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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41화 (41/235)

41화

오전 훈련을 마친 뒤에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데 웬일인지 나르샤가 솔선수범하여 불을 피우더니 조리 기구를 벌여놓고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승운은 태연하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무뚝뚝한 권일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때 그녀의 학생이었던 진우는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불편했다. 그런 진우의 모습을 본 조승은이 나르샤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나르샤같은 미인이 해 주는 밥을 먹으면 피로가 싹 풀리겠네. 고맙긴 한데 웬일이야?”

“한 분은 스승님이고, 다른 분들은 오전에 훈련하느라 지치셨을 거 아녜요.”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을 하고는 별 일이 아니라는 듯 고기를 볶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조승운이 멜리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우리 훈련하는 새에 무슨 일이 있었소? 차에 탈 때만 해도 표정이 영 안 좋더니.”

멜리사는 참지 못하고 쿡 하고 웃었다.

“딸 같아서 스승이 아니라 엄마 노릇까지 하며 오냐오냐 가르쳤더니 그동안 철이 좀 없었어요. 그런데 교관들하고 진우 저 학생이 훈련하는 거 보더니 많이 부러웠나 봐요. 이제 좀 철이 드는 거 같네요.”

“그런 거였어? 그럼 좋은 거네 뭐.”

*  * * * *

점심 식사 후에 멜리사는 먼저 진우에게 화살에 마나를 싣는 법부터 가르쳤다.

“네가 전에 지구에서 하는 걸 보니, 아직은 그저 화살촉에 마나를 실을 줄만 알았지 그걸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법은 모르는 것 같더구나.”

“네. 배워서 할 줄 알게 된 게 아니라서요.”

진우의 말에 멜리사가 픽 웃으면서 혀를 찼다.

“그게 더 신기하긴 하지만 매번 목표물을 그렇게 박살을 내놓아서야 안 되지. 먼저 방법을 말해주고 시범을 보여줄 테니, 잘 보고 직접 연습을 해 봐라.”

“네.”

진우처럼 그저 마나를 활에 실어서 목표물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폭발형이라고 했다.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건물을 부수거나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가 아니라면 사냥에서는 잘 쓰지 않았다. 사냥감을 아예 날려버려서는 소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냥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관통형이었다. 마나를 화살촉에 날카로우면서도 단단하게 응집시키는 기술이었다. 관통형 마나가 실린 화살촉은 웬만한 마수들의 마나 방어막정도는 거침없이 뚫고 들어가는 관통력을 가지게 되었다. 화살대 자체를 회전시키지 않는 한, 몸을 뚫은 자리에 커다란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간혹 가죽이 비싸게 거래되는 사냥감을 잡을 때에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었다. 특유의 깔끔한 살상력으로 인하여 궁수형 헌터들이 사냥할 때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비산형도 있었다. 마나를 깨알처럼 작고 단단하게 여러 개를 뭉친 다음, 그것을 화살촉 표면을 따라 배열시키고, 여기에 다시 전체를 감싸는 마나 껍질 같은 것을 씌우는 방법이었다. 활이 마수의 마나 방어막에 부딪히면 화살촉에 씌운 깨알 같은 마나 조각들이 쪼개져 흩어지면서 방어막을 깨트리고 마수의 가죽에 얕은 상처들을 남기는 기술이었다. 폭발형과 관통형을 결합시킨 형태로, 관통력 자체는 순수한 관통형에 비해 떨어졌다. 비산형은 상대를 죽이기보다는 고통스럽게 만들어 저항 능력을 상실시킨 뒤 포획하고자 할 때 즐겨 쓰는 방법이었다.

이 밖에도 화살에 양의 마나만을 강하게 실어 적중된 목표에 불이 붙게 하는 방법도 있었고, 반대로 음의 마나만을 실어서 표적 주위를 얼리는 수도 있었다. 극히 드물기는 해도 치료형과 궁수형을 모두 깨우친 더블 마나 헌터의 경우, 활촉에 치료용 마나를 실어 멀리서 상대를 적중시킨 뒤 오히려 몸의 이상을 치료하는 기술도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현재까지 지구에서 단 두 명만이 이 기술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조승운 교관의 말에 의하면 너는 마나 발현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헌터치고는 체내의 마나량이 많다고 들었다. 폭발형은 그저 얼마나 많은 마나를 싣느냐에 따라 폭발의 세기와 범위가 달라지는 기술이라서 화살촉에 마나를 실을 수 있기만 하다면 연습하기에 어렵지 않다. 우선은 관통형을 집중해서 연습하고, 그게 어느 정도 되면 비산형을 배우기로 하자.”

멜리사는 그 말을 끝으로 관통형 마나를 어떻게 활촉에 응집시키는지 여러 차례 시범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진우를 가르쳤던 다른 교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기겁을 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우가 너무나 빨리 자신의 시범을 따라했던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활촉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통의 헌터들은 전해지는 마나의 느낌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우의 눈에는 멜리사의 손에서 흘러나간 마나가 어떤 방식으로 활촉에 맺히는지를 선명하게 볼 수가 있었다. 감각을 통해 어림짐작으로 느낀 것을 바탕으로 연습하는 사람과, 두 눈으로 빤히 보고서 따라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멜리사는 저도 모르게 진우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괴물이군.”

*  * * * *

물론 아무리 마나를 볼 수 있다지만,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보고 익힌다는 전설 따위는 실현되지 않았다. 진우는 처음 오아시스를 둘러싼 나무를 향해 활을 쏘았지만 화살은 나무를 관통하지 못했다. 대신 나무에 부딪히자마자 굉음을 내며 폭발해서 나무 허리를 뎅강 부러뜨리기는 했다. 옆에서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진우의 활쏘기를 보고 있던 조승운은 그걸 보고 허리를 잡고 웃어댔다.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지 권일도마저 큭 하고 작게 억눌린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조 영감님, 저랑 처음 외계 행성에 적응 훈련 나갔을 때 있었던 아주 재미있는 일이 갑자기 생각나는데, 이따 훈련 끝나고 다 같이 모여 그 얘기나 해 볼까요?”

“흐끅”

차분하지만 뭔가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목소리로 멜리사가 한 마디 하자 조승운은 딸꾹질을 하며 급히 입을 다물었다.

“에잉, 늙으면 기억이 흐려진다던데, 멜리사는 뭘 그런 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어요? 그냥 진우 활쏘기나 계속 가르치세요.”

“일반인들도 양궁 시합 관람 때는 궁수가 자세에 들어가면 입을 다무는데, 명색이 상급 이상의 헌터들만 있는 자리에서 사격 도중에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그러지요.”

“아, 알았어요. 내가 앞으로 입 꽉 다물고 그냥 조용히 보기만 할게요.”

멜리사가 마나를 응집시키는 시범을 한 차례 더 본 뒤, 한참을 마나 응집에 몰두하던 진우는 두 번째 화살을 쏘았다. 그것은 나무를 맞힌 뒤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활촉이 나무에 꽂히기만 할 뿐, 관통하지 못했다. 다만 나무 전체가 우르르릉 하는 소리를 내며 떨 듯이 흔들렸다. 화살을 맞은 나무에서 나뭇잎들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침투형이 되어 버렸군. 조절이 이상하게 된 모양이네.’

속으로 중얼거린 멜리사는 또 한 번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한 번 실패할 때마다 멜리사가 다시 시범을 보여주고, 진우가 거듭 활을 쏘는 일이 이십여 차례 반복되었다. 그렇게 실패와 시범이 계속되던 중 진우가 쏜 스물두 발 째의 화살이 ‘뻑’하는 소리를 내며 드디어 목표물이 된 나무를 깨끗이 관통하고 말았다.

“정말 하루 만에 해 내는군.”

보고 있던 권일도가 기가 막힌다는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의 머릿속에 ‘괴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  * * * *

훈련이 오일 정도 진행되면서 나르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질투나 원망 같은 감정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사라졌다. 늘 남들과 같은 노력을 하고서도 더 나은 성과를 내는 데에 익숙했던 그녀로서는 이제 남들이 자신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자신보다 재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는데도 잠까지 줄여가면서 빠득빠득 자신을 따라잡으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자신이 바로 그들의 자리에 서 있을 때였다.

“난 나르샤 저 아이가 저렇게 노력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네.”

조승운이 달라진 나르샤의 모습에 놀라워하자 멜리사도 웃으며 덧붙였다.

“저 아이를 10년 넘게 가르쳤지만, 저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멜리사는 진우의 연습을 보면서 마나를 사용한 활쏘기를 한 것도 아니면서 그토록 나르샤로 하여금 기가 질리게 했던 능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연사 능력이었다.

신체 재구성을 거친 뒤로 진우는 자신의 육체를 정확히 통제할 수 있었다. 한 번 단사에서의 자세를 완전히 익히자, 같은 동작을 좀 더 빠르게 하는 연사는 진우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신속함과 정확성.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서로 모순 관계에 있는 항목이었지만, 진우에게는 이미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동작을 그저 조금 더 빠르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단사를 정확하게 쏠 수 있는 진우로서는 연사에서 실수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머지는 그저 머리의 명령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따를 수 있는 육체의 능력을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느냐에 달린 일이었다. 마나에 의해 단련된 그의 근육은 연사에서 최상급 궁수형 마나 헌터인 멜리사마저 기가 질리게 하는 정확성과 속도를 보여주었다. 연사를 할 때마다 활통 하나가 순식간에 비워졌다. 사라진 화살들은 모두 과녁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  * * * *

훈련에 들어간 지 보름이 지나자 조승운과 권일도의 밑천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들이 가르치는 검술과 권법은 특별한 형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의 원리와 목적을 이해시켜 순간순간의 상황에 알맞은 공격과 수비를 거의 본능에 가까운 형태로 펼쳐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거기에 마나를 발현한 상태에서 싸울 때의 마나 조정 능력이 얼마나 정교하고 적절한가 하는 것이 문제될 뿐이었다.

인체가 자연스럽게 펼쳐낼 수 있는 신체 각 부분의 동작에 대해서는 이미 지구에 있을 때 거의 다 이해하고 있었던 진우였다. 작은 동작들을 연계해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동작들이나, 그것들을 이어서 끊임없이 공격과 방어를 물 흐르듯이 펼쳐나가는 것 역시 상당히 숙달된 상태였다. 그가 케이튼에서 주력하고 있는 것은 그 동작들에 마나를 담아 몸이 마나를 이끌고, 다시 마나가 이끄는 상호 작용을 통해 몸과 마나, 마나와 도구의 완벽한 일체를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조승운과 권일도의 밑천이 바닥이 났다는 것은 바로 그 부분에서 이제 두 사람이 진우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어졌음을 뜻했다. 남은 것은 오랜 경험과 수련에서 오는 많은 마나량과 임기응변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마나량은 처음부터 두 사람 모두 진우의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젠 대련이 그냥 대련이 아닌 거 같아. 재미는 하나도 없고 살벌하기만 해. 진땀이 난다니까.”

조승운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문득 권일도에게 그런 푸념을 했다.

“진우가 하루하루 발전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재미가 없네요.”

권일도 역시 조승운의 심정을 이해하는지라 같이 맞장구를 쳤다.

“이젠 발전이 아니라 아예 우릴 뛰어 넘으려고 한다니까. 이 이상은 백날 대련해도 저 놈한테 별로 도움을 줄 게 없어. 자네나 내가 여기서 더 발전하지 않으면 진우도 그냥 현상유지야. 나머지는 이제 저 녀석한테 달렸지 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라던가, 뜻밖의 상황에서도 침작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는 임기응변의 능력 같은 것들은 몸으로 겪어가면서 익히는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운이 좋으면 오래 살아남아서 아무도 쓰러트릴 수 없는 최고가 될 거고, 그렇지 않으면 비운의 천재가 되는 게지.”

조승운의 말에 권일도가 픽하고 웃었다.

“저 놈이 운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은 다 비관 자살해야 할 겁니다. 재능을 타고 난 놈입니다. 저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는 몸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운 그 자체를 타고 났다는 거지요.”

조승운이 무심코 그 말을 받았다.

“모두가 보기에는 운인 것이, 어찌 보면 또 그 반대인 경우도 있지. 저 놈의 운이 너무 큰 시련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씁쓸하게 웃으며 들고 있는 차를 마셨다.

*  * * * *

검술과 격투술 수업이 조금 소강상태에 빠짐에 따라 진우의 신경은 궁술 훈련에 집중되었다. 활촉에 마나를 실어 폭발, 관통, 비산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다음에는 음과 양의 마나를 번갈아 싣는 것을 연습했다. 그 모든 것을 일주일 만에 완벽하게 익힌 진우였지만, 무엇보다 그가 멜리사를 놀라게 했던 것은 화살에 치료용 마나를 실었을 때였다. 그걸 시험하기 위해 조승운이 스스로 자해를 하기까지 했었다.

저녁 전까지 세 사람에게 훈련을 받고 기지로 돌아가서 샤워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진우는 그때부터 또 기지장인 조세연 박사로부터 치료용 마나를 운용하는 수련을 받아왔다. 치료용 마나를 일으키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을 세밀하게 조절하고, 대상의 체질에 따라 알맞게 조절하는 것이 또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진우가 이미 마나를 발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남경호 주방장을 비롯한 본래의 기지 관리인들이 수시로 진우의 몰모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남경호 주방장이 600명에 가까운 기지내의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따금 자리에 누워 반나절을 날려야 하는 일이 생기고는 했던 이유였다.

활촉에 마나를 싣는 게 어느 정도 능숙해지자 그 다음에는 화살촉과 화살대를 포함한 화살 전체에 마나를 싣는 연습이 이어졌다. 멜리사는 마나를 이용해 화살대에 회전을 걸 경우,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회전을 먹은 활은 관통을 사용할 경우 대여섯 그루의 나무를 그대로 뚫고 지나가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 다음은 곡사였다. 앞에 장애물이 있을 경우 그것을 피해 뒤에 있는 목표를 맞히는 곡사의 경우 상하좌우 어느 방향으로 휘게 만드느냐에 따라 마나의 사용방법이 모두 달라졌다. 화살을 무조건 빨리 회전시키는 것보다 그것을 미묘하게 조절해야 하는 곡사가 더 정밀한 마나 조정 능력을 필요로 했다.

가장 어려운 기술은 날아가는 화살 주위의 공기저항을 극도로 약화시켜, 화살이 마치 진공 속을 날아가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멜리사는 이것이 아마 동조 단계에 가장 근접하는 기술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찰이 없어 ‘무찰시’라고 불리는 그 기술은 화살 주위의 공기와 활대에 입힌 마나를 적절히 조화시켜, 공기와 마나막의 마찰을 약화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면 마치 얇은 기름칠이 된 레일 위를 굴러가는 쇠공처럼 화살이 공기를 뚫고 나갔다. 주변의 대기의 성질마저 감각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궁수 특유의 능력이 고도로 발달하지 않으면 흉내도 낼 수 없는 기술이었다. 진우가 일주일 만에 이 기술을 터득해내자, 활을 떠난 화살이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목표를 적중시켰다.

훈련을 시작한 지 이십일 가량 지나고, 지구로 돌아갈 날이 십여 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진우는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왔던 새로운 기술을 실험해 보기로 하였다. 그것은 발현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기술이었는데, 일종의 유도 화살 같은 것이었다.

그는 화살대와 화살촉 전체를 감싼 마나가 화살촉 끝에서 뻗어나가 목표로 하는 대상까지 길게 끈처럼 이어지게 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미 활 자체에도 마나를 부여하여 강화시키는 일이 가능했던 터라 진우의 사거리는 일반적인 활이 가진 물리적인 탄성이 허용하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그 먼 거리를 가로질러 마나의 끈이 허공을 뚫고 목표물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은 진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실패가 이어졌다. 그러나 아직 훈련을 위한 시간이 남아있던 참이라, 진우는 이 새로운 기술을 집중적으로 실험해 보기로 했다.

*  * * * *

“그걸 왜 내가 들고 뛰어야 하는데?”

조승운은 자신을 향해 커다란 방패를 내미는 권일도를 흘겨보며 불퉁스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멜리사 교관님이나 나르샤더러 들고 뛰라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너 있잖아? 신체형 헌터니까 달리기도 잘 할 거고, 덩치가 크니 멀리 있어도 잘 보여서 표적으로도 좋고, 무엇보다 나보다 어리고.”

“저는 아침에 훈련하러 여기 올 때부터 진우하고 계속 구보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는 교관님이 저보다 더 빠르지 않습니까?”

“구보는 뭐 내가 시켜서 했냐? 그리고 넌 노인 공경도 모르냐? 널 놔두고 왜 내가 그 짓을 해?”

“노인 공경 했습니다. 매일 트럭에 탈 때마다 경로석도 양보해 드렸잖습니까.”

“너희 동네에서는 트럭 뒤 칸이 경로석이냐?”

“영감님!”

“일 없다.”

멜리사의 궁술을 거의 다 익혀가는 듯하던 진우가 갑자기 며칠 내내 활을 잡고 허공을 향해 정처 없는 화살만 날려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제는 무슨 진전이 있었던지 교관 가운데 한 사람이 방패를 들고 뛰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쇠로 만든 커다란 방패를 들고 빠르게 움직이는 이동 표적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움직이는 물체를 쫓아가서 맞추는 연습을 하겠다는 뜻인데, 문제는 그 물체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양심이 있어 여자들을 시키기는 내심 민망했던 권일도와 조승운이 서로 방패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결국 방패는 권일도가 들고 뛰기로 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우주에서 외계인까지 날아오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아직 동방예의지국이었다.

“너 활촉에 마나 실어서 쏘면 안 된다.”

“네.”

“공기 저항 없애서 순식간에 날아가서 꽂히는 그것도 안 돼.”

“네.”

“곡사나 회전도 안......”

“네.”

권일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나름 두껍고 단단한 쇠로 만든 방패를 뛰고 뛰기 시작했다.

“지그재그로 뛰어 주세요. 일정하게 뛰지 마시고요.”

“알았다. 쏘기나 해라. 쩝, 교관이 밑천 털리니까 순식간에 권위가 바닥을 치는구나.”

진우는 활을 들고 몸 안에 있는 마나를 화살 전체를 감싸듯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정신을 집중시켜 화살에 맺힌 마나를 길게 뽑아내 허공으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2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권일도가 방패를 진우 쪽으로 향한 채 전후좌우로 어지러이 뛰는 모습이 보였다. 진우는 허공으로 흘려보낸 마나를 실처럼 가늘게 해서 권일도 쪽으로 보냈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른 마나의 실이 그의 시선을 따라 목표를 향해 쭉쭉 뻗어나가더니 권일도가 든 방패에 아교를 붙여놓은 것처럼 철썩 붙었다. 진우가 화살을 놓았다. 권일도가 있는 방향과는 관계가 없는 전혀 엉뚱한 방향이었다.

권일도는 방패를 들고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계속 이동했다. 처음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화살이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틀더니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죽어라고 뛰었다.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고 심지어 속도마저 변화시켰다. 하지만 화살은 진우가 뿌려놓은 마나의 실을 따라 마치 추적 장치를 단 유도 미사일처럼 방향을 바꿔가며 권일도를 따라갔다.

방패에 부딪힌 화살이 힘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 권일도가 움직임을 멈추고 자기 발밑에 떨어진 화살을 집어 들어 높이 치켜들었다. 어떤 헌터도 사용할 수 없는 진우만의 새로운 기술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 * * *

“지금 그 기술을 사용하면서 화살에 관통이나 비산형 마나를 싣는 것도 가능한 거냐?”

“네. 연습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백발백중의 궁수가 탄생했다는 말이구나.”

“상대가 화살이 이동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아나거나 완전 밀폐된 곳으로 숨어 버리면 그래도 맞출 수 없어요.”

멜리사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런 강궁으로 쏜 화살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게 사람이겠냐? 아무튼 나중에 나한테도 어떻게 하는 건지 자세히 알려줘야 한다.”

“네. 그럴게요.”

궁술에 관해서는 그동안 지구인들에 의해 개발된 몇 가지 기술들이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발현 가능한 궁수형 헌터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기술들, 예를 들어 관통이나 비산, 회전과 곡사 같은 것들은 모두 외계인들이 지구인 헌터들에게 전수한 것이었다. 멜리사는 나중에 이때가 지구인에 의해 개발된 최초의 제대로 된 궁수 기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것도 외계인들이 전했던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 작품 후기 ============================

어제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3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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