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24화 (124/235)

124화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지만 진우의 몸은 조금도 수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피부에는 며칠 동안 잘 먹고 푹 쉰 사람처럼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지도 않았다. 진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몸을 점검했다.

“아픈 데도 없고, 괜찮은 것 같은데.”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온몸에 힘이 넘쳐흘렀다. 진우는 여전히 켜져 있던 반중력 벨트의 스위치를 껐다. 순간 토칠라크의 강한 중력이 온몸을 덮쳤지만 그가 마나를 일으키자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타앗.”

진우는 제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도약을 했다.

“어어억.”

전보다 도약력이 늘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마치 구름을 뚫을 듯이 치솟은 그의 신체는 대충 따져보아도 몇 백 미터 이상의 높이를 그대로 날아올랐다. 힘을 최대로 쓴 것도 아니었다. 예상보다 뛰어난 도약력에 진우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마터면 몸의 균형을 잃을 뻔 했다.

땅에 떨어지자 그의 발 주위가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한 충격이 주변을 휩쓸었다. 하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건, 마치 슈퍼맨이 된 기분이군.”

진우는 이번에는 마나 탐지를 펼쳐 보았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마나 탐지의 반경이 끝없이 늘어났다.

“대략 10Km 정도네. 마수들이 많은 곳에서는 전해지는 정보를 일일이 파악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겠다.”

진우는 자신의 신체는 물론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크게 늘어난 것을 깨달았다. 몸속에 새롭게 마나 기관이 자리 잡으면서 체내 마나량이 크게 늘어난 것 같았다. 못해도 10,000P가 훨씬 넘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동조를 위한 최소 마나량이라고 생각했던 수치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마나 기관의 성격도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고 말이지.”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마나 기관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와카반의 마나 기관보다 훨씬 많은 마나를 품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무아의 상태에서 수습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진 변화였기 때문에 그동안 가지고 다녔던 모든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가 새로운 마나 기관 안에 흡수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하나가 최소 십만이 훨씬 넘는 마나를 품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게 모두 단 하나의 마나 기관으로 갈무리되었으니 자신은 몸속에 어마어마한 마나 저장고를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이 상태로 지구로 돌아갈 경우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고 수련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자칫 몸 안에 있던 마나가 밖으로 뿜어져 나올 경우 아무리 수련실 안에서만 훈련을 한다고 쳐도 예전처럼 기세를 완전히 숨기기는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신조차 동조 단계에서 펼치는 기술들이 어떤 현상을 발생시키는지, 그리고 그것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짐작은 가지만 확신하기에는 일렀다.

수련할 때 마나가 소모되는 문제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마나 기관 안에 있는 마나를 마음대로 꺼내 쓰는 것이 가능하다면, 일 년 내내 전력으로 수련을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마나를 모두 소모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했다. 하지만 기술의 완성도는 쉽게 자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수련을 하는 동안 마나가 일부분이라도 일시에 방출된다면 큰 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진우는 일을 끝내고 나면 바로 지구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접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더 수련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확실히 동조의 단계에 오르고도 싶었다. 자신은 이미 동조의 단계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마나 크리스털들을 모두 자신의 의지에 동화시키는 순간 그 단계가 어떤 것인지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머릿속에 이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수련과 훈련을 통해 그것을 확실하게 익혀서 몸과 마음에 각인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진우는 먼저 거의 말라비틀어지다시피 한 상태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괴생물체의 사체를 태워버렸다. 놈은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분명했지만 어째서 그가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것과 유사한 간이 포털 장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나중에 타르코스 소장에게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지금도 하늘에 떠 있는 비행 드론이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모두 촬영했을 것이다. 영상을 보내면 타르코스 소장이 내용을 파악해서 판단을 해 줄 것이다.

니코레임 인들 말고도 다른 행성의 외계인들도 낯선 행성을 탐색하고 다니는 것이라면 그들이 지구를 방문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든 외계인들이 니코레임 인들처럼 지구인들에게 우호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괴생물체의 배낭을 자신의 무중력 바이크에 실은 진우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서 오랜만에 텐트를 쳤다. 마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초원에서 야영을 하기로 한 것이다.

불을 피워 간단히 요리를 만든 그는 식사를 마친 뒤에 괴생물체가 가지고 있던 간이 포털 장치를 꺼내어 그것을 설치했다. 간이 포털 장치에는 그로서는 처음 보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조작을 하는 방식은 지구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진우는 헌터 양성소의 고정 포털 좌표를 입력한 뒤 비행 드론이 촬영한 동영상과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크리스털 메모리를 전송했다. 포털 사용료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과도한 사치였지만 그래도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나았다.

그조차도 헌터 패드의 날짜를 확인하고는 싸움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에 기겁을 했던 것이다. 지구를 출발 할 때에는 대충 한 달이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왔는데 벌써 두 달이 훨씬 지났다.

소현을 비롯해서 지구에 있는 지인들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다행히 뜻밖에 여분의 간이 포털 장치를 구했으니 자신이 무사하다는 소식과 조금 더 이곳에 있겠다는 계획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  * * * *

소현은 오늘도 힘없이 헌터 양성소의 정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진우가 지구를 떠난 지 어느 새 두 달하고도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1년 동안 자신을 찾지 말라고 부탁하고 갔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넋 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최현과 조승운을 찾아가 구조대를 파견하자고 조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아직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자신을 말리고 있었지만, 답답하고 초조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인 눈치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1년이 지나도록 다들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조만간에 구조대가 파견될 것이다. 그럴 경우 소현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도 구조대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헌터 양성소의 정문을 지나 건물 쪽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저쪽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힘차게 손을 저으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타르코스 소장이었다.

“소현양~”

타르코스 소장은 평소의 점잖은 모습은 어디로 다 던져버렸는지 그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듯 뛰어오더니 다짜고짜 소현의 두 손을 꽉 움켜잡았다.

“진우 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사히 있답니다. 진우 군이 무사하데요.”

“정말요?”

소현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뭐라고 자세한 내용을 묻고 싶은데 가슴이 북받쳐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떼면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제 사무실로 갑시다. 그곳에서 진우 군이 보낸 크리스털 메모리에 담긴 영상과 메시지를 함께 봅시다.”

타르코스 소장은 소현의 한쪽 손을 끌고서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그녀를 끌고 갔다. 다소 거친 방법이었지만 끌고 가는 소장도, 끌려가는 소현도 그 점을 따지지 않았다.

*  * * * *

진우가 보낸 메시지는 타르코스 소장의 방에 들어서자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동영상도 있었다.

화면 속의 진우는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목소리에도 기운이 넘쳐흘렀다.

소현은 화면에 떠오른 그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눈물을 흘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저 그런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계속 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타르코스 소장은 소현이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하자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진우 군이 토칠라크에 갔던 일은 모두 해결이 된 모양입니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셔서 알겠지만 당장 돌아오지는 않을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당분간 수련을 더 하겠다는군요. 진우 군이 보낸 동영상 가운데에는 지금은 소현 양에게 보여드릴 수 없는 것들이 더 있습니다.

그건 현재 저희들이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검토가 끝난 뒤에도 일반에게 공개하지는 않을 겁니다.

소현이 다소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쳐다보자 소장은 살짝 웃음을 짓더니 말을 덧붙였다.

“다른 내용은 아니고 진우 군이 토칠라크에 남아 계속 수련을 해야 하는 이유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굳이 그 얘기를 하는 것은 혹시라도 소현 양이 공연한 걱정을 하실까 염려가 되어서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진우 군은 현재 아주 건강하고, 수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시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타르코스 소장이 굳이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할 리가 없었다. 소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장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자신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체면도 무시하고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달려 나오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소현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질문을 꿀꺽 삼켰다.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하지만 조승운 교관님하고 최현 교관님에게는 소식을 전해 주세요. 두 분도 말을 않고 계서서 그렇지 속이 몹시 타실 거예요.”

그녀의 말에 소장은 웃으면서 걱정 말라고 이야기했다. 또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당분간 계속 되겠지만 소현은 그나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진우가 무사하다. 그리고 결국 돌아올 것이다. 일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 * * *

페노닉스 행성의 무인 기지에 있던 포털들이 가동하면서 니코레임 평의회의 의원들을 속속 토해내기 시작했다. 바로 전날 급작스러운 평의회 소집 통보가 지구에 있는 모든 의원들에게 전해진 참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모든 일정을 무시하고 반드시 참석하라는 통보를 보냈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긴급회의도 오랜만에 있는 일이지만 반드시 참석하라는 통보는 처음입니다.”

평의회 의원들은 각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속속 희의장으로 입장했다. 단상 위의 의장석에는 이미 콴톤 의장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다른 때와는 달리 단상 위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한국의 헌터 양성소장으로 있는 타르코스 의원이었다.

의원들이 모두 참석하자 콴톤 의장이 자신의 앞에 있던 책상을 두드려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니코레임 행성 지구 평의회의 긴급 임시 회의를 시작합니다. 전체 인원 101명에 참석 인원 101명입니다. 오늘은 의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겠습니다.”

말을 하는 콴톤 의장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회의장에 앉아 있던 평의회 의원들에게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슨 일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지만 회의 진행을 알리는 의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오늘 회의 안건에 대해서는 지금 제 옆에 계신 타르코스 의원이 설명해 드릴 겁니다. 오늘은 따로 의원들 각자에게 배부된 자료가 없으니 모두들 타르코스 의원의 말에 주의를 집중해 주십시오.”

콴톤 의장의 소개가 끝나자 타르코스가 나서서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입을 열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동안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한국의 강진우 군이 드디어 동조의 단계에 진입한 것 같습니다.”

회의장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불과 2년 반 전에 앞으로 10년을 기약하고 동조의 단계에 들 때까지 후원하기로 한 지구인이었다. 그런데 벌써 동조에 들었다고? 잠시 침묵이 감돌던 회의장이 갑자기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러워지더니 여기저기서 폭풍 같은 발언 요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회의장이 삽시간에 난잡한 시장판처럼 변했다. 의원들의 손이 번쩍번쩍 치켜 올라가고 의장의 허락도 받지 않은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동조라니요?”

“확실한 겁니까? 짐작이나 추측이 아닙니까?”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증거가 있습니까?”

평소의 차분한 니코레임 인들이 아니었다. 회의장 한 가운데에 폭탄이 터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탕, 탕.

지켜보던 콴톤 의장이 거칠게 책상을 두드렸다.

“타르코스 의원의 설명이 먼저입니다. 모든 질문은 그 뒤에 일괄적으로 받기로 하겠습니다. 설명이 끝날 때까지는 다들 정숙을 지켜주세요.”

콴톤 의장이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의원들을 진정시키자 잠시 후 소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러자 타르코스는 콴톤 의장을 잠깐 쳐다보고는 벽에 걸린 대형 화면을 켰다. 첫 장면부터 충격이었다. 그것은 진우의 비행 드론이 찍은 괴생물체와 마나 크리스털 간의 싸움 장면이었다.

“맙소사, 플레비크 놈이다.”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니코레임 인들에게는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짙은 갈색의 피부, 쭉 뻗어 올라간 두 귀, 그리고 납작한 코까지. 화면만으로는 상대의 몸 크기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만 틀림없이 2m가 넘는 키일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던 니코레임 행성으로 쳐들어와 수많은 동족들을 노예로 삼고 자신들로 하여금 피눈물 나는 망명길에 오르게 한 놈들이었다.

여기저기서 분노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콴톤 의장이 다시금 책상을 내려치며 정숙을 요구하자 회의장은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다. 의원들이 울분을 찾으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도 영상은 쉬지 않고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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