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헌터 학교를 졸업한 뒤에 거의 반 년 동안 진우는 혼자서 몇 개의 행성을 탐사했었다. 처음 두 개의 행성에서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지만, 세 번째로 방문했던 무니악에서 드디어 마나 크리스털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때 얻은 마나 크리스털이 지금 그의 검 속에 들어 있는 금색 크리스털이었다.
혼자 행성을 탐사할 때 얻은 교훈이 있었다. 탐사에 나가기 전에는 최대한 정보를 취합하되, 일단 탐사에 나서면 절대로 그 정보에만 의지하지는 말 것.
지구인들은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정보에 기대어 해석하는 경향이 아주 강했다. 마나 크리스털이라는 이름을 도대체 누가 처음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자 마나 크리스털은 모두 단단하고 투명한 고체의 결정일 것이라는 선입관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숙히 박혀버렸다.
엄청난 양의 마나를 담고 있는 일종의 마나 결집체들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그 형태가 모두 투명한 고체의 결정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런 헝태의 결정들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그러자 누군가 그것을 마나 크리스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 샌가 그 이름이 마나 결집체에 대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문제를 낳았다. 사람들이 고체의 결정이 아닌 것은 마나 크리스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외계인들이 확인해 준 바에 의하면 마나 크리스털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결정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엄연히 존재했다. 진우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그걸 확인했고, 타르코스 소장 역시 진우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
예전에 진우가 마나 크리스털에 대해 타르코스 소장에게 질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나는 자유롭습니다. 특정한 형태에 구속되지 않지요. 우리는 고체가 아닌 마나의 결집체들을 여러 개 알고 있습니다. 워낙 발견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지구인들이 마나 크리스털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형태는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자유로운 마나, 자유로운 헌터. 그게 헌터 학교의 모토지요? 말 그대로입니다. 마나의 본질은 정의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생명과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마나가 없이도 생명과 에너지는 존재합니다. 지구가 좋은 예지요. 굳이 정의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마나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건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냥 느끼고, 받아들이고, 교감하세요. 우리가 말하는 지배의 단계란 마나를 자기 의지대로 구속시키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
타르코스 소장은 헌터가 자유롭지 않으면 마나를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헌터 학교의 모토 그대로 마나는 자유로우니 그걸 바탕으로 초인의 능력을 갖게 되는 헌터 역시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감에 한계가 생기고, 능력 역시 제한된다는 것이었다.
* * * * *
진우는 헌터 학교를 졸업한 뒤에 나선 두 번의 단독 탐사에서 기존의 정보를 너무 믿다가 오히려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나 크리스털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던 현상들은 직접 가서 탐사해 보니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정보에 나와 있던 사실들 가운데에는 기본적으로 잘못 관찰되거나 기록된 것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 전혀 엉뚱하게 된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해석한 이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아직 마나 자체에 대한 지구인들의 이해가 깊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놈이 복덩이였던 거지.”
진우는 검을 쓰다듬으며 그 안에 있는 금색의 마나 크리스털을 떠올렸다. 마나 크리스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만든 것이 바로 그 놈이었다.
“너는 좀 당황스럽고.”
자신의 가슴 속에 하나의 마나 기관처럼 자리 잡은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은 아직까지 그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녀석은 이미 진우 자신의 마나와 동화되었고, 여러 가지 새로운 능력을 가지게 해 주었다. 또한 엄청난 용량의 마나 저장고와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와카반의 마나를 하나의 생물체로 간주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진우도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점은 금색 마나 크리스털도 마찬가지였다.
“뭐 달리 생각하면 굳이 그런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고.”
중요한 것은 정체를 파악하는 게 아니었다. 교감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분명한 것은 마나 크리스털이 그의 정신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만약 마나 크리스털이 자신의 정신을 좌지우지 하려는 시도를 했었다면, 진우는 그 즉시 마나 크리스털과의 교감을 포기하고 그것을 몸에서 떼어냈을 것이다.
자아의 정체성에 영향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헌터가 된 건데, 마나 크리스털의 노예가 된다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의미가 없지. 그거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거니까.”
* * * * *
토칠라크에 혼자 가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헌터 협회장 사무실에서 잠깐 보았던 자료만 믿고 포털을 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정보의 양이 적기도 했고, 진우가 가장 알고 싶은 정보가 빠져 있기도 했던 것이다.
진우는 어디에서 추가 자료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무니악에 있는 라네스 전초 기지장에게 크리스털 메모리를 보냈다. 안부 인사와 함께 토칠라크에 관한 자료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프랑스는 토칠라크에 탐사대를 보낸 세 번째 국가였다.
예전에 윌러킹의 기름 주머니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진우는 라네스 기지장이 프랑스 헌터 사회에서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 외문연에서 윌러킹 대금으로 꽤 큰돈을 자신에게 줘야 했는데, 그걸 라네스 기지장에게 한 장의 피씨 카드로 맡긴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게 반드시 라네스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타르코스나 전순호에게서 도움을 얻기 어려운 지금으로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진우가 크리스털 메모리를 보낸 지 이 주일가량 지났을 때 한 통의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라네스 기지장이었다.
“오랜만이네. 나 라네스일세.”
“안녕하세요. 그런데 지금 지구에 계신 거예요? 전 무니악에 계실 줄 알고 그쪽으로 크리스털 메모리를 보냈는데.”
“지구에 온 지 두 달 정도 되었네. 자네가 보낸 크리스털 메모리가 무니악을 거쳐 다시 나에게 오느라고 받아보는 게 조금 늦었지. 토칠라크에 관한 정보를 얻고 싶다고 했는데, 괜찮다면 프랑스에 한 번 오는 게 어떻겠나? 그에 관련된 자료도 줄 겸, 마침 이곳에서 자네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분이 있어서 말일세.”
진우는 최근 특별한 일이 없었다. 다양한 경로로 토칠라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었지만, 타르코스나 전순호의 눈을 피해 양질의 자료를 얻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수련도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네. 갈 수 있어요. 언제까지 가면 되나요?”
“뭐, 내일이라도 올 수 있으면 당장 오게. 최상급 헌터가 되었다고 들었네만, 헌터 카드만 있으면 프랑스에 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야.”
“네. 그럼 비행기 표를 구하는 데로 바로 갈게요. 표를 구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날, 진우는 무중력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향했다. 조그만 가방 하나와 검 한 자루만을 들고 움직였지만 품에는 최상급 헌터임을 증명하는 헌터 카드가 들어 있었다.
그것으로 모든 절차가 간단하게 해결됐다. 공항을 통과할 때도 헌터 전용 출입구를 이용하자 중국에서와 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어려움 없이 도착한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라네스는 진우를 프랑스 헌터 협회나 헌터 양성소가 아니라 외문연으로 데리고 갔다.
* * * * *
“어서 오게. 나는 콴톤이라고 하네. 프랑스 외문연 고문이지.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얼굴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군. 만나서 반갑네.”
진우는 라네스가 왜 자신을 외문연 고문에게 소개해 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콴톤 역시 스스로를 외문연 고문이라고만 소개했지, 자신이 니코레임 행성인들 전부를 대표하는 평의회 의장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진우가 토칠라크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라네스로부터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콴톤이 느꼈던 것은 걱정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무엇이 이 젊은이로 하여금 토칠라크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했을까? 그는 그 점이 궁금했다. 그리고 진즉부터 타르코스 소장을 감동하게 만들고, 모든 니코레임 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지구인을 직접 보고 싶기도 했었다.
“최상급이 되었다고 들었네. 그래서 묻는 말이네만, 최상급이 되니까 이제 마나가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던가?”
소소한 인사말과 잡담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콴톤 의장은 느닷없이 진우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진우는 외문연 고문이라는 눈앞의 외계인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나가 뭐냐고? 그건 인생이 뭐냐는 질문과 같았다.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예전에는 방금 하신 질문에 대해 무척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생각이나 고민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도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콴톤 의장의 얼굴에 ‘이것 봐라?’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만 더 자세하게 말해주겠나? 자네의 대답은 보통의 지구인들이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군.”
진우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더 자세하게 말하라니. 그게 가능하던가?
“마나는 마나고 저는 저지요. 제가 누구인지 고민한다고 해서 저 자신이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마나에 대한 고민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달리 생각해보면 마나와 저조차도 서로 구분하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고요. 그런 걸 굳이 알려고 하거나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느끼고, 교감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니, 노력이라는 말도 정확하지는 않군요. 어쨌든 그냥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참 부실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 자세하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럴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했다.
진우는 지금까지 외계인을 그다지 많이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만났던 외계인들 가운데 가장 경지가 높은 인물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전해지는 느낌이 그랬다.
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라면 복잡하게 뭔가를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최근의 느낌 그대로를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진우의 대답을 들은 콴톤 의장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라네스를 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네스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진우를 향해 말했다.
“나를 따라오게. 자네가 원하는 자료를 정리해 놓았네. 크리스털 메모리에 담겨 있으니 그냥 건네주기만 하면 되지만,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살펴보고 나서 질문을 해도 좋네.”
진우는 콴톤 의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라네스를 따라 회의실 비슷하게 꾸며진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몇 시간 동안 라네스가 건네준 크리스털 메모리에 담긴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라네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진우가 자료를 모두 살펴볼 때까지 그의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토칠라크에는 식물만 있고 동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조금 뜻밖이군요.”
진우가 자료를 대략적으로 검토하고 난 뒤에 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동물이라고 생각되는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해야겠지. 알다시피 탐사대들이 제대로 된 탐사 보고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말일세. 중국 탐사대의 시신을 수습할 때에 입수한 그들의 탐사 기록과, 일본 탐사대가 보고한 내용에 근거해서 내린 결론일 뿐이야. 하지만 그 결론이 중국 탐사대를 죽인 것이 마수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는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 정확한 것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 외에는 알 도리가 없을 걸세.”
“그럼 유용한 식물이나 광물이 발견되지 않으면 토칠라크는 쓸모가 없는 행성이겠군요.”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봐야겠지. 아니었다면 일본 탐사대가 돌아온 뒤에도 더 많은 탐사대가 갔을 거야. 뭐 앞으로라도 쓸모 있는 자원이 발견된다면 새로운 탐사대를 다시 보내려는 나라가 제법 많아질 걸세.”
“그나저나 다른 나라의 탐사 기록인데도 이렇게 모으시다니 대단하시네요.”
라네스가 건네준 기록에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탐사대를 파견했던 모든 나라의 자료가 망라되어 있었다. 게다가 죄다 영어로 번역된 것들이었다. 진우의 말을 들은 라네스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야. 그 기록 어디에도 숨겨서 누군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료는 없으니까. 사실은 자네 나라에서도 그 정도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걸세. 최소한 각국 헌터 협회나 헌터 양성소에는 이미 모두 공개된 자료이니까 말이야.”
왜 한국에서 자료를 구하지 않고 프랑스에 있는 자신에게까지 부탁을 했느냐는 뜻이 포함된 말이었다. 진우는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질문하기가 껄끄러워졌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아 토칠라크에 보내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하기는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헌터 패드에 자료를 복사해 넣고는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료를 제공해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네스는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기는 곤란하다는 진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 *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진우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보안이 요구되는 자료라면 통신을 통해 전달하기 어려우니 직접 오라고 얘기할 수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 라네스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받은 자료는 이미 각국의 헌터 관련 기관에는 대부분 공개가 된 자료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을 오라고 할 필요 없이 보안 장치가 잘 갖추어진 통신을 이용해 전해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라네스가 특별히 나를 보고 싶어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야.’
진우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시간에 콴톤 의장은 한국에 있는 타르코스 소장과 화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토칠라크는 너무 위험합니다. 생물체의 흔적이 없는데도 무언가가 조직적인 공격을 가해 탐사대를 몰살시켰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곳에서 무엇이 어떻게 탐사대를 공격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진우 군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타르코스 소장은 처음으로 콴톤 의장의 의견에 반대했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 온 동지이자 스승과 같은 사람이었지만 이번 결정만큼은 그로서도 찬성할 수가 없었다. 화면 속의 콴톤 의장은 그런 타르코스를 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자네 마음은 알아. 하지만 진우 군도 더 이상 마냥 어린 소년은 아니지 않은가?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주었으니 그걸 보고 어떻게 할지는 결국 본인이 결정해야겠지. 굳이 이번이 아니더라도 그 젊은이 역시 언젠가는 스스로 선택하고 그로 인한 결과를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가 올 거야. 자네는 진우 군이 충분히 현명하고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싶겠지. 하지만 선택하고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런 현명함이나 강함이 찾아오지 않아. 난 진우 군이 충분히 이유 있는 선택을 하리라고 믿네. 확실하게 안전이 보장된 다음에야 비로소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기대를 걸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야.”
타르코스는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모든 것은 본인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긴다.
그건 니코레임 인들에게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방침과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진우를 걱정하고 말리려고 하는 것은 그동안 지구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관습이나 문화에 많이 젖어든 까닭이었다.
그 스스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진우를 말리고 싶었다.
“진우 군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네. 마나에 대한 집착이나 구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더군. 우리가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 맞는다면 동조의 단계에 상당히 깊숙이 발을 디밀었다는 게 내 판단일세. 이번 일이 별 어려움 없이 마무리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발전에는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불안하겠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를 토칠라크에 보내주게. 내 생각에는 자네가 막아도 그는 결국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그곳에 갈 것으로 보여. 어차피 지구인들이 관리하는 전초 기지의 포털 중에는 우리가 관리하지 않는 것이 많으니까 말일세. 입력할 수 있는 좌표가 한정되어 있다고는 해도,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나? 그럼 수고하게. 다음 정기회의 때 보세.”
콴톤 의장과의 통화를 마친 뒤에도 타르코스 소장은 한 동안 말이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니코레임 인들은 지구인들의 결정에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걸 어기게 되면 자신들이 플레비크 행성인들을 피해 고향을 버리고 이곳까지 옮겨 온 의미가 약해졌다.
자유와 생존 가운데 그들은 자유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지구인들에게는 새삼스레 자유를 포기하고 생존을 택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대상이 아무리 니코레임 인들의 희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진우라고 해도 말이다.
타르코스 의장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는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타르코스 의장이네. 토칠라크에 가고 싶다면 얘기하게. 그곳으로 가는 포털을 열어주겠네.”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진 콴톤 의장의 협조 덕분에 진우는 굳이 간이 포털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토칠라크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용기있는 선택이 될지, 아니면 어리석은 자만에 불과한 것이 될지는 오직 그의 능력에 달린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일일이 답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제 글에 코멘트를 달아주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어떤 면에서는 저보다도 더 제 글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분석해 주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새해 들어 지난 글들에 대해 조금씩 수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비축분이 충분하지 않아 본격적인 수정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일주일가량 더 작업해서 비축분이 넉넉히 쌓이면 본격적인 수정 작업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기간은 대략 이달 이십일 정도까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