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12화 (112/235)

112화

“너희들은 거기 계신 두 의뢰자를 보호해라.”

어윈의 말을 들은 나머지 세 헌터가 무기를 빼들고 잭슨과 험프리의 곁으로 가서 섰다. 최현은 그들에게서 전해지는 마나의 기세를 통해 각각 중급 한 명과 하급 두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엷은 웃음을 지은 그는 카슨 사장 일행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 공터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몸을 벌벌 떨며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레스는 그가 부축해서 힘으로 잡아끈 뒤에야 간신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자신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막대한 돈을 들여 납치한 인물들이 도망가기 쉬운 공터 입구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면서도 헌터들은 그들을 막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잭슨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도망가려는 건가? 도망갈 수 있을 것 같나? 우리에게는 아직 최상급 헌터가 둘이나 있다.”

최현은 잭슨의 말을 듣더니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도망을 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군. 도망을 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거다, 멍청아.”

그 말에 드디어 마르말의 인내심이 바닥이 나고 말았다. 최현의 말은 최상급 헌터인 자신들 둘이 눈앞의 애송이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건방진 애송이들이.”

마나를 잔뜩 불어넣은 그의 삼쉬르가 눈부신 속도로 진우의 허리를 노리고 베어들어갔다. 진우의 눈에는 그의 삼쉬르에 시뻘건 마나가 덮여있는 것이 보였다.

겉으로는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역시 늙은 생강이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제대로 상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기세가 살벌했다.

진우도 이번에는 섣불리 팔을 들어 막지 못하고 검을 휘둘러 그의 삼쉬르를 튕겨냈다. 그 순간 기회만 노리고 있던 어윈의 검이 그의 목을 향해 빠르게 찔러 들어왔다.

특이하게 샛노란 마나가 실린 검이었다. 진우는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하면서 거꾸로 그의 가슴을 노리고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어윈이 찔렀던 검을 급히 당기며 진우의 검을 막았다.

챙, 챙, 챙.

세 사람의 칼이 불꽃을 튕기며 부딪히는 소리가 공터 가득히 울렸다. 최현의 표정은 긴장한 듯하면서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잭슨 일행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최상급 헌터가 두 명이나 협공을 하고 있는데도 진우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그들과 싸움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몸과 무기에 감도는 마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비슷하군.’

그가 헌터들의 마나 움직임을 관찰해 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최상급인 조승운은 물론이고 김상곤이나 최현같은 상급 헌터들이 주변에 있었던 덕분에 헌터들의 마나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수준에 따른 차이는 분명히 있었지만, 헌터들의 마나 운용 방식은 대개 비슷했다. 유일한 예외가 조승운 정도였다.

조승운을 제외한 다른 헌터들은 대개 마나의 양과 세기를 활용한 마나 운용을 했다. 그의 제자인 김상곤조차 조승운의 정교하면서도 세밀한 마나 운용의 진수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조승운 역시 지금의 진우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배울 게 없겠어.’

이미 싸움이 5분가량 계속되고 있었다. 진우는 의념을 넣어 어윈과 마르말의 마나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진우의 의념이 그들의 마나 흐름을 방해하고 그가 휘두르는 검이 상대의 몸이나 칼이 아닌 마나 자체를 끊었다.

‘헉.’

싸움 도중에 자꾸 몸이 멈추고 칼이 마음먹은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비틀리자 어윈과 마르말은 기겁을 했다. 지금까지 숱한 싸움을 경험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나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워지면서 몸을 움직이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당황한 그들의 손발이 잠시 어지러워진 틈을 타고 진우의 검이 마르말의 목을 향해 곧게 찔러 들어갔다. 마르말은 급히 삼쉬르를 휘둘러 진우의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칼이 움직이는 도중에 손이 덜컥 멈추고 말았다.

진우의 눈에는 그의 검이 찔러 들어가는 궤적을 따라 마르말의 몸을 두르고 있던 마나 방어막이 마치 자리를 비켜주는 것처럼 사방으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진우의 검이 마르말의 목을 꿰뚫고 나갔다. 마르말이 부릅뜬 눈으로 진우를 쳐다보았다.

마르말이 당하는 것을 본 어윈이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검을 진우의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진우는 그걸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마르말의 목을 꿰뚫었던 검을 그대로 옆으로 베어 어윈의 상체를 향해 휘둘렀다.

진우의 검이 빠져나간 마르말의 목이 반 너머 잘리면서 몸이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어윈의 검이 진우의 옆구리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의 칼이 진우의 옷을 자르고 들어가기 직전에 그의 손 역시 마르말처럼 덜컥 멈추고 만 것이다.

어윈의 눈이 경악으로 인해 동그랗게 변했다. 그 사이 그의 상반신을 베고 들어간 진우의 칼이 어윈의 가슴을 심장까지 잘라버렸다.

“큭.”

어윈의 입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진우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진우의 칼이 그가 쓰러짐에 따라 스르르 빠져나왔다.

진우가 검을 휘둘러 묻었던 피를 털어버리고 잭슨 사장 일행에게 눈을 돌렸다. 그의 눈빛이 닿자 그들 일행은 동시에 몸을 움찔했다.

‘이 자식은 괴물이다.’

다섯 사람의 머리에 진우가 자주 듣기는 했으나 결코 칭찬일 수 없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으아아악.”

공포에 이성이 잠식된 세 명의 헌터가 동시에 비명 같은 기합을 지르며 공터 입구를 지키고 있던 최현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해치고 공터를 빠져나가려는 생각이었다. 이미 의뢰자의 안전 따위는 그들의 머리 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최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그의 대도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툭, 툭, 톡.

깔끔하게 잘린 세 개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헌터답지 않게 무질서한 공격을 하던 세 명의 헌터들이 허망한 죽음을 당한 채 쓰러졌다. 공터에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죠.”

진우가 쓰러진 헌터들의 시체를 한 군데로 모으며 최현을 향해 말했다. 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해치우기는 했지만 주변의 상태가 너무 참혹했다. 어린 도로시가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면 결코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광경이었다.

최현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배낭을 뒤져 멀쩡한 밧줄을 꺼내어 잭슨과 험프리의 상체를 꽁꽁 묶었다. 최현이 그들을 앞세워 공터를 떠나자 진우는 시체들을 한 군데에 쌓아놓고 그들이 사용하던 취사용 버너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전처럼 강한 양의 마나를 이용해 순식간에 시체들을 태워버렸다.

공터에 뿌려졌던 핏자국까지 대부분 태워버리는 강력한 불길이었다.

*  * * * *

잭슨과 험프리를 앞세운 최현 일행은 출입금지 팻말이 놓여 있던 곳과 공터의 중간쯤 되는 곳까지 이동했다. 다른 곳보다는 통로의 폭이 약간 넉넉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카슨 사장은 랜턴을 켜고 잭슨과 험프리가 가져왔던 서류를 꼼꼼히 확인했다.

“그 서류는 왜 확인하시는 거죠?”

시체들을 처리하고 뒤늦게 합류한 진우가 동굴을 따라 걸어오다가 한창 서류를 살피고 있는 카슨 사장을 발견하고 물었다. 그를 발견한 카슨 사장이 벌떡 일어나 진우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딸의 목숨을 구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울러 나와 모레스를 구해준 것도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진우는 뭐라고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아 그냥 고개만 까딱했다. 의뢰를 받은 일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마음대로 끼어든 일이었다.

도로시가 마음에 걸려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그 결과로 생각지도 않게 여러 사람을 죽여야 했다. 카슨 사장의 호위를 습격해 죽이고, 어린 여자 아이까지 납치했던 놈들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을 뺏기 위해 추호도 망설임 없는 공격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죽일 만했던 놈들이었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졌다는 느낌이었다.

“서류에 뭐 특별한 게 있습니까?”

진우가 재차 카슨 사장을 향해 물었다. 카슨 사장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서류에 눈을 돌렸다.

“저기 있는 험프리는 본래 재계에서도 망나니로 소문이 났던 자입니다. 저 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최소한 잭슨은 이번 일을 통해 저를 죽이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구석에 쓰러진 채 카슨의 말을 듣고 있던 잭슨의 얼굴에 허탈함과 분노, 공포 등이 뒤섞인 복잡한 웃음이 떠올랐다.

“널 죽여서 뭘 하게. 그런다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나? 큭큭큭.”

잭슨이 갑자기 비틀린 웃음을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카슨 사장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니 다시 진우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제 딸인 도로시는 당분간 돌려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가 화이트캐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니스프리로 완전히 물러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동안 도로시와 모레스를 어딘가에 가둬놓고 감시할 계획이었겠지요.”

진우가 말없이 카슨 사장을 쳐다보았다. 설명을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현재 화이트캐슬의 지분은 저와 잭슨이 대략 40퍼센트씩 가지고 있습니다. 나머지 20퍼센트만 시장에 풀려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 연구팀에서 판타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중앙처리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도 연구팀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터라 지나친 자화자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의 크리스털 메모리처럼 이번에는 CPU 시장을 점령할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카슨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잠깐 잭슨을 쳐다보았다.

“잭슨과 저는 오년 전에 처음 개발에 착수하면서 당시 세계 각지에서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그들에게 개발이 성공할 경우 제품에 대한 권리의 30퍼센트를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절차상의 문제로 인해 서면 계약서에는 명시하지 않고 구두로만 한 약속이기는 했지만 저는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잭슨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얌전히 듣고 있던 잭슨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니까 네가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자기 생돈을 들여 연구원들에게 나눠주는 바보같은 경영자가 세상에 어디 있냔 말이야.”

그러자 최현이 카슨 사장을 향해 물었다.

“생돈을 들이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카슨 사장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판타론이 개발되면 증자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무상 증자 방식입니다.

원래 화이트캐슬 사의 주식 수 자체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거든요.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액면가에 비해 주가가 엄청나게 올라가는 바람에 주식 시장의 공룡이 되고 말았습니다.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다시 회사에 투자했었으니까요. 무상 증자는 새로 발행하는 주식들을 현재의 주주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 비율만큼 말 그대로 무상으로 나눠주는 겁니다.

주가 총액은 늘지 않고 주식 수만 늘어나는 거지요.”

그러자 듣고 있던 잭슨이 다시 킬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 바보 같은 녀석이 자기하고 나한테 새로 무상으로 주어지는 주식의 30퍼센트를 연구원들한테 주겠다는 거야. 그게 말이 되나? 지금 화이트캐슬의 주가 총액이 얼마인지나 알아? 무려 삼백억 달러가 넘는다고. 우리 둘이 가지고 있는 주식만 이백사십 억 달러야. 무상 증자를 하면 주가가 잠시 반 토막이 나겠지만 판타론이 발표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건 일도 아닐걸? 그런데 우리 몫으로 배당되는 것 중에 30퍼센트라니 그게 말이 돼? 새로 발행되는 주식만 따진다고는 하지만 그게 조금만 있으면 총액으로 70억 달러가 넘을 거라고. 그걸 주는 것도 그냥 될 거 같아? 잘못하면 엄청난 세금이 나온다고. 카슨 저 놈은 그럴 경우 연구원들이 내게 될 그 세금까지 회사에서 반을 부담하자는 거야. 상여금 형식이라나? 어떤 미친놈이 월급 주며 부린 연구원들에게 그만한 돈을 나눠준단 말이야. 카슨. 넌 미쳤어.”

많기는 많은 돈이었다. 진우는 카슨 사장을 쳐다보았다.

“판타론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이 몇 명인데요?”

“나 빼고도 50명 정도 됩니다. 모두 세계 각지에서 확고한 입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면서까지 이 연구에 참여해 줬습니다.

판타론은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만 인류의 과학 기술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될 물건입니다. 저는 그들이 그 정도의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애초에 저기 있는 잭슨이나 나도 아이디어 하나로 지금의 부를 이룩한 것 아닙니까? 그들이 받게 되는 보상은 저나 잭슨이 얻었던 것에 비하면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어요.”

50명이면 한 사람 앞에 1억 달러가 넘는 돈이었다. 잭슨이 카슨 사장을 미친놈이라고 욕할 만한 액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런데 잭슨이 사장님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서류에 뭐 이상한 내용이라도 있습니까?”

잭슨과 험프리를 감시하는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최현이 카슨 사장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듣자 카슨 사장의 얼굴에 다시금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잭슨과 험프리는 지구에 여러 개의 유령 회사를 세웠습니다. 세금 안전 지대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들이지요. 잭슨은 저를 협박해서 앞으로 1, 2년 사이에 지속적으로 그 회사들을 저에게 팔아넘길 계획이었습니다.

그 유령 회사들을 매입하는 대가로 돈 대신 제가 보유한 주식을 지불하는 방식입니다. 한꺼번에 처리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컸으니까요. 조금씩 지분을 정리하고 물러나는 형태를 만들어 세상의 관심을 줄이려고 한 거지요. 준비한 서류의 계약 날짜들이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물론 그동안 저는 지구가 아닌 이곳 이니스프리의 험프리 호텔에 묵은 채 두문불출하는 모양새가 됐겠지요. 사실은 감금당한 상태였겠지만 말입니다.

말을 하던 카슨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잠들어 있는 도로시를 보았다.

“계약서에 서명을 했어도 주식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제 승인이 필요하니까 지금 죽일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를 납치해서 협박을 해도 통하지 않자 도로시를 납치해서 직접 이곳까지 데려온 겁니다. 제가 주식을 넘기는 작업을 모두 완료할 때까지 제 딸 역시 다른 어느 곳엔가 계속 가둬 둘 생각이었겠지요. 파렴치한 놈들입니다.

“그럼 험프리 호텔의 소유권을 넘긴 것도?”

“네. 제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를 만들려고 한 거지요. 연구에 지친 부유한 창업자가 모든 걸 정리하고 경치 좋은 외계의 행성에서 은둔하며 보낸다는 이야기를 만들 생각이었나 봅니다. 서류를 보니까 제임스 험프리는 그 대가로 제가 가졌던 주식의 5퍼센트를 넘겨받는 걸로 되어 있더군요. 무상 증자로 받을 주식까지 합하면 험프리 호텔을 열 개는 사고도 남을 돈입니다.

듣고 있던 최현이 묶여있던 제임스 험프리에게 다가가 발끝으로 그를 톡톡 찼다.

“어이. 너 듣자하니 어차피 집에서도 이미 내놓은 자식인 것 같던데, 그냥 이곳에서 사장질이나 하며 살지 뭐 하러 호텔을 팔려고 했냐?”

그러자 제임스 험프리가 발작을 하듯이 웃었다.

“크크크크. 나더러 이 사람도 별로 없는 외딴 행성에서 일생을 보내라고? 여기 뭐가 있는데? 경치?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런 거야 어쩌다 기분 내키면 한 번씩 들러서 구경하는 거지 미쳤다고 이 재미도 없는 행성에서 평생을 보내란 말이야? 너 같으면 그러겠냐?”

험프리의 발악에 가까운 말을 듣던 진우는 헌터 중에는 그럴 사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는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 잭슨에게 다가갔다.

“궁금한 게 있다.”

잭슨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진우를 쳐다보았다.

“더 궁금한 게 있나?”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니들 말이야. 어떻게 이곳까지 온 거지? 더구나 너는 지금 지구에 있어야 하잖아. 설마 흔적을 남기면서까지 포털을 타고 왔을 리는 없고 말이야. 어떻게 한 거야?”

그러자 그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포털을 타고 왔을 리 없다니. 당연히 포털을 타고 왔지. 왜 있잖아. 간이 포털 장치라는 거 말이야. 그걸 몇 개 얻었거든. 험프리 사장도 자기 숙소에서 이곳 동굴 앞까지 직접 간이 포털을 이용해 이동했을 걸? 내가 미리 두 개를 줬거든. 그게 아주 미세한 좌표까지는 정확하게 조정이 안 돼서 동굴 안으로는 이동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동굴 밖으로 포털을 탄 뒤에 여기까지 제법 걸어오느라 조금 힘들었지.”

피로에 찌든 잭슨의 얼굴에는 좌절과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말을 툭툭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진우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잭슨의 고개를 치켜들고는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차갑게 물었다.

“그 포털 장치 말이야. 도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

포기한 듯 말을 하던 잭슨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송년회가 예상외로 늦게 끝나 아슬아슬하게 집에 세이프 했습니다. 모두들 올해의 마지막날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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