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54화 (54/235)

54화

무투대회에 참가할 교내 대표를 뽑기 위한 선발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2학년들 가운데에는 1년만 기다렸으면 자신도 대표로 나갈 수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모습들은 2년마다 한 번씩 무더기로 발견되는 익숙하면서도 가소로운 풍경에 불과했다.

2학년 헌터반이 전체 200명 정도 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무투 대회 대표는커녕 3학년 헌터반으로 진학하는 사람들 자체가 절반인 백여 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머지는 2학년 진급 시에 대거 떨어져 나갔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3학년에 올라 갈 때 다시 진학반으로 반을 변경했다.

중급 전투 훈련 과목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학년인 진우가 벌써 상급1 과목을 셋이나 통과했다는 소식은 학교를 뒤흔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는 얘기가 아직은 더 우세했지만, 학생들과 교관들 사이에서는 이러다가 헌터 학교 역사상 최초로 1학년이 학교 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조심스럽게 돌고 있었다.

정태와 진우가 함께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면, 그의 얼굴을 알아본 이들이 흘깃거리며 쳐다보기 일수였고, 일부는 아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빤히 쳐다보면서 수근대기도 하였다.

“너 때문에 요즘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진우도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던 터라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내 인생 최대의 낙이 먹는 건데, 너는 그걸 빼앗아 버렸어. 살아생전 내가 밥 먹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런 녀석이 식판 위로 음식이 하나 가득이다. 진우가 속으로 어이없어 하면서 애써 모른 척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너 이번에 뉴 올림포스 행성에 가게 될 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돌려 보니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김도훈과, 무표정함도 귀엽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얼굴 가득히 증명하고 있는 차연희가 서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던 정태의 얼굴에 어느새 웃음이 헤벌쭉하다.

김도훈이 진우의 어깨를 툭 쳤다.

“진우 네가 이번 대표 선발 대회에서 학교 대표로 뽑혀 무투 대회에 나갈지로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 네가 정말 헌터 후보자 테스트장에서 봤던 그 진우가 맞는지 잘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정말 대단하다.”

김도훈이 내 옆 자리에 털썩 앉자, 차연희도 망설이는 듯 하더니 정태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정태 녀석 쓰러진다 쓰러져. 김도훈이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정말 학교 대표로 뽑혔으면 좋겠다. 그런데 뉴 올림포스 행성에 가게 되면 거기서 혹시 우리 아버지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네.”

“너희 아버지?”

“응. 우리 아버지하고 다른 기업들 대표 몇 분이 이번에 무투 대회 보려고 뉴올림포스 행성에 간다고 하더라.”

김도훈이 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건너 편에 앉아 있던 차연희의 얼굴이 약간 냉랭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표정이 없는 모습이지만, 1년 가까이 보다 보니 요즘은 변화가 없어 보이는 그 얼굴에도 어느 정도 표정 변화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김도훈과 차연희 집안이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라고 했는데, 뭔가 늘 좋은 관계만은 아니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길 기업가들이 왜 가지? 특별히 흥미를 끌 것도 없는데?”

정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말이 맞다. 무투 대회가 헌터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제법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업가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 한 건 없었다. 무엇보다 돈 되는 일이 없다. 김도훈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춰 말했다.

“지난 주말에 집에 들렀다가 들은 얘긴데 말이야, 아무래도 내년에는 포털 관리 권한이 외계인에게서 지구인들에게로 넘어올 것 같은가 봐.”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얘기는 진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태 녀석은 처음 듣는 얘기인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응.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도 포털 관리 권한을 어디서 넘겨받을지를 두고 정부랑 몇몇 단체들이 서로 치열하게 눈치를 보고 있는가 봐. 거기서 기업들이 돈 냄새를 맡은 거지.”

“어떻게?”

“지금은 포털 관리를 외계인들이 하면서, 헌터들이 사냥을 통해 얻는 마나스톤이나 마나 크리스털에 대한 일차 매입 권한도 헌터 양성소와 외문연에서 독점하고 있거든. 그쪽에서 전량 매입했다가 그걸 다시 정부나 기업에 넘기는 거지. 그런데 아버지 얘기로는 사실 그 가격이 마나 스톤의 산업적인 가치에 비해서 너무 낮게 책정이 되어 있대. 다만 외계인들이 그걸 매입해서 다시 넘길 때 특별히 이익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다들 아무 소리 못하는 거지.”

그 말이 맞다. 마나 스톤의 활용도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원으로서의 용도다.

특히 발전용과 무중력 운송 장치의 동력원으로 마나 스톤이 쓰이면서 전기료나 운송비 등이 크게 내려갔다. 전기료의 경우 마나스톤이 발전에 사용되기 이전의 4분의 1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그것만 해도 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이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포털 관리 권한이 지구로 넘어오게 되면, 그 독점 매입 권한을 풀어야 한다는 소리가 많아. 헌터들이 가져오는 마나스톤이나 마나 크리스털을 어디에 팔지도 헌터들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는 거야. 만약 그렇게 되면 마나스톤의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이 된다는 건데, 그 때문에 마나스톤의 가격이 크게 오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봐.”

“그래서 헌터들에게 기업이 관심을 갖는다 이건가?”

“그래. 특히 앞으로 뛰어난 헌터가 될 인재들의 경우 미리 눈도장을 찍어 놨다가 기업들이 아예 연예인 매니지먼트 사업처럼 회사를 차려 계약을 맺으려고 하는 것 같아. 지원을 해 주는 대신 안정적인 마나 스톤의 공급 루트를 확보하려는 거지. 아버지 말로는 오성 전기나 오성 자동차 같은 경우 자칫하면 사활을 건 전쟁을 벌여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아무리 아는 사이라지만 이렇게 함부로 하고 다녀도 되냐? 어쨌든 얘기를 듣고 있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 뉴 올림포스에서 열리는 무투대회는 다른 때와는 달리 조금 북적거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지 결정이 된 뒤보다는 바로 직전이 더 시끄러운 법이니까. 어차피 경제야 잘 모르겠지만, 헌터를 꿈꾸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몸값이 올라갈 지도 모른다는 거니까, 딱히 나쁜 얘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조승운을 만나고서야 깨달았다.

*  * * * *

“모든 권력은 이익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익은 언제나 권력을 낳기도 하지.”

조승운이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며 이야기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조승운이 말이 얼핏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진우가 그에게 되물었다.

“지금까지는 외계인들이 권리를 권력으로 만들지 않았어. 지구인들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 과학기술이나 포털 관리 권한, 그리고 마나 스톤의 유통에 대한 독점권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구의 정치나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과학 기술이야 외문연을 통해서 조금씩 전파하는 현재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테니 별로 달라지는 게 없겠지만, 포털 관리 권한이 각국 정부나 특정 단체에게로 넘어가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어리석은 정부가 권력을 쥔 국가의 경우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국가 경제가 파탄이 나는 경우도 생길 거야. 각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헌터의 숫자에 따라 국제적인 힘의 균형이 달라질 수도 있고.”

진우는 그제서야 당장 헌터들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헌터들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로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헌터들을 적극적으로 대우해 주는 나라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헌터들이 마나스톤이나 각종 희귀 자원들을 수집하기 위한 노예로 전락하는 곳도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포털을 통해 자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아예 망명을 신청하는 헌터들도 나올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나라마다 정책의 차이로 인해 헌터들의 대규모 이합집산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전투 훈련 과목의 종류는 상당히 다양한 편이었지만, 무투 대회의 학교 대표 선발전은 궁술과 근접 전투, 추적술의 세 분야에 한해서만 진행되었다. 뉴올림포스 행성에서 열리는 무투 대회 자체가 개인전에서는 그 세 분야에 대해서만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검, 도, 창, 도끼 등 무기를 들고 하는 모든 전투와 맨손 격투술은 모두 근접 전투에 포함되었다.

진우는 대외적으로 조승운의 제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근접 전투 분야에만 검을 들고 출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출전 분야를 신청하기 전날 영국에 있는 멜리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우 군. 당연히 궁술에 출전할 거지? 뉴올림포스에서 진우 군이 활을 쏘는 걸 보고 싶어. 내가 이곳에서 한국에 있는 제자 자랑을 엄청 했거든. 사람들이 모두 궁금해 하고 있어.”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궁술에 참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김도훈의 말에 따르면 이번 뉴올림포스의 행성에서의 무투 대회는 다른 때보다 세간의 관심이 더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진우는 헌터 학교를 졸업한 뒤 당분간 여러 행성들을 돌며 사냥과 훈련을 병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자신이 더블, 아니 트리플 헌터라는 것은 숨기더라도, 일단 궁술에도 솜씨가 있다는 것을 알려두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았다.

*  * * * *

한 학교에서 무투 대회에 참가하는 대표는 8명이었다. 보통 궁술 대표 2명에 근접 전투 대표 5명, 그리고 추적술 대표 1명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뉴올림포스 행성에서 열리는 무투 대회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치러졌다. 먼저 개인전에서는 궁술과 근접 전투, 추적술에서 각각 우승자를 선발했다.

단체전의 경우, 학교별로 5명이 참가하는 집단 전투와 단체 사냥의 두 종목이 있었다. 이 두 종목의 점수를 합계해서 단체전 우승 학교가 정해졌다.

집단 전투는 궁수 1명과 근접 전투원 4명이, 그리고 단체 사냥은 여기에서 근접 전투원이 1명 빠지고 대신 추적술을 맡은 학생이 1명 추가된 인원을 구성하였다. 다만 학교 대표는 교체 인원을 감안하여 궁수 2명, 근접 전투원 5명, 그리고 추적자 1명, 도합 8명을 선발했다.

진우는 궁술과 근접 전투에 각각 참가 신청을 했다. 추적술의 경우 아직 학교에서는 수업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다. 각 종목의 참가는 해당 종목에 관한 수업을 듣거나, 듣고 있는 학생에 한해서만 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궁술의 경우 생각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 진우를 포함하여 상급 궁술 수업을 들는 학생이 모두 10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궁수는 나르샤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나를 발현하기 전까지는 사냥 전력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서 제한이 많았다. 발현은커녕 아직 마나를 각성하지조차 못한 학생들이 상급까지 꾸준히 궁술에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졸업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헌터치고는 큰 수입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궁술 종목에서 진우는 어렵지 않게 최종 결선까지 올라가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무난하게 학교 대표로 선발되었다. 함께 선발된 다른 학생은 안나예라는 3학년 여학생이었는데, 마침 잠깐 동안이기는 하지만 나르샤의 수업을 함께 들었던 학생이었다.

나르샤는 자기 반 학생 중에서 두 명이나 학교 대표로 선발되었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하였다. 학교 역사상 최초로 1학년이 대표로 선발되는 것을 넘어서 종목별 우승까지 차지해 버리자 학교 전체가 들썩였다.

안나예 역시 비록 2등으로 대표에 선발되기는 했지만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진우가 근접 전투 대표로도 선발될 경우 단체전에는 검사로 나설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자신이 학교를 대표하는 궁수로 참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접 전투에서도 진우는 검을 들고 나가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이왕 나섰으면 망신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며 조승운이 눈을 부라리기도 했지만, 진우 역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본인의 실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수 있는 데까지는 보여주는 것이 진우가 가지고 있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비록 마나를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진우는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상대를 꺾어간 끝에 결국 대표로 선발되었다. 진우가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박수를 치는 사람보다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게 정태의 이야기였다.

진우가 궁술에 이어 근접 전투까지 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한국 헌터 학교의 무투 대회 대표는 궁수 1명, 근접 전투 6명, 그리고 추적술 1명으로 구성되었다. 평소와는 달리 궁수 대표가 1명 줄고, 대신 근접 전투 대표가 1명 늘어난 숫자였다.

진우는 개인전에서는 궁술과 근접 전투에 모두 출전하되, 단체전에서는 검사로만 참가하기로 하였다.

학기말이 되면서 12과목이나 통과 시험 신청을 한 일반 교과 공부에 매달리느라, 진우는 정작 무투대회를 위한 훈련에는 거의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새벽마다 하는 명상과 가벼운 훈련 이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교과 공부에 할애했다.

가끔 정태를 상대로 새로 익힌 기술을 연습하느라 기숙사 방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나오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오랜만에 평온하게 진행되는 학교 생활이 이어졌다.

12과목에 대한 교과 시험이 모두 끝나고 다행히 모두 통과 승인을 받은 진우는 드디어 뉴올림포스 행성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동안 단체전 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느라 3학년들에게 몇 번이나 고개르 숙였지만, 정작 그들 역시 학기말 교과 시험을 준비하는라 단체전 훈련을 소홀히 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1학년들이 또 다시 케이튼 행성으로 훈련을 가기 전의 귀가 휴가를 떠난 기숙사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훈련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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