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29화 (29/235)

29화

한국의 교육 제도는 개선과 개악을 거듭한 끝에 5-3-4-4 제도를 정착시켰다. 어린이들의 발육과 성장 속도가 날로 좋아짐에 따라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 사이에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지나치게 많은 차이가 생기자, 교육부는 공청회를 거쳐 초등학교 과정을 1년 줄여 5년으로 만들었다. 대신 고등학교 과정이 4년이 되었다.

반면에 헌터 학교의 과정은 3년이었는데, 이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들이 헌터 후보자 테스트를 거쳐 중간에 헌터 학교로 전학하는 형태로 입학을 했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없이 헌터학교는 신입생들을 1학년으로 불렀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적어도 1년은 꿇어야지’라는 농담이 유행했는데, 정작 이 말은 멀쩡한 학교에서 사고를 친 녀석들이 더 자주 사용했다.

헌터 학교의 입학 첫 주는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대신, 각종 시험과 오리엔테이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헌터 학교의 모토는 ‘자유로운 마나, 자유로운 헌터’였다. 이게 단순한 표어가 아닌 것이, 모든 학생들은 각자의 수준과 취향에 맞게 모든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고 이에 따라 개인 수업 시간표를 작성해야 했다.

물론 어떤 과목을 선택하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8시간의 수업을 받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려면 따로 과목별 ‘통과 시험’을 봐서 합격을 해야 했다. 신입생들은 엄밀히 말하면 전학을 한 것이기 때문에 각자 수업을 듣기 전에 수준별 테스트를 치러야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음 주부터 들어야 하는 수업의 종류가 정해졌다. 그래서 신입생들의 첫 주는 대부분 각종 시험으로 채워졌다.

신입생들이 모두 다른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다 전학을 오기 때문에 헌터 학교 1학년의 교육 과정은 본래 일반 고등학교의 2학년 과정에 맞추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헌터 학교를 처음 설립할 때,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특수 인가 학교’로 승인을 받아 모든 교육과정에 대해 자율권을 획득했다. 기본 교육 과정은 교육부의 교육과정을 따르지만, 수업 시수나 내용, 평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독립적인 권한을 얻은 것이다.

가령 수학 과목의 경우 교육부에서 정한 내용을 반드시 이수하고, 교과서도 검인을 받은 것으로 사용했지만, 그 과정을 이수했는지의 여부는 학교 자체에서 실시하는 독자적인 통과시험 결과에 따라 결정되었다. 한 마디로 2학년까지 수학 과목의 모든 시험에 통과하면, 수학에 관한 한 수업 시수를 다 채우고 모든 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이 됐다. 그 경우 졸업할 때까지 더 이상 수학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  * * * *

진우는 헌터 패드를 켜서 강의 계획표를 불러냈다. 헌터 학교는 1학년 내내 오전과 오후 각각 4시간씩 8시간의 수업을 했다. 오전에는 일반 고등학교와 별 다름없이 국영수를 비롯한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한 수업을 했고, 오후에는 헌터 학교답게 전투에 관련된 여러 가지 과목에 대한 수업이 있었다. 오전 수업도 학생의 수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과목과 등급이 다양했지만, 오후 수업은 정말 과목도 다양했고, 같은 과목이라고 해도 시간 별로 선택 가능한 반이 엄청나게 많았다.

“넌 전투 훈련 과목 어떤 걸로 선택할래?”

헌터 패드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면서 일단 수업 종류부터 먼저 확인하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왔는지 정태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글쎄, 일단 격투술은 선택해야 할 것 같고, 나머지 하나는 검술로 할까 하는데?”

“역시 격투술은 신청해야겠지? 무기 없이 맨 몸으로 괴수들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나는 격투술하고 창술 신청할 생각이다.”

“창술?”

“응. 관우나 장비, 여포 같은 사람들 보면 죄다 기다란 무기를 사용했잖아. 죽이지 않냐? 말 위에 딱 올라타서 달리며 두 팔로 청룡언월도나 사모창을 휘두르는 거. 캬~~.”

“너 말 타고 헌팅하려고?”

“응? 아,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난 창술로 할 거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누가 말리겠냐. 하긴 이제 갓 16살이 된 녀석치고는 벌써 키가 190cm 가까이 되니 창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헌터 학교에서는 1학년 때 반드시 두 가지 이상의 전투 훈련 과목을 선택해야 했다. 최근에는 헌터 후보자 테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미리부터 학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격투술이나 무기를 다루는 무술 등을 배워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정태만 하더라도 격투술과 도술(刀術)을 배웠다. 그런데 녀석이 입학하더니 배우던 도술을 버리고 창술로 마음이 돌아선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애초에 헌터를 포기하고 있던 처지라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었다. 고작해야 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야 한 달 가량 근처 격투기 도장에서 간단한 기초를 배운 게 전부였다. 그나마 지난 겨울방학 동안 최현과 함께 케이튼에 있는 동안 검술을 조금 배웠었다. 그러나 배운 시간도 짧았고, 가르친 최현이 본래 대도를 사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검술을 익히고 싶었다.

격투술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신청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이었다. 어차피 400명이 입학해도 졸업할 때 전문 헌터 자격증을 받는 사람들은 불과 20% 정도에 해당하는 80여명이었다. 나머지는 결국 대학에 진학하거나 졸업하자마자 직업을 구해야 했다.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무기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일반인에게는 호신이나 운동의 측면에서 격투술은 장기적으로 유용한 기술이었다. 격투술에 장기가 있는 학생들 가운데에는 졸업 후에 경호 회사 같은 곳에 취직하는 경우도 많았다.

격투술 이외에는 취향에 따라 보통 검술, 도술, 창술, 부술, 둔기술 등의 과목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검술이나 도술의 경우 1학년 때는 일반적인 기술을 배우다가 2학년부터는 자신의 특성에 맞는 기술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훈련을 받았다. 창술 과목을 신청하면 첫 학기에는 봉술만을 훈련시켰는데, 거기서 어느 정도 성과가 인정되면 비로소 창술을 가르쳤다. 부술도 학년이 올라가면 쌍부술과 대부술 등으로 다시 세분화 되었다.

결국 어떤 과목을 선택하든지 꾸준히 기량을 쌓아 가면 개인의 특성에 맞는 전문화된 기술을 육성하는 쪽으로 지도를 한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3학년 때는 본인이 원한다면 미국 경찰들이 진압봉으로 주로 사용하는 T자형 톤파나 중국의 유성추 같은 무기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실전 전투에 관한 한 그 전문성이나 깊이에 있어 헌터 학교를 따라올 곳이 없었다.

궁술은 의외로 가장 인기가 없는 과목이었다. 활을 이용해서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화살이나 활에 마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건 궁수가 마나를 발현할 수 있는 중급 이상의 헌터라는 뜻이었다. 마나가 부여되지 않은 화살은 마수들에게는 아예 박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일반 맹수나 동물들을 잡을 때에는 활보다는 차라리 총을 사용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사실상 총은 헌터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필수 무기였다.

게다가 좋은 궁수가 되려면 당연히 많은 연습을 해야 했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시력과 주변 환경을 잘 감지하는 감각, 적절한 거리나 위치를 잡기 위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민첩성 등을 타고나야 했다. 연습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기본 조건이 많다는 뜻이었다.

사격술은 필수 과목이기는 하지만 2학년부터 가르쳤다. 1학년 과정의 교육 목표 자체가 소위 말하는 ‘기본의 양성’에 있었는데, 사격은 헌터의 기본이기는 해도 헌터 학교의 기본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1학년 때는 모든 학생이 구분 없이 수업을 받지만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올라갈 때는 계속 전문 헌터의 길을 갈 헌터반과,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진학반으로 나뉘었다. 대개 방학을 이용한 케이튼 행성에서의 훈련 결과가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보통 신입생 400명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200명가량이 1학년 때 헌터로서의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진학반을 선택했다. 그런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총 한 번 잡아볼 기회가 없는 셈이었다.

*  * * * *

“너, 이번 주에 시험을 열여섯 개나 본다고?”

진우가 헌터 패드를 이용하여 수준별 테스트 응시 항목을 체크하고 있는 것을 본 정태가 깜짝 놀라 말했다.

“응. 수학하고 영어는 4개씩 미리 봐 두려고.”

“아씨, 기분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난 그냥 기본적인 수준만 테스트 받고, 작년에 배우던 곳에서부터 그냥 이어 들어야 하겠다. 쩝 국영수도 미리 좀 공부해 둘 걸.”

헌터 후보자 테스트에는 일반 교과 과목이 없었다. 그래도 학교 성적이 선발에 참조되었기 때문에 헌터 후보자 테스트에 합격한 학생들은 대체로 성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합격자들 가운데에는 더러 과목에 따라 학습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학생들도 졸업할 무렵에는 일반 교과목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헌터 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시험에서 한 과목이라도 통과를 못하면 졸업을 시키지 않았고, 4년 이내에 졸업을 못할 경우 자동 퇴학 처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헌터 학교를 졸업하지 못할 경우 규정상 전문 헌터 시험에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누구나 부러워할 기회를 잡았던 학생이 공부를 소홀히 했다가 오히려 인생 자체가 날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최악의 상황을 맞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입학을 하면 좋든 싫든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야, 그래도 열여섯 개면 너무 많은 거 아냐? 너 이번 주에 무지 바쁘겠다.”

정태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조금 부담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높은 수준에 응시하더라도 일단은 그보다 낮은 수준의 시험도 모조리 응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무조건 수준별 테스트에 합격을 해야, 교육부에서 정한 그 수준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  * * * *

학생들의 전투 훈련 과목 선택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입학 첫날 저녁 식사 후에 신입생들은 다시 강당으로 모였다.

“야, 저 사람들이 죄다 훈련 교관들이라는 거야?”

정태는 강당의 단상 위에 과목별로 모여 앉아 있는 250명 정도의 교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우가 보기에도 굉장한 숫자였다.

“헌터 학교 선생님들이 500명 가량 된다더라. 150명 정도가 일반 교과 선생님들이고, 50명은 생활 지도나 업무 지원을 맡은 분들이니까, 나머지 300명이 다 전투 훈련을 담당하는 셈이지. 오늘은 그나마 다 모이지도 않은 거네.”

진우의 왼쪽에 앉아 있던 김도훈이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을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녀석은 별 걸 다 알고 있었다. 김도훈의 옆에는 차연희가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분명 사귄다는 말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으면서도 같이 다니는 모습이 진우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도훈의 설명에 분명 귀를 기울인 것이 분명한데도, 정태 녀석은 김도훈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차연희에게만 히죽 웃음을 보이더니 시선을 다시 단상으로 향했다. 셋 다 골치 아픈 인간들이었다.

1학년 학생부장이 단상에 올라와서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각 분야 별로 총교관이 나와 자신들이 맡은 전투술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하는 다른 교관들을 소개했다. 격투술부터 시작한 분야별 소개가 검술, 도술, 창술 등을 거쳐 지루하게 이어졌다. 진우는 앉아 있는 교관들 사이에서 도술 부문의 교관들 틈에 앉아 있는 최현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침 진우에게로 고개를 돌린 최현도 그를 발견하고 살짝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왠지 가슴 한편이 든든했다.

고민 끝에 진우는 격투술과 검술 이외에 궁술 과목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최현이 맡은 도술을 신청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검술을 배우는 마당에 다시 도술을 선택하기는 어려웠다. 공연히 최현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가 전투술 과목을 세 개나 신청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정태가 펄쩍 뛰었다.

“야, 전투술 과목을 세 과목이나 선택한다고? 너 헌터의 길에 뼈를 묻기로 작정을 했구나? 뭐 좋은 각오이기는 하지만, 네가 잘 몰라서 그런데, 궁수는 아무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게 타고나야 하는 거라고. 하긴 넌 어차피 근접 전투는 어려울지도 모르니까... 아, 젠장. 미안하다.”

정태가 말을 하다 급히 말꼬리를 흐리더니 머리를 긁으며 사과를 했다. 진우의 약점을 건드린 꼴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진우는 피식 웃고는 수업 계획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손을 흔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정태는 덜렁거리고 푼수 없는 행동을 가끔 하기는 해도 정이 많고 의리가 강한 녀석이었다. 진우를 무시한다기보다는 걱정이 되어서 한 얘기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진우가 신체 재구성을 통해서 과거의 몸치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했다.

*  * * * *

진우는 입학 첫 주의 5일 동안 매일 오전에 3~4과목씩 시험을 봐야 했다. 예전에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해 무수히 많은 학부모들의 부러움과 그보다 더 많은 학생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정말 공부가 제일 쉬웠다. 과거에도 운동 신경은 젬병이었지만 인식 속도나 판단력이 워낙 뛰어났다. 운동 신경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신경 조직의 성능이 좋았다는 뜻이었다.

공부는 결국 머리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뇌는 인체 내에서 신경 조직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진우의 뇌는 성능이 매우 좋았다. 덕분에 기억력과 이해력이 탁월했다. 당연히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영어의 경우는 혀를 조정하는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발음에 조금 문제가 있었는데, 신체 재구성을 겪으면서 그 부분 역시 급속한 속도로 향상되고 있었다.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데에 더 익숙한 정태로서는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의 장점이었다.

목요일까지는 이번 학기 오후 시간에 들을 훈련 과목을 선택해야 했으므로, 수요일 오전에 3과목에 대한 시험을 마친 진우는 정태와 점심을 먹으며 헌터 패드에 전투술 시범 시간표를 찾아 올려놓았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을 돕기 위해 화요일부터 3일간 매일 오후 시간을 정해 전투술 과목별로 시범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검술과 궁술 시범을 보았으므로 오늘은 격투술 시범을 구경하기로 했다.

“야, 차연희는 격투술과 궁술을 듣기로 했다더라. 어제 격투술 시범을 보는데, 마침 옆에 있기에 물어봤거든. 걔는 아마 사수형 헌터로 나갈려나 봐. 그건 마나를 각성하지 못하면 그냥 꽝이라던데. 뭐, 알아서 잘 하겠지. 그나저나 격투술 수업 같이 들으면 좋을 텐데, 쩝.”

정태 녀석이 입에 오징어 다리를 문 채로 떠들어 댔다. 진짜 넉살 좋은 녀석. 하지만 같은 격투술 과목이라도 선생과 시간이 다른 반이 80 개나 되었다. 직접 물어서 같은 반을 신청하지 않는 한, 정태와 차연희가 같은 반에서 듣게 될 확률은 낮았다.

격투술은 모든 전투 훈련 과목 중에서 교관이 제일 많은 과목이기도 했지만, 어떤 과목이든 전투 훈련 과목은 한 반 정원이 5명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수업이 아니라 거의 도제식 수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명색이 헌터 학교이니 그 만큼 전투 훈련에 관해서는 철저한 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격투술이 공통 필수 과목처럼 간주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 가운데에는 간혹 격투술을 신청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반 중에는 학생 한두 명만 신청하거나, 아예 신청 학생이 없어 반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시범 시간표를 확인하면서 건성으로 정태의 말을 듣고 있는데 헌터 패드에 전화가 왔다는 표시가 떴다. 이어폰을 연결해서 전화를 받았더니 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괴물 신입생. 학교생활 어때? 할 만 하니?”

또 괴물이다. 도대체 요즘 괴물이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듣는지 모르겠다.

“왜 또 괴물이에요. 저 괴물 아니에요. 자꾸 그러지 마세요.”

“아니긴. 듣자하니 이번 신입생 중에 오후 테스트 측정 기록이 거의 만점에 가까운 괴물이 있다고 벌써 교관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다. 그게 바로 너 아니냐. 하하.”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 하긴 신입생에 불과한 김도훈도 알고 있는 걸 교관들이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아직 일과 중 아니세요?”

“아, 그 일과 때문에 전화했다. 너 혹시 격투술 신청할 거냐?”

“네. 그러려고요. 아참 저 검술 수업 때문에 선생님 도술 수업은 못 들을 거 같아요.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나도 네가 검술 수업 신청할 줄 알았다. 소장님이 주신다는 선물로 검을 선택했으니 그건 당연한 거지. 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말이야. 너 격투술 시범 봤니?”

“아니요. 그렇잖아도 오늘 오후에 보려고요. 왜요?”

“너 격투술 교관 추천 해 주려고 연락했다. 추천할 교관이 한 분 있는데, 그 양반이 시범 같은 델 나서는 일이 없거든. 아마 시범 보러 가도 못 찾을 거야. 학생들이 보통 시범에 나선 교관들 반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서 네가 혹시 놓칠까봐 전화했다.”

“누구신데요?”

최현은 중급 헌터였다. 교관들은 대부분 마나를 각성한 헌터였지만, 그 중에서도 중급 헌터는 흔하지 않았다. 더구나 최현은 같은 중급 중에서도 상급에 가까운 중상급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교관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는 뜻이었다. 실력자가 실력자를 알아보는 법이니 그가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일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진우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최현이 아무나 소개시켜 줄 리가 없었다.

“아, 권일도라고. 상급 헌터인데, 몇 년 전 헌팅에 나섰다가 동생을 잃었나봐. 그 뒤로 낙심해서 헌팅을 포기하고 격투술 교관을 하면서 숨어 살다시피 한다고 들었어. 성격은 조금 까칠하고 무뚝뚝해도 실력 하나는 보장할 수 있지. 넌 친절하게 가르치지 않아도 그냥 교관이 하는 거 보면 배울 수 있잖아. 너한테는 아마 딱 맞는 교관이 될 거다. 하하.”

성격이 까칠한 교관을 만나면 수업이 피곤해질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최현이 일부러 전화를 걸어 추천해 준 사람인데 싫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알았어요. 이따 시범 보러 가서 어떤 분인지 찾아볼게요. 감사해요, 신경 써 주셔서.”

“그래, 그래. 인상 안 좋다고 공연히 다른 교관 신청하지 말고 웬만하면 그 분한테 배워. 꼭이다? 그럼 나 이만 끊는다. 나중에 밥이나 같이 먹자.”

“네. 그럼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자 앞에 있던 정태가 ‘누구?’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전에 같이 이삿짐 나르고 밥 먹었던 최현 교관님이야. 격투술 교관 추천해 주셨어.”

“그래? 그럼 나도 같이 신청할까? 교관님이 추천해 준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일 거 아냐?”

“그러던지. 근데, 성격이 좀 무뚝뚝하고 까칠하다는데?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는 않는 모양이야.”

“그, 그래? 그럼 난 그냥 차연희가 들어간 반이나 찾아봐야겠다.”

귀도 얇고, 포기도 빠른 녀석이었다.

============================ 작품 후기 ============================

한 편 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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