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09화 (109/235)

109화

셔우드 숲은 곳곳에 아름다운 꽃나무들이 길 양쪽에 늘어서 하늘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숲속의 터널 같은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연인들이 함께 온다면 정말 좋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사람을 찾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큰 흥취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모든 터널을 이 잡듯이 뒤진 최현과 진우는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서도 특별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누가 억지로 붙잡혀 가거나 반항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요?”

진우의 말에 최현이 고개를 끄덕여다. 그 역시 난감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무중력 차량이 지나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터널들이 넓어서 수색에 큰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경치를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관광지를 순례하다시피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진우가 최현에게 제안을 했다.

“어차피 수색을 할 거라면 그냥 확실히 마음을 먹고 하죠?”

최현도 진우의 말에 동의했다. 표면적으로는 여행 목적을 명승지 관광으로 내세우다 보니까 자꾸 수색이 수동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제대로 경치를 즐기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시간이 갈수록 구경보다는 수색이 중심이 되고 있었다. 이래서는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될 것 같았다.

진우는 최현으로부터 카슨 사장의 일정이 적힌 종이를 받아 펼쳐놓고 물었다.

“이 일정들 가운데 중간에 카슨 사장이 반드시 묵어갈 만한 숙박업소가 있는 곳이 어디죠?”

최현이 남은 일정 가운데 두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다른 곳은 호텔이나 빌라 같은 곳이 전혀 없어. 만약 야영을 하지 않고 숙소를 잡는다면 이곳 니베로 산의 코야 리조트나 브르가 온천지대의 테마스 호텔에 묵어야 할 거야.”

니베로 산은 이니스프리 호텔을 기준으로 할 때 남동쪽에 위치한 높은 산이었다. 그곳은 파도치듯 뻗어나가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이루는 절경으로도 유명했지만, 일 년 가운데 8개월 가까이 눈을 볼 수가 있어 외계 행성에서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물론 한창 붐빌 때에도 관광객이 백 명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어 코야 리조트도 말이 리조트지 사실은 커다란 별장 같은 곳이었다.

브르가 온천지대는 그래도 비교적 많은 관광객이 찾는 휴양지이기는 했으나 그곳에 위치한 테마스 호텔 역시 최대 수용인원이 이백 명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피부에 좋다는 온천수가 풍부하고 이니스프리 호수에서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관광을 온 일반인들이나 사냥을 마친 헌터들이 가끔씩 들르고는 했다.

“만약 코야 리조트나 테마스 호텔에 카슨 사장이 묵었다면 그 전에는 아무런 사고가 없었다는 뜻일 거예요. 반대의 경우에는 여행이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얘기니까 그 전의 관광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고요.”

최현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코야 리조트로 직행하자는 말이냐?”

“네. 거기에 들렀던 적이 있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테마스 호텔로 바로 가보는 게 좋겠어요.”

“그래. 그렇게 하자. 일단 이 일을 해결을 해야지 속 편하게 관광을 하든 여행을 하든 할 수 있을 거 같다.”

최현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씩 웃었다. 그제서야 진우도 어느 정도 속 편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결국 두 사람 모두 카슨 사장의 일이 계속 신경에 거슬려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 *

이틀을 직선으로 달려 도착한 코야 리조트에서 여자 직원을 살살 달랜 최현은 카슨 사장이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곳까지 오는 동안은 카슨 사장에게 특별한 사고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수색의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코야 리조트에서 카슨 사장의 숙박 여부만을 묻고 나서, 두 사람은 다시 잠도 자지 않고 교대로 운전하며 테마스 호텔까지 잇는 직선 코스를 밤새 달렸다. 다음날 늦은 아침에 도착한 테마스 호텔에서 두 사람은 프런트의 직원으로부터 카슨 사장이 그곳에서 묵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엉뚱한 이야기를 들었다.

“카슨 사장이 묵었는지를 물어본 헌터들이 또 있었다고요?”

“네. 어제 어린 여자 아이를 데리고 온 헌터들이 여기서 앤드류 카슨이란 분을 찾았어요. 그런데 그분이 혹시 화이트캐슬 사의 두 창업자 가운데 한 분 아닌가요? 그분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저 그 분 팬인데.”

프런트를 담당하고 있던 여직원은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오히려 은근히 최현에게 질문을 해왔다.

“글쎄요. 저희도 부탁을 받은 거라 그 분이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몰라서요. 그런데 그걸 물어본 헌터들이 몇 명이나 되던가요?

그러자 여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했다.

“글쎄요. 남자 다섯인가, 여섯하고 여자 한 명이었으니 대충 일곱 명쯤 되었던 같네요. 아이까지 합하면 여덟 명이고요. 무중력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왔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진짜 화이트 캐슬 사의 앤드류 카슨이 아니에요?”

“저도 그건 잘 모릅니다. 그 일행들이 아직 이곳에 있나요?”

“아니요. 오늘 아침에 조금 늦게 식사를 하고서는 한 시간 전쯤 이곳을 떠났어요. 근데 그럼 그 분은 왜 그렇게 찾으시는 건데요?”

정보를 주는 수다는 반가웠지만, 그걸 캐묻는 수다는 성가셨다. 최현은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고 쓸모도 없는 비싼 기념품 하나를 웃돈을 얹어주고 결제해서 여직원의 입가에 미소가 넘치게 했다. 프런트를 떠난 그는 진우와 함께 급히 무중력 차량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지구에서 온 구조대가 도로시와 모레스라는 비서 아가씨를 데리고 이곳에 들른 것 같다. 시간상으로 봐서는 카슨 사장의 일정을 거꾸로 밟고 있는 모양이야.”

“거꾸로요? 왜 일정을 거꾸로 돌죠? 카슨 사장을 찾으려면 그의 일정을 순서대로 따르는 게 나을 텐데요?”

“아마 우리처럼 그가 묵었을 가능성이 있는 숙소를 먼저 확인하려는 속셈이겠지. 그런데 어린 아이는 왜 데리고 왔지? 설마 지구에서 도로시를 보호할 인원도 보내주지 않은 건가?”

화이트캐슬 사의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 실종된 사건이었다. 구조대를 보내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아이가 비서와 단 둘이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면 그들을 보호할 방법도 강구하는 게 상식적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해 무슨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수색에 데리고 다닌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큰 회사에 그런 점도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쓰는 사람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일단 저희도 다시 돌아가면서 수색을 해야 하니까 가다가 흔적이 발견되면 뒤쫓아 가 보죠.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드네요.”

진우는 이니스프리 일대의 관광 명소가 표시된 지도를 펼쳤다.

“코야 리조트와 테마스 호텔 사이에 있는 관광지 가운데 카슨 사장의 일정에 있는 곳은 비엔토 언덕과 알베가도 동굴 두 곳이에요. 만약 사고가 있었다면 어느 곳일 거 같으세요?”

비엔토 언덕은 일명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일 년 내내 세찬 바람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평야를 바라보며 비스듬히 흘러내리듯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언덕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 괴상한 돌기둥들이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구멍을 통과하는 공기들이 마치 여러 가지 악기들이 연주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어 간혹 언덕의 오케스트라에 비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은 누군가를 납치하기에는 별로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비엔토 언덕은 아니겠죠?”

진우가 최현을 보며 물었다.

“그래. 특별히 위험한 지형이나 사나운 마수들이 있는 곳이 아닌데다가 사방이 툭 트여 있어 납치를 하기에도 애매한 장소다. 외계 행성이 아무리 인적이 드물다고 해도 너무 시야가 열려 있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납치범이라면 아무래도 이곳을 택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알베가도 동굴을 뒤져 보죠.”

그렇게 두 사람의 목적지가 정해졌다. 테마스 호텔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  * * * *

“도로시 괜찮니?”

모레스는 자신의 품에 거의 안기다시피 기대있는 도로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아이가 어디 아픕니까?”

운전을 하고 있던 두즈니코브가 모레스를 힐끔 보며 물었다.

“아니에요. 도로시가 조금 피곤한 거 같아요.”

모레스는 그렇게만 대답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두즈니코브는 그런 모레스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묵묵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나름 긴장을 풀어주려고 계속 말을 걸어보았지만, 두 여자 모두 별 말이 없었다. 꼬마 아이는 아무래도 자신의 외모 때문에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고, 모레스라는 비서는 왠지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눈치였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가 더 자야 한다, 음식을 빨리 먹으면 안 된다, 준비가 덜 됐다는 등의 핑계를 대면서 출발 시간을 자꾸 늦추는 바람에 10시가 넘어서야 호텔을 떠날 수 있었다. 바실라르를 비롯한 일행으로서는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봤자, 오늘 하루만 참으면 끝날 일이지. 조금만 참자, 조금만.’

두즈니코브는 정면을 바라본 채 들키지 않게 엷은 미소를 지었다.

*  * * * *

모레스는 이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로시가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떼를 쓸 때 그녀는 헌터들이 당연히 도로시를 말릴 거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헌터들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수색 작업에 아이를 데리고 갈 리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실라르라는 구조대 대장은 순순히 도로시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깜짝 놀란 모레스가 황급히 도로시를 달래 호텔에 머물게 하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아이의 태도가 너무 완강하게 변해 버린 뒤였다.

그날 모레스는 도로시를 재운 뒤 헌터들이 묵고 있는 방을 두드렸다.

“아이가 몸이 안 좋다는 말입니까?”

바실라르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모레스는 도로시를 데리고 가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자신이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사에서 보냈다는 구조대의 대장인 바실라르는 별로 대수로운 이유가 아니라는 듯이 긴장감이 전혀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모레스는 입술을 꼭 깨물고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완치가 되었다는 판정을 받기는 했어요. 하지만 도로시는 올해 초에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겨 판막 성형 수술을 받았어요. 완치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무리한 여행을 하기에는 일러요. 카슨 사장님도 되도록 공기 좋은 이곳에서 도로시가 편히 쉬고 있기를 바라고 계세요.”

하지만 바실라르의 반응에는 여전히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완치가 되었다면 별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요? 공기라면 이곳 이니스프리 어디를 가더라도 다 좋습니다. 무중력 자동차는 진동도 없으니 굳이 무리라고 할 것도 없을 것 같군요. 혹시 오래 앉아 있거나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정도입니까?”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아직은 더 주의를 해야 해요.”

그러자 바실라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을 본 모레스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솔직히 저희로서는 두 분을 여기에 두고 가는 것이 더 불안합니다. 우리는 지금 카슨 사장님이 사고를 당해 실종됐거나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움직이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 분을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저희로서는 더 불안합니다. 만약 카슨 사장님을 해친 사람들이 있다면, 그자들이 그 분의 가족에게도 손을 대려고 할지도 모르니까요.”

모레스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바실라르 대장의 방을 나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불안한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잭슨 사장이 처음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헌터들도 보내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바실라르 대장이 카슨 사장의 일정을 따라 수색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순을 밟겠다고 했을 때도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모레스의 질문을 받은 그는 또 다시 그녀가 반박하기 곤란한 이유를 내세웠다.

“우리는 카슨 사장님이 일정 중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는 숙소가 위치한 곳부터 먼저 살필 겁니다. 만약 숙소에 사장님이 머물렀던 기록이 있다면 그곳까지는 별 이상 없이 여행을 하셨다는 뜻이니까요. 그걸 확인하면 수색 일정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보통 실종이나 납치는 여행 첫날보다는 어느 정도 일정이 진행되던 중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실라르는 모레스의 표정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모레스 양이 알려주신 사장님의 일정에 따르면 첫날과 마지막 날 각각 아르야다 산의 카모스 호텔과 브르가 온천 지대의 테마스 호텔에 머무를 예정이었습니다. 두 곳 모두 여기에서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숙소인 니베로 산의 코야 리조트에서는 테마스 호텔이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테마스 호텔부터 역순으로 일정을 더듬어 올라가며 수색을 할 계획입니다.

바실라르의 입장에서는 귀찮고 성가시기는 했지만 최대한 친절하고 상세하게 말을 해서 모레스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그로서는 이 일을 오래 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테마스 호텔부터 들러야 했다.

다행히 모레스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헌터들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느끼기에 아무리 따져봤자 그들의 계획을 변경시키기는 힘들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레스는 자신의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곱씹으며 그들의 계획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