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궁술 개인전 본선은 진우와 중국 상해 헌터 학교 대표인 장 페이량의 대결을 첫 경기로 하여 시작되었다. 경기장에 나선 장 폐이량의 얼굴에는 시작부터 긴장이 잔뜩 서려 있었다.
궁술 개인전 경기장은 가로 50m, 세로 120m의 직사각형 모양이었다. 중간에는 폭 20m의 진입 금지 구역이 설정되어 있어 어느 선수든 그 곳에는 들어갈 수가 없게끔 경계가 나뉘어 있었다.
선수들은 진입 금지 구역의 양쪽에 각각 서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상대 선수에게 활을 쏘아 맞추어야 했다. 진영마다 지름 30cm, 높이 2m의 기둥이 각각 10개씩 듬성듬성 세워져 있었다.
상대의 활의 날아오면 그 기둥 뒤에 숨어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3초 이상을 기둥 뒤에 머무르면 해당 기둥이 자동으로 땅 밑으로 내려가 버렸다. 한 번 내려간 기둥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다시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기둥 뒤에만 숨어서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화살 끝에는 선수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전자 감지 장치가 내장된 뭉툭한 화살촉이 달려 있었다. 화살촉이 기둥이나 땅이 아닌 상대의 신체에 적중하거나 스치면, 심사위원들에게 그 사실이 통보되었다.
선수마다 각자 30발의 화살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먼저 5발을 상대에게 맞추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였다. 경기 제한 시간 30분이 지나도록 승부가 나지 않으면, 그때까지 더 많은 화살을 적중시킨 사람에게 승리가 돌아갔고, 그 마저도 동일할 경우는 심사위원들의 판정에 의해 승패가 가려졌다.
장 페이량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진우에게 재빨리 화살을 한 대 날리고는 바로 기둥 뒤로 숨었다. 시작부터 상대방에게 화살을 맞추는 것보다는 자신이 화살에 맞지 않겠다는 생각의 소극적인 경기 방식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선 자리에서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상대의 화살을 피하고는 장 폐이량이 기둥을 벗어나는 순간을 기다려 순식간에 두 발을 연사했다.
장 폐이량은 기둥 뒤에서 시위에 활을 건 채 뛰어 나오다가 엉겁결에 두 발을 연속으로 적중 당했다. 그 한 번의 공수 교환으로 그는 그만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경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하기는 했지만 시작부터 너무 어이가 없게 실력 차가 드러나고 만 것이다.
연사에 얻어 맞은 그가 이를 악물고 진우에게 화살을 날린 뒤 다시 기둥을 향해 뛸 때 이미 그의 이동 궤적을 예상하고 날린 진우의 화살이 도달했다.
퍽, 퍽, 퍽.
깔끔한 끝내기였다. 진우가 날린 세 발의 화살이 차례차례 그의 몸을 적중시키자 경기는 시작 한지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간단히 끝났다.
“이익.”
장 폐이량은 고작 두 발의 화살만을 날리고 경기에 패하자 이를 악물고 들고 있던 활을 땅에 내팽겨 치고 말았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2학년으로서 여러 사람의 기대를 업고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참가한 대회였는데, 어디서 자기보다 더 괴물같은 1학년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에게 돌아올 환호와 찬사를 가지고 가 버렸다. 너무 억울했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는 상대를 쳐다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선수 대기석으로 돌아오자, 상해 헌터 학교의 인솔 교관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했다.
“네가 약한 게 아니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대답하는 장 폐이량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전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에요. 하지만 저 녀석은 1학년이니까 2년 후에 또 출전할 수 있잖아요.”
장 폐이량을 위로하던 교관은 한국 헌터 학교 대기석으로 사라지는 진우의 뒷모습을 흘낏 쳐다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저 녀석도 내 후년 대회에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 * * * *
진우는 그날 치른 네 번의 경기에서 손쉽게 승리를 따 내고 결승전에 올랐다. 하지만 진우가 치렀던 시합을 제외한다면, 궁술 개인전 본선의 나머지 경기들은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무려 여섯 경기나 제한 시간을 꽉 채우도록 승부를 내지 못했고, 그 중 세 경기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쌍방이 적중시킨 화살 수마저 똑같아 심사위원들의 판정을 기다려 승패가 가려지기도 했다.
진우가 나섰던 경기는 가장 긴 것이 5분을 넘기지 못했다. 관객들은 물론 선수들까지도 간혹 터져 나오는 진우의 연사가 빠짐없이 상대 선수에게 적중되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반면에 진우에게 한 발의 화살이라도 적중시키는 데 성공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쯤 되자, 이틀 뒤에 치러질 궁술 개인전의 최종 결승전 우승자가 한국 헌터 학교 출신의 1학년 강진우가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 * * * *
궁술 개인전 본선 다음날 벌어진 근접 전투 32강전에서도 진우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날 있었던 네 번의 경기에서 진우가 검을 들고 나와 모두 가볍게 승리를 따 내고 결승에 진출하자, 무투 대회 최초의 개인전 2관왕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뉴 올림포스 행성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퍼졌다.
산업자원부 장관 도인호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싱글거리며 진우를 칭찬하기에 바빴고,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춰 줘야 하는 허진행은 끓어오르는 속을 감추느라 하루 종일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한국 헌터 학교 주장인 나상진은 16강전에서 일본 선수에게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상대의 날카로운 일본도에 팔을 깊게 베인 그는 마나 치료사들의 치료를 받고도 그날 하루 종일 팔을 잘 쓰지 못했다.
“이미 승부가 난 상태였다구. 그 자식 일부러 상처를 입힌 게 틀림없어. 경기 중단이 선언되자 돌아서는 녀석이 비릿한 웃음을 짓는 걸 내가 똑똑히 봤어.”
추적술 결선에 오른 문수련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흥분해서 소리를 쳤다. 진우 생각하기에도 상대 선수의 마지막 일격은 충분히 의도적이었다.
진우 역시 결승에 올라올 상대 선수들을 살피기 위해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다 나상진이 나가요시 쯔루라는 일본 선수의 칼에 팔을 베이는 것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의 경기 중단 선언은 아직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상진은 이미 경기 포기의 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망설임없이 나상진에게 공격을 감행해 그의 팔을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상대가 공격해 들어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나상진은 깜짝 놀라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한 칼을 먹고 말았다.
“진우, 네가 그 녀석 혼내 줘야 해. 그런 매너 없는 녀석은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고.”
문수련이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진우에게 주먹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그 나가요시 쯔루가 진우의 근접 전투 결승전 상대였다.
* * * * *
나상진의 일 때문에 분을 참지 못하던 문수련은 다음날 벌어진 추적술 결선에서 5위를 차지했다. 추적술은 참가 선수가 다른 종목에 비해 많지 않은데다가 여러 명이 한꺼번에 경기를 하는 방식이라서 결선 첫날 바로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대회 첫 우승자의 영예는 호주 대표로 출전한 제니퍼라는 금발의 여학생이 차지했다.
문수련은 아쉽게도 3위 안에 들지 못해 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본인은 어느 정도 만족을 한 표정이었다. 학교 동료들도 위로와 동시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승훈 교관도 문수련의 선전에 격려의 말을 건넸다.
“전 세계 졸업생들 가운데 5위라는 거다. 도술을 조금 더 연마해서 마나를 각성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어느 헌팅 팀이나 클랜을 가더라도 무시당하지는 않을 거다.”
진우가 다음날 오전과 오후에 벌어질 궁술과 근접 전투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한국 헌터학교는 이미 개인전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약속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우는 다른 선수에게 우승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의 생각을 더욱 다지게 만드는 일이 그날 저녁 벌어졌다.
* * *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진우는 자기 방으로 잠시 들르라는 조승운 교관의 말을 듣고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장박사와 그의 딸 장소현을 만났다.
“아니, 장박사님! 소현아! 두 사람이 여긴 어떻게?”
깜짝 놀란 진우의 눈에 그들 옆에 서 있는 낯선 인물들이 보였다. 김상곤을 비롯한 ‘곤’ 클랜 사람들이었다.
장박사 일행은 포털을 통과할 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피 묻은 옷 등은 이미 새것으로 갈아 입은 뒤였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진우는 장박사 일행의 얼굴에 짙은 피로감이 배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우가 자신을 부른 조승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지구에 있을 분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일단 앉아라. 앉아서 얘기하자.”
조승운은 걱정과 당황스러움 겹쳐 어쩔 줄 몰라하는 진우를 달래 일단 소파에 앉혔다.
“너에게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너도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구나.”
조승운이 말을 잠시 끊고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장박사와 소현이에게 암살 기도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비를 해 두기는 했지만, 결국 놈이 일을 벌였어. 지구를 떠나기 전에 미리 저기 있는 사람들에게 경호를 부탁해 둔 덕에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천만 다행이었지. 하지만 아무래도 추가로 암살 시도가 있을지도 몰라 일단 일이 터지면 모두 이곳으로 오게 했다.
다행히 그동안 이곳에서 지구로 귀환한 사람들이 꽤 있어 센트럴 타워에 방을 잡아 두었다. 여기 있는 동안에도 저 사람들이 계속 두 사람을 밀착 경호할 거다.
”
진우가 얼굴을 굳힌 채 조승운에게 물었다.
“허진행의 짓이 확실합니까?”
조승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치수라고 화룡 클랜이라는 곳의 클랜장을 하는 녀석이 자기 클랜원들을 데리고 나선 모양이다. 평소에도 허진행과 가깝게 지내던 녀석이었는데, 이번에 일을 맡았던 것 같아. 그놈들이 제 입으로 허진행이 시킨 일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총을 들고 암살을 시도했다는 점으로 보아 허진행과 연관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헌터들의 총기를 관리하는 곳이 헌터 협회니까,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구에서 헌터들이 총기를 사용하기는 힘들었을 거야.”
“그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어지는 진우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옆에서 듣고 있던 김상곤이었다.
“모두 제거하고 흔적을 없앴다.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당분간 암살을 시도했던 녀석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힘들 거다.”
진우가 김상곤을 쳐다보자 조승운이 나서서 양쪽을 소개했다.
“김상곤이라고 내 제자다. 워낙 무뚝뚝해서 얼음덩어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력 있는 상급 헌터야. 이번에 내 부탁을 받고 장박사와 소현이를 경호하느라 고생이 심했다. 서로 인사하거라.”
진우가 벌떡 일어나서 김상곤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강진우입니다. 교관님에게 검술을 배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상곤이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에게 막내 동생이라고 들었다. 여기 와서 보니까 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더구나.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해라.”
두 사람이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자 조승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자자, 오늘은 다들 피곤할 테니 자세한 이야기들은 차차 나누도록 하고, 이만 각자 방으로 돌아가 쉬도록 하자. 상곤이는 미안하지만 여기서도 계속 경호를 부탁하마.”
그러자 김상곤 대신 그의 부인인 박화정이 나서서 예쁘게 웃으며 그 말에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스승님. 저희가 확실히 두 분을 지켜 드릴게요.”
“그래. 너희들만 믿는다. 그만 돌아가서 쉬어라. 진우 너도 내일 경기를 준비해야지.”
모두들 인사를 하고 조승운의 방을 나서려는데 장박사가 문득 다시 돌아서더니 진우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이번에 카이스트에 열린 심포지움에 참석했다가 마침 뉴올림포스 행성에 사는 생물들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그 발표를 듣다가 생각나는 게 있어서 헌터 양성소에 들른 김에 거기서 책을 하나 빌려왔다.
뭐 별 일이야 있겠냐마는 이런 일을 겪다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고하라고 가져왔지. 마지막 날 경기가 단체 사냥이라고 했니?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두는 것도 괜찮을 거다.”
장박사가 건네 준 책은 ‘뉴 올림포스 행성의 맹수와 마수’라는 제목의 일종의 도감이었다. 뉴 올림포스 행성에 사는 여러 생물들 가운데 특히 맹수나 마수라고 불리는 것들을 골라, 사진과 함께 그들의 특성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가 되어 있는 책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
진우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장박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도 이렇게 된 거 어차피 휴가를 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너를 응원하마.”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서는 장박사를 보며 소현이 뭔가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결국 손을 들어 주먹을 쥐면서 입모양으로만 ‘파이팅’이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 한 마디 변변히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자 진우도 약간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 * * * *
뉴 올림포스 행성 시간으로 자정이 가까운 시각, 추적술 대회가 열렸던 센트럴 타워 동쪽의 숲 속에서 허진행은 영국 헌터 학교의 아스탄 교장을 만나고 있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지만 마지막으로 약속했던 사항을 확인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D 플랜은 확실하게 준비가 된 겁니까?”
어둠 속에서 특유의 피부색으로 인해 다소 파르스름한 빛을 내는 듯한 얼굴의 아스탄 교장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대로 이미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마나를 발현시킬 수 있는 중급 헌터가 아닌 이상 상대하기가 불가능할 겁니다.”
“그놈들이 사냥후 흔적을 깨끗이 없애는 게 분명합니까?”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곳의 생물들을 소개하는 책만 찾아보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스탄 교장의 어투가 조금 딱딱해지자 허진행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이미 계획했던 일 하나가 어그러지는 바람에 제가 조금 초조해졌나 봅니다. 다른 뜻이 있어서 한 말이 아니니 불쾌하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가 만나는 것이 남의 눈에 띄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초조해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 정도라면 직접 만날 필요 없이 그냥 헌터 패드를 이용해서 연락해도 되지 않습니까? 이러다 오히려 번거로운 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스탄의 지적에 허진행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신이 왜 갑자기 이렇게 초조해 하는지를 아스탄에게 굳이 말할 수는 없었다.
허진행은 몇 시간 전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센트럴 타워의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장수덕 박사 일행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던 일이 생각났다. 자신도 모르게 인근의 기둥에 몸을 숨긴 그는 윤치수에게 의뢰했던 암살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김상곤이 나타나다니. 조승운 영감이 미리 대비를 했군. 그래도 그렇지 총기까지 반출해 줬는데 실패를 하다니, 윤치수 이 바보같은 자식.’
비록 이번에는 검찰에게 미리 손을 써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자신이 한 일의 증인이 남아 있다는 것은 마치 아픈 이를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뉴 올림포스 행성에 오기 전에 미리 윤치호에게 의뢰를 넣어 장박사 부녀를 없애라고 한 것인데, 그들이 멀쩡히 살아서 이곳에 온 것이다.
‘돌아가면 기회를 봐서 조승운 영감까지 한꺼번에 제거를 할 방법을 찾아야겠군. 승부를 너무 길게 가져가면 자칫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결심을 하고, 조승운의 제자인 강진우라도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늦은 시각 이곳을 찾은 것이다. 아스탄 교장은 외계인이니까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조승운이 관련된 일은 자신의 뜻대로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것들이 많아 갑자기 초조한 마음이 든 것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허진행을 아스탄이 불러 세웠다. 돌아서는 그를 향해 아스탄이 품에서 조그만 피리 하나를 꺼내 주었다.
“이건?”
허진행의 물음에 아스탄이 조용히 그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천천히 전해 드리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됐으니 지금 드리겠습니다. 그 녀석들을 부를 수 있는 피리입니다. 사람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납니다. 입에 대고 불면 녀석들이 나타날 겁니다.”
허진행이 아무 말이 없이 피리를 받아 품에 넣고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서서 떠났다. 숲을 나서는 허진행을 보며 아스탄은 희미하게 웃고 서 있었다.
‘나는 분명히 당신이 부탁한 대로 일을 처리했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이 과연 그렇게 풀릴까?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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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피곤해서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는데, 놀라서 깨어보니 벌써 이 시간이네요. 글 올리는 게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