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75화 (75/235)

75화

아직 젖내도 빠지지 않아 보이는 어린 녀석이 중급 헌터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잘 믿겨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헌터 카드에 분명히 중급 헌터라고 표기가 되어 있었고, 그 점에 대해 부기지장이나 다름없는 세드릭은 물론, 기지장마저도 아무런 의문을 표시하지 않는 걸 보고는 놀랍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그런데 정작 폴라투샹을 사냥하던 순간의 모습을 보니 이제는 정말 중급 헌터밖에 되지 않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맥커힐과 월터는 지금까지 자신이 본 헌터들 가운데 가장 믿기 어려운 존재를 만났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냥 톡 까놓고 부탁을 해 보는 게 어때? 보아하니 성격이 그렇게 나쁜 녀석처럼 보이지도 않던데.”

윌러몬을 찾아 폭풍 지대를 빙빙 돌며 탐색하고 있던 차 안에서 월터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맥커힐을 향해 문득 그렇게 물었다. 한참 말이 없이 전방만을 주시하고 있던 맥커힐이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말을 했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어. 일단 윌러몬을 한 마리 잡아 놓고 부탁을 해 보지.”

맥커힐의 말을 들은 월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지. 어차피 협박 같은 게 통할 녀석 같지도 않으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겠군. 헌터가 인정에 호소해야 한다니, 쩝.”

맥커힐도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맥커힐은 월터의 말처럼 인정에만 호소할 생각은 없었다. 헌터는 대가를 받고 움직이는 사냥꾼이다. 의뢰를 하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  * * * *

폭풍지대에 들어서면 모래 바람 때문에 햇빛이 차단되어서 하늘을 보고서는 시간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아주 캄캄한 것은 아니었지만 빛이 적어지는데다가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할 수는 있었으므로 그나마 있던 빛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대충 저녁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맥커힐은 진우에게 통신을 넣었다.

“이봐, 진우. 슬슬 오늘 밤 야영을 할 자리를 찾는 게 어떻겠나?”

심한 잡음이 섞인 진우의 목소리가 대답을 했다.

“칙칙... 전방에 윌러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놈을 먼... 치익~... 잡는 게 어떨까요?”

느긋하게 운전석 시트에 등을 기대고 있던 맥커힐과 월터의 몸이 동시에 바로 세워졌다.

“윌러몬? 어디 있나 그놈이?”

“700m 정도 앞에 있... 치익~~ 니다. 그렇잖아도 연락을.. 칙~... 했습니다.”

“알았네. 이대로 진행하다가 녀석이 시야에 들어오면 속도를 줄이면서 다시 연락하겠네.”

“네... 치익.. 겠습니다.”

통신을 끊은 맥커힐은 진우가 아직 보이지도 않는 윌러몬의 존재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눈을 크게 뜨고 전방을 주시하며 차를 몰았다.

“어제 폴라투샹을 상대할 때도 그렇고 진우 그 친구는 마수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있나 보군. 도대체 어린 나이에 그런 기술들을 어떻게 익혔을까? 신기한 친구야.”

월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맥커힐도 그 점에는 동감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진우의 말이 맞다면 곧 나타날 윌러몬을 잡는데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였다.

진우의 말이 맞다는 것은 곧 확인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전방의 모래바람 너머로 통통하고 길쭉한 커다란 애벌레 모양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맥커힐은 월터에서 통신기를 넘기고 진우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한 다음 차의 속도를 서서히 늦추기 시작했다.

“어이, 진우. 우리도 지금 놈의 모습을 확인했네.”

월터가 통신기에 대고 소리치자 곧바로 진우의 대답이 날아왔다.

“네. 치익... 속도를 늦추세요.”

“안전을 위해 200m 전방에 차를 세우고 거기에서부터 작전을 개시하도록 하지.”

“알겠... 칙~... 다.”

아직은 윌러몬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행은 차를 세우고 장비를 꺼내든 뒤 모두 내렸다. 진우는 여전히 허리에 검을 차고 손에는 킬러 제이를 들고 있었다.

“먼저 윌러몬의 등에 붙어 있는 샴비종들을 처치해야 하네. 놈들을 모두 처치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윌러몬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아.”

맥커힐의 말에 진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들이 말하는 윌러킹을 상대하면서 경험했던 일이었다. 샴비종을 정리하기도 전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윌러몬의 화염 공격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위 아래로 협공을 당하는 꼴이 되어 위험했다.

“그 뒤에는 앞에서 윌러몬의 화염 공격을 피하면서 계속 윌러몬을 유인하는 조와, 놈의 등 위로 올라가서 숨통을 끊을 조로 나누어야 하네. 인원이 셋이니까 두 가지 방법을 쓸 수가 있지. 두 명이서 유인하면 화염 공격을 피하기는 쉽지만 놈을 죽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반대로 두 명이 올라가면 놈을 죽이는 시간은 절약이 되겠지만 한 명이 놈을 유인해야 하니까 자칫하면 불꽃을 뒤집어 쓸 위험이 커지지. 자네는 어떤 방법이 좋겠나?”

진우는 맥커힐과 월터의 손에 들린 아이젠 같은 장비를 흘낏 보았다. 쇠로 만든 발판에 날카로운 쇠 돌기가 달려 있어 눈밭 위를 걷는데 편리하도록 만든 보조 신발이었다.

기름으로 미끄러운 윌러몬의 등 위에 올라서서 몸의 균형을 잡는데 쓰려고 가져온 도구로 보였다. 일반인이라면 소용이 없겠지만, 중급 마나헌터라면 아이젠에 마나를 불어넣어 얕게나마 놈의 질긴 가죽에 쇠 돌기를 박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사수형 헌터인 월터도 미리 연습을 했다면 그 정도는 가능할 것도 같았다.

‘조사도 많이 하고 준비도 철저히 했군.’

문득 이들이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윌러몬 사냥을 준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이 첫 도전이 아닐 수도 있었다.

‘급하게 의뢰를 받고 온 게 아니었군.’

세드릭의 태도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이들이 자신에게 무슨 해를 끼치려고 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이들의 준비는 모두 윌러몬 사냥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고, 자신은 이미 의뢰비를 선불로 전액 받았다. 이상하지만 굳이 따질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샴비종을 제거한 뒤에는 제가 윌러몬 앞에서 놈을 유인하도록 하죠. 두 분은 이미 장비까지 준비한 것 같으니 함께 놈의 등 위로 올라가서 최대한 빨리 숨통을 끊어 주세요.”

진우의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아차 하는 표정이 잠시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진우도 킬러 제이에 탄창을 장착하고 윌러몬을 향해 걸어갔다. 진우로서는 본 경기에 앞서 벌이는 연습 경기 같은 사냥의 시작이었다.

*  * * * *

세 사람이 윌러몬이 있는 곳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까지 접근하자 놈의 등 위에 붙어 있던 샴비종들이 일제히 헬리콥터의 회전익처럼 생긴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월터와 맥커힐이 진우로부터 넓게 퍼져나가면서 활과 대검을 들고 사냥 준비를 했다.

진우는 고글을 눈에 쓰고 킬러 제이를 들어 어깨에 붙인 뒤 날아오는 샴비종 한 마리를 조준선 위에 세웠다.

진우의 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관통형 마나가 실린 총알이 접근하던 샴비종의 몸통을 꿰뚫었다.

“케엑”

가장 앞서 진우에게 접근하던 샴비종 한 마리가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땅에 떨어져 흙먼지를 날리며 뒹굴었다. 함께 몰려오던 몇 마리가 깜짝 놀랐는지 사방으로 흩어졌다.

탕, 탕

진우의 총이 탄피를 토해내면서 계속해서 십여 마리에 불과한 샴비종들이 하나 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월터도 화살에 마나를 실어 샴비종들을 추락시키고 있었다. 맥커힐만이 몸 가까이 접근한 놈들에게 대검을 휘두르며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윌러몬 사냥이 어려운 점이 바로 이런 데에 있었다. 신체형 마나 헌터들은 정작 윌러몬보다 이 샴비종들을 처리하기 곤란해 했다.

반면에 사수형 마나 헌터들에게는 윌러몬을 상대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월터가 아이젠을 신고 윌러몬의 등 뒤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검에 마나를 싣지 못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게 쉽지 않을 게 뻔했다.

아마 진우가 없었다면 맥커힐보다 몸이 빠른 그가 윌러몬의 화염 공격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진우와 월터의 활약으로 샴비종들은 오래지 않아 정리가 되었다. 윌러킹에 비하면 숫자가 많지 않아 진우로서는 비교적 쉽게 처리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월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놈들 껍질이 너무 단단해. 관통형 마나를 실었는데도 정확히 맞지 않으면 비껴가는 경우가 많아. 하마터면 당할 뻔 했어.”

그나마 그는 상처를 입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맥커힐은 몇 군데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허벅지를 찢긴 상처는 빨리 치료를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괜찮습니까?”

진우가 맥커힐을 보면서 묻자 그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이며 씩 웃었다. 지금은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제가 먼저 가서 윌러몬의 화염 공격을 유도하겠습니다. 놈의 주의가 저에게 집중되면 두 분은 시선의 사각지대에 있다가 최대한 빨리 윌러몬의 등 위로 올라가서 공격을 시작하십시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진우는 고글을 고쳐 쓴 뒤 빠른 걸음으로 윌러몬의 입이 있는 정면으로 향했다. 맥커힐과 월터는 서로를 바라보고 어깨를 한 차례씩 두들기더니 진우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흩어져서 뛰기 시작했다.

*  * * * *

샴비종들이 다 쓰러지고 진우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윌러몬의 길쭉했던 몸통이 약간 수축하는 것이 보였다.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저러다가 입을 벌리고 불줄기를 내뿜기 시작하지.’

진우도 긴장했다. 마나막을 이중으로 펼치고 몸에도 마나를 돌렸으니 불줄기를 그대로 뒤집어쓰더라도 한 번에 당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잘못하면 열기에 노출된 탄창 속의 실탄이 그대로 폭발할 수도 있었다.

진우는 녀석의 앞으로 계속 거리를 좁혀들어 갔다. 둘 사이의 거리가 20m 정도까지 줄어들었을 때 윌러몬이 입을 벌렸다. 벌린 입 위 아래로 각각 한 쌍씩 솟아 있는 날카롭고 길쭉한 이빨이 뚜렷하게 보였다. 곧이어 선명하게 보이던 이빨 뒤의 목구멍이 흘러나오는 기체로 인해 순간적으로 흐릿해졌다.

‘지금이다.’

진우가 바닥을 박차고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윌러몬의 입에서 터져나온 불줄기가 방금 서 있던 바닥을 소방호스에서 나오는 물살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녀석은 처음의 공격이 진우를 직격하지 못한 것을 알고는 불줄기를 꺼트리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으로 피한 진우에게 마치 회초리를 휘두르는 듯한 불줄기가 휘어져 들어왔다.

진우는 자신을 덮쳐오는 불줄기를 피해 거꾸로 도약을 했다. 그가 몸을 돌리면서 불줄기를 뛰어넘자 윌러몬은 불길을 멈추고 진우를 향해 살짝 몸을 틀었다.

녀석의 시선이 완전히 진우에게 쏠린 것을 확인한 맥커힐과 월터가 들고 있던 아이젠을 바닥에 놓더니 재빨리 그 위에 올라섰다. 철컥하고 아이젠이 신발 밑바닥에 들러붙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맹렬한 속도로 모래바닥을 차며 윌러몬의 옆구리를 향해 뛰었다.

그 순간 윌러몬이 다시 진우를 향해 입을 벌렸다.

진우가 윌러몬의 불줄기를 피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 맥커힐과 월터는 재빨리 녀석의 등 위로 올라갔다. 무풍지대의 윌러킹과는 달리 윌러몬의 몸 높이는 2m가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도약 한 번으로 가볍게 놈의 몸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윌러몬의 등 위에 착지하자마자 맥커힐의 아이젠이 놈의 살갗을 파고 들었다. 순간 윌러몬의 등 뒤로 엷은 붉은 빛을 띤 기름이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늦게 아이젠에 마나를 불어넣는데 성공한 월터는 하마터면 도로 미끄러질 뻔한 몸을 간신히 고정시키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맥커힐이 대검을 높이 들어 윌러몬의 등에 내려 꽂는 것을 보며 진우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킬러 제이의 탄창을 새로운 것으로 갈아 끼고 총신을 두 손으로 잡았다. 본래 윌러킹을 상대하기 위해 생각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윌러몬을 상대로 연습을 해 볼만 한 가치가 있는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등 위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자 윌러몬의 동작이 더욱 빨라졌다. 진우를 향해 몇 번 불줄기를 내뿜던 녀석이 화가 잔뜩 났는지 일단 불길을 멈춘 뒤, 몸을 더욱 움츠리고 진우를 향해 고개를 똑바로 쳐들었다.

진우는 얼른 킬러 제이의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이고 사격 준비에 들어갔다. 목 안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한 순간만 타이밍을 놓치면 그대로 불길을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시도였다.

윌러몬의 입이 벌어지고 놈의 날카로운 이빨 뒤로 동그랗게 열린 목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진우는 조준선 위에 그 목구멍을 올려두었다. 곧이어 조준선 너머로 보이던 윌러몬의 목구멍이 흐릿해졌다.

진우의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놈의 목구멍을 직격한 총알이 펑 하고 폭발했다. 관통형이 아니라 폭발형 마나를 실은 총알이었다. 양의 마나만을 응축해 만든 것이었다.

순간 윌러몬의 입 안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놈의 고개가 들썩이면서 입안이 터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우를 향해서 막 불줄기를 쏟아내려던 녀석의 입 안에서 미처 쏘아져 나오지 못한 기름이 기화된 상태 그대로 터져 버린 것이었다.

놈이 고통으로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덕분에 윌러몬의 몸 위에서 놈을 향해 칼질을 하고 있던 맥커힐과 월터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가죽 위에 박아 넣은 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저 두 사람이 버텨줄 수 있으려나.’

생각보다 윌러몬의 몸부림이 격렬했다. 입 안에서 기름이 폭발하는 꼴을 당한 녀석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면서 몸을 위 아래로 사납게 꿈틀거렸다.

놈의 등 위에 칼을 박고 매달려 있는 맥커힐과 월터의 상태가 위태로워 보였다. 진우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작게 혀를 찼다.

혼자 사냥할 것을 예상하고 생각했던 방법이라 놈이 고통 때문에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면 등 뒤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자칫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탕, 탕, 탕.

입이 터져 버린 윌러몬이 몸을 비틀다가 한 번씩 진우를 향할 때마다 어김없이 킬러 제이가 불을 뿜었다. 모두 폭발형 마나를 실은 총알들이었다.

활짝 열린 입을 통해 진우가 쏜 총알들이 계속 놈의 뱃속으로 쏘아져 들어가 폭발했다. 일반 마수 같으면 괴로움에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발성기관이 없는 윌러몬은 한 번씩 뱃속이 뒤집어질 때마다 괴롭게 몸을 꿈틀거리기만 하더니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그제서야 아이젠을 놈의 몸에 박은 채 칼을 꼭 붙들고 어쩔 줄을 몰라 하던 맥커힐과 월터가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눈에 진우를 향한 원망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놈이 생각보다 몸을 많이 비트네요.”

씨도 안 먹히는 변명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윌러몬을 생각보다 일찍 잡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체념한 표정으로 윌러몬의 몸에서 뛰어내려 진우에게로 다가왔다.

진우로서는 케이튼의 대수림에서 케로스의 뱃속에 총알을 박아 넣었던 기억을 되살려 떠올린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쓸 거라면 처음부터 맥커힐과 월터가 윌러몬의 등 위로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은 공연한 수고를 한데다가 하마터면 괴로워 하는 윌러몬의 몸 위에서 떨어져 놈의 몸에 깔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맥커힐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워낙 살벌해서 진우는 그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리 팀원과 상의도 않고 예상치 못한 공격 방법을 사용한 것은 그의 잘못이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하느라...”

“그게 문제가 아닐세.”

진우의 사과를 끊으며 맥커힐이 사납게 소리쳤다.

“우리의 목적은 윌러몬을 잡는 게 아니라 놈의 몸속에 들어있는 기름주머니를 얻는 거였네. 만약 자네가 쏜 총알 때문에 놈의 뱃속에 있던 기름주머니가 터져버리기라도 했다면 우리는 헛수고를 한 거나 마찬가지가 된 게 아닌가.”

아차. 그건 미처 생각을 못했다. 처음부터 어떻게 하면 놈을 빨리 잡을 수 있는가만 생각하는 바람에 의뢰의 목적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자네가 처음 녀석의 입을 터트린 일격은 그렇다고 쳐도, 그 뒤에도 계속 뱃속에 총알을 난사한 것은 너무 과했네. 헌터가 의뢰의 목적을 착각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아무튼 놈이 죽은 게 확실한 것 같으니 조금만 쉬다가 뱃속을 갈라보세. 다행히 기름주머니가 그대로 있다면 의뢰가 성공한 셈이니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일에 대해서는 자네가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맥커힐이 마지막으로 엄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지간히 놀라고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진우는 그저 머리만 긁적였다. 지난 6개월 동안 한 번도 다른 사람들과 사냥을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경험 미숙이 드러나고 말았다.

진우는 아직도 자신에게 제대로 된 헌터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의뢰를 받은 두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구에 있을 조승운 스승을 비롯해 자신을 가르쳤던 교관들에게 미안한 노릇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해 주시는 분들, 선작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쿠폰 주시는 분들에게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인사를 자주 드리지 않고는 있지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