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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83화 (83/235)

83화

“전초 기지가 마수들에게요? 아니 어떻게요? 보통 전초 기지 주변에는 마수는커녕 특별한 맹수들도 없게끔 미리 주변을 정리하지 않나요?”

진우의 말에 김상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하지. 새들 행성의 전초 기지도 마찬가지였다. 사방 이백 킬로미터 이내에는 맹수나 마수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끔 오랜 시간을 들여 놈들을 모두 토벌했다.

그곳에는 심지어 맹수들의 먹이가 되는 일반 짐승들조차 별로 없을 정도였지. 꽤 넓은 규모의 농업 실험 단지가 있었거든. 초식 동물들조차 모두 제거해 놓은 상태였었다.”

진우도 헌터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외계인들은 나라마다 무조건 두 곳의 행성에 대해 전초기지를 세울 수 있게끔 했다.

인류가 큰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는 행성의 정보를 국가별로 두 곳에 한해 제공했던 것이다. 나라의 크기나 국력의 강약에 관계없이 동일한 개수의 행성 정보를 주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미국과 중국 등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항의가 있었다.

외계인들은 그런 항의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국가가 크게 다르게 취급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헌터 학교마다 하나씩 행성에 관한 정보를 더 주기는 했다. 그래서 헌터 학교가 한 곳 밖에 없는 한국의 경우 세 곳의 행성에 자국이 운영하는 전초 기지를 세울 수 있었다. 헌터 학교가 두 곳 있는 미국은 전체적으로 4곳의 행성을 관리하고 있었고, 가장 많은 4곳의 헌터 학교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관리하는 행성은 6곳이었다.

반면에 자국 내에 헌터 학교를 가지고 있지 못한 나라들 가운데에는 배정 받은 두 곳의 행성조차 인력 부족으로 채 개발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새들 행성은 한국이 운영하는 전초 기지가 있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

케이튼처럼 애초에 주변에 마수나 맹수들이 없는 곳에 전초 기지를 세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주변을 헌터들이 모두 정리한 다음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안전 지대에 전초기지를 세우기도 했다. 새들 행성은 기후 조건이 좋아 처음부터 대규모 농업 실험 단지를 조성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평야 지역에 전초 기지를 건설했다. 그러다보니 맹수나 마수를 완전히 피하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개척 초기에 상당히 많은 헌터들이 동원되어 기지 주변을 정리하는 작업을 한 끝에 비로소 기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왜 갑자기 마수들에게 점령당한 거예요?”

진우의 질문에 조승운이 대답을 했다.

“그건 아직 모른다. 이번에 그곳에 너희들을 파견하는 목적이 바로 그 점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지. 그곳의 상황을 살피고, 마수들이 갑자기 이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 먹을 것도 없는 전초 기지를 점령한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주 임무다.

전초 기지에는 농산물이라면 모를까, 녀석들이 좋아하는 먹이는 별로 없었거든. 가능하면 마수들을 모두 제거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만들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건 현황 파악과 원인 조사가 끝난 다음에 다시 계획을 세워 처리할 문제다.”

마수들이 살던 곳을 떠나 이백 킬로나 되는 거리를 이동했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모레 아침 10시에 헌터 협회에서 회의가 있을 거다. 아무래도 정부의 의뢰를 받아 헌터를 파견하는 주체가 되는 곳이 헌터 협회이다 보니까 자세한 사항은 그곳에서 논의가 될 거다.

전초 기지를 관리하다 마수의 습격을 받고 급히 지구로 피신한 기지장을 비롯한 관리원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도 그때 오면 볼 수 있을 거다. 어떠냐? 너도 회의에 참석하겠느냐?”

진우는 잠시 생각을 했다.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은 의뢰를 받아들인다는 뜻인가요?”

조승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는 너희들뿐만 아니라 헌터 협회와 정부 관계자들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도 참석할 거다.

이번 일이 아직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딱히 엄격한 비밀을 요하는 일도 아니다. 어차피 기지를 잃었다는 사실은 곧 공표를 해야 하니까. 이번 회의는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파악하는 것이 더 주된 목적이지. 협회장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둘 테니, 관심이 있다면 참석해서 상황을 파악한 뒤 천천히 결정해도 된다.

너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더블형 상급 헌터니까 네가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탓할 사람은 없을 거다. 다만 이달 말에는 정찰대가 그곳으로 떠나야 하니까 일주일 내로는 참가 여부를 확인해 주어야 할 거다. 그래야 상곤이도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네. 일단 저도 회의에는 참석할 게요.”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승운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우가 그들을 배웅하러 아파트 밑까지 내려가자, 차에 올라타던 조승운이 다른 사람들을 먼저 차에 타게 한 뒤 진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동조 단계에 올라서기 위한 훈련은 어떠냐? 진척이 좀 있느냐?”

진우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전보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멀었어요. 한두 해 사이에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자 조승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마라.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은 말 그대로 지구에서는 전인미답이다. 성공하면 대단한 일이겠지만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급해 하지 말고 조금씩 안전하게 전진한다고 생각해라.”

“네. 명심할게요.”

조승운 일행을 태운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진우는 조승운의 마음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아버지를 잃은 뒤로는 처음에 최현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조승운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든든한 마음의 버팀목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신은 운이 참 좋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 *

헌터 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는 박화정을 제외한 곤 클랜원 5명과 조승운 외에도 전순호 헌터 협회장을 비롯한 헌터 협회 주요 인물 몇 명, 정부 쪽 인사 약간과 전초 기지를 탈출해 나온 기지장과 관리원들이 참석했다. 그러다보니 소수의 사람들만 참석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인원이 스무 명이 넘었다.

“이것이 마수들이 침공하기 두 주일 전에 찍은 기지 전경입니다.”

전초 기지 기지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중년의 남자 하나가 대형 화면 옆에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사진에는 기지의 한 쪽이 반파된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기지 탈출 보름 전, 기지 일대에 갑작스러운 지진이 있었습니다. 기지는 내진 설계가 되어 있었지만 갑자기 인근 지반의 일부가 침하하면서 연구동과 창고가 함께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미리 보고 드린 바와 같으니 자세한 피해상황은 나눠 드린 자료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면이 넘어가더니 기지 인근으로 보이는 평야 지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밀밭으로 보이는 평야의 풍경이었다.

“저희 전초 기지는 아시다시피 새들 행성의 식물들 가운데에서 인류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한편, 주변의 평야를 개발해서 지구의 식물들이 새들 행성에서도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을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풍경은 그런 연구의 일환으로 재배하고 있는 밀밭의 풍경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밀밭 사이사이로 무언가 접근하는 듯한 모습이 보일 겁니다.”

기지 주변에서 재배되고 있는 밀은 얼핏 보기에도 지구의 그것보다 훨씬 키가 커 보였다. 주변의 밀 이삭 때문에 분명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무성한 밀밭 군데군데에 고랑이 패이듯 이삭이 쓰러지면서 긴 띠가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마수들이 밀밭을 지나오면서 만들어진 자국인 것 같았다.

“지금 보시고 있는 화면은 저희가 기지를 탈출하기 한 시간 전에 찍은 것들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기지를 향해 접근하는 마수들의 속도는 빠르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신중하게 다가오고 있던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면이 다시 넘어갔다. 그러자 조금은 근접한 상태에서 촬영된 마수의 모습들이 보였다.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들은 비교적 짧고 단단한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머리에는 하늘소나 장수풍뎅이의 그것처럼 앞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집게를 가지고 있는 마수였다.

“동티라고 합니다. 본래 어린 아이들 꿈에 나타나 가위 눌리게 하는 귀신의 이름입니다만, 처음 발견한 학자들이 머리 위의 집게가 가위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지었습니다. 몸은 검은 색이고, 집게의 힘이 강력해서 사냥감을 한 번에 잘라 죽이고는 합니다.”

그 가위하고 저 가위하고는 같은 게 아니라는 생각에 속으로 웃었지만, 어쨌든 굳이 한국적인 이름을 짓느라고 고생한 흔적이 보이기는 했다.

“다리가 짧은데도 의외로 이동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도약 능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전이나 방향 전환 시에는 아주 민첩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다음 화면에 나타난 것은 멧돼지처럼 생긴 마수였다. 어금니는 보이지 않았는데 꼬리가 아주 길고 끝에는 유성추처럼 생긴 날카로운 뼈가 매달려 있었다.

“가사리입니다. 전설에 나오는 불가사리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죽일 수는 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지었습니다.

가죽은 갈색이고, 이빨과 앞발 발톱의 힘이 아주 강력합니다. 마수들의 침공을 당했을 때 기지를 쇠로 된 셔터로 폐쇄시켰었는데, 그걸 뜯어낸 것도 이놈들입니다.

유성추처럼 생긴 꼬리는 두께가 1cm 가까운 쇠문을 그대로 뚫는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면은 계속 넘어가서 이번에는 엄청나게 큰 마수가 등장했다. 몽둥이만 들고 있으면 신화나 소설에 자주 나오는 오거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잿빛의 몸뚱이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에만 불그스름한 털이 길게 나 있었고 두발로 서 있었다.

“저희는 이걸 두억시니라고 부릅니다. 키가 5~6m에 달하고 가죽이 아주 질기고 두껍습니다.

힘이 엄청나서 기지의 벽을 주먹으로 때려 부술 정도입니다. 얼핏 둔해 보이지만 전투 시의 이동 속도가 아주 빠른 것은 물론 상당히 좋은 도약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상급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중상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마수입니다. 화가 나면 온몸이 붉게 달아오릅니다.

불을 내뿜는다든가 하는 능력은 없지만 붉게 변했을 때는 몸에서 강력한 열기를 발산시킵니다. 직접 닿으면 심한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때 이제까지 설명을 듣고만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저기 두억시니 어깨 위에 있는 검은 형체는 뭡니까?”

화면에 비친 두억시니의 한 쪽 어깨에는 마치 사람이 올라앉은 것 같은 형체의 물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설명을 하던 기지장이 질문자를 힐끗 보더니 화면을 몇 개 넘겼다. 그러자 화면에 다소 기괴한 모습의 마수가 확대되어 나타났다.

얼굴은 쟈칼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처럼 주둥이 부분이 앞으로 길게 나와 있었다. 온 몸이 광택이 나는 검은색의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고, 두억시니처럼 두 발로 서 있었다.

덩치는 2m 정도에 1m 가량의 꼬리가 나 있었다.

“천구(天狗), 혹은 하늘개라고 합니다. 크기는 두억시니보다 작지만, 이번에 기지를 침공한 마수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마수입니다.

저희는 의심할 여지없는 상급 마수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마수들을 부리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힘 역시 아주 강력합니다.

크기와는 달리 몸무게가 거의 1톤에 가깝습니다. 손이나 다름없는 앞발로 휘두르는 힘도 엄청납니다.

특히 높이 도약했다가 땅으로 떨어지면서 주변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형성시킬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킵니다. 단순한 도약력이라고 하기에는 치솟는 높이가 너무 높은 것으로 보아 그와 관련된 특별한 능력이나 신체 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속도, 힘, 파괴력 등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놈입니다. 저희는 마지막으로 천구가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 바로 철수 결정을 내렸습니다.

삼국사기에는 혜공왕 2년에 머리가 항아리만하고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형태의 천구성(天狗星)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천구성이 떨어졌을 때 천지가 흔들렸다고 한 것으로 보아 학자들은 일종의 유성이 추락한 것이 아니냐고 짐작하고 있었다.

도약 후 떨어지면서 주변에 충격을 준다는 마수의 특징을 따서 아마 천구라고 이름 지은 것 같았다.

화면에 나타난 천구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데 옆에서 끙 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조승운이었다. 그는 화면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아는 놈이세요?”

진우가 작은 목소리도 묻자 조승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놈이다. 나중에 회의가 끝나면 얘기해 주마.”

아무래도 조승운은 천구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희들이 철수 직전까지 눈으로 확인한 것과, 지구로 귀환한 뒤에 자료 화면을 검토해서 파악한 바를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현재 전초 기지에는 최소 백 마리 이상의 마수들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수의 종류는 화면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동티와 가사리, 두억시니와 천구의 네 종류가 있습니다.

그 밖에 다른 마수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희로서는 급히 철수하느라 그 이상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파견할 정찰대를 통해 그 점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자료를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화면이 몇 개 더 넘어가고 조금 더 상황 설명이 이어졌지만 더 이상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설명이 끝나자 회의실에 불이 들어오고 참석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헌터들과 협회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다 무거운 기색이었고, 반면에 정부에서 참석한 인물들의 얼굴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평온했다.

‘사정을 짐작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군.’

진우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 작품 후기 ============================

비축분을 물어보는 분이 계시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비축분이 많이 줄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달 들어 글을 많이 못 썼거든요. 아직 편수로 나누어 놓지 않아서 정확히 몇 회 정도 남았다고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어림잡아 8회 정도 되거나 그보다 조금 적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일이 마무리되면 또 부지런히 써야지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날마다 비명을 지르며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앞 부분을 수정하는 일부터 빨리 하고 싶은데 말이지요. 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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