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다음날 오전에 포털 개방 시간에 맞추어 상해 헌터 양성소에 도착한 진우는 맡겨 두었던 무기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걱정했던 대로 귀찮은 일을 당했다.
“저희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이 검은 이중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군요. 검속에 뭔가 다른 물질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헌터 양성소에 파견된 공안 직원이라고 밝힌 삼십대 초반의 사내가 무기를 넘겨받으려는 진우를 붙잡고 그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 제 무기에 대해 검사를 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중국 공안에게 그런 권리까지 있는 줄은 몰랐군요.”
진우가 다소 냉랭한 목소리로 그렇게 반문했지만, 사내는 그런 일을 많이 겪었는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다시 되물었다.
“가끔 무기를 이용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물건이나 물질을 국내에 반입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특별히 의심을 하거나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희로서는 별 문제가 없다면 설명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웃기는 얘기였다. 진우의 목소리가 더욱 가라앉았다.
“무기는 공항에서 압수되어 지금 이곳에서 돌려받는 겁니다. 무기를 돌려받자마자 저는 포털을 통해 이곳을 곧 떠날 거구요. 설사 그 안에 무언가 해로운 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중국 땅에서 제가 그것을 이용하거나 다른 곳으로 빼돌릴 여유가 없다는 건 물어보시는 분이 더욱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런 일을 방지하려고 무기를 아예 빼앗은 것 아니었나요?”
그러자 사내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예의 변함없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무기를 빼앗다니요. 저희는 이곳에서 돌려드리기 위해 잠시 맡아두고 있었던 겁니다. 표현이 조금 지나치시군요.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우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질문을 하고 있지만 이 사람들은 분명히 진우의 검 손잡이에 있는 마개를 열고 안에 들어있는 금속 마나 크리스털을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나 크리스털은 진우처럼 마나가 강한 생물이 근처에 있지 않는 이상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마나 크리스털이 스스로 기어 나오지 않는 한 꺼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나 측정기를 들이대어서 확인을 해 보았다면 그 엄청난 마나량에 깜짝 놀랐겠지만, 금색 마나크리스털은 일반적인 마나 크리스털은 물론 보통의 마나 스톤과도 그 형태나 성질이 달랐다.
눈치를 보니 그게 마나 크리스털이라고는 의심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국제 규정이나 관례에도 어긋나고, 자국 국민이 아닌데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물건을 맡아두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걸 빼앗겼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지요. 어쨌든 제가 확인해 드릴 수 있는 건 그게 사람들에게 해로운 게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제 무기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넣어 둔 물질입니다.
그게 어떤 건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헌터의 비결 같은 거니까요.”
진우는 딱 잘라 버렸다. 더 이상 말을 주고 받아봤자 더 이상 해 줄 말도 없었다. 일반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헌터의 무기에 대해서는 함부로 캐묻는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질문만으로도 이미 도가 넘어섰다.
“제 무기에 특별한 문제가 있다는 걸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할 게 아니라면 그만 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곧 포털에 들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이 이상 제 시간을 빼앗으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겠습니다. 물론 보상도 요구할 겁니다. 더 물으실 게 있습니까?”
진우의 말에 잠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사내는 할 수 없다는 듯 뒤에 있던 직원에게 무기를 건네주라고 손짓을 했다. 검과 활, 그리고 총과 실탄이었다.
진우는 무기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손잡이의 마개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마나 크리스털을 확인했다. 녀석은 진우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바로 기어 나오려고 했지만 그가 얼른 의지를 일으켜 그것을 막았다.
그는 마개를 닫고 무기를 수습한 뒤에 공안이라는 사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덕분에 제가 포털을 이용하기 위해 다시 중국 땅을 밟을 일은 없을 듯하군요. 물론 앞으로 획득할 마나스톤을 중국 기업에게 넘기지도 않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중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많이 가지고 갑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진우는 고개를 까딱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바로 포털이 있는 곳으로 가 버렸다. 뒤에 남은 공안이 자신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이상하게 정부 쪽 사람들하고는 자꾸 사이가 틀어지네.’
문득 그게 자신이 헌터이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어느 곳이든 헌터들은 해당 국가의 정부보다는 그 지역의 외계인들하고 더 가까웠다.
헌터들을 길러내는 헌터 학교나 헌터 양성소 자체가 외계인들의 책임 하에 운영되었다. 헌터가 헌터일 수 있게 된 이유가 주로 외계인들 덕분이라는 말이었다.
헌터들이 외계의 행성을 드나들기 위해 이용하는 포털 자체도 아직까지는 외계인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헌터들에 대해 마나 스톤이나 마나 크리스털의 구매하는 문제 이외에는 특별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구매한 마나 스톤을 정부나 기업에 넘길 때에도 폭리를 취하는 일이 없었다.
반면에 어느 나라든 정부들은 끈질기게 헌터들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고 싶어 했다. 지구에서 헌터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무기를 통제하고, 헌터들에게는 세금도 많이 부과했다. 소득이 높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였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사냥해서 가져온 마나 스톤이 지구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대개 입을 다물었다.
일반적인 의뢰비용보다 적은 비용을 주면서도 국민의 책임이나 의무라는 말로 이런 저런 일을 시키려고 했다. 헌터들에 의해 개척된 행성들에 대해서도 일단 기지가 건설되면 헌터들이 기지 관리에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고 싶어 했다.
헌터 학교가 주도해서 관리하는 행성을 제외하고는 기지 내에 아예 헌터들이 들어오는 것 자체를 금지시키는 곳도 있었다. 마수들에 의해 무너졌던 새들 행성 전초 기지에도 상주하는 헌터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진우가 그곳에 헌터들을 위한 온천장을 만들자고 했을 때 그렇게 화들짝 놀라면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던 것이다.
십년 후에 포털 관리 권한이 정부에게 넘어가면 일이 그저 무난하게 풀려나가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우는 이니스프리로 향하는 포털을 넘어섰다. 헌터들의 행성, 용병들의 행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 * * * *
“어서 와라.”
진우는 포털을 넘어선 뒤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최현을 발견했다. 헌터 학교 졸업 후로는 통 얼굴을 볼 수 없었으니, 거의 1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포털에 들어설 때와는 달리 간단한 확인 절차만을 마치고 출구를 나오자 최현이 달려와서 진우를 꽉 끌어안았다.
“이 녀석 못 보던 사이에 더 자란 모양이구나. 지금 키가 얼마냐?”
“에이, 이젠 더 안 자라요. 딱 188cm이에요.”
“근데 왜 이렇게 커 보이지? 뭔가 사내다워져서 그런가? 그동안 수련은 좀 진척이 있었니?”
역시 진우를 잘 아는 전직 교관이었다. 진우가 헌터이면서도 돈벌이보다는 수련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는 그가 물은 것은 수련의 결과였다.
“조금 나아진 것 같기는 한데 아직 멀었어요.”
진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씩 웃자 최현이 껄껄 웃으면서 그의 등을 토닥였다.
“하긴 뭐 지금만 해도 충분히 괴물이지. 아무튼 오느라고 수고했다. 일단 차 있는데로 가자.”
오느라고 수고한 건 없었다. 포털만 타면 되는 거였으니까. 외계 행성으로 가는 것이 이웃나라 가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빠른 일이 된 지가 이미 오래였다. 중국 당국의 이상한 행동만 아니었으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 * * * *
“헌터 대전? 그래, 그런 게 있다고 이니스프리 전체가 들썩이고 있기는 하지. 그런데 왜? 너도 참가해 보려고?”
최현은 이니스프리 중앙에 있는 50층 높이의 험프리 호텔이 아니라 외곽의 빌라를 세 내어 묵고 있었다. 최현의 숙소로 가는 길에 진우가 헌터대전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그는 별로 관심이 없어 하는 말투로 그렇게 되물었다.
“글쎄요. 이제까지 기업의 의뢰를 받아 사냥한 적이 없어서 사실 그다지 관심은 없어요. 여기서 당분간은 수련에 전념할 생각으로 왔거든요. 참 크리스털 메모리에는 그냥 한 번 놀러오라고만 하셨는데, 혹시 특별한 일이 있으신 거예요?”
“있지. 너 혹시 이니스프리에만 사는 특별한 상급 마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냐?”
최현이 씩 웃으며 물었다.
“특별한 상급 마수요? 혹시 와카반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거 이십년 전에 사냥된 뒤로는 없어진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최현이 기분 좋다는 듯한 웃음을 웃더니 진우를 돌아보았다.
“나도 없어진 줄 알았지. 그런데 한 달 전에 서쪽으로 혼자 사냥 겸 탐색을 갔다가 놈을 발견했다. 뭐 있는 것만 확인하고 바로 도망을 쳐 왔지만 놈이 있다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
“그걸 사냥하시려고요? 저하고 둘이서요?”
그러자 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사냥은 힘들 거다. 이십년 전에도 최상급 헌터가 둘이나 포함된 이십 여명의 중급 이상의 헌터들이 덤벼들어서 사흘 동안 공을 들인 끝에 간신히 잡을 수 있었던 놈이니까. 이번에 내가 발견한 녀석은 당시 촬영된 영상에 있는 놈보다 더 크면 컸지 그보다 작아보이지는 않았거든.”
“그럼 왜요?”
“너 수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마나를 경험해야 하다고 하지 않았니? 예전의 기록에 의하면 와카반의 마나가 조금 특이하거든. 그 마나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면 네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불렀다.”
응? 최소한 상급 이상이라고 짐작되는 마수 가까이에서 놈의 마나를 경험한다고?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마수 가까이 가면 놈이 화를 내거나 덤벼들지 않나요?”
그러자 최현이 다시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와카반은 자신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일단 적이라고 판단되면 정말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이십년 전에 놈을 공략했던 팀이 무려 사흘이나 공을 들인 이유는 그들이 끈질겼기 때문이 아냐. 정작 끈질겼던 건 와카반이었지. 나중에 자세히 설명을 해 주겠지만 일단 놈이 공격을 시작하면 몸을 뺀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죽던가, 아니면 놈을 죽일 때까지 공격을 하는 수밖에 없지.”
마수가 얌전하다는 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섣불리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놈이 있을 수는 있었다. 그런데 공격을 하는 쪽에서 몸을 뺄 수가 없다고? 진우는 그게 무엇인지 얼핏 짐작이 되지 않았다.
진우가 머리속에서 그런 의문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 무중력 자동차는 어느 새 포털이 있는 섬의 가장자리에 놓인 아담한 빌라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 행성의 이름이 되기도 한 커다란 호수 이니스프리의 물결이 발밑에까지 찰랑일 것 같은 곳이었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의 호숫가에 자리 잡은 멋진 빌라였다.
* * * * *
“우와, 이 빌라를 통째로 빌리신 거예요?”
진우는 최현이 묵고 있다는 빌라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호숫가에 바짝 붙어 있는 빌라는 거실의 발코니로 나서면 바로 호수로 뛰어들어 수영을 해도 될 만큼 물이 바로 아래까지 들어와 있었다. 빌라 아래로 보이는 호수 물은 2m 가량 너머까지 환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이런 빌라 빌리기가 쉽지가 않거든. 호텔에 묵는 것보다는 조용히 수련을 하는 데는 여기가 더 좋을 것 같아서, 빈 곳이 나오자마자 바로 장기 임대를 해 버렸다. 어떠냐, 마음에 드니?”
최현의 마음 씀씀이가 피부에 와 닿는 듯해서 뭐라고 감사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진우가 이곳으로 오기로 결정했을 때 원하던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지닌 숙소였다.
“이런 빌라들은 서로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명상을 하거나 수련을 하는 데에 좋지. 물론 한 밤 중에 칼을 부딪치며 대련을 하는 건 삼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진우의 만족한 듯한 표정을 본 최현은 자신도 기분이 좋은지 씩 웃었다. 진우는 이곳에서 생각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많지도 않은 짐을 대충 정리한 진우는 최현이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을 먹으며 아까 차에서 들었던 와카반에 대해서 물었다.
“그놈은 말이다. 움직이지 않는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공격을 받기 전까지에만 해당되는 말이지만. 마나의 특성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웬만한 공격으로는 피해를 줄 수도 없지. 너 옛 신화에 나오는 현무라고 들어봤지? 딱 그런 놈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다만 다른 점이라면 현무가 물에 사는 거북이 같은 것이라면, 와카반은 바위 속을 물처럼 뚫고 드나든다는 점이 다르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헌터 대전에 대한 관심은 까맣게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