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당연하지. 사람을 죽이고도 마음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면 그게 정상이냐? 괴로울 땐 괴로워 해. 억지로 피하려 하지 말고.”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일주일 째 강제로 병원에 갇혀 있다시피 하다 간신히 퇴원을 한 다음날, 진우는 새벽 명상을 끝내고 조승운 노인과 마주했다. 얼굴에 살이 조금 빠진 듯한 모습을 본 노인이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이군’이라며 먼저 말을 꺼내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러자 조승운은 단번에 저런 말을 했다.
“그 문제는 빨리 극복할수록 좋기는 하지만 어차피 살아가면서 풀어야 할 거다. 오늘은 교관으로서 물어야 할 걸 물어보자. 너 명상하는 걸 보니까 수승화강(水昇火降)을 하더구나. 그건 어디서 배웠냐?”
“네? 수승화강이 뭔가요?”
“몰라? 그 왜 명상하다보면 차가운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고, 따뜻한 기운이 배로 내려가는 게 느껴지지 않더냐?”
“아, 그거요? 그건 배운 게 아니라 명상을 하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던데요?”
그러자 조승운이 혀를 끌끌 차더니 다시 말했다.
“남들이 들으면 혀를 깨물 소리를 태연히도 하는구나. 명상을 하면서 주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냥 마나가 제 몸을 더 튼튼하게 해 주었으면 하면서 명상을 했는데요? 그러면 몸속의 마나가 자연스럽게 교관님 말씀처럼 움직이면서 제 몸을 두드리고 단련시키는 것 같았어요. 그게 다 끝나면 기분이 굉장히 좋거든요. 그럼 마나가 알아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자 조승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진우를 쳐다보았다.
“아무튼 처음부터 별종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만, 마나에 대한 친화력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대단한 놈이구나. 네 놈이 원하면 마나가 알아서 길을 찾아 움직이다니, 도대체 전생에 무슨 인연이 얼마나 쌓였기에 그리 됐을꼬?”
진우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잘 듣거라.”
조승운이 한 마디를 하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다. 차가운 것은 무거워서 아래로 내려가고, 뜨거운 것은 가벼워서 위로 올라간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그대로만 되면 차가운 것은 허구한 날 아래에만 있고 뜨거운 놈은 늘 위에만 있게 되지. 그렇게 되면 위아래가 안정되기는 하지만 서로 소통이 없어. 그걸 막혔다고 한다. 막히면 굳고, 굳으면 결국 쓰지 못하게 되지. 변화도 없고 흐름도 없으니 발전도 없다.”
그는 에헴 하며 마른기침을 한 번 뱉더니 말을 이었다.
“마나를 수련할 때는 의지를 내어서 물이 위로 올라가고 불이 밑으로 내려오게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머리가 시원해지고 배가 따뜻해지지. 그걸 수승화강이라고 한다. 불이 솥단지 밑에서 물을 끓이니 기운이 활성화되고 온몸에 마나가 고루 퍼진다. 또, 수승화강이 되면 뜨거운 것은 다시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차가운 것은 도로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니 결국 소통이 활발해 진다. 그걸 크게 트인다고 한다. 잘못 다스리면 폭풍이 되어 몸을 망치겠지만, 잘 다스리면 마른 나무에서도 꽃이 피게 할 수가 있다.”
진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교관님, 너무 어려워요.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안 되나요?”
그러자 조승운이 기가 막힌 듯 허허 하고 웃었다.
“말로 하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내버려두면 지 혼자 그걸 죄다 알아서 하니 내가 네 놈을 별종이라고 하는 거다. 잔소리 말고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명상을 할 때마다 되뇌이거라.”
“네.”
“그럼 검술에 대해 얘기하마. 말하는 걸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날마다 연습해서 익혀라.”
“네. 그럴게요.”
노인과 소년의 수업 첫 날이었다.
* * * * *
권일도는 오후 수업이 시작되자 예의 그 무뚝뚝한 목소리로 진우에게 짧게 물었다.
“괜찮으냐?”
그게 무슨 소리인지 금방 알아들은 진우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아직은 안 괜찮은 것 같아요.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권일도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진우는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불쑥 던졌다.
“교관님도 사람을 죽여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러자 권일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마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여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있다.”
권일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진우는 후회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고통과 분노, 슬픔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절대로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았던 일을 자신 때문에 억지로 기억 속에서 꺼내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을 죽인 놈들이었다. 세 명이었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 뒤로 헌팅을 그만두었다.”
한 번에 세 명이라니. 권일도가 강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세 사람을 한꺼번에 죽였다는 얘기를 할 때에는 표정이 흔들렸다.
“어떤 사람들이었어요? 죽은 사람들은요.”
“동생을 죽인 놈들이었다. 내 눈앞에서 동생이 머리가 터진 채 죽어 넘어지는 걸 봤지. 눈이 돌아갔었다. 도저히 그 놈들을 그냥 둘 수가 없었어.”
진우는 깜짝 놀랐다. 최현에게서 권일도가 헌팅 중에 사고로 동생을 잃고 헌터 일을 그만 두었다는 얘기를 얼핏 듣기는 했지만, 그게 설마 마수나 맹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료에게 살해당한 것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진우는 미안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경솔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권일도의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는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어왔다.
“나와 동생을 포함한 다섯 사람이 헌팅을 하던 중이었다. 마나 크리스털이 발견 되었어. 우리는 뛸 듯이 기뻐했다. 말 그대로 횡재를 한 느낌이었거든. 그런데 돌아오던 길에 세 놈이 모의를 한 모양이야. 갑자기 우리를 공격하더군. 우리를 제거해 저희들 몫을 늘리려는 속셈이었지. 두 놈이 한꺼번에 공격을 하는 걸 어렵사리 막아내는 동안, 다른 한 놈이 뒤에서 동생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다. 내 동생은 치료형 헌터였다. 피할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지.”
말을 하는 권일도의 얼굴이 갑자기 무섭게 일그러졌다. 다시 생각해도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반쯤 미쳐 버렸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두 목이 꺾이고 배가 터진 채 죽어 있더구나. 분명히 죽은 동생의 복수를 한 것인데도 견딜 수가 없었다. 얻었던 마나 크리스털을 버리고 빈 몸으로 귀환했다. 그걸 도저히 가져올 수가 없었어. 동생의 피가 묻은 물건을 팔아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냐. 그냥 던져 버렸다. 엄청난 횡재를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셈이었지.”
진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기, 지금은 괜찮으세요?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요.”
권일도는 쓸개를 씹은 것 같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놈들을 때려죽인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죽어도 싼 놈들이었고, 다시 그런 일을 당해도 나는 망설임 없이 놈들을 없앨 것이다. 그 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나 명분만으로 모든 일이 미련 없이 설명되는 건 아니다. 그게 사람이기를 포기한 놈들과,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이들의 차이일 지도 모르지. 그들을 죽인 것도 내 마음이고, 그로 인한 부담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도 역시 내 마음이다.”
이를 악물고 얘기하던 권일도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진우를 쳐다보았다.
“최현에게 들었다. 네가 그날 놈을 막지 않았으면 네 친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너는 그래도 친구가 죽기 전에 놈을 없앴으니 나처럼 다 잃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괴롭더라도 다시 그런 일을 당하면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절대 망설이면 안 된다.”
진우는 갑자기 그날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자신이 억지로라도 막지 않았으면 정태는 도지형의 주먹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정태가 그때 죽기라도 했다면, 자신이 겪었을 죄책감과 후회의 크기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이 클 것 같았다. 더 강해져야 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강해지지 않으면 좋은 헌터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권일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진우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억지로 납득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살면서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는 거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너를 지킬 수 있는 떳떳함을 잃지는 마라. 네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일만 저지르지 않으면, 나머지는 열심히 살다 보면 답이 보일 거다. 나는 네가 오히려 자신이 한 일을 변명하려 들지 않고 괴로워하는 것이 더 보기 좋구나. 그게 사람이다.”
진우는 그제야 희미하게나마 웃을 수 있었다.
“네. 떳떳하게 살려고 노력할게요.”
“그래. 그럼 되는 거다.”
16살의 어느 봄날, 진우에게는 참으로 어렵지만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 * * * *
새로 시작된 수업을 통해 진우가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배운 것은 힘의 자유로운 조절에 관한 것이었다. 조승운은 주로 내부의 힘을, 권일도는 외부의 힘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겉으로는 한 사람은 검을 가르치고, 다른 한 사람은 맨손 격투술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은 달랐는데도 둘 다 모두 상급 이상의 발현 가능한 헌터여서 그런지, 말하는 내용에 통하는 것이 있었다. 심지어 검을 쓰고 팔과 다리를 쓰는 동작에 깃든 원리마저 어떤 면에서는 닮아 보였다.
6월이 되면서 날은 점점 뜨거워졌다. 조승운과 권일도에게서 받는 훈련은 갈수록 격렬해졌지만 진우의 내부는 거꾸로 고요해졌다. 방화범 도지형을 해치우는 과정에서 진우는 상당한 양의 마나를 소비했다. 그 바람에 충분히 여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체내 마나량이 방학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당간당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검술을 수련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됐다.
조승운과의 대련은 비록 날은 없지만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사용했다. 그 때문에 때로는 크게 다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는 했다. 마나가 없다고 훈련을 대충대충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마나의 손실이 없으면서도 검의 위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마나를 정교하게 운용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 일이 지속되다 보니 한 달 만에 진우의 마나 운용은 빠른 속도로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진우와 매일 새벽마다 검을 맞대는 조승운이 그걸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그가 진우 앞에서는 호통을 치고 뒤로 돌아서서는 미소 짓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권일도와의 수업은 여전히 문답과 강의, 연습과 대련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것들은 시간이 줄어드는 반면에 대련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그와의 훈련에서 진우는 여전히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명상과 검술만으로도 적지 않은 마나가 매일 소모되고 있는 탓도 있었지만, 권일도가 적어도 여름방학 전까지는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때로는 일격에 강한 힘을 실어 짧은 시간 안에 끝장을 내는 방법을 연습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몸에 어느 정도 힘을 빼고 체력을 안배하면서 대결을 길게 가져가는 방법을 익히기도 했다. 기술이 다양해지고, 임기응변의 묘리가 깃들기 시작했다. 6월이 거의 지나갈 즈음해서는 진우의 몸에 멍은커녕 권일도의 공격이 직접 닿는 경우마저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
* * * * *
오후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한때 빠듯한 일정 때문에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교과목들의 통과 시험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통과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정태 녀석도 국어 시험을 무난하게 통과했다.
학기 내내 함께 붙어 다니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맞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김도훈, 차연희 커플의 모습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학교 내에 제법 유명해진 두 사람에 대한 별명은 ‘로미오와 백설공주’였다. 둘 다 따로 떼놓고 보면 괜찮은 사람들인데,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 서로 엇나간다는 느낌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로백 커플’과 진우 모두 영어 과목을 무사히 통과했다. 진우는 내심 다음 학기에는 두 사람과 같은 반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들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이 더 불편했던 것이다.
여러 교과목의 통과 시험과 함께 했던 6월의 마지막 주가 끝나고, 진우는 신청했던 모든 과목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마무리되고, 케이튼 행성으로의 여름 훈련을 앞 둔 10일 간의 귀가 휴가가 시작될 즈음해서 곱게 늙은 서양 할머니 한 분이 진우와 조승운의 아침 훈련장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