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04화 (104/235)

104화

밤이 지나고 해가 떠서 다시 한낮이 되었을 때, 견고하게 버티던 와카반의 몸체에 드디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격을 시작한 지 꼬박 50시간이 넘은 때, 날짜로는 사흘 째였다.

“와카반의 몸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공격을 주도하고 있던 요헴이 마나 동결 지대의 바깥에서 구경하고 있던 만하임 일행을 향해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만하임은 물론 험프리 회장과 도노반 박사까지 와카반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다가오면 마나가 굳어서 움직이기 어려울 겁니다. 조심하십시오.”

요헴이 그들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헌터도 아닌 일반인들이라면 와카반의 가까이에서는 입을 열어 말하기도 어려울 게 분명했다.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그저 놈이 무너지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도노반 박사가 요헴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다가오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그는 이십년 전에 와카반이 사냥되던 순간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던 것을 평생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현장을 방문하고, 촬영된 영상을 본 것만으로도 남들이 깜짝 놀랄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간접적인 기록을 살피는 것이 직접 관찰하는 것보다 나을 리가 없었다. 이런 기회를 안전을 생각한답시고 놓칠 수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 사람은 와카반으로부터 100m 정도까지 다가서자 온몸이 꽁꽁 굳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와카반의 마나가 부리는 수작인가? 정말 몸이 돌이 되는 것 같군.”

험프리 사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만하임 역시 힘겨운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말을 하기도 힘들 만큼 압력이 대단하군요.”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압력이란 와카반의 곁에서 직접 그를 공격하고 있는 헌터들이 느끼는 것이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몸속의 마나가 많을수록 느끼는 압력은 더 강해졌다. 다만 헌터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걸 이겨내는 힘도 더 강할 뿐이었다.

간신히 와카반으로부터 70m 가량 떨어진 곳까지 다가온 험프리 일행은 그곳에서 결국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숨을 쉬기도 답답했다. 허파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가만히 서서 와카반의 몸이 완전히 부서지기를 기다렸다.

*  * * * *

와카반의 몸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쉬고 있던 헌터들까지 모두 달려들어 사십 명의 헌터들이 일제히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카반의 몸체는 반나절을 더 버티다가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쯤 해서야 비로소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모두 공격 중지.”

요헴과 궈 레이는 동시에 손을 들어 헌터들의 공격을 멈추게 했다. 헌터들이 와카반의 곁에서 물러서자, 잠시 후 주변을 둘러쌌던 마나 동결 현상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뜨거운 봄날 햇볕에 철 지난 눈이 녹아내리듯 굳어 있던 마나들이 한꺼번에 풀려 버렸다.

“후우~.”

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흘이나 잠도 못자고 진우의 곁을 지키느라 상급 헌터인 그도 눈 밑이 거뭇거뭇해질 정도로 초조함을 달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와카반의 몸체가 무너지고 마나 동결 현상이 풀렸다는 것은 사냥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놈이 마수라면 숨이 끊어졌다는 뜻이었다.

진우는 여전히 명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지만 어쨌든 걱정했던 와카반의 공격이 끝내 일어나지 않고 사냥이 끝났다. 이제 진우가 정신을 차리기만 하면 두 사람은 몸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왜 이 녀석을 데리고 어디를 갈 때마다 이렇게 십년은 감수해야 할 일들이 생기는지 모르겠네.”

최현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는 진우를 보며 내심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들리지도 않는 불평을 했다. 하지만 두 번 다 정작 진우를 사고의 현장으로 끌고 들어간 게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아직 어린 진우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  * * * *

무사히 사냥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약간은 분위기가 풀어져 있던 현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초조함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냥의 완료를 축하하며 수다를 떨던 헌터들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쯤 지나자 사방에 침묵이 흘렀다.

요헴과 궈 레이가 굳은 얼굴로 험프리 사장을 찾았다. 그들은 사냥이 끝난 뒤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나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고 있던 험프리 사장 일행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와카반의 마나 스톤이 보이지 않습니다.”

활짝 풀린 얼굴에 웃음을 가득 싣고 두 사람에게서 희소식을 기대하고 있던 험프리 사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밀랍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뭐라고요?”

“마나 스톤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생물과는 다른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의 수색 결과로는 어느 곳에서도 와카반의 마나 스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녀석의 마나 스톤이 아직 돌덩어리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곧 마나크리스털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싱글벙글 웃고는 있었지만 험프리 사장은 고작 반나절의 마나 동결 현상만으로도 파김치가 되어 주저앉아 있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요헴의 말을 듣자마자 마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앉아 있던 자리에서 펄쩍 뛰어 일어났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와카반의 마나 크리, 아니 마나 스톤이 없다고요?”

요헴과 궈 레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네. 마나 스톤이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더 확인해 보고 싶으면 녀석의 몸을 이루고 있던 돌덩어리들을 하나씩 가루가 되도록 깨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당장 깨야지요. 헌터들에게 와카반의 몸을 만들고 있던 돌덩어리들을 당장 모두 깨라고 하시오.”

그러자 요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저희가 맺었던 계약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무언가 가치 있는 물건이 발견되면 소유권이 넘어가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조항은 있었지만 그게 발견될 때까지란 말은 없었습니다.

저희로서는 와카반을 사냥하는 데까지 충실히 계약 내용을 지켰습니다. 더 이상의 수색을 요구하신다면 추가적인 계약과 의뢰금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그런 일을 하려는 헌터가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원하신다면 의사를 물어보기는 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험프리 사장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사실 요헴과 궈 레이의 마음도 좋지는 못했다.

사냥이 끝났으면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헌터로서 즐거운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들로서는 계약했던 의뢰를 이미 완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수를 죽였는데 마나 스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 * * *

험프리 사장은 거의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마나 스톤을 찾으려고 시작한 사냥이 아니었다.

그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마나 크리스털이었다. 광택이 없는 돌덩어리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결정을 얻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멍청이들은 마나 크리스털을 발견한 게 아니라 마나 스톤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고? 그럼 그게 도대체 어디로 갔는데?

그는 옆에 앉아 있던 도노반 박사를 쳐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뜻이었다. 와카반을 사냥하면 마나 크리스털이 헌터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준 사람에게 가서 달라붙을 거라고 얘기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험프리의 험악한 눈빛을 확인한 도노반 박사가 급히 말을 꺼냈다.

“헌터들을 조사하셔야 합니다. 특히 최상급 헌터들 말입니다. 그들 중에 한 명에게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귀속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서 확인해 보십시오.”

험프리 사장은 머리 속에 불이 번쩍 켜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은 분명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헌터 가운데 한 명에게 가서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와카반의 잔해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험프리 사장은 이를 악물고 요헴과 궈 레이를 노려보았다. 험프리 사장이 갑자기 눈빛을 바꾸어 자신들을 바라보자 영문을 알 수 없는 두 최상급 헌터는 그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험프리 사장은 당장에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여기서 이들을 섣불리 자극해서는 안 된다.

일단은 마음을 가라 앉혀야 했다.

“도노반 박사.”

“네.”

“이 분들에게 와카반이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좀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시겠소?”

“알겠습니다.”

도노반 박사는 안경을 고쳐 쓰고 요헴과 궈 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와카반이 어떤 마수이고, 그가 죽은 뒤에 몸에 지니고 있던 마나 크리스털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했다. 요헴과 궈 레이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들은 도노반 박사의 설명에 감탄하기보다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을 사전에 설명해 주지 않은 험프리 사장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지금 와카반의 그 마나 크리스털이라는 게 우리 몸에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겁니까?”

요헴의 목소리에 냉기가 흘렀다. 하지만 험프리 사장은 그의 목소리에 흐르는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아니라면 멀쩡한 마나 크리스털이 도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이요?”

요헴의 눈매가 더욱 사나와졌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양아치를 단 칼에 베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경험이 많은 헌터였다. 이보다 더한 진상들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헌터는 초인에 가까운 힘을 가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함부로 그 힘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자칫하면 헌터로서의 생명이 그대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는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험프리 사장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말하는 마나 크리스털을 본 적이 없소. 정 의심스럽다면 나부터 시작해서 헌터들의 몸을 죄다 수색해 보도록 하시오. 필요할 경우 마나 측정기를 갖다 대어도 좋소. 공격에 참여했던 헌터들 가운데 현장을 떠났던 사람은 아무도 없소. 만약 우리가 마나 크리스털을 숨겼다면 아직 누군가의 몸 어딘가에 있겠지. 당신이 말한 대로 우리들 가운데 마나 크리스털을 숨긴 사람이 발견된다면 당신이 뭐라 하지 않아도 내 반드시 헌터의 율법대로 그를 처리할 것이오. 물론 헌터 협회에도 그 사실을 정식으로 보고하겠소.”

옆에 있던 만하임이 험프리 사장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말을 하고 있는 요헴은 물론 그 옆에 말없이 서 있던 궈 레이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위험했다.

*  * * * *

헌터들은 험프리 사장의 황당한 요구에 혀를 찼다. 일부는 그들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요헴과 궈 레이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경험 많은 최상급 헌터들의 제안이기도 했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일단은 그들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 좋았다. 불쾌했지만 말썽이 나면 의뢰비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험프리 사장은 정말로 간이 마나 측정기를 들이대었다. 마나 크리스털이 발견되면 당장 그 용량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출발 전부터 마나 측정기를 자동차에 싣고 왔던 것이다.

공격에 참여했던 헌터들은 물론, 마침 명상에서 깨어난 진우와 최현까지도 그들의 검사에 응했다. 두 시간 가까이 몸 수색을 포함해서 마나 측정기까지 동원된 엄밀한 검사가 이루어졌다.

어차피 진우가 지니고 있던 마나 크리스털들은 모두 이레지움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마나 측정기에 반응할 리가 없었다. 그때는 이미 금색 크리스털도 얌전히 검속으로 다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진우의 몸속에 자리 잡은 와카반의 마나가 마나 측정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진우는 그것이 와카반의 마나가 지닌 독특한 성질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험프리 사장과 만하임, 도노반까지 동원된 검사는 헌터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이 포기할 때까지 진행되었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부터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은 밖에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이미 돌무더기를 떠나 진우의 몸속에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험프리 사장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더 이상 수색을 할 생각이 없다면 이제 이런 구차한 짓은 그만 두고 계약이 완결됐음을 확인해 주어야겠소.”

요헴이 그의 눈앞에 서류 뭉치 하나를 들이밀었다. 그와 궈 레이를 포함한 사십 명의 헌터에 대한 의뢰 계약서였다.

의뢰자가 계약서에 의뢰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해 주어야 비로소 의뢰비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완료 서명을 거부할 경우 헌터들은 그것을 의뢰자의 국가에 있는 헌터 협회에 보고하고 보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

헌터 협회는 해당 의뢰가 완료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헌터 협회가 계약이 완료되었음을 선언할 경우 해당 국가 차원에서 의뢰자에 대한 의뢰비 지급을 명령했다.

그것마저 따르지 않을 경우 재산 압류를 포함한 강제 집행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험프리 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냥의 모든 과정은 이미 드론에 의해 촬영이 된 상태였다.

더 이상 미련하게 버텨봤자 험프리 그룹 전체가 오명을 뒤집어쓰는 결과밖에 나올 게 없었다. 그 경우 그 자신의 손해로 끝나지 않고 험프리 그룹 전체가 신뢰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헌터들이 앞으로는 험프리 그룹이 내는 어떤 의뢰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망했군.’

서명을 하는 험프리나, 그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만하임과 도노반 박사나, 모두의 머리 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비용을 모두 지불하고 나면 험프리 호텔은 파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잃고,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십 명의 헌터를 동원해 얻은 것은 고작 부서진 돌무더기뿐이었다.

최악의 헌팅, 혹은 최악의 의뢰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