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64화 (64/235)

64화

7. 졸업

지구로 귀환한 뒤 진우는 잠시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다. 뉴 올림포스에서 열렸던 무투 대회의 성적이 알려지고, 편집된 영상이 각 방송국 채널을 통해 방영되자, 그와 한국 헌터 학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다.

특히 미래의 헌터를 꿈꾸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은 웬만한 연예인들의 인기를 압도할 정도로 자주 거론되었다. 신문 기사마다 ‘역사 최초의’라든가 ‘인류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을 요구하는 문의도 쏟아졌다.

그 와중에 허진행에게는 몹시 아쉬운 일이었겠지만 그의 실종 소식은 크게 보도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별로 없는 일을 정부가 나서서 떠들어 보았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언론사 역시 벨라키에르에 관한 이야기는 빼고 그의 실종 사실만은 짤막하게 내보내는 데에 그쳤다. 정작 범인으로 지목된 벨라키에르가 아예 발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모든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헌터 학교 기숙사에서 칩거하듯이 쳐 박힌 채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헌터 학교 무투 대회라는 것이 무슨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큰 대회도 아니었고, 대중의 관심이라는 것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쉬 가라앉을 것이 틀림없었다.

허진행에 관련된 일도 있고 해서 그로서는 그저 이번 일에 대한 관심이 빨리 가라앉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게다가 진우로서는 방학이 한 달 가량 남았지만, 개학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는 3월 달에 있는 시험에서 일반 교과 몇 과목에 대해 다시 통과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다른 과목들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국어가 조금 골치 아팠다.

케이튼 행성으로 겨울 훈련을 떠난 1학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기숙사는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교정을 쓸고 다니는 와중에 진우는 숙소와 식당, 도서관만을 오가며 학과 공부에 열중했다.

새벽에 하는 명상과 훈련은 거르지 않았지만, 그 밖의 시간은 모두 교과 공부에만 할애했다. 어찌 보면 평온하고 고즈넉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  * * * *

조금 실마리를 잡나 싶던 동조에의 진입은 다시 안개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새벽 명상 때마다 머리와 아랫배로부터 시작해서 전신을 감도는 마나의 기운은 조금씩 더 힘이 붙었지만 정작 그것을 외부의 마나와 어떻게 동조시킬 것이냐는 문제에 이르면 마땅히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여전히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마나량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조승운 교관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도 가는 바가 없다는 대답만을 들었다. 타르코스 소장은 어찌 보면 더욱 절망적인 말을 했다.

“동조로 나아가려면 다양한 마나와 접촉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전해지는 영웅들에 관한 기록에도 그 점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동조는 명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군요. 진우 군은 지금까지 이룩한 것만 보아도 사실 어떤 면에서는 걱정이 될 정도로 발전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생각하십시오. 저로서는 졸업 후에 여러 행성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는 걸 권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진우도 이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답답한 마음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치러야 할 시험에 대비해야 하느라 마음이 바쁜 게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 * * *

지구로 귀환한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 소현이 헌터 후보자 테스트를 받으러 헌터 양성소에 들렀다. 장박사와 함께 온 소현을 만나러 일부러 헌터 양성소에 들른 진우는 거기서 오전 테스를 마친 소현 부녀와 함께 점심을 함께 먹었다.

“할만 해?”

진우의 물음에 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운동을 거의 안 해서 좀 힘들기는 했지만, 내가 엄마를 닮아서 조금 튼튼하거든.”

추위 탓에 껴입은 투터운 옷 위로 잘 보이지도 않는 알통까지 자랑하며 이야기를 하는 소현 때문에 장박사와 진우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어때? 요즘 학과 통과 시험 준비 한다며?”

소현의 물음에 진우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과목은 할 만 한데 국어가 조금 걱정이야.”

“왜?”

“작가의 뜻이 뭐냐는 둥, 시인의 생각과 가장 유사한 것을 고르라는 둥, 그런 것만 나오면 이상하게 자꾸 헷갈려. 내 생각하고는 다른 것들만 보기에 있는 것 같아.”

소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진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네 생각이라니? 문제에서 묻는 건 네 생각이 아니잖아. 보통 사람들이 그 작품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 지를 묻는 거지.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짐작해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우의 머리에 뭔가 스치는 것이 있었다. 국어 문제가 아니었다.

교과 공부 외에도 최근 진우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었다. 새벽 훈련에서의 명상을 통해 그간 실마리를 잡은 동조의 단계를 풀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한동안 아무런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소현의 말을 듣자 문득 ‘그런 건가’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고맙다.”

진우는 저도 모르게 소현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소현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옆에 앉아 있던 장박사가 ‘커험’하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진우가 얼른 손을 거두자 장박사와 소현이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오후 측정을 마친 소현이 장박사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자, 진우는 일부러 헌터 양성소의 TVR동을 찾았다. 측정실 앞을 기웃거리던 진우를 발견한 우지연 과장이 퇴근 준비를 하다 진우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어머, 진우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물었다.

“여자 친구 측정 결과가 궁금해서 왔구나?”

“아니, 네.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러자 우지연 과장이 입에 손을 대고 까르르 웃더니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넘겨 짚어봤더니 금방 넘어 오네. 소현이가 진우 여자 친구 맞구나?”

진우는 아니라고 하기도 그래서 그냥 머리만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보더니 우지연이 정리하고 있던 서류철들을 탁탁 닫아서 손에 들더니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측정실을 나섰다.

“미안하지만, 결과는 외부 공개 불가야. 궁금해도 발표가 날 때까지 참으렴.”

찬바람이 날 정도로 쌩하고 진우의 곁을 스쳐 지나간 우과장이 한참을 걸어가더니 슬그머니 왼 손을 뒤로 내밀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진우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  * * * *

소현이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한 날 소현으로부터 직접 전해들을 수 있었다. 마침 케이튼에서 돌아온 정태 녀석이 굳이 따라오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진우는 할 수 없이 큼지막한 꽃다발을 들고 정태와 함께 그녀의 졸업식장을 찾았다.

반갑게 맞아주는 소현의 얼굴을 본 정태는 기뻐해 주기는커녕 절망이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아우, 믿었던 놈마저 어느새 저런 꽃다운 아가씨를. 잘난 놈들만 잘나가는 더러운 세상.”

다소 감정이 섞인 손바닥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친 진우가 정태를 귀를 잡고 끌고 가 장박사 부녀에게 소개시켰다.

“안녕하십니까? 진우의 하나 뿐인 친구 박정태입니다.”

언제 맞았냐는 듯이 씩씩하게 인사를 한 녀석이 소현을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 아름다운 아가씨의 무서운 선배가 될 사람이기도 하고요.”

소현과 장박사의 웃음 소리에 진우가 다시금 정태의 머리를 후려치는 소리가 섞였다.

소현의 졸업식을 마치고, 장박사 부녀와 진우, 그리고 정태가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정태는 끈질기게 소현을 향해 예쁜 친구를 소개시켜 달라며 칭얼댔다. 정태도 눈치가 아주 없지는 않은 터라 최근에는 자신이 김도훈과 차연희 사이에 끼어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뉴 올림포스에서 돌아온 진우가 정태를 만나 한 이야기가 결정적이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야, 걔네 둘은 서로 이어지기도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헤어지기는 더 어려울 것 같아.”

듣고 보니 정태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았다. 늘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차연희는 항상 김도훈과 함께 다녔다.

도훈이 싫다면 그만 만나거나 최소한 함께 다니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녀는 언제나 도훈과 함께 식당에 나타나거나 수업을 함께 듣기도 했다.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게 무엇이든 정태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 진우의 판단이었다.

정태도 마지못해 그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차연희를 포기하는가 싶더니 소현을 본 녀석이 이번에는 이른바 ‘새끼치기’ 공작을 시도한 것이다.

“저는 학교 친구들이 죄다 대학에서 만난 언니들이라서...”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소현도 나이에 맞지 않게 학교를 일찍 다니다보니 또래 친구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정태 녀석은 차마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예쁘기만 하면 되지요’라고 소리치지는 못하고 그냥 고개를 푹 숙였다.

*  * * * *

소현과 주말마다 만나 간간이 데이트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일 없이 평온하게 흘러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진우는 짧은 기간 준비했던 학과 과목들에 대해 3월 개학과 함께 실시되었던 시험에서 다행히 모두 통과 승인을 받았다.

내심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헌터 학교의 모든 과정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진우는 통과가 결정된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 학기를 끝으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려면, 학기말까지 필기시험을 무려 14과목이나 통과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진우는 훈련장보다는 주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 훈련과목으로 신청한 궁술과 검술, 격투술의 상급2 과정에 대해서는 수업 첫날 모든 교관들이 바로 통과 승인을 내 주었다.

진우가 이미 중급 마나 헌터라는 사실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마당에 더 이상의 확인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최명도 교감마저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허진행의 사망 이후에 그는 기가 많이 죽은 모습이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오후 훈련에서 소화해야 할 과목은 있었다. 사격술과 추적술이었다. 두 과목은 헌터 학교의 필수 훈련 과목인데다가 마나 헌터이냐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헌터라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진우도 무조건 통과를 받을 수는 없었다.

사격술은 케이튼에서 최현에게 잠깐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식 훈련 과목을 건너뛸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진우에게는 아주 낯선 과목은 아니었기 때문에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결국 통과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사격은 좋은 시력과 빼어난 신체 조정 능력 덕분에 진우가 쉽게 적응한 편이었다. 그러나 진우가 욕심을 내어 여러 종류의 총기를 훈련받고자 하는 바람에 완전히 통과 승인을 받는 데에는 생각보다 다소 시간이 더 걸렸다.

사격술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은 추적술이었다. 추적술은 관찰력과 주의력을 포함하여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본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목이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적지 않은 경험과 지식을 필요로 했다.

아무리 흔적을 잘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어느 것이 맹수나 마수의 흔적이고 어느 것이 초식동물을 비롯하여 심지어 바람이나 빗물 등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각종 동물들의 이빨과 발톱 자국, 발자국, 배설물 등을 구분하려면 많은 지식도 있어야 했다.

그런 것을 모두 익히려면 어쩔 수 없이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헌터 필수 과목인 외계 생물학과 광물학은 물론 펄스너 교장에게 받는 니코레임어 수업도 진우에게는 만만치 않은 과목이었다. 이 과목들 때문에 진우가 준비해야 할 필기 과목이 14과목으로 늘어나 버렸다.

펄스너 교장은 그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니코레임어를 익히고 있다며 놀라워했지만, 그걸 위해서 진우는 도서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다만 외계 생물학에 대해서는 새로 입학한 소현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대학 전공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효, 내가 정말. 이제 김도훈 차연희 커플도 모자라 강진우 장소현 커플까지 닭살짓이냐. 식당에서 입은 속닥이는데 쓰는 게 아니라 밥 먹는데 써야지.”

두 사람이 식당에 앉아 책을 펴놓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본 정태가 질투에 찬 잔소리를 퍼부었다. 진우가 얼굴을 들고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공부하는 건데? 모르는 거 물어보는 거야.”

“행여나 학산고 천재 강진우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어서 물어보고 있으시겠다. 생물학에 이해할 게 어디 있냐? 외우면 되는 거지.”

“생물학도 이해해야 돼. 무조건 외우면 안 돼.”

나이가 동갑이라 정태와도 말을 트기로 한 소현이 역시 진우 못지않은 뻔뻔한 표정으로 태연히 대답했다. 정태가 두 사람 앞에 털썩 앉더니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소현이 너는 몰라도 나는 진우 이 녀석이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한테는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소현이 쿡 하고 웃는 바람에 진우도 어쩔 수 없이 웃고 말았다. 사실 정태 말이 옳은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진우도 이해가 되지 않아 애쓰는 것은 분명히 있었다.

새벽마다 동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걸 정태가 알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역시 생물학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소현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즐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나한테 예쁜 신입생 소개시켜 주면 모든 걸 덮어주지.”

정태 녀석이 자기 딴에는 마치 큰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처럼 얘기했지만 두 사람은 그 말에 아무 대꾸 없이 그냥 보고 있던 책에 얼굴을 묻었다. 꽃 피는 봄이 참 서러운 정태였다.

============================ 작품 후기 ============================

이 파트는 조금 정리를 하고 가는 부분입니다. 분량이 길지 않아 다음 파트에 합쳐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파트를 따로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제목을 따로 달았습니다. 짧게 정리하고 바로 다음 파트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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