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일단 케로스의 가죽을 잘라 가슴 어림에서 놈의 마나스톤을 꺼냈다. 칼에 마나를 발현시키자 그 질긴 가죽이 마치 종이처럼 쉽게 잘렸다. 마나스톤을 물에 씻어 보관함에 넣을 때쯤 날이 완전히 캄캄해졌다.
진우는 지붕이 날아간 운전석 위에 올라가 차분히 명상에 들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관조를 통해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몸에 무언가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었다. 최현이 옆에 있었다면 자세히 물어보았겠지만 현재로서는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자기 스스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명상에 들어 몸속의 마나를 확인하던 진우는 기겁을 할 정도로 놀라는 바람에 하마터면 명상이 깨어질 뻔 했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며칠간의 기절 상태에서 깨어난 뒤 전보다 마나의 양이 늘어난 것 같다는 느낌은 받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나를 운용해 보니 생각을 일으키자마자 어마어마한 마나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정확한 양은 지구로 귀환해서 측정기로 확인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현재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것으로 봐서는 몇 배 수준이 아닌 듯했다. 최소한 열 배는 훨씬 넘어 보였다. 아무리 마나가 형태가 없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든 마나의 양이나 농도가 정신을 잃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마나 헌터로 각성하기 위해 필요한 체내 축적량이 대략 100P이니 자신의 느낌이 틀리지 않다면 현재 그의 몸속에 있는 마나량은 최소 1000P가 넘는다는 말이었다. 최현은 분명 현재 우리나라 헌터 가운데 체내 마나량이 가장 높은 사람이 고작 900P를 조금 넘는다고 했다. 외국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마나를 몸에 쌓기 시작한 지 채 두 달도 안 된 자신의 몸속에 그보다 많은 마나가 축적되었다고?
진우는 몸 구석구석에 있는 마나를 확인하고 그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운용해 보았다. 생각을 조금만 일으켜도 엄청난 양의 마나가 반응하는 것도 그렇지만, 마음이 가는 곳으로 마나가 이동하는 속도 역시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물론 생각이 가면 그곳에 마나가 있다는 식의 전설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응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은 분명했다.
몸속을 돌아다니는 마나의 느낌도 달라졌다. 이전까지 진우는 자신의 몸속에 축적된 마나로부터 그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느낌만을 받았다. 그런데 새롭게 늘어난 마나에서는 따뜻함과 날카로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꿈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미소를 보여주었던 여인. 어머니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따스함이 마나들을 통해 전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따스함을 뚫고 나오는 상대를 향한 날카로운 적의도 섞여 있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건, 아무래도...”
문득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던 마나 스톤이 생각났다. 잠잘 때마다 배 위에 올려놓았던 그것. 친구처럼 친근한 느낌을 주던 그 마나 스톤이 전해주던 감각이 몸속의 마나로부터 느껴졌다. 조박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뱃속에 새끼를 넣고 헌터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던 괴조가 품었던 마나스톤이어서 그런지 서로 다른 두 가지 느낌을 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너로구나.’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네가 내 안에 들어왔구나. 네가 내 상처를 치료하고 나를 구해주었구나.’
증거는 없지만 분명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혼수상태에서, 왜 기억에도 없던 어머니가 나타나 자신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짓는 꿈을 꾸었을까. 어머니는 그를 낳고 곧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마도 어린 그를 뉘어 놓고 당신이 아들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도 못하는 어린 눈으로 보았던 그 모습이 의식 어느 한 구석에 숨어 있다가 자신이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그 순간 다시 표면으로 떠올랐을 수도 있었다.
기억일지 착각일지, 아니면 그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그 장면이 뱃속에 새끼를 넣고 사력을 다해 저항했던 괴조에 대한 이야기와 어우러졌다. 고맙고, 미안했다. 아프고, 따뜻했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을 딛고 태어나 자란다. 삶과 죽음은 모순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존재방식일 뿐이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흐르는 사이에 진우의 몸속에 있던 마나들이 저절로 밖으로 새어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속을 넘실대던 마나들이 푸른색과 붉은 색으로 나뉘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진우의 몸을 안팎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나가 지나가는 곳마다 진우의 몸이 지진을 만난 것처럼 흔들렸다.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던 마나들이 어느 순간부터 다양한 색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황토색... 수많은 색깔의 마나가 그의 몸을 감싸고돌며 황홀하게 빛을 뿌렸다. 장관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빛 무리로 춤추던 마나들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엄청난 정신적 고양감이 그를 찾아왔다. 그것은 냉정한 날카로움과 극렬한 쾌감을 동시에 동반한 것이었다. 꼭 감았던 진우의 눈이 살짝 떠졌다. 시린 눈빛이 반개한 눈으로부터 새어나왔다. 그의 입술에 너무나도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화악
진우의 몸을 둘러싼 마나들이 하나가 되면서 우윳빛 서광으로 변하여 강렬한 빛을 내었다. 저녁이 되면서 호수를 뒤덮었던 물안개가 갑작스런 빛에 놀란 듯 출렁거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다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왔다.
“후우~”
명상을 마친 진우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몸속에 과도하게 축적되었던 마나들이 완전히 그의 몸에 안착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나 스톤의 마나가 흡수되면서 자신의 신체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그게 어떤 것인지 마나를 통해 세포 하나하나를 확인하면서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그만 의지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던 마나를 이제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 *
진우가 모든 것을 마무리 했을 때는 밤이 이미 깊었다. 명상을 끝내자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가뿐했지만 그는 일단 잠을 자기로 했다. 다음날 해가 뜨는 대로 기지를 향해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나를 퍼뜨려 주변에 맹수나 마수가 없는지 살폈다. 전에는 비록 예민한 편이기는 했지만 전해지는 마나의 느낌을 수동적으로 파악할 뿐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발현을 각성한 뒤에는 스스로 사방으로 마나를 엷게 퍼뜨려 능동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해보니까 실제로 그게 되었다. 몸 주위로 마나를 수발하는 게 자유로워지면서 마나와 자신의 일체감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뜻이었다.
사방으로 마나를 퍼뜨려 탐색하던 진우는 문득 호수 중앙으로부터 엄청나게 강력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 바람에 흠칫 놀랐다. 문득 호수 중앙을 향해 트럭을 매단 채 날던 괴조가 떠올랐다.
“섬 안에 괴조의 둥지가 있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괴조가 무중력 트럭을 쥐고 날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이 크다고 해도 지금 전해지는 마나의 느낌은 일개 마수가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그만큼 진우가 느끼고 있는 마나의 기세는 살이 떨릴 정도로 강렬했다. 그때 문득 최현이 마수들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나 스톤이나 마나 크리스털 주변에 모여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럼 설마 저 섬에 마나 크리스털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인가?”
최소한 마수는 아닌 것 같았다.
“내일 날이 밝자마자 당장 떠나려고 했는데, 이건 한 번 확인을 해 봐야겠네.”
만약 지금 느껴지는 것이 정말로 마나 크리스털이라면, 그동안 최현과 함께 정찰했던 대수림의 괴변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었다. 행성 케이튼에 전초 기지가 세워진 뒤에 실행됐던 수많은 탐색의 결과, 화산 지역이나 그 근저의 대수림에 마나 크리스털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곳은 대수림의 중심에서 화산지대 쪽으로 치우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나 크리스털이 있다고 예상되었던 지역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만약 지금 느껴지는 마나의 주인공이 정말 마나 크리스털이라면, 예전에는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났거나,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것일 수도 있었다. 최현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대수림에서 일어난 괴변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생사조차 알 수 업는 상황에서 문제의 원인일지도 모르는 것을 코앞에 두고 이대로 기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지금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 * * * *
이불도 덮지 않고 운전석에서 대충 누워 잤는데도, 몸이 좋아져서 그런지 아침에 눈을 뜨자 기분이 개운했다. 해가 동쪽 수풀 위로 떠오르면서 밤새 호수를 덮었던 물안개가 서서히 걷혀 나갔다. 진우는 남은 크롱 고기를 생으로 씹으며 호수 중앙의 섬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 섬에 정말 괴조가 있다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해가 완전히 뜨고 호수 위의 물안개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나자, 잠시 후 두 마리의 커다란 괴조가 날개를 펴고 섬 위로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하늘로 날아오른 괴조들은 잠시 섬 주위를 맴돌더니 곧 ‘카악~’하는 괴성과 함께 호수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진우는 운전석에서 내려와 토막난 검을 허리 뒤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호수 속으로 들어가 섬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팔다리에 그다지 힘을 주지 않는 것 같은데도 몸이 섬을 향해 쭉쭉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나를 깨우친 이후로는 수영할 때 느끼는 물의 저항감이 훨씬 줄어들었다.
3Km 정도를 헤엄치자 금방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앞에 길이 300m 정도의 길쭉한 섬이 가로 놓여 있었다. 진우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물에서 빠져나와 섬을 살펴보았다. 섬 중앙에서 왼쪽으로 삼분의 일 정도 되는 지점에 머리통만한 바위들로 가장자리를 쌓아 만든 새 둥지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살펴보니 바윗돌로 만들어진 둥지 안에 고운 모래가 평평하게 깔려 있었다. 그 위에서 새끼 괴조 두 마리가 아직 잠이 덜 깬 듯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여기는 새들이 나뭇가지나 풀이 아니라 돌과 모래로 둥지를 만드네.’
사실은 케이튼 행성의 모든 새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둥지를 짓는데 쓸 만한 나뭇가지나 풀을 찾기 어려운 화산 지대에 서식하는 조류들만이 그런 식으로 둥지를 만들었다. 즉 대수림 한 가운데에서 돌과 모래로만 지어진 둥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괴조들이 본래 이곳이 아닌 화산지대에서 살던 놈들이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진우는 둥지 안의 새끼 괴조들을 향해 마나탐색을 했다. 녀석들의 몸속에서 희미한 마나스톤이 기색이 느껴졌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그 느낌이 매우 미약했지만 어려도 마수는 마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와는 별도로 둥지 안에서는 여전히 엄청나게 막대한 마나가 뭉쳐있는 느낌이 전해졌다. 어미 괴조들이 떠나고 난 둥지 안에는 새끼 괴조 두 마리 밖에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나오는 느낌이지?’
아무리 살펴봐도 둥지 안이나 둘레에는 마나스톤이나 마나 크리스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둥지를 이루고 있는 돌 하나하나를 살피던 진우의 눈이 새끼들이 있는 둥지의 바닥으로 향했다.
‘혹시?’
진우는 허리 뒤에 찔러 넣어 두었던 토막 검을 꺼내들고 조심스럽게 둥지 한 가운데로 다가갔다.
“꺅, 꺅, 꺄악~~.”
마침 그때 졸고 있던 새끼 괴조들이 깨어나 그가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덩치는 커다란 것들이 어린 새의 목소리를 내니 듣기가 영 이상했다. 진우가 바위로 만들어진 둥지 가장자리를 넘어 안으로 들어가자 소리만 질러대던 녀석들이 그를 향해 잰 걸음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명색이 괴조의 새끼들이라서 그런지 달려드는 눈빛이 제법 사나왔다. 크기만 따질 때에는 이미 웬만한 맹수들보다 몸집이 컸다.
‘이놈들을 어떻게 하지? 그냥 죽여?’
비록 반 토막 난 검이었지만 마나를 발현시켜 휘두르면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새끼를 죽이면 분명히 어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기지로 돌아갈 때 위험해 질 수도 있었다.
진우가 새끼들의 처리를 놓고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둥지 건너편 땅에 눈에 익은 것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땅위로 손잡이만 삐죽 나와 있지만 최현이 사용하던 대도와 비슷한 것이 꽂혀 있었다. 그는 가볍게 땅을 박차 달려오는 새끼 괴조들의 머리 위를 뛰어 넘었다. 둥지 밖으로 나가 땅에 박힌 손잡이를 쑥 뽑아들고 보니 최현의 대도가 맞았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순간 불안한 생각이 덜컥 들었다.
‘선생님이 혹시 괴조들에게 당했나? 잡혀서 먹이가 된 건 아닌가?’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람의 인골이나 찢어진 옷가지 등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최현이 잃어버린 것을 지나가던 괴조가 물어온 것처럼 대도만 혼자 땅속에 박혀 있었다. 사실은 암컷 괴조가 수컷의 눈에서 최현의 대도를 부리로 뽑아내어 팽개친 것이었지만 진우로서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나중에 어떻게 되든 가지고 가보자. 비싼 돈을 들여 특별 주문 제작하신 거라고 들었는데, 여기 버려둘 수는 없지.”
만약 최현이 사망한 거라면 이 대도가 그의 유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대도를 챙기고 부러진 토막 검은 버렸다. 기지로 돌아가거나 최현을 만날 때까지는 당분간 대도를 무기로 쓸 생각이었다.
뒤에서 시끄럽게 깍깍대는 소리에 돌아보니 새끼 괴조 두 마리가 진우를 보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차마 둥지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가장자리에 서서 짧은 날개를 파득거리며 요란을 떨고 있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최현의 대도를 들어 넓은 도면으로 새끼들을 머리를 한 대씩 때리자 녀석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약간 과하게 때렸나 싶은 생각이 되었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새끼들을 처리한 진우는 둥지의 바닥에 손을 대고 마나를 발현시켜 땅속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둥지 한가운데의 땅 밑에서 강력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최현의 대도를 삽처럼 사용해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의 모래를 파내자 오래지 않아 땅 속에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길쭉한 붉은 색 결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 그것은 겉으로 볼 때는 그저 조금 큰 보석 원석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진우는 그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화염이 이글대듯 일렁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현이 주었던 마나스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마나가 느껴졌다.
“이걸 들고 다니면 대수림의 마수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겠군.”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히 강한 빛을 낸다거나 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보석처럼 보이는데도 그 속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일반적인 마나의 기운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나 헌터들은 느낄 수 없는 강력한 마나의 향기였지만, 진우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했다. 손을 댈 경우 각자의 특징적인 느낌을 미약하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는 마나 스톤과는 달리, 헌터들이 알기로는 마나 크리스털은 직접 만져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다는 게 상식이었다.
“아무래도 묻혀 있는 상태로 보아 이게 본래 여기 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 말에 따르면 괴조들도 여기서 보지 못한 것들이라고 했고 말이야. 이 녀석들이 화산 쪽에서 이걸 물고 여기까지 날아와서 새로 둥지를 튼 건 아닐까? 그래서 갑자기 대수림의 생물 분포에도 영향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군.”
진우는 마나 크리스털을 기지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운전석에 있던 보관함에 넣어두면 마나의 기운이 새어 나가지 않으니까 마수나 맹수들을 유혹하지 않고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 크리스털을 챙긴 진우는 모래를 끌어 모아 그것이 묻혀 있던 장소를 주변의 다시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쓰러진 새끼 괴조 두 마리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그대로 섬을 빠져 나와 호수로 몸을 던졌다.
트럭으로 돌아와 마나 크리스털을 보관함에 넣고 뚜껑을 닿자 그토록 강력하던 마나의 기운이 희미한 느낌만 남겨두고 대부분 감춰졌다. 사실은 마나의 기운은 전혀 새어나오지 않고 마나의 향기만이 엷게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트럭에 올라 방향을 돌리는데 저 멀리 둥지를 떠났던 어미 괴조들이 무언가를 발톱에 움켜 쥔 채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희들 때문에 나도 죽을 고생을 한 게 있으니, 새끼들 머리에 혹을 낸 것은 서로 비긴 것으로 하자. 가족들끼리 헤어지지 말고 잘 살아라.”
그렇게 들리지도 않는 변명을 중얼거리고 진우는 트럭을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이 먼치킨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신 분들이 있네요. 개인적으로 저 먼치킨 아주 좋아합니다. ^^ 주인공을 아주 강하게 만들 생각도 있고요. 근데 그게 먼치킨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깽판물이나 무한갑질 같은 것하고는 무관할 겁니다. 좋다 싫다가 아니라 그냥 제가 생각하고 있는 시놉스가 그런 것하고는 무관할 거라는 뜻입니다.
이미 써 놓은 분량도 제법 되고, 처음 쓰는 소설인만큼 되도록 기승전결이라는 기본적인 구조에 맞추어 쓸 생각입니다. 제목이 행성 헌터인 만큼 여러 행성을 다니며 헌팅을 하게 되겠지만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를 무한 나열하는 방식으로 가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주인공인 진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정을 해 둔 것이 있습니다만 그걸 일일이 설명하는 건 포기했습니다. 소설에 설명이 너무 많으면 지루해지더라구요. 그렇잖아도 지금까지 쓴 내용에 이미 설명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외전 형식으로 간단히 설정을 대신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연재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고 재미있어 해 주시기를 바라는 거지요.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