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26화 (26/235)

26화

기지장 사무실에는 헌터 양성소 소장과 기지장인 조세연 박사가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최현과 진우가 들어서자 조세연 박사가 직접 차를 끓여 두 사람 앞에 놓았다.

“자, 이제 얘기를 좀 해 봅시다. 둘이서 헤어지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은 이미 최현 헌터에게 자세히 들었어요. 진우 군이 놀랍게도 그 나이에 벌써 마나를 각성했다는 말도 들었고요. 이제 진우 군 말을 좀 들어봅시다. 그 뒤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소장 뿐만 아니라 조세연과 최현 역시 진우가 괴조에게 붙잡혀 간 뒤의 일이 몹시 궁급했던 터라 눈을 반짝이며 진우의 입을 쳐다보았다. 세 사람의 눈초리가 워낙 강렬해 어쩐지 말을 꺼내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굳어 있던 그가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정신을 차려 보니까 제가 지붕이 날아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요, 아마 최현 선생님이 매 주신 것 같은데, 안전벨트를 매고 있더라고요. 원래는 그거 안 매고 있었거든요.”

진우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트럭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대수림에 떨어졌던 일, 무기라도 되찾기 위해 호수를 향해 열흘 동안 대수림을 헤매고 다녔던 일, 거기서 만났던 여러 맹수들, 그들과의 전투 등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중간 중간에 최현이 자꾸 끼어들어 전투의 상세한 내용을 묻느라 흐름이 여러 번 끊기는 바람에 다시 한 번 조세연 박사로부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진우가 마침내 호수에 도착해 트럭을 찾은 순간, 케로스와 마주쳤다는 얘기를 하자 그녀 역시 ‘헉’하고 헛바람을 내고 말았다.

“케로스를 만났다고? 그런데 너 어떻게 다친 데 하나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니?”

조세연 박사의 질문에 진우는 어떻게 케로스를 물리쳤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깨어나 보니 이미 상처가 다 아물어 있더라는 이야기를 하자 이야기를 듣던 세 사람 모두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 상처가 치료도 하지 않았는데 며칠 만에 저절로 나았다고? 더구나 흉터 하나 없이?”

의사인 조세연 박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우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저도 어떻게 된 건지 그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깨어나고 나서는 며칠 동안 하도 갈증과 허기가 심해서 계속 먹고, 마시고, 자는 일만 반복했다는 것만 기억해요. 저는 이틀 정도 그랬는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오일이나 지났더라고요.”

차마 짐승처럼 옷을 벗은 채로 생고기를 뜯어 먹었다거나, 호수에 들어가서 선 채로 대소변을 보았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몸에서 심하게 악취가 났다는 얘기도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상처에 관한 이야기는 빼 놓을 수가 없었다. 진우의 얘기를 들은 조세연과 최현은 이마를 찌푸렸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간 봐 온 바로는 진우가 함부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녀석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직접 일을 겪은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주머니에 있던 마나스톤이 사라졌다고요? 진우 군 생각에는 그게 진우 군 몸속으로 흡수된 것 같다고 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아무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소장이 입을 열어 물었다.

“주머니 속에 항상 마나스톤을 넣고 다녔는데 깨어나 보니까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근처에 흘린 줄 알고 계속 찾아보았는데 결국 찾지 못했어요. 케로스를 만나기 전에는 확실히 주머니 속에 있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 녀석과 싸우다가 흘린 거였으면 부근에 있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그게 진우 군 몸속으로 스며들었다고 생각한 겁니까?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에?”

“그리고 또 몸속에 있는 마나의 느낌이 변했어요. 양도 엄청나게 늘어난 것 같고요. 막 각성을 했을 때는 마나가 그냥 자연스럽고 편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케로스와 싸우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뒤에는 뭔가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느낌이 더해졌더라고요. 그게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마나스톤에서 느끼던 것하고 똑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흠.~~~”

소장이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눈을 뜨고 다시 질문을 했다.

“진우 군. 그런데 전에 봤을 때보다 그새 키가 좀 자란 것 같네요?”

그러자 최현과 조세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하도 경황이 없어서 긴가민가했는데, 확실히 괴조 때문에 헤어지기 전에 비해 제법 키가 자란 거 같아.”

“피부도 뽀얗게 변한 것 같고. 더 미남이 됐어.”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하자 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깨어나서 보니 몸에서 악취가 났다거나 피부가 벗겨진 흔적이 있지는 않던가요?”

진우의 얼굴에 흠칫하며 놀라는 기색이 나타났다.

“저기, 네. 그랬어요. 깨어나 보니까 온몸에서 악취가 진동을 하더라고요. 개울에서 비누로 몇 번을 빡빡 닦았는데도 잘 없어지지가 않아서 엄청 고생했어요. 피부가 벗겨진 흔적은 잘 모르겠고, 머리카락하고 이빨은 빠졌다가 다시 자란 거 같아요.”

최현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네가 지금 몇 살인데 이빨이 빠졌다가 다시 나? 그게 보통 일이냐? 그렇게 중요한 건 처음부터 얘기를 했어야지.”

진우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게 기지장님도 계시고, 여자 앞에서 몸에서 냄새가 났다는 얘기를 하기도 창피해서.”

조세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픽 웃더니 입꼬리를 말면서 말했다.

“어쭈? 짜~식, 쪼끄만 놈이 그래도 사내라고 여자 앞에서 부끄러운걸 아네. 아니, 이 아줌마도 여자로 봐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최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픽 웃더니 끼어들었다.

“하아, 조박사 넌 좀 가만있어라. 너 아줌마인 거 맞아. 아줌마가 여자인 것도 맞고. 그냥 아줌마가 여자인 척 하지만 않음 되는 거야. 그것만 조심하면 돼.”

“너, 최현 이 자식 죽을 걸 기껏 살려 놨더니 도로 죽을래?”

두 사람이 승강이하는 소리를 들으며 진우의 고개가 더 밑으로 내려갔다. 소장이 웃으며 조세연의 말을 막았다.

“자자, 중요한 얘기를 합시다. 제 생각에는 진우 군이 아무래도 신체 재구성을 겪은 것 같아요. 뭐, 이곳 사람들 말로 그걸 탈태환골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그걸 한 것 같습니다. 마나스톤의 마나를 모두 흡수한 것도 맞는 것 같고요.”

그 말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조세연과 최현도 말싸움을 멈추고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소장님께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지구인들 중에는 아직 마나 스톤의 마나를 흡수하거나 신체 재구성을 겪은 사람이 없지만, 제 고향인 니코레임 행성인들 중에는 드물긴 하지만 더러 그걸 경험한 이들이 있습니다. 들은 적이 있으시겠지만 동조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체에 막대한 양의 마나가 축적되어야 하는데, 신체 재구성을 겪지 않은 몸으로는 그 정도의 마나를 감당할 수가 없거든요.”

니코레임 소장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체 재구성이라는 것은 전설이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소장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하는 이야기에서 묘사된 신체 재구성 시의 현상이 지금 진우 군이 말한 현상과 아주 흡사합니다. 실제로 겉으로 보기에도 진우 군의 외양이 전과는 좀 달라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진우 군이 아무리 뛰어난 신체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나를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다시 신체 재구성을 할 만큼의 마나를 혼자 힘으로 축적시켰다고 믿기는 힘들군요.”

소장의 말을 들은 최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그럼 진우가 마나 스톤의 마나를 흡수해서 동조 단계로 나갔다는...”

“하하, 아뇨. 아마 아직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동조 단계에 들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마나를 축적하는 게 기본이기는 합니다만, 단지 마나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동조가 가능한 건 아니거든요. 자신과는 다른 자연의 모든 이질적인 마나와 자유자재로 동조할 수 있으려면 발현과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아까 진우 군이 한 이야기로 볼 때, 이미 발현의 단계에는 확실히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만.”

소장의 말에 최현이 깜빡했었다는 표정으로 진우에게 말했다.

“아참. 진우 너 총알에 마나를 부여했다고 했지? 그거 지금 다시 할 수 있겠냐? 네가 쓰던 총은 이미 반납했지만, 얼른 가서 총알이라도 하나 지금 가져다줄까?”

그러자 진우가 사무실의 다탁 위에 있던 과일 접시 위에서 과도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녜요. 이걸로 그냥 보여 드릴게요.”

그는 몸속의 마나를 과도를 향해 밀어 넣었다. 이미 대도를 들고 계속해서 발현을 연습해서 그런지, 조그만 과도는 금세 시퍼런 마나로 휩싸였다. 사무실에 있던 이들은 모두 발현이 가능한 마나 헌터였으므로 진우처럼 마나를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지금 과도에 마나가 발현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 사람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걸 본 진우는 당황했다.

“왜 그러세요? 뭐 잘못된 건가요?”

그러자 조세연 박사가 한숨을 푹 쉬더니 최현을 한 번 힐끗 째려보고 나서 말했다.

“어이구, 하긴 저 바보가 제대로 가르쳐 줬을 리가 없지.”

그러자 최현이 발끈했다.

“뭐? 왜 나한테 뭐라 그래? 난 진우가 마나를 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두 사람의 언쟁을 들은 진우의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저기, 제가 한 게 뭔가 잘못된 방식인가요? 이건 발현이 아닌가요?”

그러자 조세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발현 맞다.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힌 발현이지. 먼저 좀 물어 보자. 진우 너 혹시 마나의 발현이라는 게 아무 거나 손에 쥔 것에는 다 마나를 부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닌가요?”

진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묻자 조세연은 ‘역시’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설명했다.

“발현이 가능한 마나 헌터라고 해도 아무 물건에나 마구 마나를 부여할 수는 없어. 물건마다 특성이 다 다르고, 그 특성에 따라 부여하기에 적절한 마나의 성질이나 양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야. 아무리 마나 발현에 능숙한 헌터라고 해도, 새로운 물건에 마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건의 특성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마나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 뭐 사람마다 적성이 맞는 물건에는 비교적 쉽게 마나 발현이 가능하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야. 물론 그 반대로 어떤 물건에는 죽어도 마나를 부여하지 못하기도 하고.”

진우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는 마나를 발현하는 단계에 들면 아무 물건에나 마나를 실을 수 있는 것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세연 박사가 최현을 다시 한 번 째려보더니 말을 이었다.

“총알이나 화살에 마나를 발현시키는 헌터들도 자기가 쓰는 총알은 늘 주문 제작을 해서 써. 재질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거든. 안 그러면 중요한 때 마나 발현이 잘 안 돼서 낭패를 겪는 수가 있어. 보통 헌터들에게는 너처럼 대뜸 아무 거나 손에 쥐고 마나를 부여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야. 최현이 맨 날 널 보고 괴물이라고 하기에 왜 그러나 했는데, 지금 보니 진짜 괴물이 맞구나.”

“에, 그게 그런 거였어요? 전 몰랐어요. 하지만 박사님 같은 마나 치료사의 경우에는 여러 사람들한테 다 마나를 부여하실 수 있지 않나요?”

“그거야 대상이 사람이니까 그렇지. 마나는 기본적으로 생명체에는 쉽게 스며드는 경향이 있거든. 무생물하고는 달라.”

“아, 그렇구나.”

그러자 최현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아, 그렇구나? 저 자식이 사람 염장을 지르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너 임마, 앞으로 아무데서나 그러지 마. 사람들 놀라는 건 둘째 치고 잘못하면 미움을 받을 수도 있어.”

“네? 미움을 받는다고요?”

“그게, 그러니까, 에효,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앞으로는 몇 가지 물건을 정해 놓고 사람들 앞에서는 그것들에게만 마나 발현이 가능하다고 말해. 알았지? 다 널 위해 하는 소리니까 꼭 명심해야 돼.”

진우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최현의 말을 듣고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어디에다 마나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할까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소장이 했다.

“뭐, 천천히 생각해도 상관은 없지만, 당연히 진우 군이 자주 쓰는 무기로 하는 게 맞겠지요. 제 생각에는 일단은 총알하고 활에다 부여할 수 있는 걸로 하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진우 군이 그런 무기를 쓰고 싶어 한다면 말이지요. 그리고 진우 군이 즐겨 쓰는 근접 무기도 하나 정해서 발현이 가능한 걸로 하고요. 뭐 두 가지 종류 이상의 발현 능력을 지닌 더블 헌터들이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설명하면 사람들이 납득을 하긴 할 겁니다. 이번에 돌아가면 진우 군 입학 축하 선물로 제가 특별히 세트로 제작해서 드렸으면 하는데. 괜찮겠어요?”

진우가 고개를 저으며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전 이미 받은 게 너무 많아서 그건 죄송하지만 사양해야 할 거 같아요. 여기 보내주시는 것만 해도 돈이 많이 들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자 최현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받아, 임마. 소장님이 마련해 주시는 거면 네 힘으로 구하기는 아마 힘든 걸 거다. 나중에 받은 거 열 배로 갚으면 돼.”

진우가 계속 난처하다는 뜻을 표시했지만, 소장은 물론 조세연 박사까지 나서서 거듭 권했다. 진우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반드시 열 배, 스무 배로 갚을게요.”

그러자 소장이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래요. 나중에 갚으면 됩니다. 근접 무기는 뭐가 좋겠어요?”

“검으로 해 주세요. 처음 사용한 무기가 그거라서 그런지 그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그럼 오늘 이야기는 이것으로 하지요. 진우 군도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만 쉬세요.”

최현이 진우를 데리고 인사를 하고 나가자, 막 따라 나가려던 조세연을 소장이 불러세웠다.

“조박사, 잠깐만 저하고 얘기 좀 하고 가시지요.”

조세연이 걸음을 멈추고 소장을 바라보았다.

“조박사, 올 1년 동안은 여기 계실 거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현재로서는 다른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만.”

“흠, 그럼 이번 여름방학 때 1학년들이 이곳으로 훈련을 올 때 말입니다.”

“네.”

“진우 군이 이제 1학년이 되니까 그때 다시 여기로 올 텐데, 느끼셨다시피 정작 와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조세연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그렇겠네요. 보통 마나가 하나도 없는 학생들에게 강도 높은 신체 훈련을 통해 마나를 축적시키는 게 1학년들 여름 훈련의 주 목적인데, 진우는 이미 발현이 가능한 정도까지 마나를 축적시켰으니까요. 이곳에 사는 생물들에 대해서도 이미 웬만한 헌터들 뺨치게 경험을 쌓은 셈이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때 진우 군이 훈련을 오면 조박사가 따로 좀 맡아서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해서요.”

“네? 뭘 가르치라고 하시는 건지...?”

“조박사 그 마나 치료술 말이에요. 제 생각이긴 하지만 진우 군은 더블 헌터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네? 그럼 트리플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트리플 헌터는 이름뿐이지 아직 나타난 적이 없는데요?”

“글쎄요, 그걸 트리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아무튼 어차피 훈련을 와도 특별히 할 일도 없을 테니 조박사가 조금 가르쳐 봐도 별 문제는 없지 않을까 해서요. 뭐, 잘 안 돼도 할 수 없고, 만약 진우 군이 마나 치료도 가능하게 된다면 최초의 트리플 헌터가 나오는 게 되기도 하고요. 어떻습니까? 한 번 해 보시겠어요?”

조세연이 조금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만약 트리플 헌터가 되는 게 가능하다면 그건 동조 단계의 직전 상태에 와 있다는 의미라는 말을 들었어요. 진우가 마나 치료술을 익힌다면 트리플 헌터라는 건데, 그러면 혹시 걔가 동조 단계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소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너무 앞서 가시는군요. 뭐 진짜 트리플 헌터가 된다면 동조 단계로 발전하는데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동조 단계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저희 고향에서도 천재 중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나 가능한 거지요. 그런 사람들도 최초의 마나 발현 이후에 최소 15년은 뼈를 깎는 고련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단지 가능성을 타진하고 준비를 시켜 보자는 생각일 뿐입니다.”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조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지요. 이번 여름은 여러모로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감사합니다, 어찌 보면 무례한 부탁인데 이해해 주셔서 고맙군요.”

“뭐, 진우 군은 저도 마음에 드는 학생이니 한 번 잘 가르쳐 볼게요.”

소장이 웃으며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감사를 표시했다.

조세연 박사가 문을 다고 나가자 소장은 다시 차를 한 잔 따르더니 일어서서 사무실 창에 비친 케이튼의 초원을 바라보았다. 너른 초원 한 구석에 크롱 한 무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후~, 기대를 하기는 했었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군.”

소장이 들고 있던 찻잔에서 엷은 김이 흘러나와 유리창에 맺혔다. 유리창에 비친 케이튼의 목가적 풍경이 뿌옇게 변했다. 그 위로 어딘가 가라앉아 보이는 소장이 얼굴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15년이 아니라 150년인들 못 기다릴까.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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