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52화 (52/235)

52화

“진우야. 이번 학기에는 학기 중간에도 상급 전투 과목을 신청할 수 있다는 공고가 뜬 거 봤지? 너도 신청 할 거냐?”

학교 식당에서 정태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정태가 새로 뜬 공고 얘기를 했다. 그렇잖아도 진우 역시 그 공고를 보고 상급 전투 과목을 신청할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생각은 그런데, 일단 교관님들한테 먼저 말씀드려 보고. 너무 빠르다고 하실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너무 빠르다고 할 리는 없었다. 권일도나 나르샤, 조승운 모두 진우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묻는 게 맞았다. 그리고 새로운 교관들을 추천받을 필요도 있었다.

일전에 세 사람 모두 상급 전투 과목은 자신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 들으라고 권했었다. 교감이 하도 성화를 부리기도 했지만, 진우가 너무 빨리 중급 과목들을 통과하는 바람에, 부당하게 봐주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상급 과목은 다른 교관에게 신청을 해서 통과한다면 그런 소문은 많이 가라앉을 게 틀림없었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권한 데에는 진우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상급 전투 과목을 일찍 통과하려면 교관과 대련해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진우는 보나마나 학기 중에 대련을 신청할 것이다.

이제 막 중급 헌터가 된 나르샤는 그렇다 치더라도 각각 상급과 최상급 헌터인 권일도와 조승운이 진우와의 대련에서 진다는 것은 아무리 그들이라도 기분 좋은 일일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진우를 꼭 이길 거라는 자신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  * * * *

나르샤와 권일도는 진우가 상급 전투 과목을 신청하는 것에 대해 선뜻 찬성했다. 적당한 교관을 추천해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승운은 조금 망설였다.

“상급 전투 과목을 학기 중에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어차피 교장 재량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최명도 교감이 밀어붙여서 성사시켰다고 들었다. 그게 조금 개운치가 않아. 혹시 허진행의 입김이 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조금 더 알아보마. 며칠만 기다렸다가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

허진행이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자 진우도 조금 고민이 되었다.

“제가 상급 전투 과목을 신청하는 게 허진행에게 유리한 점이 있는 건가요?”

조승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에는 의도를 잘 몰랐는데, 짚이는 게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올해 겨울에는 뉴 올림포스 행성에서 전 세계의 헌터 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무투 대회가 열린다.

그 때문에 10월 말쯤에 학교 대표로 무투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을 뽑기 위한 선발 대회가 열릴 거야. 선발 대회 참가 자격이 상급 전투 과목을 수강했거나 수강 중인 학생으로 제한된다. 또한 상급 전투 과목을 듣는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거기에 참가를 해야 하지. 상급 전투 과목을 신청하게 되면 너도 선발대회에 참가해야 하고, 일부러 지려고 하지 않는 이상 결국 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크지. 만약 그렇게 되면 일학년이 학교 대표가 되는 최초의 일이 될 거다.”

“뉴 올림포스 행성에서 열린다는 그 무투 대회가 위험한가요?”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헌터 학교는 헌터를 키워내는 곳이다. 그리고 헌터는 스포츠 선수가 아니야. 목숨을 걸고 행성을 탐험하고 맹수와 포식자를 상대로 싸움을 하는 직업이지.

헌터 학교 무투 대회 역시 그런 점을 배제하지 않는다. 학교 대표 선발 대회야 학생들 간의 결투로만 진행되겠지만, 뉴 올림포스 행성에서 진행되는 경기에는 직접 맹수를 상대로 하는 것도 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최대한 대비를 하겠지만 의외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허진행이 뭔가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군요.”

“그래. 이번 대회를 주관하는 영국 헌터 학교의 아스탄 교장은 외계인이면서도 지구인의 문화와 가치관에 조금 많이 동화가 된 것 같다는구나. 타르코스 소장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소장이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 신경이 쓰여. 아스탄 교장과 허진행 사이에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일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을 의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며칠이라도 조금 더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조승운이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서 일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동안 진우는 평소와 다름 없이 훈련과 공부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허진행이 조승운이 아니라 자신을 대상으로 한 계획을 꾸밀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했다.

허진행이 조승운을 스카디안 행성에 보내면서 그를 제거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데에는 진우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탓도 있다.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진우처럼 규격 외의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스카디안 행성으로 조승운을 보내려고 음모를 꾸몄을 때 허진행은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일의 성공을 자신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자신의 수하를 모두 잃었다.

허진행이 정말로 진우를 상대로 뭔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그건 그 역시 진우에 대해 어렴풋이 의심을 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의 최종 목적은 헌터 협회장으로서 포털 관리 권한을 넘겨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으로서 조승운을 제거하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다시 더 밑으로 내려가서 진우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고 있다.

그건 그가 잔인한 맹수이면서도 동시에 신중한 책략가임을 의미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그에게는 그런 준비를 통해 계획을 진행시킬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허진행은 상급 헌터이지만, 권일도나 조승운 교관과는 기질이나 성격 자체가 달랐다. 권일도와 조승운은 헌터로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위험이 있으면 자신의 힘으로 맞붙어서 깨부수는 걸 좋아한다. 조승운의 경우는 연륜이 쌓임에 따라 음모나 책략에 익숙해진 측면이 있지만, 그 자신이 그런 일을 직접 행하려고는 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허진행은 달랐다.

그는 힘을 가진 상급 헌터이면서도 기본적으로는 교활한 책략가처럼 행동했다. 그는 직접 힘을 쓰기보다는 상대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 알맞은 덫을 놓는 걸 좋아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그의 강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우는 그것을 그의 약점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알아봐야 할 것이 있었지만, 만약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늦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 *

일주일 뒤 조승운은 진우와 함께 타르코스 소장을 만났다. 펄스너 교장도 함께 한 자리였다. 아무래도 아스탄 교장이 외계인이다 보니까 그에 대한 조사를 타르코스 교장과 펄스너 교장에게 부탁을 한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아스탄 교장과 허진행 회장 사이에 특별한 친분이나 관계가 있다는 증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저런 행사를 통해 두 사람이 몇 번 자리를 함께 한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연관성을 확신할 수 있는 뚜렷한 뭔가가 나온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직 시간이 더 있으니 계속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코스 소장과 펄스너 교장은 조승운에게 사과를 했다. 조승운은 손을 내저으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조금 답답하기는 했다.

아스탄과 허진행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연관 관계가 없다는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판단을 하기가 다소 애매해졌다.

묵묵히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진우가 입을 열었다.

“교관님, 저 그냥 상급 과목을 신청했으면 합니다.”

조승운의 이미가 찌푸려졌다.

“객기를 부릴 일이 아니다. 스카디안 행성에서의 일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돼. 그때는 상황이 워낙 다급했다고는 하나 확실히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번 당했으면서 또 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번에는 놈이 노리는 대상이 너일 가능성이 커.”

“그래서 해보겠다는 겁니다. 오히려 지금이 역공을 취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허진행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저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 허진행은 치밀한 책략가입니다. 책략가들은 계획이 어긋날 때 오히려 허점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의 계획에 구멍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그가 천진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여기 계신 분들이 저를 보호해 주실 거잖아요.”

세 사람의 얼굴이 순간 멍청해졌다.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지? 조승운이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가 진우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았다.

“해 보고 싶은 거냐?”

“네.”

“너 때문에 이 늙은이의 뼈마디에 골병이 들더라도?”

“나중에 제가 안마해 드릴게요. 저 치료마나를 쓸 수 있잖아요.”

조승운의 얼굴에 기가 막혀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하긴 상자를 열어보지 않고서는 겉만 두드려서 속을 알 수가 없지. 좋다. 일단 해보자. 아직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세울 시간은 있으니까. 정 안 되면 나중에 대표 자격을 포기하면 되지. 징계는 먹겠지만 설마 퇴학이야 당하겠냐. 안 그렇습니까, 교장 선생님?”

펄스너 교장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 *

그날 모임을 끝내고 돌아가기 전에 진우는 펄스너 교장에게 뉴 올림피아 행성에서 개최되는 무투 대회의 종류와 구체적인 진행 방법, 그리고 자세한 일정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울러 대회에 참여하는 심사위원에 대해서도 상세한 내용을 물었다.

펄스너 교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결정이 되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말해 주었다.

진우는 영국의 멜리사에게도 전화를 해서 그쪽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조사를 부탁했다. 아무래도 대회의 주관자가 영국의 헌터 학교이다 보니, 여기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진우는 검술과 궁술, 그리고 격투술에 대해 상급1 과목을 신청했다. 수강 인원에 여유가 있는 교관들 가운데에서 나르샤와 권일도, 그리고 조승운이 각각 적당한 교관을 추천해 주었다. 그가 상급 전투 과목을 신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진우는 자신이 이번 학기 들어 익히기 시작한 마나 통제의 기술을 놓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시작했다. 아직 명확하게 확정된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일단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새로운 기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 동조로 나가고자 하는 자신의 성장에 좋은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  * * * *

진우가 그렇게 새로운 기술의 연마에 힘쓰고 있는 동안 조승운은 자택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던 옛 제자를 만나고 있었다.

“상곤입니다, 스승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상급 헌터 김상곤이 그의 클랜 ‘곤’의 일행을 이끌고 조승운을 찾아와 넙죽 절을 하며 인사를 했다. 조승운은 고소를 지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가끔 소식은 전해 들었다. 요즘도 계속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네.”

“다치거나 한 일은 없고?”

“큰 부상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바쁠 것 같으냐?”

김상곤이 고개를 들어 조승운을 바라보았다.

“명철이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시다고요?”

조승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할 수 있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조승운이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김상곤에게 건네주었다. 안에서 장수덕과 장소현의 사진이 나왔다. 그들의 신상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함께 있었다.

“당분간 이 사람들을 너희 클랜 아이들이 좀 보호해 줬으면 좋겠다. 명색이 상급 헌터인 너에게 이런 일을 시켜 미안하다만, 내 아들과 손녀나 다름없는 아이들이다.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그 아이들에 대해 걱정을 좀 덜었으면 싶구나. 허진행이 관계된 일이다. 해 줄 수 있겠느냐.?”

김상곤은 표정 하나 없이 서류를 챙겨 넣었다.

“알겠습니다.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게 보호하겠습니다.”

조승운이 봉투를 하나 더 꺼냈다.

“10억이다. 기한을 정할 수 없어서 일단 그렇게 넣어 두었다. 생각보다 길어지면 더 주도록 하마.”

“필요 없습니다. 스승님께 돈을 받아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자 김상곤의 옆에서 희고 작은 손이 쏙 나오더니 봉투를 집었다.

“잘 쓸게요, 스승님.”

중년의 여인이 나이답지 않게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봉투를 챙겼다.

“이 사람이.”

김상곤이 눈을 치켜떴지만 여인은 혀를 쏙 내밀고는 시치미를 뗐다.

“하하, 그래도 화정이 네가 이 녀석 옆에 있어서 내가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무뚝뚝한데다 경제 관념도 없어서 네가 고생이 좀 심하겠구나.”

“맞아요 스승님. 헌터는 대가를 받고 일한다. 그게 선생님께 배운 거잖아요.”

김상곤이 화를 벌컥 냈다.

“그래도 그렇지.”

“아니다. 화정이 말이 맞다. 내가 가르친 게 그건데 당연히 너희들도 그렇게 해야지. 온 김에 식사나 하고 가거라. 일은 내일부터 시작하자.”

김상곤과 박화정은 헌터 학교 동문이었다. 졸업한 뒤 둘 다 마나를 각성하자 사람을 모아 ‘곤’이라는 클랜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얼마 후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다.

많은 노력 끝에 자신들의 클랜을 헌터들 사이에서도 제법 이름이 난 클랜으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조승운은 그런 그들을 불러 장수덕과 장소현의 안전을 부탁한 것이다.

조승운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약점을 없애는 준비부터 했다. 김상곤은 사람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그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양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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