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99화 (99/235)

99화

진우와 최현은 죽은 헌터들의 사체를 트럭에 싣고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했다. 적당한 자리를 찾은 두 사람은 숲 한 가운데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죽은 헌터들의 시체와 무기를 모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취사용 연료를 뿌린 다음에 그들의 시체를 모두 태웠다.

진우가 마나 크리스털의 도움을 얻어 강력한 양의 마나를 타고 있던 불길에 쏟아 부은 탓에 헌터들의 사체는 순식간에 하얀 가루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놈들이 사용하던 무기마저 녹아서 형체를 잃을 정도로 강력한 열기였다.

“이렇게 하는 게 좋다. 흔적을 없앨 필요도 있지만,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도 죽은 시체까지 마수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여전히 얼굴을 풀지 못하는 진우를 향해 최현이 그렇게 말했다.

“험프리 그룹에서 시킨 일이겠죠?”

진우가 사체를 태운 구덩이를 메우며 최현에게 물었다.

“본인들이 험프리 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으니 아마도 그렇겠지. 우리를 해칠 수 있으면 좋고, 그게 안 되면 이놈들이 당하더라도 영상 기록을 증거 삼아 헌터 살해범으로 고발할 작정이었을 거다. 헌터 몇 명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겠지.”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지독하게 우리를 해코지 하려고 한 거죠? 고작 자기들이 주최한 헌터 대전에 참가하는 걸 거절했다는 이유 때문에요? 전 이해가 안 돼요.”

최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냥터에서 헌터들끼리 시비가 붙는 일이 흔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개는 사냥감을 서로 차지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힘에 취한 일부 헌터들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경우에도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일은 드물었다. 헌터들은 사냥꾼이지 살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 자들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시비를 걸어왔다. 게다가 그 중 최소한 두 명은 진우와 최현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자칫하면 자신들의 일행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는 각오했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드론까지 동원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살인 장면을 촬영하려고 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최현과 진우를 확실히 죽일 자신이 있었다면 자신들에게는 오히려 불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는 기록을 남기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 위급하면 몸을 뺄 생각을 했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동료 몇 명의 목숨을 잃을 각오를 했다는 얘기였다.

최현으로서도 그들이 도대체 왜 그런 무리수까지 동원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자. 이곳에서 더 있어봤자 좋을 게 없다. 더 이상 사냥이나 훈련을 하기는 틀린 것 같으니 일단 초원이 나올 때까지 남쪽으로 내러가자.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계속 가다가 날이 저물면 적당한 곳을 골라 야영을 하자. 오늘은 되도록 빨리 수림을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 흙을 주변에 뿌리고 무중력 트럭에 올랐다. 며칠만 지나면 수림의 왕성한 생명력이 땅을 팠던 자리를 흔적도 없이 덮어버릴 것이다.

헌터들은 대단한 초인들이었지만, 이렇게 외계 행성에서 목숨을 잃을 경우에는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진우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 *

“보냈던 헌터들로부터 연락이 끊겼다고?”

험프리 호텔의 사장인 조나단 험프리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도널드 만하임을 보며 짜증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네. 비행 드론이 파괴되기 전까지 보내온 영상에 의하면 강진우와 최현 두 사람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하기는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중에 영상이 끊긴 뒤로는 더 이상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만하임이 쩔쩔 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험프리 사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신경질적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럼 모두 당했다는 얘기잖아. 죽은 건 상관이 없어. 하지만 그렇다면 그들이 죽음을 당하는 영상이라도 확보를 했어야지. 이래서는 얻은 게 아무 것도 없잖아.”

사람이 죽은 게 상관이 없다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은 그가 만하임 상무를 보며 다시 짜증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파괴되기 전까지 보내온 영상으로는 놈들을 묶어둘 방법이 없는 건가?”

“사냥터에서 사냥감을 두고 헌터들 사이에 시비가 붙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우리 헌터들이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 정도 영상을 가지고 지구에서 수사 팀을 끌어들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쪽에서도 자국의 상급 헌터 두 사람이 구속되도록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비록 미국의 수사팀에게 미리 협조 요청을 해 두기는 했지만, 살인 정도의 큰 범죄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저희가 원하는 시간 안에 신속하게 두 사람을 잡아두기는 어렵습니다.

헌터들의 협조도 필요한데 그들이 이정도 일로는 나서지 않을 겁니다.”

만하임의 이야기를 듣던 험프리 사장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대답을 하던 만하임이 고개를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그러다가 놈들이 그대로 와카반이 있는 곳까지 가면 어쩌려고? 마나 크리스털이 걸린 일이야, 마나 크리스털이. 우리가 와카반을 향해 대규모로 움직이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헌터 대전까지 열어서 이목을 돌린 것 아니냔 말이야. 무려 사십 명의 헌터들이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들일 각오를 하고 시작한 일이야.”

말을 잠시 멈춘 험프리 사장은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물 잔을 들어 벌컥대며 마시더니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잖아, 도노반 박사의 말에 의하면 와카반의 마나크리스털은 귀속 속성이 있어. 와카반이 죽으면 가장 큰 피해를 준 사람한테로 붙어 버린다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협조가 없이는 그 마나 크리스털은 그냥 평범한 돌멩이나 다름없게 된단 말이야. 강진우 그 녀석은 어리기는 하지만 최상급이야, 최상급. 잘못해서 놈에게 마나 크리스털이 귀속되어 버리면 우리가 놈들을 죽여 버리기 전에는 그걸 얻을 수 없다는 걸 몰라? 그 마나 크리스털이 놈을 보호하기라도 한다면 죽이기도 어렵단 말이야.”

만하임의 고개가 땅속으로 처박히듯 숙여졌다. 강진우에 대해 조사를 하던 과정에서 그가 프랑스가 관리하는 무니악 행성에서 단독으로 윌러킹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윌러킹은 상급 마수였다. 상급 마수를 단독으로 해치웠다는 것은 그가 최상급 헌터라는 뜻이었다.

헌터 카드에 적힌 대로 그냥 상급 헌터에 불과하다면 그가 아무리 더블형이라도 혼자 힘으로 상급 마수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만하임은 바쁘게 움직였다. 자신의 조카까지 동원해서 어떡하든 그의 관심을 와카반으로부터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녀석은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단호함으로 자신들의 제의를 끝내 거절했다.

그와 동행하는 최현이라는 헌터가 우연히 와카반의 서식지를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은 게 벌써 한 달 전이었다. 워낙 헌터들의 출입이 뜸한 곳이기는 했지만, 혹시 몰라서 와카반의 서식지에 중급 헌터 한 명을 포함한 세 명의 감시자를 붙여 두고 드론까지 띄워 두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니스프리에서도 잘 알려진 상급 헌터인 최현이 나타났다.

감시자로 배정한 헌터들로서는 그를 막아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보다는 그냥 험프리 호텔에 최현의 출현을 신속히 보고한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육 개월 전부터 와카반을 발견하고 만반의 사냥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험프리 그룹으로서는 아차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급 헌터인 그가 불러들인 강진우라는 애송이가 하필이면 최상급 헌터가 확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둘이서 와카반의 서식지까지 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상급 헌터가 포함된 그룹 소속의 헌터 팀 하나를 파견해서 일부러 시비를 붙게 만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 팀이 두 사람을 이길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본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험프리와 만하임은 그 팀이 최현이나 진우에게 죽기를 바랐다. 혹시라도 몸을 사릴까봐 일부러 최현과 진우의 등급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여 알려줬다. 가능성은 낮지만 최현과 진우를 죽일 수 있으면 좋고, 그게 아니라면 팀원 중에 최소 한 명이상 목숨을 잃기만 해도 좋았다.

그 경우 드론의 영상을 증거로 삼아 놈들을 살인죄로 붙잡아둘 작정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어린 녀석이 드론을 눈치 채고 화살로 폭발시켜 버렸다. 뜻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준비했던 팀원에게 연락해서 지금이라도 당장 와카반 서식지로 이동하라고 해.”

“인원 전부를 말입니까?”

“그래. 최상급 헌터 두 명을 포함해서 상급 헌터만 네 명이잖아. 하급 헌터까지 총 인원이 무려 사십 명이야. 그게 모두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인 줄 알아? 이번에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을 우리가 얻지 못하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말이야.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놈들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사냥을 시작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네 알겠습니다.”

만하임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리고는 사장실을 나왔다. 식은땀이 흘러 등허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후우~. 이 헌터라는 놈들이 그냥 돈만 주면 고분고분 말을 들으면 좋을 텐데. 쩝.”

그렇기만 하다면 굳이 서두를 필요 없이 준비한 사냥팀을 동원해서 강진우와 최현이라는 놈들을 먼저 해치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헌터들이 무슨 암살 집단도 아니고 이유 없이 다른 헌터를 죽이라는 명령을 따를 리가 없었다. 그런 내용은 아무리 계약서를 엄격하게 작성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적법한 계약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다.

“돈 무서운 줄 모르는 놈들이 오히려 가장 돈을 잘 벌고 있다는 게 문제인 거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만하임은 사장실을 힐끗 보고는 자기 사무실로 향했다. 어쨌든 명령이 떨어졌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필드에 나가 있는 팀원들을 와카반 서식지로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다.

*  * * * *

“이대로 하루 정도 서쪽으로 계속 가면 되나요?”

진우가 야영 장소에서 저녁을 먹으며 최현에게 물었다.

“흠... 하루로는 조금 모자랄 거다. 우리가 북쪽으로 예정보다 조금 많이 올라갔었으니, 여기까지 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거리가 좀 늘었으니 중간에 한 번 더 야영을 해야 할 거다. 어차피 그 부근에는 다른 마수들이 없어 헌터들도 보이지 않을 거다.

오늘처럼 굳이 우리 뒤를 따르는 놈들만 없다면 말이다.”

“제 생각에는 험프리 그룹이 그냥 포기하고 물러서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유를 알면 좀 더 확실하게 짐작을 할 수 있을 텐데, 도대체 왜 헌터 팀까지 동원해서 우리 앞을 막으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요.”

최현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가 헌터 대전에 참가하지 않을 거면서도 사냥을 나온 게 화가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상급 헌터가 있는 헌터 팀까지 동원한데다 여차하면 우리를 죽이려고까지 한 일이야. 그 정도 이유로 그랬다고 보기에는 너무 이유가 약해.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우리가 와카반의 서식지에 가려는 것 때문에 저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와카반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 훈련의 목적을 모르잖아요. 와카반이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거 아니었어요? 설사 그걸 안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가 둘이서 놈한테 달려들지 않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텐데요? 들은 얘기대로라면 상급 헌터 둘이 달려들어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니잖아요. 이십년 전에도 무려 스무 명이 사흘을 공격해서야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면서요?”

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말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십년 전 와카반을 잡은 뒤에 아무도 마나 스톤을 얻지 못했다는 거야. 나야 처음부터 놈을 사냥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그 점에 대해 자세하게 따져보지를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조금 더 확실히 알아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최상급이라고 짐작되었던 놈에게서 마나 스톤이 나오지 않자 당시에는 난리가 났었다더라. 그렇게 강하고 독특한 마나를 지닌 놈에게서 마나 스톤이 나오지 않았으니 모두가 망연자실 했겠지.”

“최상급일 수도 있는 마수에게서 마나 스톤이 나오지 않았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사실은 와카반이 정말 마수인지도 분명하지가 않다는 얘기도 있어. 이건 내가 너에게 크리스털 메모리를 보낸 뒤에 혼자서 나름대로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말이야. 당시 현장을 조사했던 도노반이라는 젊은 외계 생물학자가 와카반은 마수가 아니라 그냥 마나 크리스털의 몸체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었어.”

“마나 크리스털의 몸체라니요?”

“글쎄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서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마나 크리스털 중에 어떤 놈은 주변의 물질을 끌어들여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키기도 하는 모양이야. 그 학자는 와카반이라는 게 사실은 마수가 아니라 마나 크리스털이 주변의 암석을 끌어들여 스스로 몸체를 구성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어. 조금 더 마나가 풍부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마나 크리스털 스스로 이동수단을 만든 셈이지. 와카반이 헌터들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자 마나 크리스털은 그냥 땅 속으로 사라졌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마나 스톤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이지.”

진우는 최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걸 마나 크리스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라고 해야 하나? 진우는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생명에 대한 개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때 헌터들은 마수를 사냥한 게 아니라 그냥 마나 크리스털의 몸체를 부순 것에 불과한 거네요.”

진우의 질문에 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그럼 그 당시 왜 그렇게 많은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어요? 이십 명이 공격을 해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면서요? 와카반의 공격을 받고 죽은 게 아니었나요?”

“와카반이 공격을 하기는 했지. 그런데 그 공격이라는 게 사실 가까이 있던 헌터를 몸체로 눌러 죽이거나, 주변에 있던 암석을 집어 던지는 것 정도였지. 나도 기록 영상을 보긴 했는데, 일반적인 마수들의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더라고.”

“그럼 속도가 빨랐나요?”

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문 헌터만 되도 쉽게 피할 수 있는 정도였어.”

진우는 최현의 말에 깜짝 놀랐다. 명색이 헌터들이다. 그 정도의 공격이라면 도대체 왜 그 많은 헌터들이 목숨을 잃었단 말인가? 진우의 표정을 본 최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내가 이번에 굳이 놈을 사냥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다. 놈은 먼저 공격을 받지 않으면 주변에 해를 끼치지는 않거든. 하지만 일단 공격을 받으면 일대의 마나를 그냥 묶어버리나 봐.”

“마나를 묶는다고요?”

“그래. 당시 사냥에 참가한 뒤 생환한 헌터들에 의하면 온 몸은 물론이고 주변의 마나가 마치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대. 그래서 눈앞에 빤히 보이는 공격에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는 거야. 중급 이상의 헌터들의 경우 간신히 조금씩 움직이거나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러서 공격하는 건 가능한데,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느린 공격을 보고서도 피하지 못하고 당한 헌터들이 많았던 거지. 게다가 놈의 몸체도 그냥 돌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단단했다고 하더라. 그러니 이십 명이 달려들어 사흘이나 때려야 했던 거지.”

진우는 최현의 말을 들으면서 우주에는 아직도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자신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세 개의 마나 크리스털마저도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생명체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놈의 부근에서 그저 마나에 대해 교감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놈이 공격을 해 오면 어쩌죠?”

최현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정도로는 공격을 하지 않는 게 이미 이십년 전에 확인됐다. 예전에도 공격하기 전에 일단 교감을 먼저 시도했었으니까. 그것만으로는 녀석이 공격을 시도하거나 마나를 묶지 않는 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데리고 놈에게로 갈 리가 있겠냐.”

진우가 겸연쩍게 웃자 최현이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걱정이 있기는 했다. 그들이 와카반 주위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데 다른 헌터들이 나타나서 공격을 시도할 경우였다.

워낙 헌터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최현이 경계를 서기로 했지만, 오늘 낮의 일을 겪고 나니, 새삼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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