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61화 (61/235)

61화

## '구르는 곰팅'님이 21편에 대한 댓글에서 포식자 대신 마수라는 칭호를 쓰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생각해 봤는데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번 편부터 그렇게 바꾸겠습니다. 앞의 글에서 쓰인 칭호는 시간을 봐서 한꺼번에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궁술 개인전 결승이 끝난 다음날은 다른 경기 일정이 없이 모든 선수단이 하루를 쉬면서 점검에 들어갔다. 이튿날부터 시작되는 학교별 단체전에 대비해 팀을 추스르고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전을 치르느라 체력이 소모된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자는 뜻도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 하루를 거의 쉬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1학년 학생으로서 궁술과 근접 전투 두 종목에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 정도는 그저 평범한 질문이었다.

“1학년이 학교 대표로 출전한 것은 무투 대회 역사상 처음입니다. 게다가 우승까지 차지한 것 역시 최초지요. 두 종목이나 휩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강진우 학생을 강최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 말씀 해 주시지요.”

조금 낯 뜨거운 얘기이기는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강진우 학생이 마나 헌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 경기 중에 뭔가 속임수를 썼다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을 밝혀 주시죠.”

이런 질문을 받으면 속에서 욱하고 뭔가 치밀어 오른다.

“강진우 군이 사실은 학생이 아니라 자격을 속이고 참가한 전문 헌터 이상의 성인이라는 고발이 있었습니다. 부정을 시정하지 않으면 선수단을 철수시키겠다는 학교도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해명하실 말이 있습니까?”

세상 참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이었다. 진우는 이런 질문에는 일체 대답을 하지 않고 진승훈 교관에게 공을 넘겼다. 덕분에 진승훈 교관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이리저리 끌려 다녀야 했다.

도인호 장관이 헌터 협회장인 허진행을 대동하고 찾아왔을 때에는 솟아오르는 살기를 누르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느라 무진 고생을 했다. 눈치를 보니 허진행 역시 비슷한 기색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도인호만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려 한 시간을 쓸 데 없는 잡담과 공치사를 하다가 돌아갔다.

여러 기업체 임원들도 연락을 해 왔지만 일체 면담을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오성 전기 사장 김정호가 찾아왔을 때에는 차마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절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얼굴을 트고 말을 하는 사이인 김도훈과의 안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훈이에게 자네 얘기를 들었네. 조기 졸업을 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졸업하면 혹시 우리 오성과 함께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우승을 축하한다는 간단한 인사말이 몇 차례 오고 가자 김정호는 직설적으로 자신의 용건을 밝혔다. 평생을 비즈니스 판 위에서 살았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런 점에서는 쓸 데 없이 재거나 빼는 게 없었다.

“없습니다.”

진우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언제부터인가 진우는 전문 헌터가 되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성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졸업 후에는 되도록 자유롭게 여러 행성을 돌아다니며 이제 막 실마리를 잡기 시작한 동조의 단계로 올라서기 위한 수련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물론 행성을 이동하려면 적지 않은 포털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했다. 하지만 하급 마수 정도는 혼자 힘으로도 사냥할 자신이 있었으므로, 비용은 간간이 사냥을 통해 마련할 작정이었다.

때문에 굳이 특정한 기업이나 헌팅 클랜 같은 곳에 소속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네가 이미 마나헌터일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네. 그것도 이미 중급 헌터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솔직히 우리 회사로서는 자네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네. 혹시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말해줄 수 있겠나? 가능한 한도 내에서는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졸업도 안 한 나이에 중급 마나 헌터라는 사실 자체도 중요했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보다도 미래가 더 기대되는 무서운 유망주였다. 김정호는 진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희 학교 모토가 자유로운 마나, 자유로운 헌터입니다. 아직 제 나이가 어리니 당분간은 조금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제 자신의 가능성을 조금 더 시험하고 싶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우의 태도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진우의 결심이 의외로 단단하다는 것을 눈치 챈 김정호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자리를 일어서며 진우에게 금색으로 테두리가 둘러진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내가 아는 지인들에 한해서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나와 통화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일세.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연락을 하게. 내가 직접 전화를 받을 걸세. 그럼 기다리겠네.”

진우는 방을 떠나는 김정호에게 문득 김도훈과 차연희에 관한 일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참았다. 두 커플의 관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집안끼리 알고 지냈다고 하니 혹 아버지인 김정호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왠지 공연한 참견일 것 같아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진우의 고단한 휴식일이 지나갔다.

*  * * * *

학교 대항전의 첫날 종목인 집단 전투에는 백여 개의 학교만 참가했다. 개인전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학교 학생들의 실력을 확인하고 열세를 느낀 일부 학교들이 미리 선수단을 철수시켰기 때문이었다.

학교마다 다섯 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한꺼번에 벌이는 집단 전투에는 대개의 학교들이 궁사 한 명과 네 명의 근접 전투원을 출전시켰다. 그러나 간혹 다섯 명 모두를 근접 전투원으로만 채우거나, 궁수를 두 명까지 배치한 학교도 있었다. 지름 50m 정도의 원 안에서 치러지는 집단 전투에서 선수들은 펜싱 경기처럼 센서가 달린 옷을 입고 날이 없는 무기를 든 채 시합에 임했다.

센서가 장착된 옷 위로 무기나 신체를 이용하여 상대를 한 번 가격할 때마다 1점씩 점수가 올라갔는데, 먼저 30점을 획득한 팀이 이기게 되어 있었다.

궁수들은 처음 자기 진영으로 정해진 반원의 밖에서 상대방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었지만 한 명당 10발의 화살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공격을 당하지 않는 대신, 공격할 수 있는 기회에 제한을 둔 것이었다.

한 선수가 10점을 잃을 경우 그 선수는 바로 경기장 밖으로 바로 나가야 했다. 경기 제한 시간은 전후반 30분씩 한 시간이었다.

첫날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8강이 결정되었고, 진우의 한국 헌터 학교는 당연히 거기에 속할 수 있었다. 어떤 학교는 진우를 먼저 퇴장시키기 위해 그에게 공격을 집중시키기도 했고, 반대로 진우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다른 선수들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한 번은 덩치가 큰 권정이 거의 퇴장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나 헌터다운 빠른 이동을 통해 상대의 허점을 공략하는 진우 때문에 대전하는 상대마다 많은 점수를 잃고 결국은 승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진우의 팀은 승리한 모든 경기를 전반만으로 종료시키는 쾌거를 달성하며 무서운 속도로 8강전에 선착했다.

안나예는 궁수로서 경기마다 6점 이상을 올리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집단 전투에서는 워낙 체력 소모가 심했기 때문에 그 다음 하루를 쉬고 이튿날에 8강 경기가 진행되었다. 8강전과 4강전에는 체력이 채 회복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민아라와 권정이 빠지고 대신 첫날 경기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김창식과 이병희가 선수로 나섰다.

8강전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두고 올라간 4강전에서 이병희가 상대방의 집중 공격을 받고 다소 위급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지만, 한국 헌터 학교는 결국 진우의 활약으로 상대를 꺾고 결승에 오르는 데에 성공했다. 결승에는 4강전에서 약간의 부상을 입었던 이병희가 빠지고 대신 권정이 다시 선수로 출전했다.

결승전 상대는 미국 뉴욕 헌터 학교였다.

*  * * * *

“긴장해라. 여태까지 모든 상대를 전반전에서 끝내고 올라온 녀석들이다.”

미국팀의 주장인 만하임은 자신의 팀원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팀원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상대가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강팀이라는 것을 이미 보아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가 죽지는 않았다.

한국 헌터 학교는 어찌 보면 강진우라는 녀석의 원맨팀이었다. 함께 하는 다른 팀원들이 터무니 없는 약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 명 한 명의 면면을 보면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자신들의 상대로 인정하기에는 다소 격이 낮았다.

집단 전투는 30점을 먼저 획득하는 팀이 승리하는 경기였다. 진우가 아무리 혼자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더라도, 굳건히 방어를 하는 가운데 다른 선수들을 공략해 차근차근 점수를 획득한다면 충분히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우는 내가 맡는다. 최대한 점수를 적게 잃으면서 방어할 테니, 너희들이 그 사이에 되도록 빨리 점수를 따도록 해라. 그게 우리의 승리 전략이다.”

만하임이 자신의 칼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말을 하자 다른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주장. 최대한 빨리 깔끔하게 끝내 줄게.”

그들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심사위원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투 개시”

심사위원의 구호에 맞춰 양팀 선수들이 원의 중간에서 격돌했다.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  * * * *

진우는 처음 자신의 앞을 막아선 상대의 커다란 덩치에 놀랐다. 키가 2m가 넘는데다가 얼핏 보아도 100Kg은 충분히 넘을 것 같은 거구가 자신에게 방패를 들이대며 부딪쳐왔다.

상대의 방배를 손바닥으로 때리자 둔중한 소리와 함께 전해지는 반탄력이 제법 묵직했다. 검을 휘둘러 상대의 허벅지를 슬쩍 베어 들어갔지만 상대 역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재빠른 동작으로 자신의 칼을 휘둘러 진우의 검을 막았다.

“쉽지 않을 거다. 나를 넘지 못하면 오늘 너희 팀은 진다.”

만하임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약간 뒤로 물러서서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니 상대의 거센 공격에 휘말려 쩔쩔 매는 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진우의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너를 넘어야 한다면 넘어 주는 수밖에.”

진우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다양한 변화를 그렸다. 만하임의 손이 바빠졌다. 그는 진우의 검을 하나씩 막아내면서도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마나를 쓴다고 했나? 체구는 나보다 작은데도 힘이 엄청나군. 방패가 밀릴 정도라니.’

진우는 마나를 쓰고 있지 않았다. 일본 대표인 나가요시 쯔루를 상대할 때는 의도한 바가 있어 과감히 녀석의 일본도를 잘라내었지만, 그 뒤로는 한 번도 시합 중에 마나를 끌어올린 적이 없었다.

만하임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금 그의 방패를 밀어붙이고 있는 진우의 힘은 순수하게 자신의 근력과 스피드를 이용한 것이었다.

텅, 텅, 텅, 텅, 캉.

방패와 칼에 연속으로 부딪치는 진우의 검에서 전해지는 힘 때문에 만하임의 방패가 조금씩 위치를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방패에 전해지는 진우의 힘을 흘려내는 데에 집중하느라 그를 향해 변변한 공격을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수비로만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연속되는 충격에 그의 방패가 조금씩 자리를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진우가 자세를 낮게 하여 밑에서부터 쳐올린 검에 밀린 만하임의 방패가 크게 오른쪽으로 벗어나 버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진우의 연속 공격이 여름날 소나기처럼 숨 쉴 새도 없이 만하임의 몸으로 떨어졌다.

“만하임 선수 10점 실점. 아웃.”

심사위원이 만하임의 퇴장을 명령하는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선수들이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에서도 그 목소리가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큭”

만하임이 분함과 아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경기장을 벗어나자 그동안 미국 팀의 공격에 계속 점수를 허용하고 있던 한국 팀의 기세가 일제히 살아났다.

“가자.”

주장 나상진의 힘찬 구호에 맞추어 권정의 쌍도끼가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안나예의 활이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가면서 김창식의 검도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 사이사이를 만하임을 아웃시키고 프리가 된 진우의 검이 누비고 다녔다.

“경기 끝. 한국 헌터 학교 승리.”

차곡차곡 쌓아가던 점수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30점을 잃고 만 미국 뉴욕 헌터 학교 대표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우와~~~”

경기장 한 가운데서 진우를 얼싸안은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진승훈 교관도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와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뻐했다. 단체전 승리의 5부 능선을 한국 팀이 1위로 통과한 것이다.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축포처럼 선수들의 머리 위로 울려 퍼졌다.

*  * * * *

집단 전투 일정이 모두 끝난 뒤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은 다시 하루를 경기 없이 쉬었다. 그 사이 다음날 있을 단체 사냥에 나설 선수들은 모두 의료실에 들러 의사들과 마나 치료사들에게 간단한 진료와 함께 필요한 치료를 받았다.

특별한 부상이 없었던 진우는 모처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건너뛰고 장박사 부녀와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곤 클랜 일행이 주변의 식탁에 앉아 경호 겸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외모에 속지 마라는 게 뉴 올림포스 행성에서 헌팅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말이다. 내가 준 책은 읽어 봤니?”

장박사의 말에 진우가 브로콜리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 사냥에 동원된 맹수들 중에 다섯 종류나 동형이종인 것들이 있더라고요. 대회 안내 책자에 나와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동형이종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해 뒀어요.”

동형이종이란 겉모양은 같은데 사실상 다른 종류나 마찬가지인 생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뉴 올림포스 행성의 생물들 가운데에는 그런 것들이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데 한쪽은 일반 맹수이고, 다른 쪽은 마수인 것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었지만, 얼핏 보아서는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래서 경험이 없는 헌터들 가운데에는 뉴 올림포스에서 사냥하던 중, 가벼운 사냥감인 줄 알고 섣불리 접근하다가 생각 외의 거센 공격을 받고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아무리 허진행이라도 설마 아무도 모르게 사냥감을 바꿀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네.”

장박사의 염려에 가볍게 대답했지만, 진우는 허진행이 장박사가 얘기한 혹시 모를 그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대회 안내 책자와 장박사가 준 책을 통해 어떤 맹수에게 수작을 부릴 것인지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설사 맹수가 아닌 마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지금 진우의 입장에서는 크게 위험한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제는 허진행이 그 이상을 시도하는 경우였다.

‘그럼, 나도 이번에 끝내는 거지.’

식사를 마치고 여전히 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소현에게 아쉬운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진우는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  * * * *

단체 사냥에는 여덟 개의 학교만 참가했다. 이틀 전 있었던 집단 전투 시합에서 8강 안에 들었던 학교들에 한해서 단체 사냥 종목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이었다.

두 종목의 점수를 합계해서 최종 승자를 가리는 학교 대항전에서는 종종 사냥 종목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둠으로써 집단 전투에서 뒤졌던 점수 차이를 뒤집는 경우도 발생하고는 했다. 그래서 참가 선수들은 물론 관객들도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보았다.

경기장은 모두 네 곳이었다. 그동안 대회를 진행하면서 사용했던 경기장의 일부가 마지막 날의 단체 사냥터로 활용되었다.

센트럴 타워 서쪽의 늪지대와 북쪽의 암석지대는 단체 사냥 종목을 위해 새롭게 개방된 곳이었지만, 추적술 시합이 벌어졌던 동쪽의 숲과, 궁술 개인전 예선 때 사용되었던 넓은 미로는 약간의 개조와 더불어 단체 사냥터로 재활용되었다. 사냥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맹수들로, 그 종류와 습성은 이미 안내 책자를 통해 공개된 상태였다.

경기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생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학교 대항전 결선이 진행된 날 오전에는 집단 전투 8강에서 탈락했던 4학교의 단체 사냥 경기가 있었다. 세 시간 동안 진행된 오전 경기에서는 인도 뉴델리 헌터 학교 선수들이 예상외의 선전을 보여, 오후의 결과에 따라서는 3위에 진입할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을 낳게 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겸한 휴식 시간을 거쳐 시작된 오후의 경기에서 한국 헌터 학교는 동쪽의 숲을 사냥터로 배정받았다.

‘예상대로군.’

진우는 만약 허진행이 뭔가 수작을 부린다면 숲 속을 택할 것이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자 추첨의 결과 한국 헌터 학교의 사냥터는 센트럴 타워 동쪽의 숲으로 결정되었다.

“아자, 아자. 여기는 내가 잘 아니까 확실하게 맹수들의 흔적을 찾아낼게.”

추적술 시합을 통해 이미 동쪽 숲을 두 차례나 경험했던 문수련이 자신있는 표정으로 큰소리를 쳤다. 문수련 외에 궁수인 안나예와 주장 나상진, 그리고 진우와 창술의 이병희가 최종 단체 사냥전에 나섰다.

문수련은 자신의 도를 휴대하고 있었고, 나상진은 사냥임을 감안하여 맨손 격투술만을 사용하던 평소와는 달리 두꺼운 방패와 커다란 도끼를 들었다.

“한국 헌터 학교, 출발”

심사위원의 출발 신호와 함께 선수들은 일제히 자신들에게 배정된 사냥터 안으로 발을 디뎠다. 대회 최종일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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