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다행히 윌러몬의 기름주머니는 터지지 않았다. 진우가 쏜 총알은 운이 좋게도 놈의 머리 아래, 사람으로 치면 가슴 어림에 있던 기름주머니를 모두 비껴갔다. 덕분에 진우를 향한 맥커힐과 월터의 사나운 눈초리도 가라앉았고, 진우로서도 붉어졌던 얼굴색을 회복할 수 있었다.
윌러몬의 사체에서 나온 기름주머니는 성인 남자의 허벅지 정도의 굵기에 길이가 1m 가량 되었다. 통통한 소세지처럼 보이는 기름주머니는 양 끝을 졸라맨 뒤 다른 신체 기관과 연결된 부위를 칼로 잘라내자 간단하게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월터가 기름주머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자신들의 차량 뒤에 있는 적재함에 가져다 싣는 동안 맥커힐은 윌러몬의 사체를 칼로 잘라가며 뒤져 마치 모래를 뭉쳐놓은 듯한 질감이 느껴지는 노란색의 마나 스톤을 찾아냈다. 어제 사냥했던 폴라투샹에게서는 거의 마나스톤을 얻지 못했던 터라 세 사람의 얼굴에 저절로 만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폴라투샹의 경우 차 위에서 이동하면서 사냥을 했었기에 나중에 바람을 거슬러 돌아가면서 놈들의 사체를 찾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일행은 윌러몬의 사체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뒤에 서둘러 차를 세우고 전날과 비슷한 방법으로 텐트를 쳤다.
진우의 입장에서는 의뢰가 완전히 끝난 상황이었고, 맥커힐과 월터 역시 이제 돌아가서 보고하기만 하면 되니 절반 이상은 성공한 셈이었다. 세 사람은 간단한 요리를 해서 먹은 뒤에 조금은 여유로운 기분으로 식후의 차를 마시고 있었다.
* * * *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우의 어투가 딱딱하게 굳었다.
“윌러몬을 한 마리만 더 함께 사냥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네. 부탁하네.”
맥커힐이 진우를 향해 사정하는 어조로 부탁을 했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맥커힐과 월터를 바라보았다. 표정을 보니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사전에 얘기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그보다 왜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그런 부탁을 하실 거였다면 기지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그랬다면 저는 애초에 이 의뢰를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진우의 말이 딱딱 끊어져 나왔다. 윌러몬을 사냥한 직후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맥커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경험이 많은 헌터였다. 그도 자신이 하는 말이 예의에 벗어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헌터에게 의뢰를 할 때에는 언제나 내용이 분명하고 정확해야 했다. 특히 의뢰 도중에 내용이 변경되거나 추가되어서는 곤란했다.
그럴 경우 헌터가 계약 자체를 파기시키거나 의뢰자에게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맥커힐이 고개를 숙였다. 예의가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맥커힐이 차마 말을 못하는 것 같으니 내가 이야기하지.”
옆에서 보고 있던 월터가 나섰다.
“자네 말마따나 처음부터 두 마리를 잡자고 하면 자네가 이 의뢰를 맡지 않을까봐 미리 말을 못했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번 의뢰는 사실 애초에 전초 기지에 있는 세드릭에 의해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네. 물론 기지에서 기다리는 아만다 부녀의 의뢰는 사실일세. 하지만 지구에서 쉬고 있던 우리를 부르고 자네에게도 부탁해서 그 부녀의 의뢰가 생각보다 빨리 성사되게 만든 건 결국 세드릭이 노력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세드릭이요? 설마 그 녀석이 그 대가로 의뢰인들에게 뒷돈이라도 챙긴 겁니까? 하지만 그거하고 윌러몬을 더 잡아야 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갑자기 세드릭이 거론되자 진우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내가 이야기 하지. 어차피 내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맥커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드릭에게는 자식이 있네. 사내아이지.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에 세드릭의 여자 친구가 아이를 낳았네. 프랑스에서는 흔히 있는 일일세. 세드릭이 아직 지구에 있을 때의 일이었지.”
“그 아이가 설마 그 로렌조 오일 병인 겁니까?”
맥커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드릭의 여자 친구가 바로 내 여동생일세. 캐나다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세드릭을 만나 사귀게 되었지. 귀여운 아이였는데 자식에게 몹쓸 유전자를 물려준 꼴이 되고 말았네. 그 사실을 알고 한동안은 몸을 추스르지도 못할 만큼 실의에 빠져 있었어.”
세드릭의 사연은 조금 더 기구했다. 세드릭의 여자 친구인 쟈스민에게는 네 살 위의 언니가 있었다.
쟈스민이 세드릭과 동거하던 때에 쟈스민의 언니는 이미 일곱 살 된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쟈스민이 사내 아이를 낳은 뒤 얼마 안 되어 쟈스민의 조카, 즉 언니의 아들에게서 ALD가 발병했다. 그 병은 엄마가 지닌 X염색체를 물려받아 생기는 것이었다.
자매는 X염색체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불안해진 세드릭과 쟈스민은 병원에서 아이의 유전자를 검사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ALD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직은 아이가 너무 어려서 발병을 않고 있었지만 결국은 시간 문제였다.
당시 세드릭은 헌터 학교를 졸업한 뒤 헌터 보조원 생활을 한 지 일 년이 조금 넘던 때였다. 미래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은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마침 그때 윌러몬의 기름이 ALD의 특효약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네. 넷뉴스의 의학 코너에 잠깐 소개되고 만 이야기였지만 세드릭은 그걸 보고 윌러몬의 기름을 구하기로 작정했지.”
윌러몬의 기름을 구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얘기지만 윌러몬을 사냥해야 했다. 헌터들에게 사냥 의뢰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세드릭에게는 그만한 의뢰비를 지불할 돈이 없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윌러몬은 헌터들이 의뢰를 맡기 꺼려하는 마수였다. 그래서 세드릭은 자신이 무니악 행성에 직접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돈도 벌고 의뢰를 맡아줄 헌터들도 구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무니악에는 프랑스 정부가 세운 전초 기지가 있었고, 운영도 프랑스 헌터 협회가 맡고 있었다.
세드릭은 몇 번이고 기지장에게 크리스탈 메모리를 보내 자신을 그곳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구에 휴가를 온 기지장을 직접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헌터 협회에도 끈질기게 지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일 년을 노력한 끝에 간신히 마침 자리가 빈 ‘샤블레메흐’의 관리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네. 올해로 세드릭의 아들이 다섯 살이 되었지. ALD의 소아 발병 시기가 5살부터니까 이제부터는 언제 발병해도 이상할 게 없는 때가 되었네. 세드릭은 그동안 필사적으로 의뢰비를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녀석이 모은 돈은 중급 헌터 한 사람을 구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았네.”
지금은 당당한 중급 헌터가 된 맥커힐이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역시 아직 마나를 발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일 년 전에 드디어 중급 헌터의 단계에 올라섰다. 정성이 통했는지 함께 활동하던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월터 역시 반 년 전에 중급 헌터가 되었다.
맥커힐은 자신의 여동생 일이었으므로 사냥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리고 동료인 월터에게도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을 했다.
석 달 전, 다른 중급 헌터를 영입하는데 실패한 두 사람은 단 둘이서 윌러몬 사냥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준비도 미흡했거니와, 이제 막 중급 헌터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에게 윌러몬은 너무 벅찬 상대였다.
맥커힐은 샴비종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온 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월터 역시 윌러몬에게서 화상을 입고 말았다. 맥커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친한 동료라고 해도 자신의 일 때문에 또 다시 목숨을 걸자는 얘기를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세드릭이 모은 돈으로는 월터에 대한 의뢰비도 충분히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맥커힐은 부족한 돈이라면 자신이 낼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윌러몬을 사냥하겠다는 의뢰를 맡아 줄 중급 이상의 헌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윌러몬은 다른 마수에 비해 얻는 게 없으면서도 위험 부담만 큰 사냥감이었다.
중급 이상의 헌터들은 윌러몬 사냥 의뢰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 채 초조한 시간만 자꾸 흐르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자네가 사블레메흐에 온 거네. 다른 헌터들은 고개도 돌리지 않는 북쪽 폭풍지대를 중급 헌터인 자네가 두 달 사이에 세 번씩이나 드나들며 탐사를 하는 것을 보고 세드릭은 희망을 품었지. 자네에게 윌러몬 사냥을 부탁하기 위해 기회만 노리고 있던 때에 마침 무니악까지 찾아와서 윌러몬 사냥을 부탁하는 아만다 부녀가 나타난 거네. 그 부녀야 급한 마음에 윌러몬을 사냥할 헌터를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뛰어왔을 거야. 지구에서는 안 돼도 현지에 가면 의뢰를 맡아 줄 헌터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들을 보고 세드릭은 이 의뢰를 반드시 성사시키기로 결심했네. 지난번 사냥에서 얻은 상처가 거의 다 나아서 이제 막 몸을 추스르고 있던 우리에게 세드릭이 급하게 오라는 연락이 왔어.”
그 뒤는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됐다. 세드릭 녀석은 지구에 있던 맥커힐과 월터을 급하게 부르고 나서 남쪽 바다에 나가 있는 자신에게도 부탁을 하기 위해서 통신기에 불이 날 정도로 계속 연락을 했던 거였다.
왜 그렇게 녀석이 유난을 떨며 귀찮을 정도로 이 일에 매달렸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 단호한 기지장이 평소와는 달리 세드릭의 비리를 대충 눈감아 주려고 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마 기지장은 세드릭의 사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지장이 은근히 세드릭에 관해 물었던 일이나, 기지를 출발하려던 때에 세드릭이 머뭇거리며 하려던 이야기도 방금 들은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을 게 뻔했다.
“하아~”
진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하는 맥커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산만한 덩치의 사내가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별로 보기 좋은 게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면 생긴 것과는 달리 타고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던가.
“도대체 세드릭은 왜 그런 이야기를 진작 저에게 직접 하지 않았던 겁니까? 부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월터의 입에서 나왔다.
“자네가 남쪽 바다에 휴양을 나갔을 때부터 세드릭은 끈질기게 연락을 취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자네가 너무 단호하게 거절을 하니까, 세드릭으로서는 처음부터 두 마리를 잡아달라고 하기 어려웠던 게지. 혹시라도 자네가 의뢰를 맡지 않을까봐 두려웠던 거야.”
눈에서 물기를 훔쳐낸 맥커힐이 월터의 말을 받았다.
“그래도 녀석은 자네가 돌아온 뒤에 몇 번이나 부탁을 하려고 했었네. 내가 말렸지. 일단 현장에 가서 자네를 설득할 생각이었어. 솔직히 말하면 안 될 경우 자네를 제압해 헌터 카드를 빼앗은 다음에 협박을 할 생각까지 했었네. 세드릭 얘기로는 그 안에 돈이 제법 많다고 하더군. 미안하네. 가족의 일 때문에 체면이나 규율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네. 자네 실력을 보고 난 뒤로는 그게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지만. 명색이 헌터로서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네.”
하긴 중급 헌터가 두 사람이니 나이 어린 녀석이 중급 헌터라고 해 봤자 함께 덤벼들면 어떻게든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은 게 피차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아, 그나저나 세드릭 이 자식이 기지 관리인인 주제에 남의 카드 잔액까지 말을 하고 다녔네. 진우는 그 문제는 나중에 세드릭을 만나 따지기로 했다.
“그래서 윌러몬의 기름주머니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얘기인가요? 두 사람의 몫으로요?”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기는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해 둘 게 있었다.
“만약 제가 이 의뢰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맥커힐이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일단은 돌아가서 기름주머니를 아만다 부녀에게 주고 의뢰를 완료해야겠지. 그리고 나서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걸세.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네. 목숨을 걸고서라도 둘이서 도전을 할 것이야. 자네가 보여주었던 방법도 괜찮은 것 같아. 월터가 타이밍만 잘 맞추면 녀석이 불길을 내뿜기 직전에 폭발형 화살을 목구멍에 명중시킬 수 있을 거야. 그 방법을 쓴다면 둘이서도 해 볼만 하네.”
이 양반들이 그게 아무나 되는 건 줄 아나. 그건 행여 불길을 정통으로 뒤집어쓰더라도 살아날 자신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 거라고요.
“그럼 의뢰비는 누가 내는 겁니까? 이번 의뢰의 의뢰자가 누구냐고요?”
맥커힐과 월터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급격히 안색이 변하면서 품안에서 후다닥 뭔가를 꺼냈다.
“오늘 잡은 마나스톤과 내 헌터카드일세. 자네가 의뢰를 수락해 주기만 한다면 마나스톤에 대한 배분 권리를 포기하고 자네한테 넘기겠네. 그리고 이 헌터카드에는 40만 피씨가 들어있네. 지금은 가진 게 그것밖에 없지만 원한다면 나중에라도 더 주겠네.”
맥커힐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월터가 자신의 헌터카드를 함께 내밀며 말했다.
“나중까지 갈 것 없네. 원하는 의뢰비가 얼마인가? 모자라는 것은 내가 내겠네.”
진우는 맥커힐이 내놓은 헌터카드와 마나 스톤만을 집어 들었다.
“일단 의뢰를 맡는 걸로 하겠습니다. 조건은 전과 같습니다. 의뢰비는 삼십만 피씨, 전액 선불이고 상황이 이러니 구두 계약입니다. 저는 윌러몬 사냥 후 함께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아시죠? 마나 스톤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대신 새로 잡을 윌러몬에게서 나오는 마나스톤은 두 분이 가지는 걸로 하죠.”
두 사람의 고개가 맹렬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진우는 접속기를 꺼내 맥커힐의 헌터카드를 연결시켜 간단하게 피씨를 자신의 카드로 이체시켰다. 맥커힐의 승인 작업을 거쳐 피씨가 완전히 옮겨진 것을 확인한 진우가 윌러몬의 마나스톤을 품에 집어넣자 지켜보던 두 사람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함~~ 피곤하니 이만 주무시죠. 내일도 일찍부터 녀석을 찾아나서야 하니까요.”
두 사람이 텐트를 정리하고 불을 껐다. 모래바람 소리만 요란한 폭풍지대의 어둠 속에서 진우는 눈을 감은 채 조승운의 얼굴을 떠올렸다.
‘스승님. 저 잘 하고 있는 건가요? 쩝.’
소현이를 만날 날이 며칠 더 늦춰질 것 같았다. 그건 조금 슬픈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세드릭의 사연은 이런 거였습니다. 참고로 세드릭의 캐릭터 부분은 살짝 수정을 했습니다.
69회 마지막 부분, 70회 중간 부분, 그리고 74회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미 작성해 놓은 부분이었기 때문에 코멘트를 보면서 가슴을 많이 조였습니다.
제 글이 이런저런 떡밥들을 파트 후반부에서 정리하는 편이기 때문에 파트 중반까지는 늘 써놓고도 불안합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특별한 음모나 계략 같은 것을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 * * * *
독자들의 코멘트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야기를 쓰면서 아마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짐작을 했습니다. 그동안 진우뿐만이 아니라 저도 글을 쓰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얻었습니다. 욕을 먹을 것 같았고, 결과를 보니 역시 그렇군요. ^^;
하지만 글의 전개상 이 정도에서 진우에게 저런 경험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진우는 어찌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일방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타르코스 소장과 최현, 조승운 교관도 그렇습니다.
그 분들이야 진우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측면도 있고, 진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친화력이 타인의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 점도 작용을 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래도 진우의 입장에서 보면 준 것 없이 받는 데 익숙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게 타인의 호의를 받는데도, 또 자신이 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데에도 너무 익숙해지는 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진우에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완전히 악한 건 아니라도, 또 완전히 선하지도 않다는 걸 가르쳐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담이긴 하지만 제가 겪은 사람들이 대개 그렇더군요. 읽으신 분들은 짜증이 날 테지만(그 부분을 저도 몹시 걱정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건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그냥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지구에서는 국가적인 제도와 기구들이 존재하고, 헌터협회의 자율적인 노력도 있어서 헌터들이 함부로 범죄를 저지르기는 어렵습니다. 헌터들이 초인에 가까운 사람들이기는 해도 무적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제도나 기구에 의한 감시가 미약하거나 불가능한 외계 행성은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개척 시대의 미국 서부나 다름없습니다.
포털이라는 강력한 견제 수단과 그걸 관리하는 전초기지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 필드에서 벌어지는 일은 헌터들 말고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결국 힘이 곧 정의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 곳에서 앞으로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고 사건을 헤쳐나가야 할 진우가 느닷없이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처럼 구는 건 어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걸 더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글을 쓰는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전개하는 게 나중을 위해서라도 제 스스로 조금 더 납득이 될 것 같습니다.
허진행과 관련된 일에서는 진우가 결국 허진행을 죽이기는 했어도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주도적인 입장에 섰던 것은 아닙니다. 진우 혼자 겪는 일로서는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아직은 힘만 센 어린아이가 세상 무서운 줄도 알아야지요. 이상 어설픈 작가의 어설픈 변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