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05화 (105/235)

105화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어디로 갔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진우 한 사람뿐이었다. 최현조차 진우가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과 교감을 했다는 것까지만 짐작하고 있었지, 설마 그것이 진우의 몸속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인류가 외계 행성으로 진출한 이래로 수많은 헌터들이 배출되었다. 아울러 그동안 다양한 마수들이 사냥되었고, 그 과정에서 드물기는 하지만 마나 크리스털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나 크리스털이 사람의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는 소문으로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마나 크리스털이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기 위해서는 일단 그 사람의 체내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있어야 했다.

마나 크리스털 자신이 워낙 막대한 양의 마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최상급 헌터라고 해도 마나 크리스털의 입장에서는 정말 미약한 마나를 가진 존재에 불과했다. 고작 1000P에도 미치지 못하는 마나는 그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적어도 상급 이상의 마수들이 지니고 있는 마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마나 크리스털들이 어느 정도 적극적인 반응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현재의 인류 가운데 그 정도의, 아니 오히려 상급 마수들조차 뛰어넘을 정도의 마나를 몸 안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진우가 유일했다.

진우가 유독 마나 크리스털들에게 호감을 얻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독특한 마나 운용법과 뛰어난 마나 친화력이었다. 진우의 마나가 지닌 특성은 타르코스 소장이 한 번 언급했듯이 자연스러움이었다.

대개의 헌터들은 수련이 깊어지고 등급이 올라갈수록 체내의 마나가 각자 독특한 성질을 뚜렷이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강맹함, 온화함, 뜨거움, 차가움 등 헌터들마다 지니고 있는 기질에 따라 마나의 고유 특성이 다르게 나타났다. 그런데 진우의 마나는 그런 특성이 명확하게 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합하여 포용하는 듯한 광대함이 그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자연스러움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마나 크리스털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었다.

마나 운용 능력 역시 발군이었다. 진우 자신은 다른 헌터들과 자신을 특별히 비교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마나 운용 능력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안정적이었다.

아무리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더라도 웬만해서는 마나의 흐름이 흔들리거나 폭주하는 경우가 없었다. 또한 그가 주변을 마나로 탐지하거나 화살에 마나를 싣는 방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남들은 몇 년을 노력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세밀한 마나 조정 능력을 아주 쉽게 숙달시켰다. 그런 모든 능력이 합해져서 진우는 남들이 괴물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선입견은 의외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나 크리스털이 단지 엄청난 마나를 가지고 있는 단단한 결정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마나 크리스털은 죽어있는 돌덩이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고 정제해서 자신을 키워나가려는 강력한 방향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마나를 흡수하기에 유리한 곳을 찾으려 했고, 때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스스로 그런 곳으로 자신을 이동시키기도 했다. 그런 마나 크리스털의 입장에서 볼 때 진우의 몸은 마나를 흡수하고 자신을 키워나가기에 아주 좋은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마나 크리스털들의 마음에 드는 마나를 아주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효율적으로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기에 유리한 독특한 마나 운용 방식을 사용했다.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진우의 가슴 속으로 자신을 옮긴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  * * * *

와카반의 마나가 진우의 가슴 속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그의 몸체를 두르고 있던 돌덩이를 보호하던 방어력은 약해졌다. 교감이 진행되고, 진우의 몸속으로 옮겨가는 마나의 양이 계속 증가하자, 어느 순간부터 와카반의 몸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즈음 와카반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이곳을 계속 지켜야 할지, 아니면 새로운 곳으로 거주지를 완전히 옮겨야 할지를 두고 그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진우의 몸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현재 있는 곳을 버릴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몸체에 균열이 생기고, 헌터들의 공격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와카반은 결국 자신을 완전히 진우의 가슴 속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동안 조금씩 보내던 마나의 양을 대폭 늘리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모든 마나를 옮길 수는 없었다.

결정화가 풀리면서 발생한 그의 방대한 마나가 일시에 진우에게로 옮겨지면 그의 육신은 산산조각으로 터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굳이 결정화를 택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나를 모두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몸을 질기고 튼튼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와카반은 진우의 가슴 속에 뿌린 씨를 온전한 결정으로 만들기로 했다. 물론 결정의 형태는 그의 신체 조직을 이루고 있는 다른 기관과 유사한 형태이어야 했다.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새로운 결정은 효율적으로 마나를 흡수하거나 성장시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진우가 자신의 몸속에서 결정이 자라는데도 특별한 이물감이나 거북함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였다.

말하자면 진우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새로운 신체 기관이 하나 더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몸속에 오장육부와는 전혀 다른 일종의 마나 기관이 생긴 것이다.

와카반의 마나가 거의 다 진우에게 옮겨지고, 새로운 마나기관이 충분히 성장했을 때, 와카반의의 마나 크리스털은 마지막으로 본래의 몸체에 두르고 있던 마나를 일시에 회수했다. 그러자 헌터들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던 돌덩어리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헌터들에게는 긴 시간 동안 지루하게 계속되던 사냥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고, 마나 크리스털로서는 자신의 본래 마나를 온전하게 회수하는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은 자신의 선택에 대단히 만족했다. 장소를 옮기는 과정에서 땅속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새로운 마나가 새로이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진우의 마나 운용방식에 와카반의 마나 특성이 더해지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것은 진우 자신의 체내 마나량을 늘려주기도 했지만, 사실은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의 마나를 가져갔다.

진우도 느끼고 있던 일이었다. 덕분에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은 단 시간 내에 본래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마나를 흡수해 약간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모두에게 흡족한 결과였다. 유일하게 좌절한 사람들은 험프리 사장 일행뿐이었다.

*  * * * *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모두 진우에게로 옮겨지고 나서도 진우는 한 동안 명상을 계속했다. 새로 늘어난 마나를 수습하고 갓 생긴 마나 기관을 완벽하게 자리를 잡게 하느라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지막 순간 일시에 밀려들어온 마나의 양이 적지 않아 그것을 완벽하게 갈무리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헌터들이 와카반의 잔해를 열심히 뒤적이며 한창 마나 스톤을 찾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돌조각들이 사방에 즐비한 것으로 보아 와카반의 몸체가 모두 부서져 내린 것 같았다.

그는 와카반에 대한 사냥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와카반과의 외부적인 교감이 끝나면서 금색의 마나 크리스털은 어느새 다시 검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진우는 남들이 눈치 채지 않게 슬그머니 검 손잡이의 마개를 닫았다.

“몸은 괜찮은 거냐?”

얼굴이 꺼멓게 죽은 최현이 여전히 대도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지키고 서 있다가 진우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급히 물었다. 그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흐르고 있었다.

“네. 오히려 전보다 더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아요.”

당연한 얘기였다. 체내 마나량부터가 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비록 오랫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던 터라 허기와 갈증이 일었지만 기분이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몸에도 오히려 활기가 넘쳤다.

“일단 물부터 조금 마셔라. 목이 탈거다.”

최현이 내미는 물병을 보자 정말로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과 배를 쥐어짜는 허기가 밀려왔다.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물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카아~.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그리고 너무 배가 고파서 당장 뭐라도 좀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최현은 기가 막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남의 속을 있는 대로 태우던 녀석이 천연덕스럽게 먹을 것을 찾는 것을 보니 조금 얄밉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흘 내내 마음속을 바위처럼 짓누르던 걱정과 초조함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먹을 걸 찾는 것으로 보아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험프리 사장이 있는 곳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쓰러질 지경이 아니라면 뭘 먹는 것은 조금 기다리는 게 좋겠다. 저쪽 분위기가 지금 심상치 않아.”

최현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헌터로 보이는 두 명의 인물과 이런 사냥터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반인 세 사람이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기 서 있는 두 명의 헌터는 네덜란드에서 온 요헴과 중국 출신의 궈 레이라는 최상급 헌터다. 이번 와카반 사냥을 지휘했던 두 명의 공격대장들이다.

만하임 상무는 본 적이 있으니 알 테고,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전에 내가 말했던 도노반이라는 외계 생물학자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바로 이번 사냥을 의뢰했던 험프리 호텔의 사장이다.

“근데 저 사람들 얼굴 표정이 왜 저렇게 심각해요?”

최현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와카반을 사냥했는데 거기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은 모양이야. 대충 말하는 소리를 들어 보니 험프리 호텔에서는 이번에 와카반을 사냥하고 마나 크리스털을 얻을 속셈이었던 같아. 그런데 마나 크리스털은 고사하고 마나 스톤마저도 나오지 않았으니 난리가 난 거지. 정말 아무런 수확도 없으면 험프리 호텔은 굉장히 큰 손해를 봐야 할 거야. 최상급 두 명에 상급이 네 명이나 포함된 헌터들을 이렇게 많이 동원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었을 텐데, 그 비용을 생돈을 써서 지불하려면 아마 호텔 자체가 흔들릴지도 몰라.”

“잘못하면 망하겠군요.”

“이미 망한 건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저쪽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오고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헌터들에 대한 몸수색이 시작될 것 같았다.

“너 몸수색을 당해도 괜찮겠냐?”

최현이 진우를 보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와카반이 사냥됐는데도 아무 것도 나오질 않자 최현은 혹시 진우가 녀석의 마나 크리스털을 얻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그런 최현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사람들은 저한테서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예요.”

아무리 몸수색을 한다고 해도 허리띠 버클이나 헤어밴드의 장식을 뜯어보자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걸 요구할 수도 없으려니와, 설사 요구한다고 해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들고 있던 검도 마찬가지였다. 헌터의 무기를 함부로 해체하는 일은 싸우자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흔히 단단한 결정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마나 크리스털이 액체 같은 상태로 자신의 검 안에 들어가 있으리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자신의 짐작이 맞는다면 녀석은 마나 측정 장치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신체 마나량을 숨기기 위해 몸 전체의 마나를 슬쩍 동결시킬 작정이었다. 어차피 한두 번 해 본 일도 아니었다.

*  * * * *

진우와 최현에 대한 수색은 성과 없이 끝났다. 두 사람이 사냥 내내 같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있는 것을 모든 헌터들이 보았다.

촬영 기록도 있었다. 사실 특별히 의심할 만한 구석도 없었다.

사냥터에 있었던 헌터들을 죄다 수색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으니 빼놓지 않고 수색을 했을 뿐이었다. 수색에 대한 협조를 거절해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으나, 진우와 헌터는 묵묵히 험프리 사장 일행의 몸수색을 받아들였다.

결국 수색은 헛짓이 되고, 험프리 사장 일행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밖으로 나온 적도 없는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발견될 리가 없었다. 험프리 사장 일행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죽은 시체처럼 변해갔다. 혹시나 했던 파산이라는 결과가 결국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계약의 주체가 누구였을까? 험프리 호텔이나 험프리 그룹이 계약 당사자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도 있겠지만, 만약 험프리 사장이 계약 당사자라면 저 사람은 알거지나 다름없게 될 텐데.”

최현이 진우에게 소곤거렸다. 그런데 그 만약이 사실이었다.

험프리 사장은 말 그대로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이번 일을 계획했다. 자신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대신 그 결과도 독차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덕분에 의뢰가 끝난 지금 그는 막대한 의뢰비를 물어야 했다.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는 호텔 지분을 전부 정리한다고 해도 의뢰비용을 대기에는 부족했다.

지구에 있는 재산까지도 모두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간신히 의뢰비는 지불할 수 있겠지만, 최현의 말마따나 그는 알거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큰 호텔의 사장에서 무일푼으로 거리에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었다.

“자업자득이지요 뭐. 험프리 일가에 속해 있으니까 그룹 차원에서 조금 보태주지 않을까요? 설마 굶어죽게 내버려 두기야 하겠어요? 그나저나 저야 말로 굶어 죽을 거 같아요. 빨리 밥이나 먹었으면 좋겠어요.”

진우는 험프리 사장의 운명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험프리 사장의 사주를 받은 헌터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에서 파산이나 다름없는 꼴을 당하는 모습을 보니 인간 자체에 대한 흥미가 사라졌다.

높이 올라갔던 사람일수록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충격을 심하게 받는 법이었다. 얼굴 표정으로 봐서는 앞으로 제대로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워 보였다.

진우는 지금의 상황이 마무리되면 빨리 최현의 숙소로 돌아가 몸속에 자리 잡은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을 이용한 훈련을 하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했다. 남들이 보면 수련광이라고 할 만한 성격이었다.

이미 지구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강자였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더 높은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 그는 젊었고, 동조 단계를 향한 거리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질수록 발전에 대한 갈망도 더욱 커졌다.

*  * * * *

험프리 사장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자 사람들은 모두 타고 온 무중력 차량을 이용해 사냥터를 떠났다. 몰려들어 사냥할 때는 주변이 온통 뒤집힐 듯 소란스럽더니, 정작 계약 완료 서명이 끝나자 헌터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뒤로는 부서진 돌조각만 널브러진 황량한 사냥터만 남아 있었다. 넋을 잃은 듯한 모습의 험프리 사장은 만하임과 도노반의 부축을 받다시피 해서 간신히 차에 올라탔다.

아마도 호텔로 돌아가면 의뢰비 지급에 따른 파산이라는 결과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진우와 최현 역시 자신들의 트럭을 이용해 이니스프리 호수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역시 며칠이 걸렸다. 도중에 마주친 마수를 몇 마리 사냥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저 소모된 비용을 보충한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여가 활동 같은 것이었다.

진우는 최현이 빌린 빌라로 돌아오는 즉시 수련에 몰두했다. 비록 와카만의 마나 크리스털이 완전히 하나의 장기처럼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몇 가지 확인하고 개발해야 할 일이 새롭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근 한 달 가까이 바깥출입도 삼간 채 오로지 몸속에 있는 새로운 마나 기관을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한 기술을 연마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제는 상급 헌터의 칼 정도는 그냥 맞더라도 버티겠는 걸.’

최현은 와카반의 마나를 움직이지 않는 마나라고 했지만, 진우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것은 견고한 마나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방어에 특화된 마나라고 할 만 했다.

마나 크리스털이 형성된 지역이 단단한 바위들로 뒤덮인 암석지대여서 그런지 와카반의 마나는 움직임보다는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려는 성질이 더 강했다. 그 성질에 맞추어 마나를 운용하면 피부가 마치 쇠로 만든 철판을 온 몸에 두른 것처럼 강해졌다.

‘처음에는 갑갑해서 미치는 줄 알았지.’

살갗이 단단해지는 것은 좋은데 그럴 경우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동안 마나 기관을 살살 달래고, 다른 세 마나 크리스털과의 교감과 동조를 거듭한 끝에 녀석의 마나를 진우 자신의 마나 운용방식과 결합시켰다.

그 결과 지금은 피부에 마나를 주입할 경우 살갗이 단단하기보다는 부드럽고 질긴 가죽처럼 변했다. 물론 피부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 만졌을 때 전해지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였다.

단단할 때보다 탄력 있는 부드러움을 갖게 된 이후로 오히려 방어력은 더 올라갔다. 콘크리트로만 만든 구조물보다는 중간에 강철을 섞을 경우 충격에 더 잘 견디는 것과 비슷했다.

와카반의 마나도 그런 상태가 마음에 드는 듯 결국 진우의 마나 흐름에 적극적으로 교감을 해 왔다.

============================ 작품 후기 ============================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 즐거운 시간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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