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32화 (32/235)

32화

수강 신청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수업이 시작되자 진우의 일상은 비교적 평온하게 흘러갔다. 학교 성적에 관련된 것 이외에는 워낙 남의 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지냈던 탓으로 인해, 국어 과목은 여전히 조금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헌터 학교 특유의 자유분방한 교육 방식이 진우에게는 오히려 말과 글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업이 시작한 지 이주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진우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그밖에는 수학과 영어 등을 비롯한 오전 수업에서 큰 어려움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그 점을 무심코 입에 올렸다가 또 다시 정태의 헤드록을 받기는 했지만.

오후 수업에서도 검술과 궁술 수업에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전투술의 기본이 부족했던 그였지만 상대적으로 발전 속도 역시 비약적으로 빨랐다. 검술 수업의 경우 일주일 만에 교관의 동작을 완벽하게 재현해 냄으로써 나름 검술에 대한 재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다른 학생들을 좌절 속에 빠트렸다. 진우의 검술 시연을 본 교관이 싱글싱글 웃으며 물었다.

“진우 학생, 그럼 저하고 대련을 해 보실래요? 10분만 버티면 통과를 줄 수 있는데.”

하지만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나중에요.”

“그래요? 그럼 준비되면 얘기하세요.”

“네.”

아직 멀었다. 함께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아직 멀었단다, 저 자식 왜 빼는 거야?’며 투덜거렸지만, 진우는 실제로 자신이 아직 대련을 할 수준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교관의 투로와 동작을 흉내 내고 있을 뿐, 움직임에 필요한 근육과 속도, 방향 등의 미세한 통제에 익숙하지 못했다. 기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에 따른 응용이 필요한 실제 대련을 해 봤자 10분은 고사하고 1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검술 교관이 매번 수업 때마다 슬쩍 슬쩍 시연 환경과 방향을 바꿔가며 시범을 보여주는 데도 학생들은 아직 그게 매일 달라진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우는 교관이 학생들을 야단치거나 지적하는 일이 없이 수업을 쉽게 가져가고 있지만, 사실은 상당히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헌터는 단순히 건강이나 호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투술을 배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진우 생각에 이번 학기 동안 교관은 분명 그 점을 학생들에게 각인시켜줄 속셈인 것 같았다.

입학식이 끝나고 이주 째 주말이 되었을 때, 드디어 헌터 양성소 소장이 주겠다던 입학 선물이 도착했다. 오랜만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진우를 학교 밖으로 불러낸 최현이 소장의 선물이라며 잘 포장된 꾸러미들을 전해 줬다. 선물을 받은 진우는 감사를 표하면서도 포장의 형태로 보아 분명 장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꾸러미들의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저기 나머지는 뭐예요? 활은 안 보이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최현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소장님이 주신 활은 접어서 휴대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네가 검과 활을 동시에 쓰기를 원하는 것 같아서, 활대를 세 번 접어 등이나 허리춤에 간단히 찰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하시더라. 대신 장력을 고려해서 무게는 한 8Kg 정도 된다고 하더라. 뭐 그 정도는 들고 다닐 수 있지?”

보통 양궁 선수들이 쓰는 활의 무게가 보조 장치까지 합해서 4~6Kg 정도였다. 정지한 상태에서 활을 쏘는 그들과 달리 야외에서 사냥감을 쫓거나 움직이며 전투를 벌여야 하는 헌터의 입장에서 8Kg이면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하지만 진우는 씩 웃으며 간단히 ‘네’라고 대답했다. 근력에는 자신이 있었고,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 것이다.

최현은 그밖에도 격투 시에 사용할 수 있는 너클과 두 벌의 방호복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모난 상자 하나를 주었다.

“그건 설명을 해야 하니 지금 풀어봐라.”

진우가 상자를 풀자 안에서 검은 색의 길고 가느다란 쇠사슬 한쪽에 길쭉한 모양의 뾰족한 추가 달린 유성추가 나왔다. 전투 과목 시범에서 진우가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양쪽에 추가 달린 것을 쌍류성이라고 하고, 한쪽에만 추가 있는 것을 단류성이라고 하는데, 상자에서 나온 것은 단류성이었다. 다만 추와 연결된 쇠사슬 반대편에 금속제 토시가 달려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건 뭔가요? 웬 유성추예요?”

그러자 최현이 씩 웃더니 쇠사슬과 연결된 추의 끝을 나사를 돌리듯 돌렸다. 그러자 추의 쇠사슬 쪽 접점에서 나사달린 코르크 마개 같은 뚜껑이 밀려 나왔다. 그리고는 추를 기울이자 안에서 립스틱 크기의 금속 원통이 떨어졌다. 그걸 들어 다시 반으로 분리시키자 안에서 진우가 케이튼 행성에서 가져왔던 마나 크리스털이 툭 떨어졌다.

“마나 크리스털을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게 만들려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아예 그걸 무기의 형태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순수한 이레지움으로 마나 크리스털을 담을 용기를 만들고, 그걸 다시 특수 제작한 유성추 안에 넣었지. 이렇게 해서 가지고 다니면 아무도 그 안에 마나 크리스털이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거다. 또, 언제든지 필요할 때 꺼내기도 쉽고.”

의심받지 않고 마나 크리스털을 가지고 다니게 하기 위해 꽤나 고심을 한 흔적이 보였다. 진우로서는 대 만족이었고, 그만큼 두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그럼 유성추 과목도 들어야겠네요?”

“그래. 원래는 그게 3학년 때 듣는 선택과목이긴 한데, 유성추를 가지고 다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려면 2학년 때 미리 듣는 게 나을 거다. 연결된 토시를 왼팔에 끼고, 평소에는 쇠사슬을 그 위에 감아서 유성추를 고정시키면 될 거야. 토시와 유성추에 각각 요철이 있으니 한 번에 탈착시키기 쉬울 거다. 유성추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토시를 조그만 방패처럼 사용해도 돼. 꽤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었으니까.”

진우가 최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장님에게도 선물 너무 고마워하더라고 꼭 좀 전해주세요. 진짜 모두 마음에 들어요.”

그러자 최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꼭 전하마. 그나저나 일도 형님 수업은 어떠냐? 권일도 교관 말이다. 할 만 하냐?”

그러자 진우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몸에서 멍이 가실 날이 없어요. 죽겠어요.”

최현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 *

타르코스의 선언은 회의장을 순식간에 폭풍의 격랑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흥분한 남자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군드라 의원?”

콴톤 의장이 다소 책망이 깃든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군드라 의원이라 불린 남자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의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러자 의장이 쓰게 웃으며 책상을 두드려 모두들 진정시켰다.

“타르코스 의원이 방금 한 말은 저도 이미 보고를 받았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봅시다. 그래 그 지구인이 한국의 헌터학교 신입생이라고요?”

자신이 한 발언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듯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타르코스가 의장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헌터 후보자 테스트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학생의 마나 감지력을 확인하던 도중, 그가 마나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후에 지난 겨울동안 최현이라는 한국의 중급 헌터를 동반시켜 행성 케이튼에 보내서 훈련을 시켰습니다. 거기서 마나를 볼 줄 아는 자라는 게 여러 차례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귀환해서 헌터 학교 1학년으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손이 올라갔다. 의장이 그중 한 남자를 지목했다.

“브라질 헌터 양성소장을 맡고 있는 팟송 의원입니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마나를 볼 줄 아는 자는 성장이 매우 빠르다고 했습니다. 작년 겨울 동안 케이튼에 있었다면 혹 성과가 있었습니까?”

타르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현재 그 학생은 마나를 발현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탄식같은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허어, 그럴 수가.”

“두 달 만에 마나 발현을?”

“아무리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그게 가능합니까?”

장내가 소란해지자 콴톤 의장이 다시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자자, 진정하기 힘든 일이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타르코스 의원. 그 학생의 발현 능력은 어떤 종류입니까? 신체형입니까, 아니면 사수형이나 치료 계열입니까?”

“현재 신체형과 사수형에 대해서는 발현 능력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여름 방학 때의 훈련을 통해 치료 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볼 계획입니다.”

“그럼 트리플이나 최소 더블이라는 뜻입니까?”

“개인적으로는 기록에서 전하는 대로 자유형이라고 추측됩니다.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 없이 자유자재로 원하는 대상에 필요한 속성의 마나를 부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능력을 제대로 개화시키려면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훈련이 필요하겠지만요.”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어 발언권을 얻더니 질문을 했다.

“중국 사천 헌터 학교 교장으로 있는 텔레아입니다. 그렇다면 마나가 없는 지구의 헌터 학교에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케이튼이나 아니면 이곳 페노닉스처럼 마나가 풍부한 행성으로 데려와 집중적인 훈련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포털에 대한 지구인들의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룰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타르코스가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아시겠지만, 지구인들은 사회적 관계와 유대를 통해 생존력을 극대화시키고, 다른 생물들에 대한 지배를 성공시키는 쪽으로 진화했지요. 마나의 축적과 단계의 성장은 행성마다 종의 특성에 지극히 민감합니다. 그런 종의 특성을 무시한 훈련은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으로서는 학생의 주변에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유대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조력자들을 많이 두는 게 오히려 그 학생의 발전 속도를 앞당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진우 군을 지구에 계속 두면서 주기적으로 마나의 조건이 다양한 여러 행성들을 경험하게 할 계획입니다.”

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타르코스 의원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 학생이 동조의 단계에 들 것이라 믿는다고 해도 앞으로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하냐는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종 수련 일정은 동조의 단계에 든 인물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학생이 하루라도 빨리 동조 단계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타르코스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진우를 동조 단계에 진입하도록 돕기 위한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스스로도 말했듯이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성추 안에 넣어 진우에게 건넨 마나 크리스털에 대해서는 아직 입을 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우의 교감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아직은 확신을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자료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확언할 수 없다는 게 솔직한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기록에 의하면 과거의 전설적인 영웅들도 발현 단계에서 동조 단계로 넘어가는데 최소 15년은 걸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여보고자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 본 끝에 지구로 찾아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10년 이내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콴톤 의장은 손가락을 책상 위에 톡톡 치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십 년이나 십오 년이 최소라...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포털에 관한 권한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데, 지구인들이 과연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회의실에 앉아 있던 의원들 사이에서 불안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몇몇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어렵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고민하던 의장이 마침내 눈을 뜨고 의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의장의 권한으로 제안을 하겠습니다. 지구인들에게 앞으로 10년 뒤에 포털에 대한 권한을 넘기도록 합시다. 제 생각에는 그 정도가 지구인들이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참을 수 있는 한계라고 봅니다. 대신 그 이전에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걸로 문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해야겠지요. 물론 모든 계약 내용은 공식적으로 공표하는 걸로 하고요.”

참석한 의원들 가운데 아무도 찬성이나 반대의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다. 의장은 잠시 회의장을 둘러보더니 책상을 두드렸다.

“지금부터 두 시간 동안 정회를 하겠습니다. 두 시간 후에 다시 모여 방금 제가 한 제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겠습니다.”

의장이 정회를 선포하자 회의장을 떠난 의원들은, 여기저기에서 삼삼오오 모여 논의를 했다. 다양한 표정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콴톤 의장과 타르코스 소장은 누구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은 채 두 시간 내내 침묵을 고수했다.

두 시간 후 의장의 제안은 투표를 거쳐 결국 통과되었다. 회의를 마친 외계인들이 하나 둘 포털을 통해 떠나기 시작했다.

*  * * * *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포털로 향하는 의장에게 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주위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의장에게 속삭였다.

“영국 헌터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아스탄입니다. 지구인들에게 포털에 대한 권한을 넘긴다면 그에 관련된 모든 과학 기술, 가령 그 원리와 제작 기술에 관한 것들도 함께 지구인들에게 넘기는 겁니까?”

의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안 됩니다. 지구인들과의 우호적인 교류를 위해 그동안 넘겨준 과학기술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 행성의 발전 속도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포털에 관해서는 장치를 건네주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떠난 뒤로도 한동안은 쓸 수 있겠지만 결국 한때의 영광을 기념하는 유물 같은 것으로 남겠지요. 물론 남겨진 포탈 장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구인들의 과학 기술은 발전할 겁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그러자 아스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물러나더니 포털을 이용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의장의 얼굴에 짙은 수심이 어렸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타르코스가 의장의 곁에 다가왔다.

“걱정이 되십니까?”

의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타르코스의 얼굴에도 그늘이 어렸다. 그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니코레임인입니다. 선을 지킬 겁니다.”

의장이 고개를 들어 타르코스를 쳐다보았다.

“타르코스 의원, 지구인들은 사회를 구성해서 다른 생물들을 정복하는 일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곧바로 자기들끼리의 지배와 정복을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싸움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견고하고 효율적으로 사용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타르코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철저한 위계와 명령을 통한 지배와 종속입니다. 반면에 우리 니코레임인들은 생존과 자유를 중시하지요. 그 둘 중에서 우리가 더 중시하는 게 과연 생존일까요, 아니면 자유일까요?”

타르코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도 생물입니다. 당연히 생존을 더 중시하지요. 우리가 지구인들과 함께 한 것이 35년입니다. 우주적인 규모로 생각할 때는 정말 티끌보다 못한 시간이지만, 한 생명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요. 저는 니코레임인들이 지구인들에게 어느 정도 동화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런 동화가 생존에 더 효율적일 때는 더욱 그렇겠지요. 우리가 고향을 되찾는 방법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올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 됩니다.”

“설마 저희 중에 지구인들을 복속시켜 이곳에서 눌러 살려고 하는 이들이 나올까봐 걱정하시는 겁니까? 지구에는 마나가 전혀 없습니다. 마나와 함께 사는데 익숙한 저희들이 터전으로 삼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간절히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지구를 선택해 찾아왔지만, 지구자체는 저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너무 지나친 걱정이십니다.”

그러자 의장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기지의 창밖으로 보이는 페노닉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차라리 그런 걱정이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로 귀환할 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즐거운 주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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