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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36화 (36/235)

36화

도지형은 고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차라리 고아인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행했다. 만약 헌터가 되지 못했다면 그는 평범한 방화범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헌터 후보자 테스트에 합격했다. 헌터 학교를 졸업하고 전문 헌터가 된 지 5년 만에 그는 마나를 각성해서 하급 헌터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 후 10년이 지난 지금, 도지형은 평범한 하급 헌터이자 신출귀몰한 연쇄 방화범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불이 났다. 삼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의 집에는 당시 엄마가 새로 사귄 애인과 함께 술이 취해 함께 자고 있었다. 불은 부엌에서 시작되어 삽시간에 거실로 번졌다. 잠결에 놀라 깨어난 엄마의 애인은 옆에 자던 도지형의 엄마만 들쳐 업고 간신히 집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한 소방관들이 집에 있던 도지형을 구해냈지만, 이미 그의 등에는 커다란 화상 자욱이 남아 있었다.

엄마의 애인은 나중에 그녀의 아들이 집에 남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도지형은 알고 있었다. 이상한 기척을 느낀 그가 자기 방에서 막 빠져 나오려고 하는 순간 엄마를 들쳐 업고 문을 향하던 남자와 부딪혔다. 다시 방안으로 나동그라진 그를 힐끗 쳐다본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넘어지면서 하필 발목이 접질린 그는 집안을 가득 채운 열기와 공포로 인해 소방관이 올 때까지 집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그의 어머니는 도지형이 집에서 불을 만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가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것조차 질색을 하셨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불이 나던 날 자신의 애인이 불이 난 집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빠져나왔다는 이야기를 본인에게서 직접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애인과 헤어지기는커녕 그와 재혼을 했고, 도지형은 자신을 죽일 뻔한 남자를 새아버지로 모시고 살아야 했다.

헌터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는 새아버지가 술에 취할 때마다 걸핏하면 두드려 맞았다. 도지형은 불이 나던 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가끔씩 살기를 띠고 자신을 쳐다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에 마음이 상한 새아버지는 자주 매를 들었다. 지금도 그는 만약 자신이 헌터 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오래지 않아 적어도 둘 중에 한 사람은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헌터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지형은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다. 그가 헌터 학교 졸업 후 1년 만에 전문 헌터 자격증을 따고 모처럼 집에 갔을 때, 안에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담장 밖까지 들려왔다. 그는 담을 타고 넘어가 창문을 통해 자신의 엄마가 새아버지에게 모질게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도지형은 아무 말도 않고 다시 담을 넘어 집을 나왔다.

새아버지는 착하지도, 유능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시내의 전자 상가에 조그만 가게를 열고 있었는데, 가끔씩 가게 문을 닫고 사람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가게 구석의 야전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 때가 많았다. 도지형은 그가 가게 안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 때까지 며칠을 기다렸다.

드디어 밤늦도록 새아버지가 인근 사람들과 술을 먹는 모습을 확인한 그는 새벽이 되기 조금 전에 닫힌 가게의 자물쇠를 소리 없이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아버지는 혼자 야전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는 안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인 뒤 다시 문을 닫고 미리 준비했던 새 자물쇠를 채웠다. 다음날 새아버지는 가게 안에서 불에 타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도지형은 뉴스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엄마를 보지도 않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다.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한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날 그는 사년 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전문 헌터가 된 지 사년 만에 마나를 각성해 하급 헌터가 된 그는 다시 엄마를 보러 갔다. 헌터 학교에 입학한 뒤 무려 팔 년만의 귀가였다. 그의 엄마는 폐인이 되어 있었다. 그를 반기지도 않았고, 죽은 애인 대신 술을 끼고 살고 있었다. 척 봐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도지형을 본 엄마는 그에게 악을 썼다.

“네 놈한테 불귀신이 붙어서 이 꼴이 된 거다. 너 때문에 집에 불이 났고, 너한테 내린 저주 때문에 새아버지마저 불에 타 죽은 거야.”

기가 막혔지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는 술잔을 비우는 사이사이마다 자신을 향해 욕을 해대는 엄마가 지쳐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신의 집에 다시 불을 질렀다. 두 번째 방화였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모든 악연을 깨끗이 불태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의 집에 불을 지르고 나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헌팅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손이 벌벌 떨릴 정도의 쾌감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 짓을 그만 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그만 둘 이유도 없었다.

그 뒤로 전국에서 몇 달에 한 번씩 인위적인 방화임이 분명한 화재 사건들이 발생했다. 도지형의 짓이었다. 그는 하급 헌터가 된 뒤로 외계 행성에 헌팅을 나갈 때마다 출발 전에 한 번씩 전국을 돌아다니며 방화를 했다. 자신과 특별히 연고가 없는 곳에 방화를 한데다가 불을 지르고 난 뒤에는 늘 곧바로 포털을 통해 외계 행성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에 그는 한 번도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경찰에서는 몇몇 방화사건의 연계성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윤곽을 잡을 수 없었다. 도지형은 어느새 신출귀몰한 방화범이 되어 있었다.

*  * * * *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초급1 전투훈련 과목을 무려 3개나 연속해서 통과받자 어쩐지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5월 중순이니 학기가 끝나는 6월말까지 한 달 반이나 되는 기간이 남아 있었다. 오후의 전투 훈련 과목만 따지면 학기가 한 달 반 일찍 끝나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검술과 격투술은 새롭게 초급2로 과목을 바꾸어 수강 신청을 했지만 두 과목 모두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업을 시작하기로 한 덕에 진우는 금요일 오후부터 다소 한가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너 이번 주말에 뭐할 거냐?”

훈련에 다소 적응이 되었는지 최근 들어 얼굴에 시퍼런 멍을 달고 다니지 않게 된 정태가 학교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물었다.

“주말에? 글쎄? 그냥 도서관에서 가서 일반 교과 과목 공부도 하고, 책도 좀 빌려 읽으려고 했는데?”

“그동안 얼굴에 매일 울긋불긋 얼룩이 져서 집에도 못 갔고 있었잖아. 그래서 내일은 오랜만에 집에 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우리 엄마가 네 얼굴도 보고 싶다고 같이 오라고 하더라.”

정태 부모님은 진우가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은근히 이것저것 신경을 써 주시고는 했다. 그가 주말에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내는 게 안타까우셨던 모양이었다. 본격적인 전투 훈련이 시작된 뒤로는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둘 다 학교 밖을 나가본 적이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외출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러고 보니 나도 너희 부모님 뵌 지 오래 된 것 같다.”

다음날 학교에서 아침을 먹고, 정태와 함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서울 행 무중력 버스를 탔다. 40분 남짓 걸려 서울 터미널에 도착한 정태가 영화를 한 편 보고 가자고 했다.

“영화? 집에 먼저 안 가고?”

“영화 한 편 보고 집에 가면 딱 점심시간일 거 아니냐. 그동안 문화생활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사느라 내 감수성이 다 메마른 것 같다.”

그렇게 말한 녀석이 정작 선택한 것은 헌터를 소재로 한 하드코어 액션 영화였다. 진우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훈련 시간에 하도 얻어맞다 보니 감수성까지 멍이 들은 게냐?”

모처럼 외출한 보람도 없이 사내자식 둘이 나란히 앉아 피가 튀는 액션 영화를 보는 기분이 좀 꿀꿀하긴 했지만, 영화 자체는 나름 재미가 있었다. 둘 다 큼지막한 팝콘을 껴안고 화면에 몰입하고 있는데 문득 진우의 코에 어디선가 희미하게 타는 냄새가 났다. 영화가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였다.

“정태야,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니?”

“아니, 안 나.”

정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물었지만 녀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을 했다. 아나, 이 자식.

“야,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한 번 잘 맡아 봐.”

그제야 녀석도 코를 킁킁 거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팝콘 냄새밖에 안 나는데?”

진우는 정태를 포기하고 마나를 엷게 퍼트려 주변을 탐색했다. 객석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객석 바깥으로 마나를 확대시키자 오른쪽 복도 끝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야, 불난 거 맞는 거 같다. 잠깐 나가 보자.”

공연히 소란을 일으킬까 봐 정태에게 낮게 속삭이고는 허리를 숙인 채로 살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정태 녀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는 혀를 한 번 차고는 다시 돌아가 녀석의 귀를 잡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정태는 입으로 뭐라고 구시렁댔지만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 밖으로 나와야 했다.

둘이서 객석 오른쪽의 비상문을 살짝 열고 바깥으로 나와 보니 막다른 복도 끝에 있는 남자 화장실에서 이미 시커먼 연기가 빨간 불꽃과 함께 천정을 타고 흐르는 게 보였다.

“불이야!”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데 화장실에서 야구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남자 하나가 급히 나와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진우는 ‘불이야’하고 고함을 지르며 소화기를 향해 뛰어가는 정태를 슬쩍 본 뒤, 발을 멈추고 남자를 소리쳐 불렀다.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사내는 진우가 계속 부르는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바삐 걸어갔다. 새카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꽃이 비치는 곳에서 방금 나온 남자가 아무런 말도 없이 제 갈 길만 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진우는 급히 뛰어가서 막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우의 손을 툭 쳤다. 그 바람에 손이 튕기면서 남자가 쓰고 있던 야구 모자를 쳤다. 야구 모자가 훌렁 벗겨지자 그 안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한 삼십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저씨 잠깐만요. 방금 저기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으셨어요?”

그러자 남자가 허리를 숙여 떨어진 야구 모자를 집어 들며 혀를 쯧쯧 찼다.

“그 자식, 그냥 갈 것이지. 왜 쓸데없이 목숨을 버려.”

사내의 입에서 쇠를 긁는 듯한 낮고 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진우가 잠시 남자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찰나 그가 순식간에 어깨를 부딪쳐 오며 오른손 손바닥으로 가슴을 가격했다. 손바닥에 시퍼런 마나가 맺힌 것이 보였다.

“이 자식!”

깜짝 놀란 진우가 급히 배와 가슴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팔을 들어 사내의 손바닥을 막았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사내가 손을 뻗어 오는 속도 역시 일반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진우는 사내의 공격을 팔뚝으로 막았지만 마나를 충분히 끌어올리기도 전에 가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가 복도 뒤쪽의 벽을 등으로 들이받고 떨어졌다.

“빌어먹을. 너 이 자식 헌터구나.”

온몸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프면서 잠시 정신이 몽롱했다.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진우가 벽에 부딪혀 쓰러지는 모습을 본 정태가 들고 있던 소화기를 팽개치고 진우에게로 뛰어왔다.

“오지 마.”

급히 손을 들어 말렸지만 이미 정태가 사내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분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사내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맺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채 가시지 않은 고통을 무릅쓰고 사내를 향해 뛰어가는데 녀석이 막 정태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 보였다. 진우는 손을 최대로 뻗어 찔러가는 사내의 팔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의 손에 살짝 방향이 바뀐 놈의 주먹이 기어코 정태의 왼쪽 어깨로 파고들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정태가 비스듬히 뒤로 날아가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다행히 정태를 가격한 주먹에는 마나가 많이 실려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일격에 의식을 잃은 정태는 벽에 기댄 채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엄청난 힘이었다. 진우가 정태를 가로 막으며 급히 손에 마나를 넣어 내질렀다. 남자는 흠칫하더니 가볍게 뒤로 뛰는 동작만으로도 5미터 가량을 미끄러지듯 물러났다. 놈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녀석이 예의 그 쇠를 긁는 듯한 거북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어려보이기에 고등학생인 줄 알았더니, 헌터였나?”

진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놈에 대한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 일단 몸 전체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보아하니 마나를 각성한 헌터인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극장에 불을 지른 거지?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자 사내가 픽 웃었다.

“그걸 알아 봤어? 하긴 마나가 실린 일격을 맞고도 죽지 않고 일어난 걸 보니, 어린 나이에 제법이군.”

남자는 말을 하면서 전신에 마나를 돌렸다. 진우는 직감적으로 상대가 신체형 하급 헌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수형이나 치료형이 아니라면 오늘의 싸움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으로 케이튼 행성에서 케로스와 싸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긴장한 진우의 모습을 본 남자가 입가로 가느다란 조소를 머금었다.

“너를 죽여서 화장실에 쳐 넣으면 함께 잘 타겠군.”

말을 하는 동안 녀석이 눈빛이 점점 변하더니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마수의 그것처럼 살기와 광기로 빛나기 시작했다.

‘정상이 아닌 놈이군.’

고개를 살짝 돌려 화장실 쪽을 보니 정태가 소화기를 뿌리는 바람에 약간 주춤하던 불길이 다시 슬금슬금 천장을 타고 복도로 번져 나오고 있었다.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는 걸 보니 그것도 처리한 건가?”

진우가 묻자 녀석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감시 카메라도 먹통일 거야.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안 그래? 큭큭.”

“여기 극장에 큰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손님들까지 다 죽어야 속이 시원할 만큼?”

그러자 녀석이 찢어지는 듯한 거친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큭. 재미있군. 아주 재밌어. 너 아직 헌터 학교 학생이지? 죽이는데 무슨 이유가 있어? 죽이고 싶으니까 죽이는 것뿐이야. 버러지 같은 놈들이 사는 쓰레기 같은 세상을 불태우면 얼마나 깨끗해지겠냐?”

“그럼 넌 버러지만도 못해, 이 새끼야.”

진우의 발이 콘크리트 바닥을 으깨며 쏜살같이 앞을 향해 튀어나갔다. 진우는 몸에 마나를 발현시켰다. 몸속에 있던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 마나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면 오래 싸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래 할 싸움도 아니었다. 진우는 나중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놈은 진우의 공격에 직접 부딪히지 않았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마치 쉐도우 복싱을 하듯 요리조리 몸을 놀리면서 피하기 어려울 것 같은 공격만 가끔 손발을 이용해서 비껴 막았다. 놈은 단순히 미친 녀석이 아니라 싸움에 능숙한 헌터였다.

마나를 발현한 진우의 속도는 웬만한 헌터라도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녀석은 입에 비틀린 미소를 띤 채로 그걸 다 피하거나 막아냈다. 그렇게 1~2분 정도가 흘렀다. 진우가 손바닥으로 사내의 목을 후려치자 놈이 두 손으로 그걸 막아내면서 그 반동으로 자연스럽게 둘의 거리가 멀어졌다. 싸움이 잠시 멈췄다.

“어린 녀석이 제법이구나. 믿기지는 않지만 마나를 각성한 것 같군. 하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가? 힘 조절을 못해. 그렇게 전력을 다하면 나이로 볼 때 슬슬 마나가 고갈되어 갈 텐데?”

“헉, 헉.”

진우의 마나는 아직 많이 남았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숨을 몰아쉬는 척 했다. 녀석은 전투 기술에 있어서는 확실히 그보다 고수였다. 워낙 자신이 동체 시력과 인식 능력이 좋고, 생각에 따라 빠르게 반응하는 몸을 가졌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대등한 싸움을 벌이는 것 같을 뿐이었다. 기술 자체는 상대의 수준이 더 높았다. 남자는 숙련된 헌터였다.

하지만 진우는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상대 역시 수비를 중심으로 하며 마나의 소모를 아꼈지만, 진우의 공격을 맨 몸으로 막아낸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침착해 보였지만 남자 역시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적지 않은 체력과 마나를 소비했음이 틀림없었다.

‘상대의 힘이 한 방에 뼈를 부수고 내장을 흔들 수 있다면 기술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권일도 교관의 말이 떠올랐다.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려 몸을 강화시키면, 순간적이나마 자신의 힘이 상대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하나라도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있다면, 나머지 약점들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는 웬만한 중급 헌터를 능가하는 마나량을 가지고 있었다.

진우가 지친 모습을 보이자 상대가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끝장을 내려는 듯 주먹에 최대한 마나를 실어 날렸지만, 진우 역시 최대한 마나를 발현시켜 일부러 상대의 주먹과 발에 자신의 팔과 다리를 부딪치는 방식으로 방어했다. 남자는 몇 번 공격을 하더니 이를 악물었다.

“힘이 좋구나. 하지만 헌터의 싸움은 힘이 다가 아니지.”

상대의 주먹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러 개의 잔영을 뿌리며 공격해 들어왔다.

‘빠르구나. 다 막지는 못하겠어. 몇 개는 맞으며 버틴다.’

억지로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진우의 몸에 피멍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힘은 분명히 진우가 더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다른 기술과 능력들이 아직 부족했다.

남자의 왼쪽 주먹이 그의 인중을 향해 똑바로 날아왔다. 진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피했다. 다시 놈의 오른발이 그의 왼쪽 정강이를 향해 짧고 빠르게 휘둘러졌다.

‘이건 피하기 어려워.’

진우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발에 마나를 발현시켜 남자의 공격을 그냥 맞았다.

빠악

살갗이 옷과 함께 터져나가면서 발에 통증이 느껴졌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고통이 순식간에 다리를 타고 올라왔지만 이를 악물고 그냥 버텼다. 그 순간 상대의 오른손이 관자놀이를 노리고 훅을 그리며 들어왔다. 발의 공격을 그냥 버팀으로 인해 진우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왼손 팔꿈치를 들어 녀석의 주먹을 슬쩍 위로 밀어 올리면서 손바닥을 들어 장저로 강하고 빠르게 복부를 끊어 쳤다. 놈이 급히 팔을 내려 진우의 손을 막았다.

남자는 그의 공격을 간신히 막긴 했지만 충격을 완전히 해소시키지 못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진우의 눈에 상대가 한 발 물러나 호흡을 돌리려고 하는 게 보였다. 그는 틈을 주지 않고 몸을 밀어 붙였다. 양쪽 모두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가 없는 숨 가쁜 공방이 이어졌다.

============================ 작품 후기 ============================

슬슬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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