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잘 때는 불을 끄고 마나 크리스털을 꺼내니까 별 문제가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배 위에 올려놓은 마나 크리스털을 도로 숨기려니 함께 있는 정태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정태는 원래 잠이 많아서 밤 12시만 되면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워낙 하루 종일 몸을 격하게 쓰는 훈련을 받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잠을 많이 자기는 하였다. 그래서 진우는 그 점을 이용해 하루 일과를 조금 조정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정태가 잠이 들면 조그만 스탠드를 켜 놓고 책을 보거나 공부를 더 하다가 새벽 2시 경에 되어야 잠을 청했다. 몸이 좋아진 뒤로 하루에 4시간만 자면 피로가 씻은 듯이 풀렸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을 정태와 함께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활 리듬을 바꿨다. 일찍 일어나 미리 마나 크리스털을 챙겨서는 명상을 하기로 한 것이다.
기숙사 뒤편으로 조금 올라가면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다. 동산 꼭대기에는 헌터 학교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공터가 있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볍게 구보를 해서 그곳까지 올라간 뒤에 마나크리스털을 옷 속에 집어넣고 명상을 하면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새벽 명상에서 진우는 마나 크리스털과 교감하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헌터 양성소의 타르코스 소장이 마나 크리스털과의 교감을 억지로 서두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우는 명상을 통해 교감을 시도하기 보다는 자신의 체내에 축적되어 있는 적지 않은 양의 마나를 이용하여 몸을 단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구에는 마나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헌터들은 지구로 귀환하면 몸이 건강하고 싸움에 능한 사람일 뿐 초능력자로 행세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체내에 있는 마나를 소모하여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은 헌터다운 힘을 발휘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 체내의 마나가 모두 소모되어 정작 위급한 시기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한 번 소모된 마나를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체내에 마나가 고갈된 상태가 오래될수록 헌팅을 위해 외계 행성에 갔을 때 마나가 다시 축적되는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축적 가능한 절대 마나량 자체가 감소하는 경우도 생겼다.
지구로 귀환한 뒤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다들 바빠서 아직 정확하게 측정해 보지는 않았지만, 진우의 체내에 있는 마나의 양은 현존하는 지구인들 가운데 가장 많았다. 진우는 명상을 통해 그것을 온 몸에 돌려 신체를 단련했다.
명상을 하면서 몸속의 마나에 의지를 집중시키면, 세포 내에 깃들어 있던 마나들이 밖으로 나와 서로 섞이고 나뉘면서 온몸에 물결과 같은 파장을 일으켰다. 시간이 더 지나면 차가운 성질의 마나가 위로 올라와 머리를 적시고, 따뜻한 성질의 마나가 아래로 내려가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차가운 것이 아래로 내려오고, 따뜻한 것이 다시 위로 올라가 서로 섞이면서 온몸을 휘돌았다. 그것이 절정에 이를 때면 앉아 있는 바닥으로부터 날카로운 기운이 섬광처럼 치솟아 정수리를 관통했다.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양감이 찾아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나면 저절로 명상에서 깨어났다.
한 번 명상에 들었다가 깨어나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근육이 좀 더 질기고 탄력 있게 변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권일도 교관과의 훈련에서 얻은 멍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때문에 전날 밤에 분명히 비슷한 멍을 단 채로 잠이 들었는데도 아침 식사 시간만 되면 멀쩡한 얼굴이 되어 식당에 내려오는 진우를 보고 정태가 ‘트롤 같은 자식’이라고 투덜거렸다.
명상을 하는 가운데 체내의 마나를 이용하여 신체를 단련하면 매일 조금씩 마나가 소모되었다. 명상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체내 마나량을 볼 때, 최소한 여름 방학 때까지는 마나를 이용한 단련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케이튼에 가면 다시 마나를 축적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되는 문제였다. 워낙 애초에 가지고 있던 마나량이 많았고, 진우의 경우 마나에 대한 운용력이 뛰어나 신체를 충분히 단련시키고도 소모되는 마나량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 마나 헌터들이라면 알면서도 할 수 없는 단련법이었다.
* * * * *
학기가 시작할 때 진우의 처음 계획은 오전 수업 때 듣는 교과목들에 대해 최대한 빨리 통과 시험에 합격해서 전투 훈련을 위한 시간을 가능한 한 여유 있게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통과 시험이 생각과는 달리 학기가 끝나는 6월말에 있는데다가, 전투 훈련과 신체 단련에 많은 시간을 쓰다 보니 오히려 일반 교과 공부를 따라가는 것조차 빠듯했다.
일반 교과에 대한 통과 시험은 일 년에 4차례였는데, 매년 학기 초인 3월초와 방학 직전인 6월말, 그리고 2학기에는 9월초와 12월 말에 각각 한 번씩 통과시험이 있었다. 헌터 학교는 7월 1일과 12월 30일에 각각 방학이 시작되어 두 달 동안 수업을 쉬었다.
신입생들이 학기 초의 어리버리한 모습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무렵인 4월 중순, 검술 수업에서 드디어 한 학생이 교관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진우가 속한 반에는 그를 포함한 남학생 4명과 여학생 1명이 있었는데, 그 중 정일성이라는 남학생 한 명이 먼저 나선 것이다.
교관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정일성에게 경고했다.
“정일성 학생, 저는 대련이라도 살살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괜찮겠어요?”
정일성은 입술을 꾹 다물더니 각오를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대련은 목검으로 할 거에요. 10분 동안 버티면 통과입니다. 그전에 학생이 먼저 손을 들어 항복을 표시하거나, 제 판단에 더 이상 대련을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중지를 선언할 겁니다. 아시겠죠?”
“네.”
검술 수업은 비가 오거나 하지 않는 이상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대련은 헌터 학교의 넓은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 주위에는 검술이나 도술, 격투술을 수련하는 다른 학생들이 각자의 교관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었다.
정일성은 헌터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상당한 수준의 검술을 수련한 흔적이 있었다. 성격은 다소 가벼워 보였지만 진우 다음으로 빨리 교관의 검술을 따라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고도 녀석은 두 주 이상 대련 신청을 하지 않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마도 진우가 먼저 대련 신청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정일성의 바람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따로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격은 정일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검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바로 질풍처럼 교관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자세는 좋았다. 하체가 단단하게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움직일 때는 또 날렵했다. 그는 전후좌우로 계속 이동하면서 과감한 공격을 펼쳤다. 정일성은 자신을 가질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관이 보여주었던 검술을 완벽하게 시전 했다. 하단, 중단, 상단을 거쳐 좌우로 움직이는 일련의 연결 동작은 화려하면서도 정확했다. 자세와 동작을 보면 교관이 시범을 보였던 검술을 열심히 익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쯧.’
하지만 진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너무 교과서적이었다. 몸은 검술을 잘 소화하고 있었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부족해 보였다. 검의 움직임이 너무 빤히 눈에 보였던 것이다. 교관의 검술을 교관이 운용하던 방법 그대로 따라하면서, 자신보다 훨씬 그 검술에 익숙한 사람에게 효과를 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물론 불과 50일 정도의 수련을 통해 그 검술을 평생 익힌 사람을 이긴다는 것은 아무리 타고난 천재라도 불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저렇게 화려한 검술이 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에 빤히 보인다는 것은 동작의 목적이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10분을 버티기는 힘들어 보였다.
처음 3분 정도 정일성의 공격을 계속 받아주면서 수비로만 일관하던 교관은 3분이 지나면서 반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하던 정일성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눈에 띄게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뒤 운동장에 봄날 마당에 널었던 이불을 두드리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빡, 뻑, 빡, 빡, 뻑.
운동장에서 훈련하던 다른 교관과 학생들조차 흠칫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로 아주 찰진 소리가 정우성의 몸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소리가 멎었을 때는 교관의 목검이 정일성의 왼쪽 가슴을 살짝 찌르고 있었다.
“이 정도인 것 같군요. 더 이상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더 해보실래요?”
정일성은 마치 배터리가 떨어진 자동인형처럼 굳은 자세로 있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왼손을 들어 항복을 표시했다. 그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교관이 목검을 거두면서 정일성에게 물었다.
“어디 어디 맞았는지 아시겠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왜 저한테 그곳들을 맞았다고 생각하시죠?”
정일성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교관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졌다.
“곰곰이 따져보고 그 이유를 생각해 오세요. 그걸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는 대련 도전 할 생각 하지 마시고요. 알겠죠?
“네.”
그러자 교관의 얼굴이 다시 상큼하게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발전 속도가 아주 빠르네요. 교관으로서 무척 대견하고 기뻐요. 그럼 계속 연습하세요.”
두 번 대견하고 기쁘면 아주 학생들을 잡을 소리였다. 검을 거두고 물러서면서 교관이 진우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았다. ‘너도 할래?’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아니었다.
* * * * *
새벽에 명상을 통해 신체 단련을 계속하자 정신적 고양에 이르는 속도가 차츰 빨라졌다. 처음에는 한 번 명상에 들면 끝날 때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리더니, 차츰 속도가 빨라져 한 시간 남짓이면 정신적 고양이 찾아왔다. 그만큼 몸과 마나가 서로에게 점점 익숙해진다는 뜻이었다.
마나가 몸을 휘돌아 다시 정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그때마다 진우의 몸은 계속 발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였지만 오후의 훈련을 하다보면 근력과 속도가 늘어나고, 몸의 반응속도가 향상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의 운용이 갈수록 익숙해졌다.
명상 시간이 줄어들면서 새벽 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진우는 마나를 이용해 검술과 궁술, 그리고 격투술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비록 외부로 발산되는 마나의 양이 명상만 할 때보다는 많아져서 부담이 되었지만, 동작을 할 때마다 마나가 근육 곳곳에서 활발하게 움직임으로 인해 얻는 효과가 너무 좋았다. 몸과 검, 동작과 자신과의 일체감이 느껴지면서 때로는 무아의 경지에 빠지는 경우가 잦아졌다.
일단 무아의 경지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련에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놓쳐 오전 첫 수업을 두 번이나 빼먹어 교과 선생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오전 교과 수업은 통과 시험 이외의 다른 시험이 없었지만, 그래도 세 번 이상 무단으로 수업에 빠지면 교사의 재량으로 통과 시험 응시 자격 자체를 아예 박탈시킬 수가 있었다. 그래도 수련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자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수련 시간이 즐거워서 그만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 *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환하게 웃음을 드러내었다 모습을 감출 때쯤 해서 진우는 검술 교관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5월 중순이었다. 정일성을 제외한 나머지 세 학생이 모두 한 번씩 대련을 신청했다가 항복을 선언한 뒤였다.
“조금 더 일찍 신청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었네요?”
진우가 대련 신청을 하자 교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예의 그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능력이 모자라 검술을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젠 좀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교관이 ‘흐흥’하며 콧소리를 내더니 아주 재미있는 놈을 본다는 표정으로 진우를 쳐다보았다.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건지,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건지 한 번 겨뤄보면 알겠죠. 10분을 버티면 통과고, 중간에 항복하거나 제가 중지를 선언하면 종료인 건 아시죠?”
“네.”
“그럼 시작하지요.”
진우는 다리를 살짝 구부린 상태에서 왼 발을 반보 앞으로 내밀고,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그가 목검을 오른쪽 상단으로 비스듬히 세웠다가 옆으로 베어 들어가면서 대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일단 교관이 시범을 보여주었던 검술의 투로를 따라 그것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모든 동작을 다 보여주려면 그것만 해도 20분가량이 소요되는 상당히 긴 검술이었지만, 진우는 자신이 검술을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범위 내에서 동작을 간추려 짧게 시전 하였다. 그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교관도 별다른 공격 없이 진우의 목검을 부드럽게 막아내면서 그의 동작에 눈길을 두고 유심히 관찰했다. 교관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긔의 공격을 계속 막아내기만 하던 교관은 1분이 지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진우와 교관의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타고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범을 보여주었던 리듬 그대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진우를 공격해 들어오던 교관은 5분이 지나면서 검술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검의 궤적이 바뀌고 리듬과 세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진우의 대응도 거기에 맞춰 흐름이 달라졌다. 둘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거. 우리가 배운 그거 맞아? 왜 저렇게 바뀐 거야? 저렇게 하면 저걸 어떻게 막아?”
정찬우 교관의 검술은 본래 도약이나 급속한 이동 없이 계속해서 지면을 쓸 듯이 몸을 이동하며 공격과 수비를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8분 정도 지날 때까지는 비록 검의 변화가 훨씬 다양해지고 날카로워졌지만 아름다운 춤사위를 연상시키듯 상대를 차근차근 공격해 들어가는 기본 성격은 바뀌지 않았었다. 그러나 마지막 2분여를 남기고 교관은 거기에 다양한 보법을 다시 가미했다. 때로는 머리 높이까지 도약을 하는가 하면, 전후좌우로 순식간에 이동하면서 마치 두세 사람이 한꺼번에 공격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대련하는 주변에 흙먼지가 가득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10분이 지났을 때, 두 사람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정찬우 교관은 다리를 앞으로 크게 내딛은 상태에서 허리를 고개가 땅에 닿을 듯 숙이고, 두 손을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 든 목검이 진우의 왼쪽 가슴을 가볍게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진우의 목검은 교관에게 한 발 다가선 자세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 그의 목 뒤를 누르고 있었다. 멈춰선 두 사람의 발목 언저리를 감돌던 흙먼지가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대련이 끝났다.
교관이 몸을 일으키더니 즐거움과 어색함이 함께 섞인 것 같은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진우에게 물었다.
“욕심을 부린 결과를 얻었나 보군요. 대개는 욕심으로 끝나고 마는데 말이에요. 대단합니다. 마지막에 제가 했던 공격들은 시범만 보아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막을 수 있었죠?”
“혼자 훈련을 하면서 그런 동작도 가능할 것 같아 조금 연습을 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교관님처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 같습니다.”
사실은 마나의 흐름이 그를 이끌었다. 새벽마다 마나를 이용해 그동안 배웠던 검술과 궁술, 격투술 등을 연습하던 진우는 어느 날 자신의 동작과 마나가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작의 방향이나 속도, 힘 등을 마나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마나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방향을 그의 동작이 채 열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가로막는 듯한 느낌도 자주 받았다.
그런 부조화가 굳이 동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예민한 그의 감각은 뭔가 어색함을 느꼈다. 그래서 진우는 본래의 동작을 고집하는 것을 포기하고 흐름이 이끄는 대로 움직임을 조금씩 바꾸고 없던 보법을 넣어 보았다. 그 결과가 오늘의 대련이었다. 그런데 대련을 통해 확인해 보니 본래의 검술에도 그런 동작의 변화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진우의 대답을 들은 교관이 드물게 입을 크게 벌리고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필요한 것은 시간뿐인 학생이라. 교관 생활이 다소 지루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저한테 즐거움을 주는군요.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아무튼 진우 학생은 통과입니다. 내일부터는 이 수업에 나올 필요 없어요.”
진우가 목검을 거두고 교관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녀석들은 얼이 빠졌는지 마주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멍하니 그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진우가 몸을 돌려 운동장을 떠나려고 하는데 뒤에서 교관이 그를 불러 세웠다.
“이번 학기에 다른 단계의 검술 과목은 더 수련을 안 할 건가요? 생각이 있으면 내가 교관을 소개해 줄 수도 있는데.”
진우가 몸을 돌려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전투 훈련도 학기 중에 등급을 올려서 수강할 수 있나요?”
그러자 정찬우 교관이 빙그레 웃더니 대답했다.
“당연하죠. 헌터 학교의 모토가 뭔지 몰라요? 자유로운 마나, 자유로운 헌터. 여긴 수업의 시작과 끝에 그렇게 엄격한 제약은 없어요. 생각이 있어요?”
진우는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검술 시간은 오후 2시부터라 이 수업을 빼면 중간에 애매하게 시간이 비었다. 그 시간에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교관은 품속에서 명함같은 딱딱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같은 것을 적어서 진우에게 주었다. 진우가 그것을 받자 교관이 말을 했다.
“내가 그 분한테 미리 말을 해 두고 학교에도 진우 학생이 제 수업을 통과했다고 인증을 해 두겠습니다. 오늘이나 다음 주쯤 전화로 연락하고 찾아가세요. 학교에 있는 교관 숙소에 머물고 계시니까 찾기 쉬울 거예요. 어쨌든 학기 중에 수업을 개설해서 시작하려면 그 분의 허락도 받아야 하니까. 제가 보냈다고 하면 될 겁니다.”
진우가 교관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서 가자, 교관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영감님, 간만에 얼굴에 웃음이 좀 걸리겠네.”
뒤에서는 웃음을 잃은 네 학생이 서 있었다. 한 녀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저, 근데 교관님. 오늘 대련은 누가 이긴 건가요?”
교관의 입에서 빠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입꼬리를 말아 넣은 채 웃음을 띤 정찬우 교관이 학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내일부터 한 명씩 차례대로 다시 대련합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강제예요. 아셨죠?”
다른 세 명의 검이 질문을 한 녀석의 몸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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