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이거 정말 괜찮은 거니?”
최현이 진우의 앞에서 자신의 대도를 손에 든 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진우가 자신을 향해 칼을 내리쳐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괜찮아요. 설사 부상을 입더라도 제가 치료할 수 있어요. 아시잖아요. 저 트리플이라는 거.”
진우가 최현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상급 헌터의 칼도 막아낼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최현이 상급의 헌터였던 것이다.
진우는 그동안의 수련 결과를 실험을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저하는 최현을 설득해서 자신의 몸에 칼을 내려치도록 부탁했다. 최현은 처음 기겁을 하며 거절했지만 결국은 진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최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을 것이라는 진우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칼을 대려고 하니 아무래도 가슴이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정 불안하면 약하게 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츰 힘을 늘려 가면 되잖아요.”
진우가 다시 한 번 최현을 재촉했다. 최현은 결국 결심을 한 듯 이를 꽉 물고 자신의 대도를 진우의 팔뚝을 향해 내려쳤다.
퍽
쇳소리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분명 쇠와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는 했는데, 최현은 마치 질긴 쇠그물을 벤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칼을 내려친 그가 얼른 진우의 팔뚝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팔은 자국 하나 없이 말짱했다.
“정말 괜찮은 거니? 아프거나 하지는 않아?”
진우가 최현을 보고 씩 웃었다. 칼이 팔에 와 닿는 느낌은 생생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살이 베이지 않은 것은 물론 둔중한 통증 같은 것도 없었다. 팔뚝에 제법 강한 충격이 느껴졌지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금씩 더 힘을 늘려 보세요. 대도에 마나도 블어 넣으시고요.”
진우의 말대로 최현은 한 번씩 그를 향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조금씩 힘을 늘려갔다. 마나도 불어넣었다.
한 번 내려칠 때마다 칼이 닿은 자리를 거듭 확인했지만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나중에는 정말 마수를 사냥할 때처럼 제대로 마나를 불어 넣고 내려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최현은 대도를 도로 집어넣으며 진우를 향해 물었다.
“와카반의 마나가 흡수된 거냐? 마치 지난 번 와카반의 사냥 때에 헌터들이 녀석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 못하던 광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진우는 벗어 놓았던 웃옷을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와카반과 교감할 때 녀석의 마나가 저에게 조금 옮겨왔어요. 그 마나의 특성을 파악해서 제 몸 속의 마나를 비슷한 방식으로 발현시킨 거예요. 그렇게 해서 몸과 피부를 강화시켜봤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커서 저도 조금 놀랍네요.”
진우가 와카반이 아닌 자신의 마나만을 이용해서 발현시킨 것은 맞았다. 와카반의 마나는 최근 들어 진우의 마나 흐름에 자연스럽게 교감하면서 그의 몸속을 함께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진우는 와카반의 마나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는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아직 남의 마나였다. 지금 당장 그가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마나는 여전히 본래 가지고 있던 자신의 마나밖에는 없었다.
진우는 최현에게도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자신의 몸에 새로운 신체 기관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와카반의 마나 일부가 자신에게로 옮겨왔다는 정도로만 얘기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말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설명을 해야 하기도 했고, 요즘 들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일일이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현은 진우의 설명만으로도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와카반의 마나가 대단하긴 한 모양이구나. 놈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견고한 방어가 가능하다니. 최상급이 아니라면 너와 싸우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해야 하겠구나.”
진우는 최상급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 * * * *
와카반의 마나와 금색의 마나 크리스털은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 만약 와카반의 방식으로만 마나를 활용했을 경우 비록 방어력은 올라갔겠지만 마나를 운용하는 속도는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금색 마나 크리스털 특유의 활발한 마나 운용 방식을 가미시키자 마나의 움직임이 훨씬 빨라졌다.
순식간에 피부를 강화시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피부뿐만이 아니라 몸 주위를 막처럼 감싸는 마나 방어막의 방어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우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무게 조절 능력의 발견이었다.
“처음에는 천구의 비밀을 푼 줄 알았지.”
새들 행성에서 싸웠던 천구는 몸에 비해 엄청난 무게를 지닌 특이한 마수였다. 진우는 네 개의 마나 크리스털과 동시에 교감을 하던 도중에 자신의 무게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로 와카반과 금색 마나 크리스털 사이의 상호작용이 주가 되기는 했지만 다른 두 마나 크리스털을 동시에 교감에 참여시켜 이리저리 운용방식의 배합을 조절하던 순간, 갑자기 몸의 무게가 다섯 배 이상 늘어나는 현상을 경험한 것이다. 평소처럼 빌라의 베란다에서 수련을 하던 도중이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베란다가 무너져 호수 속으로 빠질 뻔했었다.
황급히 마나를 풀고 거실로 피하지 않았으면 아마 베란다가 무너졌을 것이다.
진우는 순간 이것이 천구의 무게가 비정상적으로 무거웠던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수련을 하다 보니까 이번에는 거꾸로 몸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 개의 마나 크리스털이 가지고 있는 마나 운용의 특성을 어떤 비율로 배합하여 사용하느냐에 따라 몸의 무게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하면서 연습을 해 본 결과 대략 무게를 스무 배 정도 무겁게 하거나 반대로 이십분의 일로 가볍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걸 이용하면 중력이 지구와는 크게 다른 행성에서도 부담 없이 활동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무게가 늘거나 줄어들어도 활동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행성의 무거운 중력에 맞추어 체내 마나의 흐름을 조정할 경우 큰 불편 없이 움직이는 게 가능하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무게를 줄이거나 늘이는 게 마치 인공적으로 중력을 조절하는 것하고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진우는 예전에 스카디안 행성에서 지구보다 훨씬 무거운 중력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현재의 능력을 이용한다면 다시 그곳에 가더라도 반중력 벨트 없이 생활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나중에 한 번 실험을 해 봐야겠군.”
체내 마나량은 정확히 측정을 해 봐야 알기는 하겠지만 대략 전보다 50퍼센트 가량 더 증가한 것 같았다. 그 짐작이 맞는다면 현재 진우가 가지고 있는 마나량은 8,000P를 넘을 것이다.
그 정도면 소위 말하는 최상급 마수가 가진 마나량조차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 말마따나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체내 마나량이 800P만 넘어도 상급 헌터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그런데 현재 진우가 가진 마나는 그 열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우는 여전히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조 단계에 들어서려면 최소한 10,000P는 넘어야 할 것 같아.”
헌터들 사이에서 흔히 떠도는 속설 가운데에는 1,000P가 넘으면 동조에 들 수 있을 거라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진우 자신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체내 마나량이 동조에 들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마나가 확보되지 않으면 체험에 의한 깨달음을 얻기가 그만큼 어려웠다.
진우는 현재 동조 단계에 살짝 발을 디디고 있는 상태였다. 그의 느낌으로는 최소한 10,000P는 있어야 동조에 이르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 *
한 달을 꼬박 빌라에 틀어박힌 채 수련만을 거듭하던 진우는 어느 정도 수련을 완료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지구로 귀환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말하자, 최현은 의외로 그를 말렸다.
“수련을 했으면 실전을 조금 해 보는 게 나을 거다. 어차피 지금 너에게는 웬만한 마수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상대겠지만, 그래도 실전을 통해 수련의 결과를 체험해 보는 것이 좋아. 지구로 귀환하면 그럴 기회가 없지 않겠냐.”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현이 싱긋 웃으며 그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솔직히 너도 좀 이곳의 경치를 즐기며 한 동안 쉬었으면 한다. 네 나이가 한창 수련을 통해 발전을 꾀할 나이이기는 하지만, 너무 달리기만 하면 탈이 날 수도 있어. 내가 경치 좋은 곳들을 소개해 줄 테니까 더도 말고 딱 열흘 정도만 이니스프리의 절경을 구경하며 다니도록 하자. 이곳은 정말 풍광이 좋은 곳이 많아. 간혹 마수들이 돌아다닌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너나 나나 그걸 특별히 걱정할 정도는 아니잖냐.”
진우는 그 말을 듣고 픽 웃고 말았다. 최현 자신은 강한 훈련만이 좋은 헌터를 만든다는 생각을 종교처럼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그 점에서는 겉으로는 사람 좋게만 보이던 타르코스 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진우의 첫 훈련 교관으로 괜히 최현을 붙여준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케이튼에서 최현이 시켰던 훈련은 어린 진우에게는 지나치리만큼 가혹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대수림에서 마수들과 직접 결투를 하게 만든 훈련이 그랬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그 훈련을 최현은 태연히 강요했다. 위험하면 자신이 구해주겠다는 말 한마디가 유일한 보험이었다.
최현이 일 년간 헌터 학교 교관 노릇을 하다가 떠났을 때, 그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소리 죽여 만세를 불렀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최현이 진우에게는 거꾸로 구경을 하며 쉬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최현이 보기에도 진우는 수련광이라고 할 만큼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유형이었던 것이다.
* * * * *
진우가 쉬라는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자, 최현은 당장 그날 점심을 이용하여 험프리 호텔에 데리고 갔다. 근사하게 식사를 하고 나서 여행용 물품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네요?”
진우가 험프리 호텔에서도 제법 값이 나가는 요리를 주문하고 나서 최현에게 말을 했다. 분명 험프리 사장이 호텔을 유지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분위기는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험프리 사장은 망해서 거지가 되었다더라. 험프리 그룹 쪽에서 조금 도움을 주리라고 예상했었는데, 거의 도움이 없었던 것 같아. 그룹에서 자금을 융통해 준 덕에 다행히 헌터들에 대한 의뢰비는 차질 없이 지급이 되기는 했다더군. 그 대신 그 돈을 지구에 있는 험프리 사장의 재산까지 압류를 하는 형태로 모두 받아냈나 보더라.
험프리 사장이 눈물을 흘리면서 지구로 귀환하는 포털을 타는 걸 여러 사람이 봤다는 모양이다. 그가 귀환할 때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이 아마 그의 유일한 재산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 그의 남은 생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의 빵을 발로 차서 짓밟았던 사람이, 그 빵을 자신이 도로 주워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험프리 호텔은 누구 거예요?”
진우가 그렇게 묻자 최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험프리가 사장이다. 물론 앞의 이름은 다르지. 전 사장의 바로 윗 형이 새로 사장으로 취임했나 보더라. 뭐 그 과정에서 조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서 완전한 사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완전한 사장이 아니라니요?”
최현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런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는 몰라. 다만 원래 이 호텔 이름이 험프리 호텔이기는 해도 지분의 상당수는 여러 투자자들에게 분산되어 있었나 봐. 그런데 이번에 험프리 사장이 헌터들에게 의뢰비를 지급하느라 그 지분을 파는 과정에서 새로운 대 주주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있어. 호텔 이름이 험프리이고, 사람들의 인식에는 이게 험프리 그룹 산하에 있는 걸로 되어 있으니, 일단 임시로 제임스 험프리라는 자가 사장 역할을 맡고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아직 주주 총회에서 정식으로 임명이 되지는 않았으니 완전한 사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얘기지. 주주 총회 결과에 따라서는 사장이 바뀔 수도 있나 봐.”
진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복잡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관심도 없는 얘기였다. 최현도 더 이상은 아는 게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이니스프리에서만 나오는 독특한 이름의 생선을 이용하여 고기를 굽듯 소스를 발라가며 익힌 요리였다.
입안에 착착 감기는 풍미가 일품이어서 진우는 꽤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요리가 끝나고 디저트와 함께 나온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가 갑자기 식당 한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최현이 진우가 보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인형같이 귀여운 꼬마 아가씨 하나가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뭔가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니?”
최현이 묻자 진우가 그를 쳐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 꼬마 아가씨가 의뢰를 받아 줄 헌터를 찾고 있네요.”
“뭐?”
아무리 봐도 어린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헌터에게 의뢰를 한다고? 최현이 어이없어 하는 웃음을 짓고 있을 때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던 문제의 그 꼬마가 기어코 진우와 최현이 앉아 있는 자리까지 오고 말았다.
“아저씨들 혹시 헌터세요?”
묻고 있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최현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래, 아저씨들 헌터다. 그런데 우리 꼬마 아가씨가 무슨 일 때문에 헌터를 찾고 있을까?”
최현은 속으로 이 꼬마가 어디서 곰 인형 같은 것을 잃어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 아빠를 찾아주세요.”
“뭐?”
“아빠가 없어졌어요. 우리 아빠를 좀 찾아주세요.”
진우와 최현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 아가씨가 아빠를 잃어버렸니?”
최현이 식탁 위에 있던 냅킨으로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
“아니요. 아빠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호텔에 돌아온다고 했는데, 두 밤이 더 지났는데, 꼭 돌아오기로 했는데, 아직 안 왔어요. 아빠를 좀 찾아주세요.”
두 사람이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이를 두고 갔다고? 험프리 호텔은 이니스프리 행성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지구에서 포털을 타고 이곳에 와서 묵을 정도면 가난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까지 데리고 왔으면 더욱 그렇다고 봐야했다.
그런 사람이 설마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어서 이곳에 버려두고 도망을 갔을 리는 없었다.
“우리 아가씨 아빠 이름이 어떻게 되지? 그리고 아가씨 이름은 뭐야?”
말을 하는 사이에 아이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앤드류 카슨이에요. 저는 도로시 카슨이고요. 우리 아빠를 좀 찾아주세요.”
“앤드류 카슨?”
최현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진우가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현이 그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내가 식사 전에 험프리 호텔에 새로운 대주주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지? 그 소문의 주인공이 바로 앤드류 카슨이다. 화이트캐슬 사의 두 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
화이트캐슬 사는 진우도 알고 있는 회사였다. 아니 진우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 가운데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였다.
새로운 형태의 혁명적인 메모리인 크리스털 메모리를 발명한 회사였던 것이다. 화이트캐슬은 그 독보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전 세계의 메모리 시장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해서 지난 이십년간 승승장구로 성장해 왔다.
윌리엄 잭슨과 앤드류 카슨이라는 두 젊은 천재가 협력해서 세운 화이트캐슬은 현재 지구에서 가장 큰 기업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두 소유주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이곳 이니스프리에서 실종되었다고?
진우와 최현이 이 황당한 사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 식당 입구에서 꼬마 아가씨를 부르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로시?”
꼬마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뛰어오는 여자는 감색의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아가씨였다. 그녀는 도로시를 발견하자마자 급히 다가와서는 무릎을 굽혀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맞추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디를 가면 나한테 얘기를 해야지. 너마저 잃어버린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를 보자 도로시는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 나이에 울음을 참느라 몹시 힘들었던 것 같았다. 꼬마를 꼭 끌어안고 계속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는 여자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다.
“아빠는 꼭 돌아오실 거야. 도로시가 말 잘 듣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꼭 돌아오실 거야. 걱정하지 말고 우리 방에 올라가서 재미있는 놀이 하자. 응?”
진우는 최현을 바라보며 눈짓으로만 물었다. 이거 거짓말이나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최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섣불리 도와주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최현은 젊은 아가씨에게 자초지종을 묻기로 했다. 뭔가 느낌이 불안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