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한국 헌터학교는 학교 대항 단체전에서 마침내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종목인 단체 사냥에서 진우가 벨라몽에게 빼앗긴 활을 찾느라 30분 가까이 자리를 비웠지만, 돌아온 이후에 다시 빠른 속도로 사냥을 재개함으로써 단체 사냥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우승 확정 발표는 두 시간 가량 늦춰졌다. 최종 심사결과를 확정해야 할 심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 허진행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단 나타난 결과를 가지고 남은 심사위원들이 한국 헌터 학교의 우승을 확정해서 발표함으로써 열흘이 넘게 진행된 모든 경기 일정이 끝났다.
한국 헌터 학교는 이번 대회에서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참가한 대표 선수 가운데 강진우가 개인전 부문에서 궁술과 근접 전투의 우승을 차지했고, 학교 대항 단체전에서도 최종 우승을 확정짓는 등 맹활약을 한 덕이었다.
개인전 추적술 부문에서도 문수련이 비록 5위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일약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 대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느라 쉴 수가 없었다.
결국 진승훈 교관을 비롯하여 강진우, 나상진, 문수련 등이 참석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장시간 동안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한 끝에서야 비로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폐회식은 개회식이 열렸던 장소인 센트럴 타워의 크리스탈 볼륨에서 열렸다. 개회식 자체도 그다지 화려한 편이 아니었던 것처럼, 폐회식은 영국 헌터 학교의 아스탄 교장의 폐회 선언으로 간단하게 끝났다. 그러나 이어지는 연회는 개회식 때보다는 조금 더 풍성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남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푸짐한 음식을 두고 대회 기간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장내가 소란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나상진은 일본 대표인 나가요시 쯔루에게서 정중한 사과를 받았다. 일본 인솔 교관이 엄격한 얼굴을 하고 나가요시의 뒤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학교 측의 지시가 있었던 것 같았다.
장 페이량과, 근접 전투 시합의 상대였던 중국 상해 학교 대표가 진우를 찾아와 기회가 되면 상해로 놀러 오라는 말을 전했다. 장 페이량은 진우가 마나 헌터라는 것을 알자 오히려 자신에 대한 열등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 했다.
미국 대표인 만하임도 진우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진승훈 교관이 슬쩍 들려준 말에 의하면 만하임은 미국에 근거지를 둔 유명한 다국적 기업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진우는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미소를 지으며 잘 알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참 여러 사람들과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진우에게 조승운이 찾아와서 슬쩍 소매를 잡아끌었다. 주변을 얼른 둘러보고 아무 말 없이 타워 밖으로 나간 그를 조승운 교관이 다시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갔다.
“허진행이 계속 보이지 않는다. 대회 주최 측에서는 이미 실종으로 단정을 짓고 날이 밝는 대로 대대적인 수색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조승운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진우에게 물었다.
“네가 한 거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없애 버린 거냐?”
조승운이 재차 묻자 진우가 입을 열었다.
“저를 죽이려고 허진행이 숲 속으로 직접 찾아왔어요. 벨라몽을 벨라키에르로 바꿔치기 했더라고요.”
진우는 숲속에서 겪었던 일들을 조승운에게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진우의 얘기를 듣던 조승운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마나를 동결시켰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너 혹시?”
진우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련을 하던 도중에 동조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 몸 속의 마나만 고정시키거나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 자꾸 수련을 하다보니까 지금은 다른 사람의 몸속에 있는 마나도 직접 손을 대고 정신을 집중하면 동결시킬 수 있어요.”
조승운은 기가 막힌 듯 ‘허허’하고 웃더니 이내 얼굴을 굳히고 진우에게 말했다.
“아무리 벨라키에르가 흔적을 잘 지운다고 하더라도, 마나 헌터들이 샅샅이 수색을 하면 곧 그의 흔적이 발견될 거다. 그래도 우리나라 헌터 협회장이 실종된 사건이니, 그의 죽음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대표단도 내일 당장 이곳을 떠나기는 어려울 거다. 너는 그동안 말과 행동을 자중하고 일의 결말이 날 때까지 조용히 있어라.
”
“네.”
조승운과 헤어져 연회장으로 돌아갔던 진우는, 하지만 곧 다시 밖으로 나와야 했다. 장소현이 그에게 잠시 함께 걸으며 얘기를 하자고 한 것이다.
뉴 올림포스 행성의 밤은 전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시골 마을처럼 사방이 온통 까맸다. 위성이 없기 때문에 달빛조차 없는 외계 행성의 밤하늘에는 선명한 별빛만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진우와 소현은 센트럴 타워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그나마 발밑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인근을 돌며 함께 걸었다.
“나, 이번에 돌아가면 헌터 후보자 테스트를 받아볼까 해.”
장소현이 뜻밖의 말을 하는 바람에 진우는 조금 당황했다.
“돌아가면 곧 대학 졸업식일 텐데 이제 와서 헌터 학교에 들어오겠다고? 올해는 후보자 테스트도 이미 다 끝났을 텐데?”
장소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정식으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바로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후보자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없거든. 만 17세 이하가 입학 규정이니까 나도 올해까지는 자격이 있어. 나 같은 경우는 예외적으로 따로 개인 신청을 통해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가 봐.”
“그렇더라도 대학까지 졸업하는 마당에 이제 와서 왜 헌터학교에 들어가려고? 거긴 명목상 고등학교 과정이잖아?”
“아빠가 펄스너 교장에서 물어봤는데, 그래서 나같은 경우는 입학하더라도 일반 교과 과목은 대부분 면제를 받을 수 있나 봐. 헌터들에게 필요한 몇 과목만 이수를 하면 되고, 그 외에는 주로 전투 훈련에 집중하는 형식이 될 것 같아.”
“헌터 학교 전투 훈련이 만만치 않은 데 할 수 있겠어?”
진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장소현이 걸음을 멈추더니 뉴 올림포스 행성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옆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 굳어 있었다.
“스카디안 행성에서 그 고생을 하고 돌아왔는데, 지구에 와서도 다시 암살 위협을 받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난 이제까지 똑똑한 게 최고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절대적인 폭력 앞에 서면 너무 무기력하구나 하는 생각 말이야. 총알도 소용없는 사람들에게서 나 자신을 지키려면 남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일단 내가 강해져야 할 것 같았어.”
장소현의 어투에 슬픔과 억울함, 분노 같은 것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더니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으며 진우를 돌아보았다.
“외계 생물학은 헌터 학교 졸업 후에라도 계속 공부할 거야. 내가 전문 헌터가 되어 이곳저곳 여러 행성들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직접 탐사하면서 연구할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진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진우는 어떻게 생각해?”
그런 거라면 굳이 장소현이 직접 헌터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이 보호하며 데리고 다닐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진우 스스로도 그게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장 이번에 지구에 돌아가면 최대한 빨리 헌터 학교를 졸업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당분간 지구를 떠나 있을 계획이었다.
장소현과 함께 행성을 다니며 그녀의 연구를 도와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소현의 말도 그럴 듯했다. 다만 어찌 보면 그게 그녀에게 시간의 낭비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진우는 고개를 들려 소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현의 눈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식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눈이 낯선 행성의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빛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
소현이 다시 물었다. 진우는 대답 대신 그녀의 볼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소현의 얼굴이 조금 발개졌다.
“어떻게도 생각 안 해. 너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하고 싶은 대로 해. 헌터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거야.”
진우가 그녀의 볼에서 손을 떼자, 소현이 낮게 한숨을 내 쉬었다. 그는 소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헌터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내가 계속 들었던 얘기는 헌터는 자유롭다는 거였어.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자기 삶은 자기가 결정해야겠지. 내가 많이 응원해 줄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난 네 편이니까.”
소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소현은 예쁜 여자였다. 나르샤 교관처럼 완벽한 미모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차연희 같은 시크한 매력도 없었다. 하지만 진우는 이상하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둘 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소현이 오는 주말마다 간간이 만나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서로 하는 이야기가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적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와는 달리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그랬다. 소현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 거꾸로 헌터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 한다.
말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찬성하는 것이 좋을까? 진우는 그냥 소현의 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도와주고 싶다. 하지만 자신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느끼는 그대로 말을 했다. 그리고 소현은 그 말을 듣고 만족해 했다.
그런 대화가,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진우는 소현이 참 좋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터는 말이야.”
진우가 앞을 보고 걷던 자세 그대로 무심코 입을 열었다.
“생각하는 직업이 아닌 것 같아. 느낌이 더 중요해. 헌터가 생각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안 좋은 면이 많을지도 몰라. 헌터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야.”
진우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 가슴으로 하는 거지.”
진우는 낮에 자신의 손으로 처리한 허진행을 떠올렸다. 허진행은 머리가 좋았다.
교활했고, 치밀했다. 하지만 진우가 생각하기에는 그래서 한계가 오히려 너무 뻔했다. 자신의 예상 안에 들어오는 일에서는 성공을 계속했지만, 단 한번이라도 그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하자,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스카디안 행성에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머리보다 가슴을 앞세운 행동은 가끔 사람을 결정적인 위험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하지만, 진우는 그래도 그것이 헌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서 진우는 최현이나 권일도, 조승운처럼 그동안 자신을 가르쳤던 교관들을 점점 닮아간다고 할 수 있었다.
“풋.”
진우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우가 의문을 담은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자 소현이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진우를 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진우 너 머리가 좋다고 하던데?”
“응? 누가 그래?”
“아라 언니가. 그 왜 톤파를 쓰는 언니 말이야. 낮에 같이 너희 팀 사냥하는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네가 교과 시험도 벌써 엄청나게 많이 통과했다고 하더라고.”
“아.. 그거? 그거야 빨리 졸업을 하려면 교과 시험도 미리미리 통과를 해 둬야 하니까 그렇지.”
소현이 웃음을 거두지 않으며 말했다.
“보통 사람들이 교과 시험 빨리 통과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공부하면 되니? 그것도 다 머리가 좋은 사람한테나 가능한 얘기지.”
할 말이 없어진 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소현이 진우의 팔짱을 꼈다.
“돌아가자. 너무 늦으면 아빠가 걱정하실 거야.”
팔짱을 끼는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팔에 와 닿는 소현의 몸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진우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 * * * *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시작된 대대적인 수색 끝에 결국 허진행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동쪽 숲의 거의 끝부분까지 샅샅이 뒤지고 나서야 수색대가 말 그대로 흔적뿐인 그의 시신을 찾아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시신이라고 해야 땅속에 묻혀 있던 뼛조각과 옷가지를 파낸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도인호 장관이 파랗게 질려서 일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소리치고 다녔지만, 조사 결과 그의 죽음은 사람이 아니라 벨라키에르의 소행으로 확인되었다. 뼈에 남아 있는 발톱과 이빨 자국으로 보아 허진행은 그 마수들에게 당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살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다른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남아 있는 뼈와 옷가지에서 금속성의 무기나 독에 의한 손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이 검시에 참가한 경험 많은 헌터들과 의사들의 최종 결론이었다.
도인호 장관을 더욱 열 받게 만든 것은 정작 허진행을 살해한 것으로 짐작되는 벨라키에르들이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사냥 대회에서 미처 사냥을 못하고 남겨진 맹수들은 전부 수거가 되어야 했지만, 수색을 겸한 수거 작업에서도 발견된 것은 벨라키에르가 아닌 벨라몽 여섯 마리 뿐이었다.
수색과 수거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수색팀이 한국 헌터 학교 학생들에게 대회 도중 숲속에서 벨라몽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문수련을 비롯한 일행은 진우의 활을 들고 도망친 녀석이 벨라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다면 중급 헌터에 불과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진우가 불과 30분도 안 돼서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활을 찾아 돌아왔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로서는 전날 한밤 중에 아스탄이 예의 그 피리를 들고 숲속을 다녀왔다는 걸 알 수가 없었다. 새벽에 호텔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이 잠시 가동되었다는 것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허진행의 죽음은 완전히 미궁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상급 헌터인 그가 어째서 최하급 마수에게 목숨을 잃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정작 흉수로 지적된 벨라키에르 또한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하필이면 그때 동쪽 숲을 감시하던 드론의 감시화면이 일제히 꺼지는 바람에 살해 현장을 찍은 화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도인호 장관이 허진행이 상급 헌터였다는 점을 들어 뭔가 흑막이 있다며 계속 파고들었지만, 어차피 진우나 아스탄이 나서서 설명하지 않는 한, 그 문제에 대해 속 시원히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외계 행성에서 지구인들 사이에 범행이 발생했을 경우, 보통은 피해자나 가해자가 속한 국가에서 조사와 판결을 주도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조사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많은 경우 사건이 일어나도 목격자나 증거를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조사를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대규모나 지속적인 조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이번 일의 경우도 마수의 소행인 것은 분명한데, 그렇게 된 이유가 불분명했다. 사람이 관계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그것이 정확하게 어느 나라의 누구에 의한 소행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도인호 장관만이 분개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그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사건을 파헤치도록 요구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로서는 하필이면 자신이 참관한 대회에서 한국의 주요 인물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 데에 대해 지구로 귀환한 뒤에 책임을 추궁당할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외계 행성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한국 대표단은 허진행의 죽음으로 인해 이틀을 더 뉴올림포스 행성에 머물렀지만, 사실 그것은 쓸 데 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대표단들은 도인호의 분노에 찬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속속 지구로 돌아갔다.
도인호에게는 그것을 말릴 권한이 없었다. 진우나 아스탄이 내막을 밝힐 리도 없었으므로, 결국 도인호는 이틀 만에 손을 들었다.
센트럴 타워가 썰렁해진 다음에야 한국 헌터 학교 일행들은 지구로 귀환하는 포털을 탈 수 있었다. 역대 최고의 성적과, 역대 최악의 실종 사건을 동시에 안고 돌아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