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11화 (111/235)

111화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대충 상황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진우는 활을 당기기 전에 최현과 손짓으로 간단한 작전을 짰다.

일단 어린 도로시를 구해내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했다. 느껴지는 마나로 볼 때 안에는 최소한 두 명의 최상급 헌터와 한 명의 상급 헌터가 있었다.

중급 헌터만 해도 네 명이었다. 한 순간만 실수를 해도 역공을 당할 수 있었다.

진우는 활을 당긴 채 최현을 바라보았다. 그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는 미리 유도용 마나를 붙여놓은 덩치 좋은 사내를 향해 시위를 놓았다. 도로시를 안고 있는 헌터였다.

동굴 입구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오는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최상급 헌터인 하킴 마르말이었다.

“조심...”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도로시를 안고 있던 두즈니코브의 어깨에서 뾰족한 화살촉이 튀어나왔다.

“으악.”

비명을 지른 그는 엉겁결에 안고 있던 도로시를 놓치고 말았다. 그의 팔에 안긴 채 잠이 들었던 도로시가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 진우가 시위를 놓는 것과 동시에 재빨리 달려든 최현이 도로시를 받아들었다.

그 사이 이미 사방으로 열 발이 넘는 화살을 속사로 날린 진우는 헌터들이 각자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느라고 허둥대는 사이 밧줄에 팔이 묶여있던 모레스를 낚아채고 카슨 사장에게로 돌진하고 있었다. 활은 이미 땅에 버린 상태였다.

“어딜.”

또 다른 최상급 헌터인 제레드 어윈이 검을 뽑아들고 앞을 막아섰다. 진우는 검에 마나를 잔뜩 불어넣고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어윈은 최상급 헌터답게 그의 검을 잘 막아냈지만, 맞댄 검으로부터 전해지는 막대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단 일합 만에 뒤로 몇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진우는 물러서는 그를 쫓지 않고 먼저 카슨 사장을 묶고 있던 밧줄을 잘라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가까이에 붙어 있던 윌리엄 잭슨을 사로잡고 싶었지만, 재빨리 그의 어깨를 낚아채며 진우를 향해 삼쉬르를 휘두르는 하킴 마르말 때문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진우가 그의 칼을 손쉽게 막아내자 갑자기 변한 상황에 놀란 카슨 사장이 뒤에서 진우를 향해 물었다.

“누구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검으로 모레스를 묶고 있던 밧줄을 마저 자른 뒤에 두 사람을 자신의 뒤편에 세웠다.

“두 분 다 잠시 뒤로 물러나 공터 구석으로 가십시오.”

진우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최현이 몇몇 헌터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진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진우가 다시 그의 앞을 막아서자 최현은 품에 안은 도로시를 카슨 사장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마치 금이 간 도자기를 만지듯 그녀를 소중하게 안아들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순식간에 열 명의 헌터들이 에워쌌다. 카슨 사장과 모레스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일단 잠들어 있는 도로시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진우와 최현이 막아서고 있는 뒤로 최대한 몸을 물렸다. 일단은 소중한 딸이 안전하다는 사실만 해도 천만 다행이었다.

상황이 갑자기 이상하게 되는 바람에 제임스 험프리가 바실라르 일행을 향해 새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저 자식들은 뭐요? 어떻게 된 겁니까?”

바실라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제레드 어윈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빈정거렸다.

“보나마나 늦게 온 친구들을 쫓아온 모양이오.”

짜증이 섞인 그의 눈빛은 윌리엄 잭슨 사장을 향하고 있었다.

“잘 아는 헌터 클랜이 있다고 하더니, 잘 선택하지는 못하신 듯합니다.”

그의 비꼬는 듯한 말에 잭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잭슨은 바실라르를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명색이 상급 헌터이면서 뒤나 밟히고 다니다니, 잘 하는 짓이다.”

그의 질책을 받은 바실라르는 발끈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새로 나타난 두 사람은 자신들의 뒤를 밟은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우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던 하킴 마르말이 삼쉬르를 들고 앞으로 나났다. 그는 진우와 최현을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남의 일에 끼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리석은 짓을 했군. 그렇잖아도 이래저래 기분이 좋지 않던 참인데 잘 됐군. 자네들이 살아서 이곳을 나가기 힘들다는 건 알겠지? 항복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낸다면 곱게 죽여주기는 하마.”

진우는 마르말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며 픽 웃었다. 그는 마르말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뒤에 있던 카슨 사장에게 물었다.

“카슨 사장님. 혼자 오지는 않았을 테고 호위하던 헌터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러자 카슨 사장이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모두 죽었네. 상급 헌터 한 명에 중급 헌터 세 명이 있었는데, 모두 저 두 사람에게 목숨을 잃었지. 자네 앞에 있는 하킴 마르말과 잭슨 곁에 있는 제레드 어윈은 둘 다 최상급이네. 저들 일행 다섯이 동굴 근처에서 우리를 습격했네.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더군.”

진우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는 정면에 시선을 둔 채 뒤에 있는 최현에게 말했다.

“카슨 사장 일행을 보호해 주세요.”

“혼자서 괜찮겠냐?”

진우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실전을 통해 시험을 해 봐야 한다고 하셨죠? 상대가 마수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최상급도 두 명이나 있다고 하니까 실전 상대로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네요.”

진우의 말이 끝나자 최현은 대도를 꺼내들고 카슨 사장 일행 앞을 막아섰다.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헌터들의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거 미친 놈들 아냐?’

바실라르의 생각이었다. 그가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참지 못한 마르말이 먼저 삼쉬르를 휘두르며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는 진우의 대응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 바실라르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미친 놈.’

진우는 와카반의 특성을 지닌 마나를 왼손에 싣고 삼쉬르를 밀어내듯 막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검을 들어 마르말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진우로서는 자신의 손이 상대의 삼쉬르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지만, 정작 공격을 하던 마르말은 기겁을 했다.

그대로 밀고 들어가면 진우의 팔은 물론 옆구리까지 벨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 자신의 가슴을 내 주어야 했다. 그건 그가 바라는 결과가 아니었다.

마르말은 급히 삼쉬르를 틀어 찔러 들어오는 진우의 검을 후려치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어린 녀석이 독하군. 같이 죽자는 거냐?”

정상적인 사람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할 때에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먼저 챙긴다. 그런데 이 어린 녀석은 마치 팔 하나쯤은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맹목적인 공격을 해 왔다. 가끔 싸움이 격렬해지면 눈이 돌아가서 그런 짓을 하는 녀석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막 서로의 칼을 맞대는 참이었다.

그는 눈앞의 어린 헌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검을 휘둘러 마르말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마르말은 다시 삼쉬르를 휘둘러 진우의 검을 튕겨 내고 그 반동을 이용해 거꾸로 진우의 목을 베어 들어갔다. 그러나 진우는 다시 손을 들어 마르말의 삼쉬르를 막으면서 튕겨나간 검을 그대로 상대의 어깨를 향해 내려쳤다.

‘헉.’

마르말은 다시 한 번 다급하게 숨을 삼키면서 몸을 기울여 진우의 검을 피한 다음 아예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고 말았다. 최상급 헌터가 싸움 도중에 발을 빼버린 것이다.

‘이 자식은 정상이 아니다. 처음부터 같이 죽자는 속셈이군.’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자신은 최상급 헌터다. 마르말은 눈앞의 어린 녀석이 목숨을 버리는 대가로 자신에게 최소한 부상을 입히겠다는 각오로 덤벼드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중급은 넘은 것 같았지만 상급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진우가 와카반의 마나를 운용하면서 마나의 기색이 숨겨진 탓이었지만 마르말이 그걸 알 수는 없었다.

그는 진우의 뒤편에서 대도를 들고 서 있는 최현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린놈을 내세워 틈을 만들려고 하는군. 보아하니 상급 헌터인 듯한데 직접 나서는 게 어떤가?”

최현은 마르말의 뜬금없는 말에 의아했지만, 곧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깨닫고 피식 웃고 말았다. 최현이 웃기만 하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마르말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실라르를 향해 눈짓을 했다. 자신은 물러설 테니 나서서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바실라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뱀같은 자식이.’

그도 진우와 마르말의 싸움을 보았다. 그리고 진우가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한 채 마르말에게 덤벼드는 모습도 보았다. 경험에 의하면 저렇게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녀석은 의외로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한 마디로 짜증나는 상대이고, 이겨도 자신 역시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마르말의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클랜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부대장 두즈니코브를 비롯한 바실라르의 클랜원들이 모두 자신들의 무기를 빼어들고 진우를 부채꼴 모양으로 에워쌌다. 궁수인 메게르만이 자신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바실라르는 위험을 줄이고 어린 애송이를 빨리 해치우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진우는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미친 애송이. 바실라르는 진우의 같잖은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고함을 질렀다.

“죽여.”

메게르가 진우를 향해 활을 쏘았다. 그것이 신호이기라도 한 듯 바실라르를 비롯한 그의 클랜원들이 일제히 진우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순간 진우의 검이 그들이 포위한 대형 그대로 부채꼴을 그렸다.

서걱

진우의 제일 오른편에서 이를 갈며 무거운 도끼를 휘두르던 두즈니코브의 목이 제일 먼저 날아갔다. 그는 평소에는 외모 때문에라도 남들에게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일단 흉성이 치밀면 오히려 외모가 무색할 정도로 저돌적인 싸움을 벌이고는 했었다.

그는 진우에게 한쪽 어깨를 관통 당해 몸이 불편했음에도 오히려 그 때문에 살기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태였다.

두즈니코브는 바실라르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제일 먼저 그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전의 싸움을 통해 녀석의 검이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었다. 그러나 그의 목을 베어들어가는 진우의 검은 방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만약 다른 헌터들이 진우처럼 마나를 볼 수 있었다면 그의 검에 실린 시퍼런 마나로 검의 형체마저 거의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두즈니코브 자신은 물론 공격해 들어가던 헌터들 모두 진우의 검이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 사이 두즈니코브의 목을 벤 진우의 검은 계속해서 그 옆에서 박도를 휘두르던 하급 헌터 하나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러고도 힘이 죽지 않은 그의 검이 창을 찔러 들어오던 바실라르의 목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바실라르는 진우의 검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다.’

그의 창은 진우의 검보다 훨씬 길었다. 바실라르는 자신의 창이 진우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놈의 검은 그의 몸에 닿지도 못하고 허공을 베고 말 것이다.

바실라르의 생각대로 그의 창이 진우의 심장 부근을 찔렀다. 그러나 진우는 그대로 앞으로 몸을 밀고 들어갔다. 진우의 심장은커녕, 그의 살갗조차 파고들지 못한 바실라르의 창이 진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둥글게 휘었다.

바실라르는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태에 차마 창을 놓아버릴 생각도 못하고 미련스러울 정도로 창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심장을 향해 거꾸로 진우의 검이 파고들었다.

“컥.”

심장과 함께 잘려진 폐에서 기도를 타고 솟구친 피가 바실라르의 입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우가 심장에 박혔던 칼을 비틀어 빼자 아무 말도 못하고 밑동이 잘린 고목처럼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사이 진우의 왼쪽에서 공격해 들어오던 두 명의 하급 헌터들이 휘두른 검과 도가 각각 진우의 옆구리와 어깨를 강타했다. 진우는 그들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고 바실라르의 가슴에서 빼낸 검을 그대로 왼쪽으로 휘둘렀다.

깡, 깡.

두 개의 쇳소리와 함께 헌터들의 무기가 잘려나가면서 그들의 가슴에 두 개의 깊숙한 상처가 생겨났다. 갈비뼈까지 자르면서 거의 몸을 두 조각으로 내버릴 정도로 깊이 들어간 일격이었다.

풀썩.

새로 늘어난 두 구의 시체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앞뒤로 동시에 쓰러졌다. 진우는 그들의 잘린 칼 조각을 발로 툭 차올려 손에 쥐고는 그대로 가장 뒤에서 활을 들고 서 있던 메게르를 향해 던졌다.

“컥.”

경악에 찬 눈으로 방금 벌어진 사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메게르는 중급 헌터답지 않게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채 진우가 던진 칼 조각에 목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그의 팔에서 들고 있던 활이 떨어지면서 그의 몸도 곧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꺅.”

너무나 엄청난 광경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보고 있던 모레스가 뒤늦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광경을 처음 본 탓에 얼굴이 파랗게 질려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비명은 공터를 뒤덮은 소리 없는 충격에 의해 오히려 금세 삼켜져버렸다.

싸늘한 침묵이 진우를 에워싼 헌터들 사이로 내려앉았다.

“바실라르 아이들이 한 번에?”

제일 먼저 충격에서 깨어난 제레드 어윈이 경악에 찬 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바실라르의 창끝이 파고들었던 진우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구멍난 옷자락만 보일 뿐 피가 배어나오는 기미가 없었다.

“너 옷 속에 뭘 숨긴 거냐?”

진우가 어윈의 말을 듣더니 픽 하고 웃었다.

“손에 든 칼로 직접 나서서 확인해 보시지.”

어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열 한 명의 헌터들이 진우 일행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인원이 다섯 명으로 줄었다. 너무나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장면에 최상급 헌터인 자신조차 미처 상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느껴지는 마나는 중급을 간신히 넘었을까 싶은 정도인데 실력은 최상급이군. 나이도 어린 녀석이 어떻게 벌써 그런 실력을 갖췄지? 무슨 특별한 물건이라도 사용하는 건가?”

진우는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헌터들은 언제 어디서 새로운 마수들과 마주치게 될지 모르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늘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는 데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런데 노련한 헌터들일수록 거꾸로 자신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험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타성이 되는 순간, 헌터들은 오히려 위험해진다. 특히 이들처럼 지닌 실력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마수를 사냥하기보다는 손쉬운 의뢰를 통해 큰돈을 벌려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지금처럼 작은 위험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위험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 수도 있었다.

특히 나이와 느낌으로만 모든 상황을 지레짐작하는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편하게 생각하는 게 아주 버릇이 됐군. 그런 점에서 당신들은 진정한 최상급이 아니야. 마수를 상대하기가 싫어졌으면 그만 손에서 칼을 놓아야지. 저런 더러운 자식에게서 더러운 의뢰나 받으며 살려고 하지 말고 말이야.”

공터 한 구석으로 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잭슨을 가리켜 하는 진우의 말에 어윈과 마르말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곧 평정을 회복했다. 이미 무모한 애송이라고만 생각했던 눈앞의 어린 녀석에게 상급 헌터를 포함한 여섯 명의 헌터가 일격에 도살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였다.

어윈과 마르말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진우에게 협공을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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