정 무렵에 시작된 숨 쉬는 기둥의 호흡을 겪고 나자 사태가 처음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에는 그럭저럭 체내의 마나를 조금 보존한 상태에서 기둥의 호흡이 지속되는 동안을 견뎌낼 수 있었는데, 자정에 한 차례 더 같은 꼴을 당하자 몸 안에 마나가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빨려나가고 만 것이다.

진우는 헌터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완벽한 마나 탈진 상태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온몸의 근육 하나하나가 모두 가닥이 풀린 것 같네.”

마나가 모두 빠져나가자 지독한 허기가 찾아왔다. 그것이 위장이 비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진우는 굳이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취사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팔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는 지금 상태가 순수하게 자신의 육체적 힘만으로 움직일 때의 감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하도 오랜만에 마나가 없는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그 느낌이 몹시 생소했다.

“나도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많이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군.”

저도 모르게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끝내고나자 이번에는 피로감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잠이 든 상태에서는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니 마나가 빨려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련을 잠도 자지 않고 버틸 수는 없었다. 진우는 일단 더 이상 버티는 것을 포기하고 텐트 안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구름 때문에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 텐트 위를 무겁게 덮고 있었다.

*  * * * *

페르일은 자신이 다스리던 행성으로 돌아가 야스간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노예 가운데에서 하급 전사 몇 명을 골라 포털을 이용해 콴톤 의장이 알려준 좌표로 전송시켰다.

야스간으로 갔던 하급 전사들은 열흘 정도 뒤에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착했던 곳이 텅 빈 사막이었다는 것과, 그곳에서 사흘 정도 거리에 아스탄이 말한 약탈의 계곡이라는 곳이 실제로 있었다고 보고했다.

“약탈의 계곡 주변에서는 포털 이용이 불가능하단 말이지?”

“네. 주변을 이동하며 여러 차례 시험을 해 봤는데, 최소한 계곡의 중심부에서 하루 정도는 쉬지 않고 이동해야 비로소 포털이 작동되었습니다. 그보다 안쪽에서는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포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계곡 주변에 마을이나 숲은 없던가? 생물이나 마수의 분포는?”

“사막 너머에는 숲이나 마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탐색했던 사막이 워낙 넓어 그것까지는 미처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약탈의 계곡 주변에는 저희가 탐색한 범위 내에서는 생물은커녕,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없었습니다. 혹시 그곳에 가시려면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급 전사들이 도착했던 곳은 사방에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그곳은 관광 목적으로 약탈의 계곡을 방문하는 니코레임 인들이 야스간 인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좌표였다.

진우가 도착했던 쿤브룬 산과는 약탈의 계곡을 중심으로 정 반대 방향에 있는 장소였다. 플레비크 인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콴톤 의장이 일부러 그들이 야스간 인들과 조우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쓴 것이었다.

순박하지만 무력이 약한 야스간 인들이 플레비크의 전사들과 부딪히면 자칫 참사가 일어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약탈의 계곡이라는 곳 가까이에서는 정말로 마나가 많이 빨려나가던가?”

페르일의 질문에 하급 전사 하나가 약간 두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몸 안의 마나가 모두 빨려나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약탈의 계곡 안에는 진입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 근처만을 돌아다녔는데도 그렇게 됐습니다. 아마 계속 안에 들어가면 마나를 잃어버리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마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페르일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녀석을 쓰러뜨린 뒤에도 종속의 낙인을 찍으려면 일단 멀리까지 끌고 나와야겠군. 마나를 회복하지 않으면 낙인을 찍을 수도 없으니 말이야. 일이 조금 귀찮게 되었는걸.”

아스탄의 말에 의하면 계곡 가까이에서는 무중력 자동차를 비롯해 마나를 동력으로 하는 장치나 도구는 하나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헌터 패드나 통신기처럼 마나가 아닌 전기로 작동하는 간단한 장치 말고는 온전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힘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급 전사들의 탐색 보고로 볼 때 아무래도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물론 동조 단계에 든 자신이 하급 전사들처럼 며칠 만에 가지고 있는 마나를 모두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알았다. 너희들은 물러가서 잃어버린 마나를 회복하는데 힘써라.”

“감사합니다. 주인님.”

페르일은 며칠 동안 하급 전사의 보고와 아스탄이 남긴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뒤에 자신이 직접 야스간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생각 같아서는 몇 번 더 탐색을 위한 정찰대를 보내고 싶었지만 강진우라는 지구인을 노리는 상급 전사가 자기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자신이 이 일을 맡겠다고 한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나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가는 성질 급한 다른 상급 전사가 중간에 가로채고 나설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재중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는 중급 이상의 전사들에게 맡긴 뒤에 행성에 있던 고정 포털을 이용해 야스간으로 이동했다. 중급 전사 세 명을 대동한 페르일은 노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역시 커다란 배낭에 최대한 물과 식량을 잔뜩 짊어지고 포털을 통과했다.

“하급 전사시절 명령에 따라 외계 행성을 탐색했던 때의 기분이 드는군.”

그는 포털을 통과하자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황량한 사막의 풍경을 보더니 픽 웃으며 그렇게 말을 했다. 대대적인 행성 침공이 아니라 강력한 상급 전사를 쓰러뜨리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일행도 장비도 단출했다. 상급 전사가 된 이후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모험이었다.

“대규모의 전투도 재미있지만 플레비크 인은 역시 강한 전사와의 싸움이 성격에 맞아.”

그는 곧 만날 지구의 상급 전사를 생각하며 온몸의 피가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정말 모처럼 느끼는 설레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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