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23화 (123/235)

123화

몸속에 세 개의 마나 기관이 더 생기면서 진우의 마나 흐름은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직은 전신을 압박하는 엄청난 마나 때문에 완벽하게 흐름을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마구잡이로 그의 몸을 헤집던 투명한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의 마나 흐름에 이끌리는 움직임을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진우는 시간 감각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고통에 시달릴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와카반의 마나 기관이 몸을 안정시킨 뒤에도 몸 안에서 일어나는 힘겨운 싸움에 의지를 보태느라 언제 해가 지고 뜨는 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하루가 한 시간처럼 지나갔고, 반대로 한 시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선정에 든 도인처럼 시간과 공간 자체를 망각하고 있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마나 크리스털들이 새로운 마나 기관으로 진우의 몸속에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열흘 가량이 지났다. 그동안 아랫배와 양 옆구리에 새로 생긴 마나 기관들은 진우의 전신을 돌던 자신들의 본래 마나를 거의 흡수했다.

지금 진우의 내부에는 크기가 비슷한 네 개의 마나 기관이 각자의 자리에서 투명한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를 거의 완벽히 통제하고 있었다. 놈의 마나는 아직도 그에게 흡수되기를 거부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 난폭한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그의 몸에 통증을 주지는 못했다.

진우는 더 이상 의지를 더해 마나의 흐름을 조정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가 가만히 있어도 마나는 알아서 일정한 흐름을 계속하고 있었다.

문제는 마나 기관들이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마나가 다른 마나 기관들에게 흡수되거나 스스로 또 하나의 마나 기관이 되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여전히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은 해결되지도 않고, 더 이상 악화되지도 않은 채로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  * * * *

진우는 지난 보름 동안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했다. 잠도 자지 않았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벌써 죽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피부는 여전히 윤기를 띠고 있었고, 처음 피부가 갈라지면서 생겼던 상처도 어느새 모두 아물어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 될 수는 없었다. 그가 무슨 마나 생명체 같은 존재가 아닌 이상 아무리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진우는 자신의 신체 내부에 기존의 마나 크리스털들이 거의 완벅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의도하거나 요구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일들이 자신보다는 다섯 개의 마나 크리스털들의 주도하에 전개되고 있었다.

진우는 무아의 상태에서 내부를 관조하면서도 그 점이 불만스러웠다.

‘이건 마치 마나 크리스털들에게 몸을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잖아.’

투명한 마나 크리스털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네 개의 마나 크리스털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호의적이라고 해도 결국 타인이었다. 그들은 손님이지 주인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마나 크리스털들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연명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나 크리스털과 마나 기관들 사이의 기약 없는 대치 상태가 계속되자, 진우는 끝없이 내부의 마나만을 바라보던 관조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움을 받고 다시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각자가 자신의 주인일 때에는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했다.

주인은 복종하지 않지만 고립되지도 않는다. 교류와 교감, 상호작용은 내가 스스로의 주인으로 남아 있는 한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으로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는 타인에게 납작 엎드려 호의를 구걸하는 형상이었다.

진우는 자신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기껏 안정을 찾은 마나의 흐름에 의지를 강하게 개입시켰다.

‘내 말을 따르든가, 아니면 내게서 모두 나가라.’

진우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문득 예전에 조승운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열자(列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 번 바람을 타면 보름이나 땅을 딛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를 소개한 장자(莊子)는 열자가 드물게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궁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하지는 않았지. 여전히 무언가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장자는 천지의 바른 기운을 타고 변화를 몰아쳐 무궁에 노니는 사람이라면 다시 무엇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지인(至人)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 말을 한 뒤에 조승운 스승은 진우를 보고 웃었다.

“외계인들은 지구에 마나가 없다고 한다. 헌터들은 마나를 얻으면 초인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육체만을 단련해서는 금방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나는 외계인들이 지구에 오기 전에도 평생 동안 전통 무예를 수련했다. 하지만 이십대 중반이 넘어가자 전성기를 넘어서게 되었지.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에는 이미 사십이 다 되어 말만 스승이지 젊은 제자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선발대에 참여해서 외계 행성에 나가 마나를 얻지 못했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급격하게 내리막을 탈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때 진우는 이미 발현이 가능한 중급 헌터가 되어 있었다. 조승운은 그런 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마나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걸 잘 모르겠다. 마나의 존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 외계인들조차 그것을 이용할 줄만 알았지 무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못하더군. 깨달아야 한다고 얘기를 했지만, 글쎄, 나는 그들도 마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사십년 동안 육체를 수련했지만 내 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다시 삼십년이 넘게 마나를 수련했지만 역시 마나가 무엇인지 모르겠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재능도 있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취도 이뤘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마나를 넘어선 무언가가 또 있을까? 그런 게 있어서 그걸 얻는다면 또 다른 발전을 할 수 있을까?”

조승운 스승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진우에게 전했다.

“무언가에 의존해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언제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육체에 의존하면 육체가 지닌 한계만큼, 마나에 의존하면 마나가 지닌 한계만큼 밖에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그 이상은 불가능하지. 그런데 말이다. 결국 그 모든 발전은 내가 이룩하는 거다.

얼핏 보아서는 육체가 발전하고 마나가 늘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다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야 했던 것은 이 늙고 추레해진 몸뚱이도 아니고 마나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이었던 셈이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 어디에 있을까? 그걸 찾아야 할까? 진정으로 한계가 없는 건 다른 무엇인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아마 내가 죽기 전에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때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몸을 단련하고 마나를 수련했던 스승이 엉뚱하게도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찾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말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우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목숨이 위태로운 이 시점에서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은 곧 부서질 것처럼 위태위태한 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나 크리스털들이 간신히 통제하고 있던 마나의 흐름에 개입해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들을 다시 배열하기 시작했다.

“으윽.”

차음 안정을 찾아가던 마나 흐름을 억지로 비틀자 여지없이 엄청난 고통이 온몸을 엄습했다. 진우가 일부러 마나 기관들 사이의 교감에 개입해 그들의 협조 관계를 끊어버리자 얌전히 흐름을 따라가고 있던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가 다시 진우의 몸 안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신경을 갉아먹는 것처럼 전신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마음속에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는 마나들의 협조와 대립 관계를 모두 무시하고 강제로 그들을 하나로 합치기 시작했다. 마나들의 저항은 거셌다. 하나 독하게 마음을 바꿔먹고 다시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그의 의지가 결국은 그 저항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할 고통을 끝까지 이겨내며 이룩한 전환의 계기였다.

‘처음에는 혼돈.’

네 개의 마나 기관에서 엄청난 양의 마나가 흘러나와 하나로 섞이기 시작했다. 그 마나들은 행패를 부리던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마저 감싸 완벽하게 뒤엉켰다.

진우의 심상 속에서 서로 다른 마나들이 완벽하게 뒤섞이자 이번에는 그의 몸에서 그 혼돈의 마나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나 크리스털들이 그의 몸속으로 파고 든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네 개의 마나 기관들이 지녔던 마나는 물론, 진우의 의지에 따라 그 마나들과 하나로 섞여버린 투명한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 역시 버티던 힘을 잃고 서서히 그의 몸을 이탈했다.

다섯 개의 마나 크리스털들이 가지고 있던 막대한 마나가 진우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자 그의 몸 주위로 마나로 이루어진 동그란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처음에는 마치 뿌연 안개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잿빛의 결정으로 변해갔다.

진우의 몸속을 돌던 마나들이 거의 전부 밖으로 빠져나옴에 따라 결정의 색이 점점 진해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진우는 밖에서 볼 때에 그림자 같은 형상만 간신히 남긴 채 결정 안에 갇힌 꼴이 되었다. 그의 내부에는 자신이 본래 지니고 있던 마나만이 남아 흐름을 지속했다.

마나들이 동그란 결정을 이룸에 따라 진우의 몸이 허공으로 슬쩍 떠올랐다. 마나가 그의 몸 아래까지 영역을 확대시키며 완전한 구체를 이루면서 몸이 밀려 올라간 것이다. 그러자 진우의 몸에서 우윳빛 서광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 진우의 피부만을 살짝 감싸는 미약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영역을 확대시키더니 어느새 구체 전체를 감싸버렸다. 그의 몸을 가두고 있던 마나의 구체가 우윳빛 서광 속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토칠라크의 초원 위에 크리스마스 전등처럼 환한 우윳빛 광채를 내뿜는 구체 하나가 허공에 덩그렇게 떠올랐다.

‘다음은 음과 양. 빛과 어둠. 위와 아래. 안과 밖. 모든 것에서 모든 것으로. 무에서 무로.’

진우가 그런 생각을 하자 단단한 결정처럼 그를 둘러쌌던 마나의 구체 표면이 녹아내리듯이 흐물거리더니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파문이 여기저기 일었다. 잠시 후 구체는 마치 태극 문양처럼 붉고 푸른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스스로 돌면서 위치를 계속 바뀌었다. 위에 있던 것이 아래로 가고, 아래에 있던 것이 위로 올라가기도 했다.

때로는 섞이었다 다시 나뉘기도 하고, 눈 깜짝할 새에 서로의 색깔이 바뀌기도 했다.

‘단단한 것은 가운데로, 가벼운 것은 바깥으로’

진우는 계속해서 심상 속에 그림을 그려갔다. 그에 따라 마나 구체의 분할 현상이 더욱 복잡해졌다.

구체의 중심에 진우를 둘러싸고 노란 마나들이 엉겨붙는가 하면 붉은 마나가 구체의 표면을 따라 녹은 쇳물처럼 흘렀다. 그러다가 검은 색의 마나가 눈송이의 결정처럼 붉은 마나를 밀어내며 커지고 중심에서는 흰색의 금속 바늘들이 나타나 노란색의 마나를 파고들었다.

그 시간 진우의 심상 속에서는 땅이 생기고 물이 고였다. 단단하던 땅이 갈라지며 용암이 터져 나오고 하늘로 올라간 물은 비가 되어 다시 떨어졌다.

평평하던 지상에 빗물들이 모여 강이 되고 여기저기에 깊은 계곡을 만들기도 했다. 풀이 자라고, 물고기가 생기고 나무 위를 뛰어다니는 원숭이들 위로 날개를 활짝 편 새들이 날았다.

해가 뜨고 달이 지며 수없이 많은 날들이 그의 심상 속에서 흘러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의 한 가운데에 우윳빛 서광이 맺혔다. 그것은 처음에는 그저 밝은 불빛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뚜렷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진우는 그 사람의 얼굴에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다.’

진우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모든 마나들이 몸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빨려든 마나들은 모두 그의 가슴 중앙으로 모여들더니 새로운 마나 기관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와카반의 마나가 만들었던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

예전의 마나 기관은 진우의 신체 기관과 동조를 이루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성격과 의지를 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 형성되는 마나 기관에게는 더 이상 자아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완벽하게 진우의 신체 일부가 되었다.

기존의 신체와는 다른 새로운 조직이었고, 피와 살이 아닌 마나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했지만 그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마나와 완전히 동화된 것이었다. 처음 좁쌀보다 작은 점으로 시작한 그것은 점점 자라더니 최후에는 앵두만한 크기가 되었다.

그가 투명한 마나 크리스털과 두 번째 싸움을 시작한 지 무려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진우는 주변의 마나를 모두 흡수하자 비로소 눈을 떴다.

============================ 작품 후기 ============================

마나 크리스털과 싸우던 플레비크 행성 전사의 죽음에 대한 묘사가 분명하지 않아 조금 신경이 쓰이는 분들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21회의 내용을 다시 수정해 목이 아예 잘리는 것으로 표현을 바꿨습니다. 항상 엑스트라들이 문제네요. ^^;

제가 절단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자꾸 절단이 되는 건 그 뒤에 전개될 내용이 따로 한 편 분량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비축에 신경을 좀 써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3연참을 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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