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46화 (46/235)

46화

베이스 캠프에 들어와 주변을 살피던 진우가 진성환에게 물었다.

“그럼 저 사람들이 매고 있는 배낭에는 간이 포털 장치 같은 것은 없겠군요. 애초에 이곳에 있는 걸 사용할 생각이었으니까.”

“꼬마가 머리가 좋구나. 당연하지. 이미 설치한 게 있는데 굳이 그런 걸 가지고 올 리가 없지 않느냐.”

“저희한테 시킬 일이 있군요?”

“호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진성환이 호기심 띤 얼굴로 진우에게 물었다.

“그냥 묶어두지 않고 일부러 풀어두면서도 행동을 제약할 방법을 동원했으니까요. 최상급 헌터도 힘으로 끊을 수는 없는 구속구 같은 것도 있는데 그런 걸 쓰지 않았잖아요. 행동의 자유를 주어야 하지만, 제재할 방법을 찾는 거라면 뭔가 저희가 몸을 움직여서 해야 할 일이, 그것도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거잖아요.”

“하하하하, 멜리사가 추천을 했다고 하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나 보구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해 주마.”

진성환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장수덕과 장소현을 가리켰다.

“그럼, 이곳까지 이 사람들을 만나러 오셨으니 간단하게 회포나 푸시지요. 할 얘기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저는 간단히 식사를 좀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성환은 장박사와 딸을 조승운에게 밀어버렸다. 조승운이 넘어질 듯 위태롭게 밀려오는 장박사를 손을 들어 얼른 붙잡았다.

“아저씨가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저 때문에 오신 겁니까?”

장박사는 조승운을 만나자 감정이 격했던지 얼굴이 벌게졌다. 그의 옆에 있는 장소현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허진행이 네가 실종되었다고 하더구나. 일단 몸은 괜찮으니 다행이다. 일단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된 건지나 먼저 들어보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조승운은 포개져 있던 간이 침대 하나를 꺼내서 장박사와 장소현을 앉히고, 자신도 다른 하나를 끌어다 맞은편에 앉았다. 진우도 조승운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너희들 몸은 이상이 없는 거냐? 괜찮은 거야? 탐사대가 너희 둘까지 합해서 총 열 명이라고 들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거냐? 나머지는 어떻게 된 거야?”

조승운이 빠르게 몇 개의 질문을 던졌다.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몸은 다 아무 이상 없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저기 있는 헌터 둘 빼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다 죽어?”

장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죄다 레드 플라워에게 잡아 먹혔습니다.”

“레드 플라워라니?”

그러자 듣고 있던 장박사의 딸 소현이 대답을 했다.

“여기 있는 괴물이에요. 처음에는 그냥 바위덩어리 인줄 알고 사람들이 근처에서 작업을 하다가 모두 당했어요. 갑자기 그 괴물이 혀를 뽑아서 모두 잡아 먹어 버렸어요. 헌터 한 명은 그들을 구하려다 함께 죽었고요. 저하고 아빠만 살아남은 헌터 둘과 함께 간신히 도망쳤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에도 포식자가 있다는 거냐?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조승운이 답답해하자 장박사가 소현을 막고 대신 대답했다.

“저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물입니다. 아마 저들이 내일 그놈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 테니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덩치가 고래 만한데,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독특한 괴물입니다. 저도 이곳에 오고 나서야 안 거지만, 애초에 외계 생물학이 전공인 저를 굳이 탐사대에 포함시킨 것도 바로 그놈 때문이었더군요.”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아라. 난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진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승운이 재촉하자 장박사가 다시 설명을 했다.

“생긴 것은 전체적으로 둥그렇고 울퉁불퉁한 칙칙한 색깔의 바위 덩어리처럼 생겼습니다. 한쪽에 네 개의 둥근 혹이 붙어 있는데 그게 아마 머리인 것 같습니다.

머리가 네 개 달린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몸뚱이에서 머리만 신축성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저 바위덩어리로 된 혹 같이 보이지만 필요할 때에는 제법 길게 목을 늘입니다.

눈도 없고 코도 없이 그냥 입만 커다랗게 달려 있는데, 입을 열 때 보면 포크 레인처럼 생긴 앞 이빨과 맷돌처럼 생긴 어금니가 잔뜩 붙어 있습니다. 그 입으로 주변의 암석을 깨어서 먹습니다.

“암석을 깨서 먹어?”

“네. 눈과 얼음도 함께 먹습니다. 입안에 들어오는 것은 그냥 다 먹는 것 같습니다.

몸을 움직여 이동하기도 하는데 속도는 상당히 느립니다. 하지만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속도는 몹시 빠릅니다. 저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 입 속에 굉장히 긴 혀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주변에 움직이는 물체가 다가오면 마치 개구리가 벌레를 잡아먹듯이 혀를 뽑아 순식간에 낚아채 버립니다. 잡혀 먹힌 헌터가 마나 헌터였는데, 혀가 질긴지 끌려가면서 아무리 칼로 내리쳐도 잘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등을 빙 둘러가며 8개의 동그란 젤리처럼 생긴 투명한 혹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그것이 눈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 녀석은 무슨 암석을 깨어 먹는 개구리라도 되는 거냐? 난 그런 생물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저도 처음 보는 거기는 하지만 짐작되는 것은 있습니다. 보통 식물들은 뿌리를 이용해 땅속의 무기질을 흡수하고, 그것을 나뭇잎까지 끌어올려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을 합니다. 그런데 레드 플라워, 아, 그놈 말입니다, 괴물. 아무튼 그 괴물은 암석을 직접 먹은 뒤 몸 안에서 그것을 분해해서 필요한 무기질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 나머지는 몸 밖으로 배출하고요. 그 과정에서 암석에 있던 광물들이 종류별로 분류되어서 배출됩니다. 처음 들어왔던 헌터들이 발견한 금덩어리는 모두 레드플라워가 소화시키고 남은 것을 배출한 거였습니다.

“헌터들이 발견한 금덩어리가 그놈이 싼 똥이라고?”

조승운이 어이가 없어서 되묻자 장박사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뿐만이 아닙니다. 철이나 구리, 심지어 희토류들까지 종류별로 다 분류해서 내 놓습니다. 이를테면 천연 정제공장이나 생체형 용광로 같은 거지요.”

“근데 왜 이름이 레드플라워냐? 바위 덩어리처럼 생겼다며?”

“그건 제가 설명드리는 것보다 며칠 뒤에 직접 보시는 게 좋습니다. 저 사람들이 내일부터 저희를 레드플라워가 있는 곳으로 데려갈 겁니다.”

갈수록 태산이다. 처음부터 믿은 건 아니지만 모든 것이 허진행의 말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탐사대는 이미 대부분이 다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굳이 구조하러 올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위험한 동물이 없다더니 사람까지 잡아먹는 포식자가 있다. 그리고 눈치를 보니 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한 이유는 분명히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조승운의 마음 속에 어둠이 내렸다.

조승운은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진우를 소개했다.

“휴, 내가 정신이 없구나. 인사들 해라. 여기는 내가 친구 아들이라고 했던 장수덕이다.

외계 생물학이 전공인 대학교수다. 그 옆은 내게는 손녀나 다름없는 장박사 딸 소현이고. 이쪽은 헌터 학교 1학년인 강진우다.

학교에서 나한테 검술을 배우고 있다. 아, 그리고 소현이는 지금 대학교 졸업반이기는 한데, 나이가 좀 어리다.

소현이가 올해 16살이지?”

장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우하고 나이는 동갑이구나. 뭐, 진우는 다른 의미에서 천재이기는 하지만, 소현이도 천재다. 열 네 살에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아마 올해가 지나면 1년을 당겨 조기졸업을 할 거다. 소현아, 맞지?”

장소현의 약간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박사가 조승운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저씨가 요즘은 초급 검술도 가르치십니까? 대한민국에 세 명밖에 없는 최상급 헌터이신데 초급 검술을 가르치시는 걸 보니 이 학생이 꽤 마음에 들으셨나 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조승운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돌아가면 다음 학기부터는 아마 중급2를 가르칠 거다. 초급은 방학 전에 끝냈다.”

그러자 장박사가 놀라며 되물었다.

“네? 아직 1학년인데 벌써 중급2를 가르친다고요?”

“말했잖냐. 이 녀석도 천재라고. 중급2도 곧 통과시킬 생각이다. 검술뿐만이 아니야. 격투술도 이미 중급1을 통과했다. 지구로 돌아가면 궁술도 그렇게 될 거다. 게다가 머리도 좋은 녀석이야. 아마 이 놈도 헌터학교를 조기 졸업할 거다.”

“헤에~”

장소현도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우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그때 진성환이 다가와 손뼉을 치며 네 사람을 불렀다.

“자자, 회포를 다 푸셨으면 이제 우리 사업 얘기를 좀 해야죠? 우리 조교관님이 내일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배가 고프실 테니 이리로 와서 뭐라도 좀 드시면서 얘기를 하시죠.”

진성환이 다른 전문 헌터를 시켜 주방 옆에 있는 길쭉한 야외용 식탁 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차려놓았다.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가서 앉자 다시 진성환이 말을 꺼냈다.

“내일 힘든 일을 해야 하니 일단은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차박사한테 들으셨겠지만, 날이 밝으면 우리는 레드플라워라는 괴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겁니다. 거기서 그놈을 해치우는 게 조교관님이 이번에 해 주셔야 하는 일입니다.”

“괴물은 나 혼자 상대하는 건가?”

“조교관께서 머리가 있는 정면을 맡아주십시오. 놈의 혀가 워낙 질기고 빨라서 중급 마나 헌터의 힘으로는 피하거나 자르기가 힘들다는 게 여기 계신 장박사님의 판단입니다. 그러니 상급 헌터 이상의 실력자가 정면에서 놈의 혀를 상대해야 합니다. 조교관께서 놈의 정면을 맡아 주시면 저와 나태준, 그리고 차덕구가 놈의 등 위로 올라가 새끼를 떼어 내 올겁니다.

“새끼? 새끼라니?”

진성환이 장박사를 힐끗 보더니 혀를 찼다.

“이런 회포를 풀라고 했더니 정말 수다라도 떠신 겁니까?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다니.”

장박사가 언짢은 표정을 짓더니 할 수 없다는 듯이 조승운에게 말을 했다.

“내일 저희가 잡으러 가는 레드 플라워는 새끼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어미 등 위에 혹처럼 붙어 있습니다. 작기는 하지만 녀석도 어미처럼 네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혀도 나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 말을 하고는 장박사는 갑자기 인상을 확 찌푸렸다.

“전에 죽은 연구원 가운데 두 명이 새끼의 뱃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미가 연구원의 시체를 이빨로 잘라 혀로 묶어서 등 위로 올려주니까 그걸 먹더군요. 그렇게 연구원 두 명의 시체를 녀석이 먹었는데, 그 뒤로 하루 만에 덩치가 한 배 반 정도로 커졌습니다.

소화와 흡수 메커니즘이 어떻게 되는 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시체에서 순식간에 자기 몸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유기질을 뽑아다 쓰는 것 같았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진우가 갑자기 진성환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이번 일의 최종 목적이 그 괴물의 새끼를 포획하는 건가요?”

그러자 진성환이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진우를 쳐다 보았다.

“네 말이 맞다. 최종 목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괴물 새끼를 포획하는 것이 이번 탐사에서는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 그것을 위해 괴물의 특성이나 약점 등을 파악하는데 장박사의 도움이 컸지.”

“그 괴물 새끼를 어디다 쓰려고요? 허가되지 않은 외계 생물을 지구로 반입하는 것은 금지된 일 아닌가요? 학교에서 분명히 그렇게 배운 것 같은데요?”

진성환이 소리를 내며 크게 웃더니 대답했다.

“뭐 굳이 너한테 그런 얘기를 해 줄 필요는 없지만 이왕 물었으니 대답은 해 주마. 허가는 나올 거다. 협회장이 대통령하고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끝냈으니, 반입하자마자 허가가 떨어질 거다. 그 문제는 해당 부처에서 도장만 찍어 주면 끝나는 일이니까 말이야.”

“어디 광산 같은 데서 쓰려는 건가요?”

진성환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서렸다.

“더 이상 질문은 그만이다, 꼬마야. 다 먹었으면 그만 침대 하나 골라서 잠이나 자거라.”

진성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진우가 그가 듣기에는 아주 터무니없는 말을 뱉었다.

“저도 괴물과 싸울 게요.”

돌아서려던 진성환의 얼굴에 피식, 가소롭다는 웃음이 터졌다.

“중급 이상의 발현 가능한 마나 헌터가 5명이나 참여하는 전투에서 네가 함께 싸운다고?”

“네. 아니면 제가 여기에 온 이유가 없잖아요.”

“우리는 멜리사를 원했었지. 상급 이상의 궁수가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제 고작 헌터 학교 1학년생인 너 꼬맹이가 오고 만 거다. 그 때문에 하루 만에 부랴부랴 다른 상급 궁수를 구해야 했지. 처음부터 너는 비싼 돈 들여가며 여기 올 필요가 없었던 게다. 그러니 넌 그냥 얌전히 보고 있거라.”

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요? 이제 와서 제가 죽을까봐 불쌍해서요? 고맙기는 한데, 그럴 거면 그냥 지금 절 포털로 지구에 보시주시면 되잖아요.”

진성환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너 정말 괴물한테 씹혀 먹히고 싶은가 보구나. 그럼 괴물을 만나면 칼이라도 들고 싸워 볼 테냐?”

“아뇨. 저는 멜리사 교관님이 추천해 주신 거잖아요. 활을 주세요.”

“네놈 활이 괴물한테 박히기나 할 것 같으.... 아니다. 네가 원하는 데로 해 주마. 어이 이동수.”

진성환이 이동수를 불렀다. 이동수가 고개를 쳐들었다.

“내일 출발할 때 이 녀석 활과 화살하고 검까지 챙겨라. 자기 교관하고 함께 괴물의 정면에서 싸우게 해라.”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진성환이 조승운을 보며 말했다.

“자기 학생하고 나란히 서서 괴물을 상대해 보시오. 학생이 철이 없는 것도 교관의 복이니, 괴물을 상대하랴, 학생을 보호하랴, 싸움이 꽤나 힘들어지시겠구려. 어디 최상급 마나 헌터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목숨을 먼저 구할지, 아니면 학생 목숨을 먼저 구할지 한 번 지켜 보겠소.”

조승운이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우가 진성환을 도발하고 있었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들은 모르겠지만 진우의 실력은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이나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내가 가르친 녀석인데 최소한 자네들보다는 도움이 되지 않겠나? 어차피 우리들 목숨을 자네들이 신경 써 줄 것 같지도 않은데, 죽어도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낫겠지.”

“하하, 열심히 해 보시오. 기대해 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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