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67화 (67/235)

67화

추적술 과목을 통과하고 나자 일반 교과 통과 시험까지는 약 보름 동안의 여유가 남았다. 그 기간 동안 진우는 거의 도서관과 숙소만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나름 성실하게 준비했다고는 생각했지만, 혹여 실수라도 하게 되면 한 학기를 불과 몇 과목 때문에 다시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험을 모두 마칠 때까지는 계속 긴장을 풀지 못하고 시험에 집중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무사히 통과 승인을 받고 나자 한 순간에 맥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졸업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헌터 학교 역사상 불과 세 학기 만에 졸업 자격을 얻은 사람은 진우가 처음이었다. 헌터 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계속해서 처음이니 최초라는 말을 달고 사는 느낌이었다.

헌터 학교는 한국이나 미국의 고등학교와는 달리 별다른 졸업식이 없었다. 졸업이 확정된 학생은 학교 본부에 가서 졸업장을 받아오면 그만이었다.

입학식은 꼬박꼬박 하면서 졸업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이상하기는 했다. 김도훈은 약간 비아냥대는 말투로 입학식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아마 교관이나 학생이 아니라 거기에 참석하려는 외부 인사들일 거라고 했다.

꼭 맞다고 할 수는 없어도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여름에 졸업하는 사람이 진우 말고 셋 정도 더 있었지만 졸업 앨범 같은 것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소 썰렁한 졸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소현을 비롯한 정태, 희정, 도훈, 그리고 뜻밖에 차연희까지 참석해서 조촐한 축하 파티를 해 준 덕분에 진우도 스스로 졸업을 했다는 것을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다.

졸업식은 없었지만 졸업 선물만은 적지 않게 받았다. 아직 뚜렷한 진전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그래도 자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던 정태와 희정은 맨손 격투할 때 손에 끼는 너클과, 땀이 잘 차지 않는 장갑을 선물했다.

손가락 부분은 맨손이 그냥 드러나는 그 장갑을 끼고 검을 잡으면 땀이 나도 검 손잡이가 잘 미끄러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차연희는 안쪽이 이레지움으로 처리된 마나스톤 주머니를 선물했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겉을 마감한 그 주머니는 입구에 특별한 처리가 되어 있어서, 간단하면서도 깔끔하게 마나스톤을 수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김도훈은 진우의 접이식 화살과 화살통을 양 옆에 매달 수 있는 장치가 부착된 헌터용 배낭을 선물했는데, 그 안에 꽤 비싼 방호복 일체와 신발, 고글 등이 담겨 있었다. 특히 고글은 헌터패드와 연동해서 각종 정보를 고글을 쓴 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신 기능까지 갖춘 것이었다.

아마 아버지인 김정호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지원받아 마련한 눈치였다. 방호복만 하더라도 예전에 타르코스 소장이 선물했던 것보다 더 고급 제품이었다.

진우는 조금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일단은 워낙 쓰임새가 좋아 보이기도 한데다가 김정호가 아닌 김도훈의 이름으로 선물한 것이어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소현은 접이식 지갑과 메모리 카드, 그리고 크리스털 메모리를 잔뜩 선물했다.

“곧 전문 헌터 자격 시험 볼 거잖아. 헌터 자격증 받으면 그 지갑 안에 넣고 다녀. 그리고 메모리 카드는 기존에 쓰던 헌터 패드에 그냥 끼워 넣기만 하면 메모리 용량을 지금보다 세 배 가까이 늘려 줄 거야. 외계 생물학자들이 열람하는 정보까지 포함해서 각종 외계 생물들에 대한 정보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 그리고.. 음...”

소현은 잠시 망설이더니 조그맣게 말을 이었다.

“다른 행성의 동물이나 식물을 이용해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각종 요리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어. 조리 방법까지 있으니까, 밖에서 야영을 하더라도 아무 거나 먹지 말고 되도록 잘 챙겨 먹으라고.”

정태 녀석이 ‘우우~’하며 야유를 했지만 진우는 가볍게 무시하고 소현의 선물을 받아 챙겼다. 슬쩍 안을 열어 보았더니 헌터 지갑 안에는 그와 소현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깨끗하게 코팅이 되어 넣어져 있었다.

헌터 패드만 켜도 그 안에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적지 않았지만, 지갑을 펼 때마다 한 번식 들여다보라는 바람을 담은 것이었다. 소현이 준 크리스털 메모리는 다른 행성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글이나 영상을 담아 지구로 보내라는 뜻이었다.

헌터들은 전초 기지와 지구 사이에 정기적으로 물자를 이동시키기 위해 여는 포털을 이용해 그렇게 소식을 전하고는 했다.

워낙 남들보다 과정을 앞서 나가느라 변변한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는데, 그래도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또래가 몇 명은 된다는 사실이 고맙고도 기뻤다. 술은 없었지만, 다들 분위기에 취해서 기숙사 통금 시간이 될 때까지 구내 식당 한 구석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곧 다가올 이별의 시간을 아쉬워했다.

1년 반이라는 길지 않은 학교 생활이었다. 좋은 친구들을 얻은 시간이었고, 여러 가지 어려웠던 일에도 불구하고 좋은 추억도 적지 않게 남길 수 있게 된 곳이었다.

진우는 무엇보다도 그 사실이 감사했다.

*  * * * *

기숙사 통금 시간이 임박해 다들 자신의 숙소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 진우는 소현을 여학생 기숙사까지 바래다주었다. 기숙사로 가는 길 중간에 전에 도훈과 같이 이야기를 하던 작은 호수가 있었다. 호수를 지날 무렵 소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진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가끔 지갑 속에 넣어 둔 사진 꺼내 볼 거지?”

진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내가 헌터 학교 졸업하면 같이 외계 행성 생물 탐사 가 줄 수 있을까?”

진우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소현이 함박 웃음을 지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소현은 유독 웃을 때의 얼굴이 예뻤다.

“그럼 정말 좋겠다. 세계 최고의 헌터와 함께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거잖아.”

아직 세계 최고라고 하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적어도 진우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고의 헌터보다는 동조 단계에 드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중요했다. 물론 그렇게만 되면 세계 최고라는 말도 그냥 하는 소리가 되지는 않겠지만.

진우는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소현의 얼굴에 손을 뻗어 그녀의 두 볼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소현은 약간 멈칫 했지만 손을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진우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뺨을 통해 전해지는 손의 온기가 따뜻했다. 진우의 얼굴이 소현에게 다가왔다.

소현이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살며시 감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여자의 입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고 했던가? 진우는 향기는 모르겠지만 소현이 숨결이 참 달콤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은 들었다. 진우의 입술이 조금 더 강하게 소현의 입술을 눌렀다.

“음...”

소현이 짧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녀의 두 손이 진우의 허리 위로 파고들어와 살며시 그의 등을 안았다. 진우는 소현을 품에 끌어들여 꼭 끌어 안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작은 호수 위를 맴돌다 길다란 파문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늘의 별들을 움직이던 시간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와 한 동안 모든 것을 붙들고 있다가 다시 가벼운 기침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우는 소현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디를 가든 네 얼굴과, 네 목소리와, 네 웃음을 기억하고 있을 거야.”

소현이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가만히 진우의 팔짱을 끼었다.

기숙사에 다다를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흔들고 나서 뛰다시피 숙소로 들어가는 소현을 바라보다 진우는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게 첫 키스였구나.’

*  * * * *

한 해에 100명 정도의 헌터반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지만, 그 중에서 졸업과 동시에 전문 헌터 자격증을 따는 학생들은 보통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은 헌터 보조원으로 활동하면서 언제든지 다시 전문 헌터 자격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한에는 제한이 없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헌터 보조원 생활을 그만 두었다. 그 동안은 그들의 명단을 헌터 양성소에서 관리하면서 헌터 협회와의 협조 아래 여러 행성에 헌터 보조원 자격으로 파견을 내 보냈다.

어쨌든 체내 마나량을 늘리고, 마나 운용력을 늘리려면 지구에서의 훈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원할 경우 일정한 액수를 지불하면 헌터 양성소는 헌터 보조원들에 대해 재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지구에서 원하는 전투술 훈련을 다시 시키는 경우 외에도, 정기적으로 전초 기지가 있는 행성에 희망하는 헌터 보조원들을 모아 주로 마나에 대한 친화력을 늘리고 운용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여기에는 포털 이용비나 숙식비 등을 비롯한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헌터 양성소에서는 가난한 헌터 보조원들을 위해 소요 경비의 반 정도를 장기 대출의 형태로 지원해 주었다.

헌터 후보자 테스트를 비롯하여 헌터 자격증 심사, 헌터 보조원에 대한 재교육 등은 헌터 양성소에서 담당했지만, 전문 헌터 이상의 헌터들에 대해서는 헌터 협회에서 주로 관리했다. 각국의 헌터 협회는 자국 헌터들의 신상과 현재 위치 등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가 헌터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면 이를 정기적으로 헌터 협회 홈페이지는 물론, 자국 헌터들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모든 행성의 전초기지에 통보했다.

주어진 의뢰에 응할 생각이 있는 헌터들이 헌터 협회에 자신이 원하는 조건과 함께 그 사실을 통보하면 그들 중에 의뢰자가 최종적으로 마음에 드는 헌터를 선택했다. 그러고 나면 헌터협회가 나서서 해당 헌터를 대신해 의뢰자와 계약을 체결했다.

의뢰에 대한 계약 체결에서는 의뢰자와 헌터 당사자 간의 직접 계약이 원칙이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의뢰 수락 의사가 있는 헌터가 지구가 아닌 외계 행성에 나가 있을 경우,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비싼 포털비를 물면서 지구를 오가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점은 의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의뢰자와 의뢰받을 헌터가 최종적으로 정해지면 헌터 협회가 대리로 계약을 체결하고 이 사실을 해당 헌터에게 통보하는 형태로 일이 진행되고는 했다.

행성 탐사나 여행에서의 호위 업무 같은 경우에는 헌터가 의뢰자와 직접 동행하게 되지만, 단순히 어떤 물품을 구하는 것 정도의 의뢰인 경우에는 계약이 완료될 때까지 의뢰자와 헌터가 서로의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일도 흔했다. 의뢰 대상이 되는 행성 현지에 머무르고 있는 헌터와 계약을 체결하면 헌터가 그 행성과 지구를 오가는데 필요한 포털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방식의 대리 계약을 선호하는 의뢰자도 많았다. 다만 이렇게 헌터 협회가 중간에 끼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면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으므로, 시간을 다투는 다급한 의뢰일 경우에는 의뢰지가 직접 해당 행성에 가서 의뢰를 맡길 헌터를 구하기도 했다.

헌터 보조원이 필요할 경우 헌터 협회는 사안에 따라 적절한 경력과 인원의 헌터 보조원을 보내달라고 헌터 양성소에 요구했다. 그 경우 헌터 양성소는 조건에 맞게 헌터 보조원들의 지원을 받아 명단을 추려 통보했다.

물론 의뢰를 맡은 헌터가 직접 필요한 인원을 헌터 양성소에 요구하는 것도 가능했다. 어떤 경우든 전문 헌터가 되기 전의 모든 헌터 보조원에 대한 관리는 전적으로 헌터 양성소에서 맡아서 했다.

*  * * * *

헌터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헌터 양성소에서 전문 헌터 자격증을 얻기 위한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전문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항에 대한 자격이 필요했지만, 진학반이 아닌 헌터반으로 헌터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의 항목에 대해 학교에서 통과 승인을 받은 것을 그대로 인정해서 따로 시험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체내 마나량과 마나 운용 능력만큼은 반드시 측정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바로 이 항목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상 현실 장치를 이용한 상황 대응 능력 테스트에서도 합격을 해야 했다.

진우는 체내 마나량 측정에서 510P를 기록해서 검사원들을 놀라게 했다. 1년 전 스카디안에서 돌아온 뒤의 측정에서 일부러 33P가 나오도록 측정치를 조작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너무 급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뉴 올림포스 행성에서 자신이 중급 마나 헌터임을 드러낸 마당에 너무 마나량을 낮추는 것도 곤란했다. 그래서 진우는 체내 마나를 적당히 동결시켜 400대 후반이 나오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정확하게 조절이 안 되어서 500대 초반까지 측정치가 나오고 말았다.

신체형 마나 헌터의 경우 체내 마나량이 650P 이상이 나오면 상급 헌터로의 진입 여부에 대해 다시 측정을 받아야 했다. 물론 마나량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상급 헌터 판정을 받지는 못했다.

최현은 이미 마나량이 700P를 넘었지만 여전히 중급 헌터였다. 비록 중상급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했어도 마나 운용 능력이 아직 완전히 상급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검에 마나를 주입시켜 쇠로 된 막대를 그대로 절단 내는 시범을 보임으로써 마나 운용 능력에 관한 시험에서 자신이 중급 헌터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추에 매달린 무거운 쇠공의 충격을 맨 몸으로 받아낸다든가 화면에 나타나는 신체 부위로 빠르게 마나를 불어넣는 테스트 등이 더 있었지만 신체형 중급 마나 헌터임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역시 마나를 이용한 공격력이었다.

허진행이 뉴 올림포스 행성에서 진우가 일본 대표 선수의 검을 일격에 베어버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TVR동의 우지연 과장이 직접 책임을 맡아 진행한 가상 현실 측정 장치 테스트에서도 진우는 무사히 좋은 점수를 받고 통과 승인을 받았다. 헌터 후보자 테스트 때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난이도 때문에 다소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예전에 마지막 상황으로 만난 장검을 든 복면인을 C코스 첫 상황에서 깔끔하게 베어버림으로써 순조로운 통과를 예상케 했다. 그렇게 진우의 헌터 자격 시험이 모두 끝났다.

단순히 전문 헌터 자격증을 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중급 헌터임을 인정받기 위한 시험이었다. 비록 다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진우는 그 시험에서 측정을 진행하던 연구원들 모두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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