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37화 (37/235)

37화

치열한 공수 교환이 2분 정도 이어지자 녀석의 입에서 드디어 가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놈이 견디지 못하고 진우의 로우킥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헉헉, 기술이 아직 미숙한데 체력이 대단하구나. 분명히 지금쯤 마나가 고갈되어 나가 떨어져야 하는데?”

진우는 입을 비틀며 웃었다. 어차피 지구에서는 소모된 마나가 회복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녀석이 숨을 돌릴 여유를 찾으려 하는 것은 결국 마나가 거의 고갈돼 신체적으로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놈이 최후의 마나를 이용해 도망을 선택하면 곤란했다. 이 미치광이 녀석은 반드시 잡아야 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기도 곤란했다.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연기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이 따갑고 시야가 가리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갈수록 숨을 쉬기가 곤란해지고 있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정태를 이대로 방치하면 잘못하다가는 그대로 질식사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복도를 빠져나가 밖으로 번지는 연기를 누군가 발견한 것 같았다. 극장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면서 사람들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하긴 연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그와 남자가 싸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진우는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마나를 최대한 발현해서 땅을 박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발밑의 콘크리트가 으깨졌다. 그의 몸이 전광석화처럼 놈을 향해 다가갔다.

“쳇.”

놈이 다가오는 진우를 향해 주먹을 뻗으며 카운터를 노렸다. 여기서 물러서면 도망은커녕 방어를 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놈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힘을 주어 바닥을 밀어서 다가가던 몸을 멈췄다. 놈의 주먹이 왼쪽 옆구리를 향하는 것이 보였다. 몸을 기울여 피하면 그대로 거슬러 올라와 겨드랑이를 노릴 것이다. 진우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그는 상대의 주먹을 보면서도 마나를 최대한 옆구리에 밀집시켜 그냥 버티기로 했다. 그리고는 나머지 마나를 모두 오른 주먹에 모아 놈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격투술을 연습한 이래로 가장 빠른 주먹이었다.

두 개의 타격음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진우의 옆구리에서 불에 지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밀려들어와 뱃속을 온통 흔들었다. 저도 모르게 허리가 숙여졌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하지만 녀석의 주먹은 분명히 약간 덜 들어왔다. 그는 허리가 숙여지는 고통 속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자신의 주먹에 남자의 관자놀이가 움푹 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어찌나 주먹이 강하게 파고들었는지 놈의 왼쪽 눈알이 압력에 밀려 거의 빠져나올 듯이 보였다. 자신의 주먹이 간발의 차이로 먼저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주먹에서 터져나간 마나가 아마 상대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놨을 것이다. 놈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지면서 그대로 주저앉듯 미끄러져 쓰러졌다.

털썩.

싸움이 끝났다. 배가 미치도록 아프고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진우는 힘겹게 발을 떼 정태에게 다가갔다. 코밑에 손가락을 대고 가슴을 만져 보았더니 호흡이 있고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기절한 것 같았다.

지금쯤 이미 다른 사람들이 신고를 했겠지만 혹시나 싶어 119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말하고 화재가 발생했음을 알렸다.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다시 최현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최현이 뭐라고 고함을 치는 것 같았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의식을 잃은 정태를 들쳐 업었다. 모처럼 날씨 좋고 한가한 주말이었는데,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복도를 빠져나가면서 이 자식 하고 다시는 액션 영화를 보러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 * * *

화재는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진압이 되었고, 정태와 진우를 제외하고는 다친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면서 가벼운 부상을 당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우가 방화범을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자칫 심각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진우와 정태는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다가 중간에 타르고스 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응급차에 탄 그대로 헌터양성소 부설 병원으로 향했다. 소식을 들은 최현과 타르코스 소장은 물론 헌터 학교 교장까지 병원으로 달려왔다.

“펄스너 교장일세. 진우 군인가? 만나서 반갑다고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으니 우선 정신을 잃었다는 정태 군에게 안내해 주게.”

입학식 때는 멀리서 봐서 잘 못 느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펄스너 교장은 같은 외계인인 헌터 양성소 소장보다 얼굴의 푸른빛이 살짝 더 진했다. 진우가 타르코스 소장을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펄스너 교장 선생님은 마나 치료가 가능하시네. 치료를 하려고 그러시는 걸세.”

타르코스 소장은 진우의 부탁으로 최근 그에게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다. 교장은 담당 의사에게 간단한 검진 결과를 전해 듣더니 바로 정태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케이튼의 조세연 박사와는 달리 그의 손에 엷은 녹색의 마나가 맺혔다. 20분가량 정태의 머리와 어깨를 집중적으로 치료하던 교장은 숨을 크게 내쉬며 치료를 끝내더니 진우에게로 왔다.

“담당 의사의 말에 의하면 머리는 가벼운 뇌진탕이니 크게 걱정할 것은 없고, 오른쪽 어깨뼈가 부서졌었다고 하네. 내가 일단 뼈를 다 붙여 놓았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걸세. 마음 같아서는 자네도 치료를 하고 돌아가고 싶지만 마나 치료사는 체내 마나량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힘들 것 같군. 대신 병원 의사들에게 잘 치료해 달라고 말을 해 놓겠네.”

진우가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자, 교장은 그래도 반드시 진찰을 받으라고 하며 말을 덧붙였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전해 들었네만, 나중에 치료가 끝나면 교장실에 들러 자세한 이야기를 좀 해 주게. 일처리는 내가 나서서 알아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교장은 병원을 떠났다.

*  * * * *

정태는 그날 밤 늦게 의식을 회복했다. 그날 저녁 뉴스 헤드라인은 온통 영화관 화재 사건으로 도배되었다. 극장에 방화범이 침입해 고의로 화재를 일으켰고, 정작 범인은 누군가와 격투 끝에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수많은 관객들이 화재를 피해 쏟아져 나오면서 현장을 목격했다. TV 뉴스에서는 끊임없이 목격자 꼬리표를 단 사람들이 나와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엉뚱하게도 화재 자체가 아니라 죽은 방화범의 직업이 현직 하급 헌터라는 사실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 수많은 목격자 중에 진우가 범인을 때려잡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격투가 벌어졌던 곳이 극장의 오른쪽 복도였는데, 화재로 인해 새어나온 연기가 복도를 가득 채우는 바람에 사람들이 나왔을 때에는 이미 시야가 거의 가려진 상태였다.

누군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연기 속에 비친 그림자로 어렴풋이 알아 챈 사람은 있었지만, 아무도 진우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는 못했다. 게다가 화재 때문에 극장 밖으로 사람들이 몰려나가느라 그의 싸움 장면을 유심히 지켜볼 여유가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한쪽 구석에 쓰려져 있던 정태에 대해서는 눈치 챈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죽은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도 그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통해 짐작할 뿐이었다.

저녁 뉴스가 한창 나오고 있을 때 일단 돌아갔던 소장과 교장이 최현을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이미 세 사람이 어느 정도 의견 교환을 마친 눈치였다.

“진우군, 우리 생각에는 이번 사건에서 방화범을 발견하고 결투 끝에 사망하게 한 사람이 진우 군이 아니라 최현 교관이라고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네.”

진우는 소장의 말을 듣는 순간, 일이 어떻게 처리될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의 표정을 살핀 최현이 소장을 대신해서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소장님 말은 오늘 그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사람은 너희 둘이 아니라 나까지 셋이었다고 하자는 거다. 영화를 보던 중 이상한 냄새가 나서, 너희 둘이 확인해 보려고 함께 나갔다가 마침 화장실에 불을 지르고 나오던 범인을 만난거야. 거기서 격투가 벌이지는 바람에 둘 다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그 뒤에 나온 내가 범인을 때려 쓰러뜨린 거지. 뭐 여자 친구도 없는 헌터 학교 소속 세 명이 일요일에 액션 영화를 함께 보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니까. 마침 영화 소재도 헌터였고 말이야.”

마지막 말이 뭔가 좀 슬프게 들린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범인은 이미 사망했으니 세 사람만 말을 맞추면 문제는 없었다.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세 사람은 일어섰다. 펄스너 교장은 돌아가기 전에 진우에게 정태가 깨어나면 이 일을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자네 말을 들어보니 그날 정태군은 일찍 기절하는 바람에 방화범과의 격투 장면은 보지 못한 듯하네. 그러니 정태 군에게는 그날 우연히 최현 교관이 같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고 설명해 주게. 최현 교관이 정태 군이 기절한 뒤에 범인을 쓰러뜨렸다고 하면 될 걸세. 극장이 버스 터미널에 있었으니까, 서울이 집인 사람들이 주말에 우연히 한 장소에 있었던 걸로 하세. 다만 남들에게는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처음부터 그냥 함께 있었던 것으로 말해두기로 한 걸로 좀 설득을 해 주게.”

“네. 그렇게 잘 말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럼 자네들 퇴원하고 나면 언제 한 번 교장실에 들르게. 차나 한 잔 하지.”

“네. 시간 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교장을 비롯한 세 사람은 그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진우는 정태가 의식을 차린 뒤,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한 듯하자, 교장의 말대로 정태에게 최현에 관한 일을 이야기했다.

“우와, 신기하네. 어떻게 마침 그때 교관님이 우리랑 같은 극장에 있을 수가 있냐. 아니었으면 너나 나나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네.”

“그래. 근데 기자들에게 그게 우연이었다고 설명하면 또 이상한 꼬투리를 찾아 물고 늘어질지도 몰라. 그래서 교관님도 우리와 함께 그냥 처음부터 함께 영화를 보러 갔었다고 얘기를 하기로 했어. 그러니 너도 누가 물으면 그렇게 얘기를 하라는 말이야.”

“그래. 누가 물으면 일요일 날 여자 친구도 없는 칙칙한 사내 셋이 함께 모여 영화관에서 액션 영화나 보고 있었다고 하면 된단 말이지?”

아, 이 자식이 말을 해도.

*  * * * *

방화범의 이름은 도지형이었다. 언론에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어릴 적에 화재를 당했다는 일부터 시작해서 그의 성장과정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자식에게 무관심한 엄마, 가혹한 의붓아버지에 관한 다소 식상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람들은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 떠들어댔고, 한편으로는 범인을 동정하면서도 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에 은근슬쩍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뉴스의 초점이 조금 이상하게 변했다.

[헌터에 대한 국가적 통제 시급해]

[초인의 힘, 범인의 마음? - 힘에 따른 높은 윤리의식이 필요]

[인성교육이 부재한 헌터 학교의 교육 실상]

[대낮 도심의 격투. 시민들은 불안하다]

그리고 이번 일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서도 누군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은 느낌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포털에 대한 통제 - 지구인에 대한 통제인가?]

[우리의 생존, 과연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가?]

[전직 헌터의 고백 : 우리는 외계인의 노예였다]

기분이 묘했다. 기사들은 대부분 원칙적으로 옳은 소리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사를 읽다 보면 중간에 다소 무리한 논리들이 등장하면서 결국 결론이 이상한 곳으로 가고는 했다. 기사들의 제목도 은근히 자극적이었다.

헌터들은 분명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초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높은 책임 의식이나 윤리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 아무리 헌터 학교의 모토가 ‘자유’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정한 수준의 국가적 통제에 따라야 하는 것도 분명한 일이었다.

극장에서 있었던 이번 싸움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범인 이외에는 무고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끝났다. 그러나 몇몇은 극장을 빠져나가는 혼란 중에 가벼운 상처를 입기도 했고, 무엇보다 벽과 바닥에 보통 사람들의 싸움과는 다른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았다. 그런 전투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나 불안하기 마련인 게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헌터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는 사실 드문 편이었다. 일반인들과의 마찰로 인해 가벼운 상처를 입는 피해자가 생기는 경우야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던가, 고의가 아닌 실수에 의해 발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헌터들은 지구에서 생활할 때 웬만해서는 힘을 과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힘의 과시란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그걸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문 헌터만 되어도 이미 동네 유지 노릇을 했다. 마나를 각성한 헌터의 경우 그 수가 적기도 했지만, 일부는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래서 헌터라는 신분이 노출되면 이쪽에서 뭐라고 하기 전에 이미 상대방이 어느 정도 대우를 해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달리 헌터가 청소년들의 희망직업 순위 1위겠는가.

이익도 마찬가지였다. 헌터들의 수입은 철저하게 능력에 따라 좌우되었다. 그러나 아직 마나를 각성하지 못한 전문 헌터들의 수입만 해도 연봉으로 따지면 대기업 부장보다는 높았다. 마나를 각성한 헌터들의 경우 그보다 몇 배 이상 높았고, 발현이 가능한 중급 이상의 헌터라면 거의 걸어 다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힘을 과시해서 추구할 이익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헌터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위한 과목이 따로 정규 과목으로 개설된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수시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을 하기는 했다. 최소한 입시에 목을 매는 일반 학교에 비해서는 훨씬 높은 수준의 인성 교육 관련 프로그램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청소년들이 과도한 힘을 얻음으로 인해 일탈 행위에 빠지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문 헌터 이상일 경우 고의로 일반인들에게 상해를 입힐 경우 엄중한 제재 조치가 뒤따랐다. 헌터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국가가 정한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는 것 이외에도 헌터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규정에 따른 엄한 징계가 뒤따랐다. 작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기간 동안 포털 사용을 금지시켰으며, 조금이라도 중한 경우에는 헌터 자격이 영구히 박탈되었다. 고의가 아닌 실수나 우연의 의해 발생한 일조차도 그 결과가 심각할 때에는 헌터 협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지구에 헌터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지 이미 이십 오년 이상이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이 누적되면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문제 예방책이 마련되었고, 또 실행되고 있었다. 기자들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기사들의 방향이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지구인들이 마치 외계인들에게 목줄을 붙잡히고 사는 것처럼 작성된 기사들은 지구와 외계인들 사이에 만들어진 기본적인 협약 자체를 모른 체 하고 있었다. 그 협약은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지배나 복속을 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진우는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거지?

헌터 양성소의 타르코스 소장이 병문안을 왔을 때 진우는 그에게 최근의 이상한 보도들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소장은 쓰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 이면에 다소 복잡한 의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진우 군은 그런 문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미 주겠다고 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혹시 감추고 주지 않을까 봐 보채고 있다고 할까? 그냥 조금 기다리면 알아서 잘 처리될 걸세.”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었지만 진우는 일단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지구인인 자신이 공연히 외계인을 위해 역성을 드는 것도 어색했지만, 아직은 스스로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였다.

*  * * * *

사실 방화범 도지형의 일로 진우를 괴롭히는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어쨌거나 진우는 이번 일로 어린 나이에 살인을 저지르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그에게 다소 무거운 정신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진우는 아직 16살이었다. 살인의 경험이란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고개 한 번 흔들어서 쉽게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케이튼 행성의 대수림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는 맹수들과 치열한 싸움을 했었다. 이겼기에 살아남았고,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대부분 죽였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그렇다고 맹수나 마수를 죽이는 일이 즐겁거나 뿌듯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상대를 죽임으로써 내가 살아남게 되었다는 안도의 감정뿐이었다. 워낙 험난했던 생존 투쟁이었기 때문에 심각한 정신적 충격 같은 것도 없었다. 오히려 같은 일들이 거듭되면서 일찌감치 사냥에 대한 거리낌이나 혐오감을 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물론 도지형은 무고한 사람들을 불바다 속에 빠트리려고 했던 정신병자나 다름없는 악인이었다. 상대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보통 사람이라면 한 방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공격을 했다. 그러나 도지형은 분명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상처를 치료받은 날, 진우는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똑같은 생명인데도 그게 맹수냐 사람이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킬 줄은 스스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 꿈을 꾸었고, 매일 고민했다. 꿈속에서 죽은 도지형이 나타나 얼굴에 싸늘한 비웃음을 띠고 자신을 쳐다보는 날에는,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심란했다. 이겨내야 할 죄책감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알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여기, 병원은 헌터들을 위한 곳이라서 그런지 병원 밥이 끝내 준다.”

도지형에 대한 기억은 벌써 다 잊었는지 옆에서 입이 터져라 밥을 먹고 있는 정태의 튼튼한 신경이 몹시 부러웠다. 마나 크리스털을 꺼내 놓고 명상을 하면 좀 나을 것도 같았는데, 병원에서는 주위의 이목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초조함 속에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 작품 후기 ============================

오늘 연재분으로 첫 학기가 끝나고 방학으로 들어갑니다. 내용상 편수가 애매하게 끊기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아서 3연참으로 갑니다. 얼른 방학 들어가야죠.

다른 작가 분들 후기를 보면 계속 선작,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계속 나오길래 이게 그렇게 고마운가 싶었는데, 제가 글을 올려 보니 정말 고맙더군요, ㅎㅎ.

코멘트는 열심히 챙겨봅니다. 제 생각에 재미있고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남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는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도움도 많이 됩니다. 다만 말씀드렸듯이 이 글은 이미 어디서 달리고, 어디서 꺾고, 어디서 맺을지 그림을 그려두고 쓰는 거라서, 에피소드 한 두개라면 모를까 전개에 대한 요구는 대체로 반영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제가 초보라서 그렇게 하면 본래 계획했던 틀을 유지하기 힘들 거 같아서요.

첫 글이라 일단은 생각했던대로 쓰고, 그러면서 코멘트를 보고 배우겠습니다.

설정은 나름 거의 다 해 두고 쓰고 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소설의 내용이 흘러가는 동중에 필요할 때마다 소설 내에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작품 설정란에 헌터의 종류와 등급, 수에 대해 설명해 두었는데 그게 아마 소설 밖에서 설정에 대해 설명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 같습니다.

내일도 3연참이 될 겁니다. 제가 그 다음 얘기를 빨리 하고 싶어서요 ^^;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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