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근접 전투 시합은 궁술처럼 따로 예선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20개 학교에서 보통 5명씩 대표를 출전시켰지만, 학교에 따라서는 8명 전원을 근접 전투 출전 선수로만 채운 곳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 종목에만 700명 가까운 선수들이 출전했다.
이 선수들을 일대일로 대결시켜 이틀 만에 32강을 추려내야 했기 때문에 승리를 거둔 선수들은 첫날을 제외하고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경기를 해야 했다. 운이 좋게 중간에 부전승에 당첨될 경우에는 4번, 그렇지 않으면 선수마다 5번의 경기에서 승리해야 32강에 들 수 있었다.
궁술 개인전 예선에서 1위를 기록했던 진우가 근접 전투 시합에도 나서자 지켜보던 관객들 중에는 놀라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보통 한 종목에만 출전하는 것 아냐?”
“그러게. 더블 헌터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하나에 집중하는 게 보통인데. 어린 나이에 너무 과욕을 부리는 것 같은데?”
“1학년이 궁술 솜씨가 그렇게 뛰어난데 과연 근접 전투 실력은 과연 어떨까? 난 기대가 돼.”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조승운은 속으로 웃었다.
‘더블? 이미 트리플일세 이 사람들아.’
* * * * *
참가한 선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근접 전투의 예선은 무려 20개의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실내에는 그 자리를 도저히 다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센트럴 타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넓은 평야 위에 급조된 경기장을 만들었다. 다만 32강부터는 센트럴 타워 안에 있는 체육관에서 경기를 진행한다는 것이 대회를 주관한 영국 헌터 학교 측의 발표였다.
진우의 근접 전투 첫 상대는 브라질에서 온 선수였다. 그는 무기를 들지 않고 맨손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것을 본 진우는 자신도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내려놓고 맨 손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진우가 검을 두고 오는 것을 본 브라질 선수가 경기 진행을 맡은 심사위원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심사위원이 진우에게 영어로 말을 했다.
“특기가 검이면 굳이 맨손으로 할 필요가 없답니다. 자신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는 군요.”
브라질 선수가 심사위원의 말과 함께 자신의 두 팔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양 팔목에 쇠로 된 토시가 끼워져 있었다. 진우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상관 없습니다. 그냥 맨손으로 하겠습니다.”
진우의 말을 전해들은 브라질 선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자유자재로 노는 게 몸이 아주 유연해 보였다.
고개를 땅에 쳐박듯이 숙인 채 회전 발차기를 하기도 했다. 카포에라 계통에서 발전시킨 격투술을 익힌 듯했다.
진우는 가볍게 제 자리에서 뛰며 손목과 발목의 관절을 풀었다. 심판의 경기 시작 신호가 떨어졌다.
진우는 시작과 동시에 가볍게 스텝을 밟으면서 상대를 향해 전진했다. 진우가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브라질 선수가 긴 발을 휘두르며 빨랫줄 같이 날카롭게 휘어지는 발차기를 시도했다.
정강이 부근을 노린 일격이었다. 진우는 왼 발을 들어 발바닥으로 상대의 발목을 누르는 형식으로 방어를 하고는 순식간에 상대의 몸 안쪽을 파고들며 짧게 안면을 향해 끊어치는 주먹을 날렸다.
브라질 선수가 급히 고개를 흔들며 뒤로 물러섰다.
진우는 물러서는 상대의 속도에 맞춰 거리를 계속 좁혀가며 왼 손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제대로 맞으면 잠시 동안 숨을 쉬기 힘든 곳이었다. 그러자 브라질 선수는 허리 아래로 머리를 숙이며 크게 휘돌리는 발차기를 시도했다.
큰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상대의 발이 머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다.
진우는 허리와 머리를 살짝 숙이면서 상대가 축으로 삼고 있던 왼발을 살짝 걷어찼다. 브라질 선수가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을 노린 진우의 오른발이 상대의 복부를 파고 들었다.
“컥”
비명소리와 함께 상대가 나가 떨어졌다. 잠시 숨이 돌아오지 않는 고통이 온 몸을 엄습할 것이다.
진우는 쓰러진 상대의 위에 재빨리 올라타 왼손으로 목을 누른 채 오른손을 들어 상대의 미간을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놀란 상대의 눈앞에서 그의 주먹이 멎었다.
그 상태로 진우가 상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브라질 선수가 체념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손을 들어 흔들었다.
항복의 표시였다.
상대의 부상을 고려하지 않고 시합을 했다면 조금 더 빨리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무투 대회에서 선수가 부상을 당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기도 했다.
마나 치료사까지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웬만한 부상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진우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직 자신의 실력을 다 보일 필요는 없었다.
32강 경기 전까지는 조금 천천히 하는 것도 괜찮았다.
진우가 인사를 하고 경기장을 나가자 멀리서 멀티패드와 전광판을 통해 그의 경기를 지켜보던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격투술도 괜찮은데? 순식간에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 냈어.”
“이래서는 궁술과 격투술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장기인지 모르겠는걸?”
다른 경기장에서 근접 전투 개인전 심판을 맡고 있던 조승운도 커다란 전광판에 비친 진우의 승리 소식을 보고는 속으로 씩 웃었다.
‘격투술로 이겼군. 하지만 사실은 검술이 주특기지.’
그건 조승운만의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제자의 활약이 그저 흐뭇하기 이를 데 없었다.
* * * * *
근접 전투 예선은 첫날 진행해야 했던 경기가 300회가 넘다 보니까 모든 선수들이 한 번씩 경기를 치르고 나자 그것으로 하루 경기가 종료되었다. 선수들은 지루하게 기다리다 한 경기를 소화했을 뿐이지만, 심판들에게는 아주 고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모두들 수고했다. 우리 학교에서 네 명이나 첫 예선을 통과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창식이와 병희는 아깝게 됐다만 단체전 경기가 남아 있으니 힘 내라.”
학교 일 때문에 하루 늦게 무투 대회에 합류한 진승훈 인솔 교관이 휴게실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했다. 근접 전투 예선에는 진우를 비롯하여 맨손 격투술이 특기인 주장 나상진, 톤파를 쓰는 민아라, 창을 잘 다루는 이병희, 그리고 쌍 도끼의 권정과 검술 상급반인 김창식 등 6명이 도전했다.
문수련은 도를 사용했지만 추적술 대회에 출전 신청을 하면서 근접 전투에는 나서지 않았다. 김창식과 이병희가 아깝게 첫 시합에서 패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네 명이 모두 나란히 예선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어 2차전에 출전하게 됨으로써 팀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 작년에는 첫 경기에서 두 명밖에 통과하지 못했었다. 다른 학교와 비교해 보아도 올해 성적은 아직 좋은 편이야.”
하루 종일 꼬박 경기를 지켜보느라 피곤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조승운도, 잠시 휴게실에 들러 그렇게 격려를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진우는 돌아서 나가는 조승운의 얼굴에 언뜻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보았다.
‘허진행 일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 모양이네. 그 사람을 쫒아내는 일이 잘 안 돼서 그러신가?’
허진행과 관련된 일인 것은 맞았지만 조승운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진우의 짐작과는 달리 장박사 일행의 안전에 관한 문제였다.
‘허진행 그 녀석이 비록 검찰을 구워삶아 위기를 모면했다고는 하지만, 불안의 씨앗을 남겨두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큰데... 상곤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걱정이군.’
조승운은 장박사 부녀에게 경호를 붙였다는 얘기는 진우에게 하지 않았다. 최근 진우가 소현이가 자주 만나는 눈치가 있던 터라 대회를 앞두고 공연히 불안해할까 봐 숨긴 것이다. 악연을 맺은 놈 하나 때문에 늘그막까지 걱정이 잦아들 날이 없다며 조승운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 * * * *
둘째 날, 진우는 다행히 한 번의 부전승을 얻어 세 번의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무사히 32강에 안착할 수 있었다. 상대로 나선 선수들이 전 날과는 달리 모두 무기를 들고 나서는 바람에, 둘째 날은 진우도 검을 들고 시합을 했다.
오전에 검을 들고 나온 독일 선수를 가볍게 물리치고 난 뒤에,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상대했던 중국 선수는 정태가 사용하는 것하고 비슷한 청룡언월도를 들고 나왔다. 2m가 넘는 큰 도는 무게만 해도 수십 킬로그램을 간단히 넘을 것 같아 보였는데도, 그는 그것을 가볍게 사용했다.
진우가 신체 재구성을 거치면서 근력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았다면, 상대의 도가 지닌 힘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마나를 사용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우는 풍차처럼 언월도를 거칠게 휘두르며 들어오는 상대의 칼 끝을 슬쩍 슬쩍 비껴서 튕겨내며 틈을 보다가 번개같이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있는 힘을 다해 허리 어름을 노리고 내지르는 그의 칼 끝을 도의 손잡이를 내려 간신히 막아낸 상대는 그 무거운 언월도 전체가 찌르는 울리는 느낌에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크윽”
중국 선수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간신히 언월도를 움켜잡는 순간 이미 진우의 검이 그의 목 옆에 비스듬히 닿아 있었다.
“시합 끝. 한국 승”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키고 재빨리 진우의 승리를 선언했다. 진우가 검을 거두고 가볍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중국 선수 역시 물러나 인사하며 진우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장 폐이량이 네 궁술 솜씨가 대단하다고 했는데, 검을 쓰는 걸 보니까 어떤 게 너의 진짜 장기인지 모르겠군. 대단한 시합이었다. 축하한다.”
그가 뭐라고 떠들기는 했지만, 중국어를 모르는 진우는 그냥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기장을 나갔다.
오후 늦게 벌어진 세 번째 시합은 아프리카 케냐 헌터 학교에서 창을 들고 출전한 흑인 선수를 맞아 역시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케냐 선수가 진우를 향해 들고 있던 창을 던지기까지 했지만, 진우가 그것을 가볍게 쳐 내자 그는 바로 항복을 선언했다.
진우가 궁술에 이어 근접 전투까지 32강에 합류하자 다시 한 번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이러다가 우리 1학년 학생이 궁술하고 근접 전투를 모두 우승하는 거 아닙니까? 오늘 경기하는 거 보니까 그다지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두는 것 같던데요?”
도인호 장관의 물음에 허진행은 가타부타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이를 악물었다.
‘궁술이 뛰어난 줄 알았더니, 검을 쓰는 솜씨도 제법이군. 역시 조승운 영감의 제자라는 건가?’
“허회장?”
허진행이 자신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도인호가 재차 그를 불렀다. 깜짝 놀란 허진행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만 되면 우리나라의 위상이 올라가겠습니다. 하하하.”
정확히는 한국 헌터 학교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이었지만, 도인호는 허진행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 * * *
근접 전투 예선 둘째 날이 끝났을 때, 한국 헌터 학교를 대표했던 선수들 가운데에는 진우와 주장인 나상진 만이 32강에 합류했다. 민아라는 오전에 있었던 첫 시합에서 네덜란드 대표를 만나 제한 시간인 20분이 지날 때까지 나름 선전했으나, 아쉽게 판정패하고 말았다.
권정 역시 오전 시합과 세 번째 시합에서는 어렵게 승리를 따냈지만, 오후에 치렀던 네 번째 경기에서 결국 미국 대표에게 일격을 당했다. 쌍 도끼를 든 권정은 창과 방패를 들고 나온 상대의 방패에 도끼를 이용한 공격이 계속 막히다가, 결국 상대의 창에 복부를 찔리는 상처를 입고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기다리고 있던 마나 치료사가 재빨리 상처를 치료해서 단체전에 나서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권정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상성이 영 좋지 않은 상대를 만나는 바람에 아쉽게 패했다는 안타까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것이다.
다음날 펼쳐진 추적술 예선 시합은 대표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은 학교도 있어, 백 명이 조금 못 되는 선수들로 경기를 치렀다. 센트럴 타워 동쪽에 있는 제법 큰 숲을 이용하여 만든 경기장은 폭과 길이가 각각 10 Km가 넘는 거대한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오전과 오후, 각각 50명 가량이 동시에 숲 속에 진입하여 미리 마련된 여러 가지 흔적을 통해 지정된 맹수나 포식자의 위치를 찾아내는 게 과제였다.
선수들마다 찾아내야 하는 목표물이 각각 달랐는데, 전체 선수들의 과제는 고르게 10개의 목표물에 따라 분류되어 있었다. 최종 목적지에는 10 종의 맹수, 혹은 포식자의 모형이 놓여 있었다.
각 목표물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선수가 목표물 옆에 놓여 있는 멀티 패드에 자신의 이름과 소속 등을 입력하면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각자의 선수들 머리 위에는 무인 카메라를 장착한 비행 드론들이 따라 다니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부정 행위를 감시했다.
간혹 남의 목표물에 관한 흔적을 일부러 지우거나, 심지어 엉뚱한 흔적을 만들어 놓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추적술 예선 시합이 끝나고, 오전과 오후를 합해 20명의 결선 진출자가 결정되었다. 한국 헌터 학교 대표인 문수련은 다행히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가장 먼저 달성함으로써 결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실제 헌팅에서도 추적 능력을 가진 동료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인재였기 때문에, 예선을 통과한 선수들은 함께 출전한 같은 학교 대표 선수들로부터 아낌 없는 축하를 받았다.
* * * * *
개인전 종목별 예선이 모두 끝나자 참석했던 관계자나 기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우승자에 대한 예측이 진행되었다. 다양한 선수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궁술과 근접 전투에서는 대회 최초의 1학년 선수인 진우의 이름이 우승 예상 후보로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대회의 공식 영상 제작팀인 연합회 방송팀은 물론, 비싼 포털비를 물어가면서까지 취재에 나선 세계 여러 곳의 대형 언론사로부터 진우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왔다. 하지만 진우의 의사를 확인한 진승훈 인솔교관에 의해 모든 인터뷰 요청은 사전에 엄격하게 차단당했다. 개별적인 접촉을 시도했던 일부 기업들의 시도도 역시 학교별 숙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진우 역시 숙소와 식당, 경기장 이외의 곳은 함부로 돌아다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로서는 난생 처음 치르는 유명세였다.
예선전이 모두 끝나고 나서 한국 헌터 학교 학생들은 진승훈 인솔 교관과 함께 숙소에서 간단하게 회식을 겸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긴장감을 해소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있을 단체전을 대비한 각오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음료와 음식을 놓고 서로 경기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과 각국 선수단에 대해 돌아다니는 평가들을 이야기하던 중에 갑자기 추적술에 참가했던 문수련이 진우를 향해 물었다.
“근데 진우야, 사실 그동안 묻고 싶으면서도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가만 있었는데 말이야, 너 혹시 마나를 각성한 거니?”
문수련의 질문에 갑자기 대화가 뚝 끊기면서 모두의 얼굴이 진우에게로 향했다. 그들 역시 문수련과 같은 짐작을 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워낙 전례가 없는 비현실적인 가능성인데다 그 문제에 대해 본인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니 차마 직접 물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데 없는 질문에 표정이 굳은 진우의 눈이 인솔 교관인 진승훈을 향했다. 진승훈은 상급 격투술 교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나를 각성하지 못한 특이한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진승훈도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는지 진우의 눈길을 받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할 수 없다는 듯이 진우가 입을 열었다.
“네. 지난 여름에 각성했어요. 운이 좋았어요.”
사실은 그보다 훨씬 일찍이었지만, 진우는 일단 그렇게 말을 했다. 잠시 방안에 정적이 감도는 가 싶더니 순식간에 ‘와아~’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들이 얼굴에는 부러움과 감탄, 시샘 등이 복잡하게 얽힌 표정이 떠올랐다.
“어쩐지, 이 자식 1학년이 너무 세다고 생각했었어.”
“야,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마나를 각성하게 된 거야? 비결이 있는 거야?”
“너 그럼 궁술 쪽으로 갈거니, 아니면 검술 쪽으로 갈 거니?”
순식간에 여러 개의 질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진승훈은 갑자기 난장판에 가까운 소란 속에 휩싸인 회식 자리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미 마나 각성을 포기하고 사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진우처럼 이른 나이에 마나를 각성했다는 것은 사기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어리고, 자신들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럽기는 하지만, 아직은 축하해 줄 여지가 있는 나이인 것이다.
동료 중에 한 명이 마나를 각성한 사람이라는 것은, 무투 대회처럼 아직 전문 헌터에도 이르지 못한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시합에서는 필승의 카드를 쥔 것이나 마찬 가지의 일이었다. 이미 경험을 통해 진우가 1학년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가 마나를 각성했다는 사실을 본인의 입으로 확인받자, 주장 나상진을 포함한 다른 3학년들은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