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03화 (103/235)

103화

헌터들의 공격이 하루를 넘겼다. 그동안 요헴과 궈 레이의 공격대는 두 번을 교대했다. 그리고 그때쯤 진우는 날뛰던 와카반의 마나를 간신히 진정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꽁꽁 굳어있던 몸속의 마나가 다시 조금씩 흐름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와카반의 마나가 진우의 몸속 구석구석을 살피듯 움직이더니 느닷없이 진우의 가슴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진우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얘가 뭘 하는 거지?’

진우의 입장에서는 황당했다. 교감이 다시 시작되면서 와카반의 마나는 조금씩 진우의 마나 흐름에 몸을 싣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흐름이 완전히 안정되면서 와카반의 마나는 더 이상 음과 양으로 나뉜 그의 마나를 강제로 융합시키려고 하거나, 흐름을 벗어나 억지로 진우의 몸을 살피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마음에 든 물살을 만난 물고기처럼 마나의 흐름에 몸을 싣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의 몸속을 누비고 다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마나의 흐름을 잘 따르던 와카반의 마나가 어느 순간부터 심장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난 곳, 정확히는 양쪽 갈비뼈 정 중앙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흐름을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곳은 원래 진우의 마나가 흘러가던 자리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미약한 기운을 가슴 중앙에 남기기 시작하던 와카반의 마나는 조금씩 가슴에 쌓이는 마나의 양이 증가하자, 황당하게도 슬그머니 그곳에서 결정화를 시도했다. 심상에서 보았던 단단한 수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것이 마나 크리스털이 유형화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부피에 비해 어마어마한 마나의 농도가 느껴졌던 것이다.

‘마나 크리스털이 나한테로 옮겨 오는 건가?’

그건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초대하지도 않은 손님이 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와 방 하나를 차지하고 드러누운 격이었다.

다행히 그것이 진우의 마나 흐름에 지장을 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가슴 속에서 천천히 몸을 키워가는 단단한 결정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이 너무 많아서 불안했다. 특별한 이물감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녀석이 갑자기 뻥 터지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최상급 헌터의 몸이라도 그대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걸 그대로 두어야 하나?’

진우는 고민을 했다. 그때 진우가 가지고 있던 세 개의 마나 크리스털이 와카반의 마나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반응에 호의가 섞여 있었다. 세 마나 크리스털은 마치 자기 집에 놀러온 친한 친구를 맞이하듯 와카반의 마나를 둘러싸고 그가 스스로 몸을 키워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너희들은 얘를 환영하는 거니?’

진우의 몸속에 있던 마나가 하나로 합쳐졌다가 다시 음과 양의 마나로 나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결정화된 와카반의 마나는 조금씩 몸을 키워갔다.

본래 진우의 마나 흐름을 돕던 빨간 색과 파란 색의 마나 크리스털들은 끊임없이 진우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둘로 나눴다. 그 마나의 중심은 진우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마나였지만, 지금은 와카반에게서 흘러 들어오는 마나도 대량으로 섞여 있었다.

와카반의 마나가 그의 마나와 함께 음과 양의 마나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가 둘로 나뉘면 음의 마나는 진우의 머리 위로, 그리고 양의 마나는 아랫배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잠시 휴식을 취하듯 그 자리에서 머무르던 마나들이 다시금 위 아래로 이동하면서 합쳐졌다. 그 속도가 어느 때보다도 빨랐다. 그 결합의 중심에 바로 와카반의 마나가 있었다.

와카반의 마나 결정은 진우의 마나를 흡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나 결정의 성질 자체가 거꾸로 진우의 마나와 유사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동조와 비슷한 것도 같았지만, 그것과는 또 조금 성질이 다른 변화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결정은 마치 본래부터 진우의 신체 장기 중의 하나였던 것처럼 온전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와카반의 마나가 진우의 몸속에 온전하게 자리를 잡음에 따라 그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와카반의 마나가 더욱 늘어났다.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마나보다 새로 들어오는 게 더 많아졌네?’

진우는 녀석의 마나에 대한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마나 크리스털들과의 교감을 오히려 강화시키면서 새로 들어오는 마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와카반의 마나로 이루어진 결정의 크기가 커지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  * * * *

“대장님, 와카반의 몸체가 부서지기 시작하는데요?”

헌터들의 공격이 시작된 지 스물 네 시간, 만으로 꼬박 하루가 넘어갔을 때, 공격대에 속한 헌터 한 명이 열심히 와카반을 두드리고 있던 궈 레이에게 소리를 쳤다. 와카반의 몸에서 돌 조각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궈 레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공격이 조금씩 먹히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전원 마나를 아끼지 말고 공격을 퍼부어라.”

궈 레이가 목청을 돋우어 헌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외침을 들은 헌터들이 와카반의 몸뚱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전보다 빨라졌다. 지켜보고 있던 만하임의 얼굴에 비로소 약간 안도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교대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요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와카반의 방어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모양이군.”

최현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와카반의 공격적인 대응이 없어 진우가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사정이 나쁜 쪽으로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와카반이 이대로 대응 한 번 변변히 못하고 무너진다고 해도 그로서는 아쉬울 게 없었다.

와카반에 대한 공격이 조금씩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녀석의 단단한 몸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헌터들의 공격이 와카반의 가장 겉을 둘러싸고 있는 돌덩어리들을 조금씩 갉아내듯 줄여가기 시작한 지도 다시 열 두 시간가량이 흘렀다.

어느덧 공격을 시작한 뒤로 두 번째 날의 밤이 깊었다. 제아무리 강인한 헌터들이라고 해도 계속된 공격에 따른 피로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와카반의 서식지를 향해 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보였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헌터들 몇몇이 새롭게 다가오는 불빛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동안 제법 큼직한 무중력 자동차 하나가 헌터들이 설치해 놓은 숙영지에 멈춰 섰다.

와카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먼 곳까지 물러서 있던 만하임이 번호판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자동차를 향해 뛰어갔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차문이 열리고 험프리 사장이 내렸다. 그는 인사를 하는 만하임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헌터들이 한창 공격을 퍼붓고 있는 와카반을 힐끗 보았다.

“아직도 와카반을 쓰러트리지 못한 건가?”

만하임이 황송한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오늘 낮부터 공격이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놈의 몸체가 부서지고 있으니 조만간에 끝장을 낼 수 있을 겁니다.”

험프리가 못마땅한 듯 입맛을 다시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공격을 시작한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여태 해치우지를 못했다고? 인원이 사십 명이나 동원되었잖아. 게다가 최상급이 두 명에, 상급 헌터만 해도 4명이야. 나머지도 죄다 마나 헌터고. 이십년 전보다 화력이 두 배나 늘었는데도 여태 잡지를 못했어? 다들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기는 한 거야?”

“죄송합니다. 와카반의 반응이 자료를 통해 확인했던 것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그때 만하임의 말을 자르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다르다니요? 어떤 점이 달랐습니까?”

험프리 사장이 내린 차 안에서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을 낀 남자 하나가 내렸다.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도노반 박사께서 직접 오셨군요. 함께 오시는 줄 몰랐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만하임이 간단한 외출복 차림의 남자를 향해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도노반 박사는 다소 성의 없는 태도로 만하임의 손을 잡으며 다시 물었다.

“와카반의 반응에서 제가 작성한 자료와는 다른 움직임이 발견되었습니까?”

그러자 만하임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험프리 사장을 힐끗 보더니 대답을 했다.

“네. 어제부터 지금까지 거의 하루 반 동안 쉬지 않고 헌터들이 공격을 했는데도 와카반이 전혀 공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노반 박사의 안경 속에 있던 눈동자가 커졌다.

“호오. 그건 정말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군요. 와카반의 몸체는요? 그건 어떻습니까?”

“공격을 시작한 지 하루 동안은 최상급 헌터의 공격에도 전혀 손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낮부터 조금씩 놈의 몸을 감싸고 있는 돌덩이들이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태라면 하루 정도 더 공격을 하면 놈의 몸체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와카반을 공격하는 헌터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험프리 사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저기 젊은 친구는 뭐야? 저 친구는 왜 공격도 하지 않고 와카반 주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거지?”

그러자 만하임이 목소리를 낮추며 험프리 회장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저 녀석이 바로 강진우입니다. 그 옆에 대도를 들고 서 있는 자가 최현이라는 상급 헌터이고요. 저 두 녀석은 저희가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러고 있습니다.”

험프리 사장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그런데 왜 아직 끌어내지 않고 저기 있게 놔두는 건가? 저 놈들이 우리 팀이 공격하고 있는 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와 있었습니다. 최현이라는 자의 말에 의하면 그때까지 와카반을 공격하지는 않고 있었답니다.

요헴과 궈 레이 대장의 말로는 자신들이 보기에도 특별히 공격을 가한 흔적은 없었답니다. 끌어내고 싶어도 워낙 와카반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힘듭니다.

그 근처는 마나가 모두 굳어버려서 최상급 헌터들도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면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듣고 있던 도노반 박사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사냥 후에 나오는 물건이 완전히 험프리 호텔의 소유가 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헌터들에게 확실히 알렸습니까?”

만하임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계약서에 그 점을 확실히 명시해 두었습니다. 와카반 사냥에서 어떤 물건이 나오든 그 소유권이 완전히 험프리 호텔 측에 넘어올 때까지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도노반 막사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험프리 회장은 진우와 최현을 보면서 다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튼 헌터 녀석들은 돈만 처 받을 줄 알았지 일을 대충대충 하는 경향이 있어. 사람하나 끌어내지 못하는 놈들이 무슨 최상급 헌터라고, 쯧쯧.”

*  * * * *

쉬고 있던 요헴의 눈매가 꿈틀했다. 최상급인 그로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는 해도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가 훤히 들렸다.

“이번 의뢰는 아무래도 재벌의 옷을 입은 양아치들하고 인연을 맺은 모양이군.”

그는 혼잣말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돈을 받고 남의 일을 하는 입장에서 상대가 자신을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쯤이야 지금의 수준까지 올라오는 동안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주 겪더라도 적응이 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요헴은 입맛이 씁쓸했다.

“그나저나 이대로만 간다면 저 어린 친구가 다치지는 않겠군.”

그가 바라본 곳에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안정된 표정으로 여전히 명상에 들어있는 진우가 있었다. 최현과 다툼이 생길까 봐 일부러 그들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공격하고 있던 다른 헌터들의 눈에는 바닥에 낮게 깔려 진우와 와카반을 연결하고 있는 금색의 실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공격이 효과를 보면서 와카반의 몸에서 날린 돌가루가 주변을 덮어 버리자 금색 실은 완전히 땅에 덮인 돌먼지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 * * *

처음에는 좁쌀만 하던 진우 가슴 속의 결정은 반나절이 지나면서 콩알 정도의 크기로 커졌다. 물론 그것은 진우의 느낌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의 몸속에서 와카반의 마나가 어떤 형태로 결정화가 되었는지는 몸을 갈라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와카반의 마나로 이루어진 심상 속의 결정은 크기가 커질수록 더욱 더 많은 마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땅 속에서도 마나가 올라오네.’

와카반의 마나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진우의 체네 마나 수용량은 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진우 자신은 몰랐지만 정오 무렵의 한 시간 가량 진우의 몸은 엷은 우윳빛 광채에 덮여 있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진우는 또 다시 조그만 발전을 이루었다. 그 뒤로는 와카반으로부터만 마나가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땅 밑으로부터 새로운 마나가 진우의 몸에 흡수되고 있었다.

그 마나들 가운데 일부는 진우의 체내를 흐르는 마나에 합류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양이 와카반의 마나 결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돼지같이 먹어 치우네.’

진우로서는 어차피 체내 마나 수용량을 넘어서는 마나는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슴 속의 마나 결정이 남는 마나를 흡수하든 말든 진우와는 상관이 없었다. 진우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이 와카반의 마나가 진우의 몸속에 안착하기로 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진우의 마나 흐름을 따르던 와카반의 마나는 본능적으로 새로운 마나를 흡수하는 데에 그런 방식이 훨씬 유용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불편하지만 않으면 되지 뭐.’

진우는 그렇게 편안히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상 속에 보이는 와카반의 노란 수정은 조금씩 크기가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해서 진우 몸속의 마나 결정은 점점 커졌다.

진우는 이제 와카반의 마나가 자신의 몸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 마나 결정이 자신의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할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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