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해가 질 때까지는 되도록 나무들 밑으로 운전했다. 둥지로 돌아온 어미 괴조들이 기절한 채 쓰러진 새끼들을 보면 흥분해서 사방으로 범인을 찾으러 다닐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조들은 하늘을 날 수 있고 속도도 엄청 빠르기 때문에, 대수림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가다가는 또 다시 습격을 받을 위험이 컸다. 높이 부양할수록 속도를 낼 수 없는 트럭을 타고 가는 입장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나무들 사이로 트럭이 지나갈 공간이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에만 살짝 수풀 위를 넘어갔다가는 이내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방식으로 운행하다 보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호수에서 채 백 킬로미터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진우는 트럭을 땅 위로 착륙시킨 뒤 모처럼 불을 피워 느긋하게 조금 남은 트롱 고기를 구워 먹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마른 나무 위에 빠르게 비벼서 불을 피우는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신체의 기능이 워낙 향상되어서 그런지 오래지 않아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사실 몸 안에 있는 마나 가운데 양의 마나를 발현시키면 손쉽게 불을 피울 수도 있었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지닌 발현 능력의 구체적 효용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트럭에서 쓰던 방수포를 대충 묶어 만든 물주머니를 들어 물을 마시던 진우가 입맛을 다시며 혀를 찼다. 물주머니의 주둥이를 묶어 운전석에 던져 넣은 그가 기대놓았던 최현의 대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50일 넘게 죽도록 고생하다 돌아가는 길이다. 좀 조용히 보내주지 그러냐.”
혼잣말을 하며 어깨를 풀고 고개를 젓는데 뒤쪽에서 휙 하며 뭐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 위에 걸쳐 놓았던 대도를 재빨리 두 손으로 부여잡은 진우가 뒤로 돌며 크게 휘둘렀다.
켁
나무 위에서 그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떨어져 내리던 짐승 하나가 휘두른 대도에 얻어맞고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나무 여기저기서 방금 나가떨어진 녀석과 똑같은 모습을 한 대여섯 마리의 짐승들이 땅 위로 뛰어내렸다.
“흠. 무꿰이(木鬼)들이었나?”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헌터 패드에 있는 행성도감에서 본 적이 있는 녀석들이었다. 워낙 생긴 것이 특이해서 진우도 기억하고 있었다.
무꿰이는 최하급이기는 하지만 마수였다. 보통 4~8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면서 협동 사냥을 하는 녀석들이었다. 초원과 수플, 습지를 가리지 않고 서식하는 녀석들에게 무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마치 나무껍질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듯한 피부 때문이었다. 고목에 붙어 있으면 얼핏 나무와 구분이 되지 않아 일종의 보호색 역할을 하기도 하는 놈들의 피부는 생긴 것과는 달리 칼도 제대로 박히지 않는 단단함을 가지고 있었다. 몸과 팔 다리가 비교적 가늘고 머리 위에 두 개의 뿔이 솟아 있는 모습이 악마나 귀신같다고 해서 처음 발견한 중국 헌터가 무꿰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고했다.
나무에서 내려 온 무꿰이들은 둥그렇게 진우를 포위했다. 손가락 대신 긴 갈고리처럼 생긴 날카롭고 단단한 두 개의 발톱을 치켜 든 녀석들은 게가 집게발을 서로 부딪치는 것처럼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조금씩 포위를 좁혀 들어왔다. 진우는 두 손으로 대도를 잡아 중단에 세웠다.
“덤벼라. 그렇잖아도 몸이 변한 뒤로 연습이 필요했는데, 한 번 몸 좀 풀어보자.”
말은 쉽게 했지만 내심 긴장을 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보기에는 말라빠진 나무들 같아도 녀석들은 마수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우는 조심스레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온몸에 마나를 돌리며 조심스레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데, 앞쪽에 서 있던 두 놈이 갈고리를 내려찍으며 달려들었다.
“훗”
속임수였다. 팔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듯 보였지만 진우는 녀석들의 다리 움직임이 충분치 않은 것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던 그의 눈앞을 헛되이 스치고 지나가는 두 쌍의 갈고리와는 달리 뒤쪽에서 소리 없이 덤벼드는 세 마리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부드럽게 뒤로 돌아서자 노란 눈을 번뜩이며 갈고리를 휘둘러오는 녀석들이 보였다. 그는 돌아서던 자세 그대로 대도를 휘둘러 그것들을 쳐냈다.
따다다다당
갈고리들과 대도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 덤벼들었던 녀석들이 살짝 물러서고 이번에는 양 옆에 있던 무꿰이들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의외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녀석들이었다. 진우는 왼 발을 들어 왼쪽에서 달려들던 두 녀석들의 갈고리를 걷어차면서 몸을 기울여 오른손으로만 대도를 잡고 반대쪽에서 달려들던 녀석의 배를 향해 깊게 찔렀다.
땅
분명히 정확하게 배를 찔렀는데 놈을 뒤로 물러서게 했을 뿐, 배에 칼이 박히지 않았다.
“진짜 가죽이 단단한 놈들이네.”
녀석들도 한 차례의 교전을 통해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듯 공격을 잠시 멈추고 진우의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안 오면 내가 가지.”
그는 대도를 두 손으로 잡아 머리 위로 한 바퀴 크게 돌린 뒤 거침없이 전면을 향해 도약했다. 세 마리의 무꿰이가 갈고리를 치켜들고 그에게 맞섰다. 그는 마나를 팔에 돌리며 대도가 갈고리에 직접 부딪치지 않도록 살짝 방향을 바꾸면서 세 마리의 팔꿈치 부근을 차례대로 베어 버렸다.
케엑
녀석들의 나무껍질처럼 생긴 가죽이 진우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마나를 발현시킨 것도 아닌데, 확실히 전보다 힘이 늘었다. 전면에 있던 무꿰이들의 부서진 가죽 사이로 녹색의 핏물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무리 중의 일부가 상처를 입자 녀석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놈들의 파상공세가 시작되었다. 열 네 쌍의 갈고리가 쉴 새 없이 진우의 목숨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우는 짓쳐들어오는 갈고리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면서 대도를 휘둘러 튕겨내었다. 그의 대도와 부딪힌 녀석들이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비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찔러 들어가는 대도에 놈들의 상처가 늘어갔다.
싸움이 계속 되면서 진우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은 ‘즐겁다’는 것이었다. 예전의 싸움과는 느낌이 달랐다. 전에는 아무리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움직여도 늘 생각보다 조금씩 늦거나 어긋나는 몸의 한계 때문에 싸우면 싸울수록 답답함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무꿰이들과 싸우면서 진우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새로운 몸에 감탄했다. 생각이 가고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고맙다, 이 자식들아.”
마나를 발현시켜 휘둘렀다면 싸움은 진즉에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진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팔과 다리에 부여되는 마나의 양을 조금씩 조정하면서, 몸 안에서 용솟음치는 마나들을 움직이는 감을 익혀나갔다. 최대한 싸움을 길게 끌면서 마나를 조정하는 감각을 확실히 몸에 새기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는 데서 오는 희열을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따다다다당
마나 조정에 대한 감이 어느 정도 충분히 몸에 새겨졌다고 생각이 될 무렵, 진우는 한 차례 크게 대도를 휘둘러 무꿰이들을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서게 만들었다.
“후~, 이제 끝내자.”
으르르르르
진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딱딱한 가죽으로 덮여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던 무꿰이들이 이를 드러내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간다.”
전면을 향해 도약하며 대도를 휘두르자 앞에 있던 두 마리가 동시에 갈고리를 치켜들었다. 진우는 내려치던 대도의 방향을 중간에 살짝 바꿔 오른쪽에 있던 녀석의 팔꿈치를 베어갔다. 생각이 일자마자 순간적으로 두 손으로 마나가 이동했다. 녀석의 갈고리가 팔꿈치 채로 베어져 허공으로 날더니 연이어 여러 겹의 나무껍질 같은 가죽으로 둘러싸여 있던 목이 몸통에서 떨어졌다. 오른쪽 녀석의 목을 베고 지나가던 대도의 힘을 빼지 않고 살짝 끌어당긴 다음 그대로 왼쪽 녀석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케엑
대도가 녀석의 가슴 한 가운데를 관통해서 등 반대편으로 뚫고 나왔다. 순간 양 옆과 뒤에 있던 녀석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발로 이미 죽은 녀석의 몸을 차서 대도를 빼낸 진우는 그대로 왼쪽으로 뛰며 수직으로 내려쳤다. 다급하게 갈고리를 들어 진우를 막으려던 녀석의 팔이 튕겨져 나가면서 머리 한 가운데에 대도가 푹 박혔다. 그는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도약해 공중제비를 넘어 이미 죽은 녀석의 몸을 뛰어넘었다. 눈앞에 미처 자세를 바꾸지 못한 또 다른 녀석의 등이 보였다. 칼을 휘둘러 놈의 허리를 베었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녀석의 몸뚱이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진우가 순식간에 네 마리를 해치우자 나머지 세 마리의 눈빛에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서렸다. 내내 흉포하게 달려들던 녀석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어이, 싸우다 도망가면 안 되지.”
진우가 대도를 잡지 않은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도발이 먹혔는지 물러서던 녀석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래. 끝까지 한 번 해 보자고.”
진우가 대도를 들어 앞으로 곧게 세웠다. 그리고는 폭발적인 도약력을 이용하여 앞으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전면의 녀석이 두 팔의 갈고리를 교차시켜 진우의 대도를 막으려고 하였다. 동시에 양 옆의 녀석들이 갈고리를 내밀어 그의 양 옆구리를 길게 찔러왔다. 야생의 짐승치고는 정교한 합공이었다.
앞을 향해 뛰던 진우의 몸이 땅을 향해 낮게 기울어졌다. 그 자세에서 그대로 자세를 바꾸면서 대도를 낮추어 전면에 서 있던 녀석의 허벅지에 칼을 대고 반대쪽 가슴께를 향해 힘으로 베어버렸다.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하면서 녀석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쏟아지는 핏물이 그의 몸을 흠뻑 적셨다. 몸이 잘려진 녀석을 그대로 통과한 그는 다리를 뻗어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대도를 커다랗게 회전시켰다. 나머지 두 놈의 목이 동시에 잘려나갔다. 잠시 후 목을 잃은 녀석들의 몸이 쿵 소리를 내며 생긴 그대로 고목처럼 쓰러졌다.
“후우~~.”
온몸에 무꿰이들의 피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기분은 찝찝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게 향상된 자신의 능력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트럭 짐칸의 방수천으로 허리 아래만 대충 감싼 처지라 버릴 옷도 없었다. 물주머니의 물로 나중에 시트에 피가 묻지 않도록 등과 허리 뒷부분만 대충 씻어낸 뒤 트럭에 있는 곳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울창한 수풀 사이로 언뜻 노랗게 빛나는 케이튼 밤하늘의 별이 보였다.
“많이 변했구나, 진우, 너.”
싸움을 통해 느꼈던 희열이 가라앉자, 전투를 즐기는 자신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도 별다른 시비나 다툼이 없이 조용하게 살아왔었는데, 이제는 비록 외계 행성의 생물이라고는 하지만 남의 목숨을 뺏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불과 15살이었다. 그런데 비록 최하급 마수라고는 하지만 일곱 마리나 되는 녀석들을 마나를 발현시키지도 않은 상태에서 쓰러뜨렸다. 녀석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피를 보는데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문득 승리의 기쁨이 썰물처럼 사라지면서 착잡함이 밀려들었다.
“이게 헌터인 건가...”
눈을 감고 명상에 들었다. 마나가 조용히 온몸을 어루만지며 피곤함을 씻어주었다.
무꿰이들에게서 나온 마나 스톤은 모두 콩알만 한 것들이었다. 비록 작기는 하지만 일곱 개나 되니 나름 소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나스톤을 수습해서 보관함에 넣고 나서 진우는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명상을 통해 피곤을 씻은 진우는 그냥 출발하기로 하였다.
무중력 자동차를 띄워 대수림 위로 완전히 올라갔다. 아직 사방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방향은 대충 잡아두었던 터라 진우는 망설임 없이 차를 띄웠다. 날이 밝을 즈음이면 더 이상 괴조의 눈에 띌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까지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새롭게 변한 데다 발현을 각성한 이후로 더욱 밝아진 눈에 어슴푸레 대수림의 우거진 수풀이 내려다 보였다.
“가자, 집으로.”
트럭이 느린 속도로 북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내일이면 행성 케이튼 편이 끝나겠네요. 이제 헌터학교로 갑니다. 너무 여주가 없어서 제가 봐도 삭막하네요. 학교 가면 좀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