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검술 수업에 대해 교관으로부터 통과 인증을 받은 진우는 바로 그 주 수요일에 역시 궁술 시험에 대한 통과 인증을 획득했다. 나르샤 교관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글썽이며 통과 인증을 해 주었다.
진우는 여전히 나르샤 교관이 자신에게 왜 골이 난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정해진 사거리에 대한 단사와 연사 테스트가 끝난 뒤에도 자꾸 규정에도 없는 거리에 대한 테스트를 요구하자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궁술 테스트는 한 발씩 천천히 10발을 쏘는 단사와, 10발을 15초 안에 쏘는 연사 시험으로 이루어졌다. 본래의 규정 사거리는 5단계였다. 가장 짧은 거리인 25m부터 50m, 100m, 150m, 200m를 순서대로 쏘았다. 단사, 연사를 합해 100발을 쏘면 테스트가 끝나는 것이다.
표적지는 가까운 거리일수록 작았고, 멀수록 컸으며, 단사보다는 연사의 표적지가 조금 더 컸다. 평가는 표적지에 그려진 둥근 원 안에 적중을 시켰느냐의 여부만 따졌는데, 전문 헌터 시험의 경우는 거기에 0점부터 10점까지 점수가 표시된 표적지를 쓴다고 했다. 단사는 9발, 연사는 7발 이상을 적중시키면 합격이었다. 그런데 나르샤는 거기에다 300m와 400m, 그리고 500m를 추가시켰다. 진우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강한 활을 사용하려면 500m까지는 적중이 가능해야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억지였다. 결국 진우는 그날 60발을 더 쏘아야 했고, 진우의 활은 500m를 충분히 날아가 과녁을 꿰뚫었다. 강궁은 강궁이었다. 진우의 첫날 테스트 결과는 모두 합격이었다. 단사, 연사를 막론하고 한 발도 놓치지 않고 모두 적중시킨 것이다.
다음날의 전투 사격 테스트 역시 나르샤 교관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30분 동안 이동하면서 맹수나 마수의 사진이 붙어 있는 100개의 기습 표적을 맞추는 게 원래의 테스트였는데, 제한 시간을 20분으로 줄이더니 표적지 사이사이에 맞추면 안 되는 민간인 사진의 표적을 섞어 놓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표적지의 개수가 두 배로 늘어나 버렸다. 그래도 결국 진우는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가 실수 없이 테스트를 마치고 나자 나르샤 교관이 두 주먹을 꼭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익, 이럴 순 없어. 이건 불공평해.”
진우는 도대체 교관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르샤 교관은 통과 인증을 줄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의 눈초리가 워낙 곱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진우도 정말 짜증나기 이를 데 없는 괴물이었지만, 나르샤 교관의 태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자칫 교관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이를 악물고 통과 승인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 * * * *
저녁을 먹고 격투술 수업을 위해 도장으로 향하는데 어디를 다녀오는지 헐레벌떡 뛰어온 정태가 진우를 붙잡았다.
“야, 너네 궁술 교관이 그 엘프처럼 생긴 몸매 죽이고 예쁘장한 서양 여자 맞지?”
녀석, 기억을 하는 방식이 참... 남자답네.
“나르샤 교관?”
“그래, 그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여자 말이야.”
“응, 맞아.”
“야, 밥 먹고 나오는데 그 여자가 교관 숙소 뒤에 있는 벤치에서 울고 있더라.”
“왜?”
“내가 궁금해서 모퉁이에 몰래 숨어서 봤거든. 그 여자가 한 말 해 줄까?”
진우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방 후회했다. 녀석이 그 자리에 팍 쪼그려 앉더니 흑흑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흑흑, 내가 여태까지 어떻게 연습을 했는데, 흑흑, 내가 마나를 각성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흑흑, 발현 못한다고 무시당하면서도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궁수를 고집했는데, 흑흑, 이제 입학한 지 몇 달도 안 된 새파란 신입생이, 엉엉, 어떻게 나보다 더 활을 잘 쏠 수가 있냔 말이야, 엉엉. 이게 뭐야~ 앙~. 이런 게 어디 있어, 으아앙~~”
아, 이 자식 나르샤 교관의 가는 목소리까지 흉내 내고 지랄이다. 방금 저녁 먹고 나왔는데 토할 뻔 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진우는 이미 활에 마나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 * * * *
오후 전투 훈련을 두 과목이나 통과하는 바람에 갑자기 진우의 오후 시간에 여유가 생겨 버렸다. 권일도 교관에게 훈련 시간을 저녁에서 오후로 옮기자고 얘기할까 했지만, 그전에 먼저 정찬우 검술 교관이 소개해 준 새로운 교관을 찾아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우는 그 교관을 찾으러 갈 필요가 없었다.
궁술 과목을 통과한 다음날 아침, 진우는 여느 때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기숙사 뒤편의 동산에 올랐다. 평소처럼 명상을 마친 뒤 지난 주 검술 교관과 했던 대련을 되새기며 마나를 불어넣고 검술을 수련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나가 이끄는 대로 검을 움직이며 한참 신명나게 칼춤을 추다가 검을 거두고 호흡을 가다듬는데 뒤에서 난데없이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뭐 하나?”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공터 한 쪽에 놓여 있는 조그만 바위 위에 웬 노인 한 분이 쪼그려 앉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곁에 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저 할아버지 언제 오신 거지?’
마나를 풀어 놓고 수련을 할 때면, 아무리 무아지경이라고 하더라도 주변의 기척을 놓칠 수 없다. 마나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우는 주변에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런, 어린 녀석이 늙은이가 묻는데 왜 대답을 안 해? 너 뭐 하냐고.”
진우는 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죄송합니다. 누가 오는 걸 느끼지 못해서 실례를 했습니다. 검술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혀를 쯧쯧 하고 차더니 다시 물었다.
“검 들고 그렇게 설치고 있는데 그럼 누가 봐도 검술 연습하고 있는 줄 알지 뭐 딴 짓하고 있는 줄 알겠냐? 내 말은 검술을 왜 그딴 식으로 연습하느냐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참, 똘똘하게 생긴 녀석이 말귀를 못 알아듣네. 마나가 칼에서 줄줄 새잖아. 무슨 칼질을 하면서 마나를 그 따위로 낭비해? 힘 센 놈들이 헛심 쓴다더니, 딱 그 꼴일세.”
진우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그동안 마나를 각성했다는 사실을 가능한 한 숨기라는 소장과 최현의 말을 따라 전투 훈련 시간조차 전혀 마나를 일으키지 않고 훈련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마나가 없이도 신체적 능력을 최대로 다듬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낮에는 마나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오직 새벽에 혼자 연습할 때만 마나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진우의 훈련 모습을 보고 그가 마나틀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 아니라 줄줄 샌다는 얘기까지 했다.
노인의 말이 맞았다. 새벽 훈련마다 마나를 운용하여 신체를 강화시키거나, 검술과 격투술 등을 연습하면 끝나고 났을 때 마나가 조금씩 줄어 있었다. 명상이나 훈련을 통해 마나를 운용하는 도중,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 마나가 조금씩 몸 밖으로 빠져나와 흩어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마나를 보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걸 알아챈 거지? 이 노인 대체 누구야? 진우가 속으로 생각을 하느라 대답을 못하고 있자 노인이 앉았던 바위에서 일어나 진우에게로 다가왔다.
“얼굴 표정을 딱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 칼 이리 줘 봐.”
노인은 진우가 미처 대답을 할 사이도 없이 그의 손에서 검을 휙 뺏아 갔다. 진우는 막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검을 뺏기고는 어이가 없어 자신의 빈손을 바라보았다.
“잘 봐.”
노인은 한 마디 하더니 진우의 검을 들고 검술을 시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찬우 교관이 가르쳐 줬던 화려한 검술과는 달리 건조하게 베고, 찌르고, 휘두르는 일련의 동작이 간단하게 조합된 것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노인의 검술이 가진 위력을 금세 깨달았다.
‘저건, 보고도 막기 힘들다.’
어떤 동작은 너무 빨랐다. 아무리 눈이 아주 밝아도, 공격자보다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없다면 검이 빤히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막기 힘들 것 같았다. 현재의 진우라면 아마 피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어떤 동작은 너무 은밀했다. 검을 찌르고 휘두르는데 공기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칼이 공기 중에 스르르 스며들었다가 공간을 휙 하고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떤 것은 너무 강력했다. 설사 칼을 들어 막더라도 그 칼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았다. 진우는 노인의 검술 시연을 보면서 몸이 저절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엄청나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 노인이 어떻게 저런 검술을?’
한바탕 검술을 펼쳐 보인 노인이 손잡이를 돌려 검을 진우에게 돌려주면서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어떠냐? 네 놈이 하던 검술하고는 뭔가 좀 다른 게 있어 보이냐?”
진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노인이 재미있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보여? 그래 뭐가 달라 보이더냐?”
“검 밖으로 마나가 전혀 빠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검에 마나가 부여된 것 같은데도, 아, 영감님 마나를 사용하신 거 맞죠?”
그러자 노인이 진우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녀석이 딴 얘기는? 하던 얘기나 계속 해.”
“빠르고, 은밀하고, 강하더군요. 알아도 막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걸로 봐서는 분명 검에 마나가 깃들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껄껄대며 웃었다.
“막기 힘들 것 같았다고? 허, 참. 어찌 보면 맹랑한 놈이고, 어찌 보면 기특한 놈일세 그려. 보통 녀석들이면 그저 보고도 막지 못하겠다고 했을 텐데. 그냥 막기가 힘들 것 같다?”
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노인 보통이 아니었다. 도대체 누구지? 권일도 교관도 그렇고, 정찬우 교관도 그렇고, 또 이 노인도 그렇고. 이 학교에는 생각 외로 강자들이 많았다. 그는 새삼 헌터 학교가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노인이 불쑥 말을 건넸다.
“어떠냐? 배울 생각이 있느냐?”
“네?”
진우는 느닷없는 노인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저기, 그런데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제가 이 학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거 같아서요.”
“이놈아, 헌터 학교에 있으면서 학생에게 배우겠냐고 물어 보면 당연히 이 학교 교관이지.”
“영감님이 교관이시라고요?”
“그렇다니까!”
“저기, 제가 입학식 날도 그렇고, 검술 교관님들 시범할 때도 영감, 아니, 교관님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그러자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야, 이놈아 그럼 내가 이 나이에 그 어린 녀석들하고 같이 몰려다니면서 나 봐달라고 소개하는 낯간지러운 짓거리를 해야 하겠냐? 알아서 찾아와서 배우겠다고 하면 봐서 하든지 말든지 하는 게지.”
“저기, 영, 아니, 죄송합니다. 교관님 성함이?”
“나? 조승운이여. 왜? 들어 봤나?”
들어봤다. 아니 그냥 이름만 본 적이 있었다. 진우는 급히 주머니에서 정찬우 교관이 준 종이를 꺼내들었다. 거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조승운. 교관 숙소동 가-310호. 그 사람이 이런 노인이었다니.
진우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1학년 강진우입니다. 정찬우 교관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많이 들기는. 조그만 녀석이 거짓말은. 이 학교에서 누가 내 얘길 해? 있는 줄도 잊어버린 놈들이 많을 텐데.”
“정교관님이 그렇잖아도 찾아뵙고 인사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검술 수업을 ...”
그러자 노인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을 끊었다.
“들었어. 찬우 그녀석이 전화를 하더라고. 벌써 마나를 각성한 것 같은 어린 녀석이 하나 있는데 한 번 가르쳐 보지 않겠냐고.”
마나를 각성한 걸 숨기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이 있는 교관들은 진우가 하는 것만 봐도 눈치를 채는 것 같았다. 나르샤 교관이 유일하게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교관이었다. 아무리 숨겨도 수련의 정도와 성격을 보면 말을 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훈련을 대충 할 수도 없었다. 이러다가는 조금 지나면 학교 전체에 자신이 마나를 각성했다는 소문이 퍼질 것 같았다.
노인은 진우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보더니 다시 클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찬우가 아무래도 네 놈이 그걸 숨기려고 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으니까. 그녀석이나 나나 어디 가서 말을 옮기지는 않을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말거라.”
조승운 노인, 아니 조승운 교관은 뒷짐을 지더니 진우를 보고 다시 물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나한테 검술을 배워 볼 테냐, 아니면 지금처럼 마나가 줄줄 새는 검법을 계속 할 테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진우는 허리를 깊게 숙여 조승운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노인이 가늘게 웃으며 진우를 바라보았다. 정찬우 교관의 짐작대로 노인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이 걸렸다.
* * * * *
결과적으로 진우의 여유 시간은 더욱 많아졌다. 할아버지 교관인 조승운이 훈련 시간을 오전 5시에서 7시까지로 정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을 통해 신체를 훈련하고 난 뒤의 시간을 검술 훈련 시간으로 삼기로 하였다. 다만 학교에는 훈련 시간을 오후 4시에서 6시라고 보고했다. 저녁 이후의 격투술 훈련 시간 편성도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었는데, 새롭게 시작하는 검술 훈련마저 새벽이라고 하면 이상한 놈으로 볼까 싶어서였다.
대신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 하던 권일도와의 수업을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권일도에게는 학기 초부터 시간 때문에 무례를 범한 적이 있기 때문에 사실 말하기가 몹시 곤란했다. 그런데 조승운을 만난 바로 그 날 권일도가 먼저 수업시간에 말을 꺼냈다.
“네 녀석이 검술하고 궁술 훈련을 벌써 통과했다고 들었다. 사실이냐?”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권일도는 말없이 헌터 패드를 꺼내 몇 가지 조작을 했다. 조금 후에 진우의 헌터 패드에 초급 격투술1 과목이 통과되었다는 안내가 떴다. 검술과 궁술 훈련을 통과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권일도가 그대로 자신이 맡은 격투술 수업마저 통과를 인증해 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진우가 그를 쳐다보자 권일도는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알기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했다.
“어차피 네 놈이 아직도 겨우 초급 전투 훈련 과목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게 더 우스운 일이다. 이미 2학년들 중에서도 네 상대를 찾기 어려울 텐데 서로 민망한 일이지. 이번 학기 내에 초급은 끝내는 걸로 하자.”
마나를 쓴다면 전문 헌터들도 진우를 이기기 힘들겠지만, 순수한 육체만으로 겨루는 것이라면 진우의 실력은 아직 헌터 학교 고학년들을 쉽게 상대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2, 3학년들 가운데에는 어릴 때부터 오랜 기간을 수련한 천재들이 드물게나마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짧은 기간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배우는 전투 훈련 과목들은 초급, 중급, 상급이라는 명칭이 앞에 따로 붙어 있었다. 1학년 때 배우는 과목이 초급, 2학년은 중급, 3학년은 상급으로 분류했던 것이다. 그리고 각 등급은 다시 학기별로 1, 2로 구분되었다. 즉 1학년 때 배우는 검술의 경우 1학기 과목명은 초급 검술1, 2학기 과목명은 초급 검술2과 같은 식으로 불렀다.
그간 권일도로부터 두 달이 넘게 격투술 훈련을 받으면서 진우는 제대로 된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다. 최근에는 여기저기 시퍼렇게 멍이 드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래봤자 권일도가 한 말은 ‘잘 하는군’이 아니라 ‘이제야 좀 조심조심하면서 치지 않아도 되겠군’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인정을 받기가 참 어렵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5월이 가기도 전에 수업을 통과시켜 준 것이었다. 그 무뚝뚝한 사람이 자신을 어느 정도는 인정을 해 주는 것 같아 그동안 힘들었던 훈련의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번 학기 내내 진우는 권일도로부터 모든 관절을 포함한 다양한 신체 부위를 이용한 공격 방법과 원리 등을 배웠다. 그리고 그에 따른 실제 전투 방법을 뼈와 살에 아로새기는 고된 대련을 통해 어느 정도 몸에 익혔다. 수업 통과를 승인하면서 권일도는 남은 학기 동안은 그동안 배운 기술들을 이용하여 하나의 연속된 동작으로 쉬지 않고 이어서 사용하는 방법을 익힐 것이라고 하였다. 그걸 초급 격투술2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강의 계획표에 권일도의 초급 격투술2가 새롭게 편성되었고, 시간마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로 변경되었다. 진우는 바로 수강 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았다. 학기 중의 새로운 수강 신청이라 역시 진우 외에는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1학년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진우는 오후 4시 이후로는 제법 넉넉한 여유 시간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