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29화 (129/235)

129화

아스탄은 벨푸와의 대화를 끝낸 뒤 포털을 통해 킹스글로리 행성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전초기지로 복귀한 그는 다시 포털을 통해 지구로 귀환했다.

나름대로 치밀하게 행적을 숨기며 이동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영국 헌터 학교의 교장실로 돌아온 며칠 뒤, 몇몇의 니코레임 인들이 그의 사무실을 급습했다. 바로 전날 강진우가 결국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계획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을 급습한 인물들의 선두에 영국 헌터양성소장이 서 있었다.

“스텀웰, 이게 무슨 일인가?”

아스탄은 내심 깜짝 놀랐지만 애써 얼굴에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선두에 선 스텀웰 소장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침착함을 가장한 그의 목소리를 들은 스텀웰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스탄, 미안하지만 조금 실례를 해야겠네.”

그가 뒤에 서 있던 니코레임 인들에게 고갯짓을 하자 세 명의 인물이 앞으로 나서더니 다짜고짜 아스탄의 두 팔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한 명이 아스탄의 발을 잡고는 그의 신발을 벗겨냈다. 그가 벗겨낸 아스탄의 신발창을 뜯어내자 그곳에서 조그만 기계장치가 나왔다. 그것을 본 아스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내 몸에 도청 장치를 달아 놓았던 건가?”

스텀웰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는 녹음 장치라고 해야겠지. 현장에서 도청과 녹음을 겸해야 했으니까. 콴톤 의장의 지시를 받고 이걸 설치하면서도 사실 내키지가 않았었네. 하지만 자네가 킹스글로리 행성에서 간이 포털 장치를 이용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는 이걸 붙여두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스탄은 아차 싶었다. 계속 주의를 하기는 했지만, 최악의 경우 간이 포털 장치를 이용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까지는 혹시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잡아 뗄 변명을 마련해 두었었다.

간이 포털 장치는 일회용이었기 때문에 포털의 작동이 멈춘 후에는 부서지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본인이 사실을 밝히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은 그 장치를 이용한 자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간이 포털 장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들킬지라도 그가 잡아뗀다면 다른 사람들로서는 자신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는 알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사로이 간이 포털 장치를 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제재를 받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 이유만으로는 자신을 구금하거나 그 이상의 처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신발에 녹음장치가 붙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 장치에는 자신과 벨푸가 나누었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을 것이다. 플레비크 인들에게 첩자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스탄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나를 의심한 거지? 그런 해괴한 장치를 부착하라고 명령을 한 자가 누군가?”

아스탄이 이를 갈며 묻자 스텀웰이 허파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콴톤 의장께서 직접 나에게 부탁을 하셨어. 그래서 자네가 페노닉스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부착했지. 평소에는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는 것 같더니, 이상하게 그때는 정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몹시 허둥대더군.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장치를 달 수 있었어네평소의 아스탄답지 않았었지.”

그는 아스탄의 신발을 수색했던 인물로부터 녹음장치를 건네받고는 그것을 아스탄이 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 장치의 내용을 검토해 보아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나뿐만 아니라 콴톤 의장까지 자네에게 백배 사죄를 해야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스텀웰이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아스탄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그렇군. 내가 페노닉스에서 돌아왔을 때라. 그때는 확실히 내가 좀 정신이 없었지.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다 이긴 경기처럼 말을 하기에는 자네도 너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어.”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아스탄의 온몸에서 폭발적으로 마나가 방출되었다.

“어리석은 놈.”

아스탄이 기운을 일으키자 스텀웰은 짧게 아스탄을 나무라며 자신도 마나를 일으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스탄은 중상급 헌터였다.

그가 헌터 학교의 교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니고 있는 개인의 힘 때문이 아니라 조직을 관리하는 데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스텀웰은 최상급 헌터였다.

콴톤 의장이 그에게 아스탄에 대한 수색과 체포를 맡긴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스탄은 마나를 일으켜 자신의 두 팔을 잡고 있던 니코레임인들을 떼어내더니 재빨리 품에서 조그만 구슬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폭탄이라기보다는 물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일순간 창백한 푸른 빛이 온 방안을 덮쳤다. 순간 달려들던 스텀웰을 포함해서 방안에 들어와 있던 니코레임인들의 마나가 일시에 동결되었다.

“으윽. 마나 동결 폭탄? 네가 이것을 어떻게?”

스텀웰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듯이 물었지만 아스탄은 그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방 한 구석에 세워져 있던 중세 기사 모양의 갑옷 장식에게로 달려갔다.

“잡아.”

스텀웰이 고함을 지르는 사이에 이미 갑옷 장식의 팔을 잡아 당긴 아스탄은 발밑에 생긴 구멍 속으로 쏜살같이 뛰어들었다. 그가 뛰어들자마자 구멍이 닫혔다.

스텀웰은 갑옷장식으로 달려가 아스탄처럼 팔을 잡아 당겼지만 구멍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화가 치민 그가 발로 구멍이 있던 자리를 발로 내리쳤지만 그것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마나를 쓸 수 없는 상태에서 그가 낼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걸 부숴.”

갑옷 장식이 들고 있던 장식용 검을 빼어든 스텀웰을 비롯해 아스탄을 잡으러 왔던 니코레임 인들이 바닥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닥은 생각보다 견고했다.

*  * * * *

등 뒤에서 들리는 거친 충돌음을 뒤로 한 채 아스탄은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통로를 허겁지겁 뛰어갔다.

“빌어먹을.”

영원히 들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발각이 되었다. 콴톤 의장의 성격을 비롯해서 니코레임 인들의 평소 성향으로 볼 때 당분간은 조금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설마 그 콴톤이 이렇게 노골적인 방법을 쓰다니.”

자신이 이곳에서 지내면서 상당히 지구인과 비슷하게 닮게 되었다는 것은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고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다만 자신의 적응 속도가 다른 니코레임 인들에 비해 빨랐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콴톤 의장 역시 생각보다 지구인과 많이 비슷해졌을 줄이야.”

그렇지 않다면 같은 니코레임 인에게 녹음 장치를 다는 과격한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그렇지만 콴톤 의장이 사용한 방법도 전혀 니코레임 인답지 않았다. 고향에 있을 때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니코레임 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려면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 도대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전설 속의 영웅을 기다린다는 게 얼마나 한가한 짓이냔 말이야.”

그는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콴톤 의장을 비롯한 다른 니코레임 인들을 욕하며 계속 뛰었다. 마침내 그가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해 놓았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벽돌로 둘러싸인 사방 2m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그곳에 간이 포털 장치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도박을 할 수밖에 없지. 강진우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은 루살카 그 멍청한 자식이 결국 당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는 벨푸가 약속을 지킬 차례지.”

아스탄은 간이 포털 장치에 니코레임 행성의 좌표를 입력했다. 잠시 후 포털이 열리자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뛰어들었다.

그가 포털을 통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텀웰을 비롯한 니코레임 인들이 간이 포털 장치가 설치되어 있던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이미 방 안에는 부서진 포털 장치의 잔해만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  * * * *

진우는 지구로 귀환하면 만사를 제쳐 놓고 며칠 정도 푹 쉬고 싶었다. 몇 가지 보고하고 물어볼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시간을 다툴 정도로 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삼일 정도 쉬면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가 외계 행성에서 찌들었던 때도 좀 벗겨내고, 소현을 만나 맛있는 것도 먹을 생각이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풀만 씹었더니 토끼나 염소가 된 기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헌터 양성소의 고정 포털을 통해 지구로 귀환한 뒤 고작 이틀이 지났을 때, 헌터 양성소의 타르코스 소장이 전화를 했다. 급히 헌터 양성소로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당장이요?”

“그래. 특별한 일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으로 와줬으면 좋겠네.”

어딘지 긴장으로 살짝 굳어 있는 듯한 타르코스 소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 거린 진우는 할 수 없이 무중력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헌터 양성소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바로 소장실로 올라갔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그를 기다리던 타르코스 소장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입니까? 굉장히 급한 일이 생겼나요?”

진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타르코스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전에 프랑스에 계시는 콴톤 의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네. 그 분도 조금 있으면 이리로 오실 거야. 어차피 모두 함께 있을 때 해야 하는 이야기니 잠시만 기다렸다 한꺼번에 이야기 하지.”

“프랑스에 계시는 분이 잠시 후면 여기로 오신다고요? 그리고 의장이라니요?”

콴톤이라면 예전에 프랑스에 갔을 때 만나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무니악 행성의 전초 기지장이었던 클로비스 라네스가 프랑스 외문연의 고문이라며 소개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타르코스는 그를 의장이라고 불렀다. 순간 진우는 그에게 아무래도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신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르코스 소장이 말한 대로 차를 마시며 조금 기다리자 전에 본 적이 있는 콴톤이 소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프랑스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지구 안에서 포털을 타고 이동했구나.’

그렇다면 정말로 굉장히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진우는 지구로 귀환하면서 한껏 풀어졌던 마음이 다시금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  * * * *

콴톤 의장이 도착하자 타르코스는 먼저 니코레임 행성 지구 평의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진우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외계인들을 지휘하고 의견을 조정하려면 그런 조직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지금까지도 타르코스가 자신에게 그런 조직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그러니까 지구에 있는 니코레임 행성인들의 대표로 구성된 평의회라는 것이 있고, 타르코스 소장님은 그 평의회의 의원, 그리고 이 분은 의장이라는 말씀이지요?”

두 외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한테 하실 말씀이 뭔가요?”

진우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콴톤 의장이었다.

“자네에게는 할 말이 많네. 하지만 제일 먼저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 우리 의원들 가운데 한 명 중에 영국 헌터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는 아스탄이라는 자가 있네. 자네도 뉴 올림포스 행성에서 열렸던 무투 대회에서 얼굴을 한 번 봤을 거야.”

기억하고 있었다. 이니스프리에서도 잭슨이 간이 포털 장치를 얻었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인물이었다. 진우는 아스탄에게 뭔가 구린 구석이 있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관톤에 이어 타르코스가 꺼낸 말은 그의 의심을 사실로 확정지어줬다.

“아스탄이 플레비크 인들에게 우리에 관한 정보를 넘겨주고 있었다.”

진우의 얼굴이 흠칫하며 굳었다.

“니코레임 인들에게 첩자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정보를 넘겨주었다면 어디까지 상대에게 알려진 겁니까?”

질문을 하는 진우의 목소리에 싸늘한 기운이 묻어나왔다.

“자네가 지구인으로서 동조에 들었다는 사실을 말한 모양이야. 아직 지구의 위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 같네만, 그것도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 어쩌면 지금쯤이면 이미 알려졌을 수도 있네.”

콴톤 의장이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그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정확한 위치는 모르네. 콴톤 의장께서 그를 잡기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어. 그가 남긴 녹음기록을 따르자면 아마 니코레임 행성으로 갔을 가능성이 크네.”

“니코레임 행성으로 갔다면 플레비크 인들을 만났겠군요. 그가 거기 있는 자들에게 지구의 위치를 알려주면 일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진우의 질문을 받은 콴톤 의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현재로서는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동조의 단계에 든 자네 한 사람 뿐일세.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구에 대한 플레비크 인들의 대대적인 침공이 있을 수도 있네. 미안하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진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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