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진우는 케로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천천히 몸을 움직여 트럭으로부터 떨어졌다. 전에 최현과의 전투를 통해 본 것처럼 녀석은 점프와 돌진에 능했다. 특히 돌진의 위력은 대단했다. 트럭 곁에서 싸움을 벌였다가는 자칫 녀석의 뿔에 기껏 발견한 트럭이 박살이 날 우려가 있었다.
트럭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자 진우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허리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오랜만이네. 너하고는 인연이 있는가 보다.”
심각한 상황인데 왠지 웃음이 나왔다. 녀석은 잔인하고 사나운 마수였다. 호기심에 자신의 뒤를 밟았을 리가 없었다. 처음 보는 낯선 생물이라 지금은 지켜보고 있지만 결국 본능에 각인된 사냥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덤벼들 것이다. 진우는 몸 전체에 최대한 마나를 퍼뜨리면서 케로스를 노려보았다. 도망갈 길은 없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케로스의 눈에 붉은 빛이 맺히면서 녀석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우는 한 손을 케로스에게 내밀고 손가락을 까닥였다.
“덤벼.”
그가 어설픈 동작으로 도발하자,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들었다. 진우는 놈이 뛰어오르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오른발을 뒤로 빼고서는 몸을 뒤로 눕히듯 낮추었다. 그 자세에서 그는 위를 향해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보고 상대하면 이미 늦었다. 진우는 최현이 녀석의 턱을 도면으로 후려친 뒤 배를 갈라버렸던 것을 기억했다. 그 흉내를 내어 자신의 위로 넘어가는 녀석의 배를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칼은 케로스의 배에 닿지 못했다. 예상보다 놈의 도약 높이가 높았다. 분명히 직선으로 돌진하려는 기세였는데 도약 직전에 자세를 바꾼 게 틀림없었다.
‘간을 보고 있군.’
먹이사슬의 상위권에 있는 마수가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상대를 탐색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상대가 자신보다 약한 동물인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우는 분명히 아직 케로스보다 약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오래 끌면 내가 당한다.’
녀석은 진우를 가운데 두고 주변을 맴돌며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머리 위를 뛰어 넘으며 그의 반응을 확인하는 듯했다. 진우가 칼을 들어 휘둘러도 미치지 못할 높이를 아웃복서들이 스텝을 밟듯 가볍게 넘나드는 녀석의 움직임은 대단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눈으로 확인하고 대응했다가는 순식간에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렵했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벌써 땀이 흐르며 목이 따가워졌다.
“그냥 덤벼 이 자식아. 간 보지 말고.”
진우는 이를 갈며 녀석을 노려보았지만, 실상은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초조했다.
한동안 그의 반응만을 살피며 움직이던 케로스의 몸이 멈췄다. 진우는 녀석에게서 전해지는 마나의 느낌이 갑자기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케로스가 그를 향해 낮게 돌진하며 뛰어들었다. 그는 놈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숙이면서 검을 휘둘렀다. 맞받아치려는 생각이었다.
부웅~
하지만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케로스의 돌진은 진우의 앞에서 멈췄다. 그 때문에 그의 칼은 헛되이 놈의 코앞을 지나가고 말았다. 그 순간 녀석은 호랑이들이 싸울 때처럼 두 발로 딛고 일어서더니 진우의 상체를 노리고 사납게 앞발을 휘둘렀다. 진우는 급히 몸을 뒤로 빼면서 간신히 검을 고쳐 잡고 쏟아지는 발톱을 쳐냈다.
챙챙 채채챙
발톱과 검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몇 번 그의 검이 놈의 발목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의 가죽 위로 엷은 흔적을 내는 것 이상의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반면에 놈의 발톱이 진우를 스치고 지나간 곳은 여지없이 방호복이 갈라지면서 피가 내비쳤다. 발톱 위에 마나가 실려 있다는 뜻이었다. 마수와 맹수의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전력을 다해 찌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상처를 주기도 어렵겠군.’
문제는 전력을 다한 공격조차도 과연 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겠느냐는 점이었다. 검이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녀석의 가죽이 너무 질겼다. 진우의 얼굴 위로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케로스는 몇 번의 격돌을 통해 앞발로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그를 쓰러트리기가 쉽지 않은 것을 느낀 듯 했다. 그의 주위를 돌며 마치 탐색전을 하듯 가벼운 공격과 도약을 계속하던 녀석이 갑자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케로스에게서 강력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진우는 순간 두 다리와 검을 쥔 손에 전력을 다해 마나를 실었다.
펑
녀석이 밟고 있던 땅이 마치 작은 폭약을 터트린 것처럼 터져나갔다.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뿔을 내세운 녀석의 몸이 포탄처럼 돌진해 들어왔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진우의 시력으로도 흐릿한 잔상만이 보였다. 최현이 놈을 상대하던 때에는 그래도 트럭 안에서 지켜보는 입장이어서 그랬는지 집중하면 케로스가 돌진하는 순간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직접 녀석의 돌진을 경험하자 전해지는 느낌이나 속도감의 차원이 달랐다.
“이얍”
진우는 짧은 기합과 함께 왼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전력을 다해 뒤로 도약했다. 케로스가 돌진을 준비하는 낌새가 느껴지자마자 바로 뛰었는데도 순식간에 놈의 뿔이 그의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방호복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면서 핏줄기가 허공에 확 퍼졌다. 허리 부근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짜릿하게 머리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는 발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이를 악물고 디딘 발을 축으로 삼아 허리 어름을 지나가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전력을 다한 필사의 일격이었다. 막 진우를 통과해 나가던 녀석의 뒷발 허벅지가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얕다’
돌진을 끝내고 돌아서는 케로스의 허벅지 아래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처음으로 녀석의 가죽을 뚫고 살을 베는데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깊은 상처를 주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성질만 건드린 꼴이군.’
속으로 가볍게 탄식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전신 위로 붉은색 마나가 확 퍼지는 것이 보였다. 몸 바깥으로 마나가 직접 방출되고 있었다.
“그래, 제대로 가 보자.”
케로스가 공중으로 높이 도약했다. 직선의 돌진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면서 일격에 진우의 목을 물어 죽이려는 속셈이었다. 놈이 숲속에서 사냥감을 만났을 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마나를 이용해 최대한 높이 도약한 다음 떨어져 내리면서 체중을 이용해 충격을 준 다음, 이빨로 물어 일격에 상대를 죽이려는 의도였다. 호랑이만한 녀석이 입을 벌리고 떨어져 내리는데, 피할 공간이 없었다.
“이야아압.”
진우도 물러서지 않고 길게 소리를 지르면서 검을 들어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녀석을 향해 곧게 찔러 넣었다.
쨍
그의 검이 케로스의 이빨에 부딪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휘어졌다. 땅을 디디고 있는 발이 주르륵 하고 뒤로 밀렸다. 검을 쥔 팔이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일격에 진우를 물어 죽이는데 실패한 녀석은 신경질 적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는데 배를 가리고 있던 방호복이 북 하고 찢겨 나갔다. 순식간에 배 위로 세 갈래의 고랑이 파였다.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왔으면 아마 내장이 잘려나갔을 것이다.
“크윽”
진우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뱃속이 인두로 지진 것처럼 화끈했다. 칼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일어서는데 배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나와 다리를 적시며 흘렀다. 어딘가 큰 혈관이 잘려 나간 듯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순간 녀석이 또 다시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나 먹어라.”
그는 무의식적으로 검을 들어 앞을 향해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달려오던 케로스가 급히 멈추더니 검 끝을 덥석 물었다.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검을 물고 흔들었다. 진우는 팔에 힘을 주고 검을 빼내기 위해 비틀었지만 놈은 턱을 굳게 다물며 놓지 않고 버텼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의 중단이 부러지고 말았다.
“케엑~”
케로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녀석이 입을 벌리고 컥컥 대는데 그 사이로 입천장에 박힌 칼 조각이 보였다. 검이 잘리면서 부러진 칼끝이 놈의 입천장을 파고든 모양이었다. 화가 난 녀석이 머리로 진우를 확 밀어버렸다. 그는 힘없이 뒤로 굴러갔다. 구르는 자리마다 핏물이 길게 흔적을 남겼다.
검이 부러지면서 케로스의 입속에 있던 부러진 조각이 입천장을 찌른 것은 행운이었다. 본래 마수에게는 칼은커녕 총알도 통하지 않았다. 전투를 하지 않는 평상시에도 마수들의 피부에는 항상 엷은 마나가 덮여 있기 때문에 총알이 잘 박히지를 않기 때문이었다. 강한 녀석들 중에는 의지를 가지고 피부에 질긴 마나를 덮어 총알을 튕겨낼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마수라도 내장까지 마나가 항상 덮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소화된 음식에서 양분을 흡수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마나를 쌓아 강해졌는데, 그것 때문에 굶어죽는다면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쌤통이다, 자식아.”
욕을 하며 놀렸지만 상황은 여전히 진우에게 불리했다. 출혈이 계속되면서 정신이 점점 흐려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자 뒤쪽으로 트럭이 가까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름 애써 트럭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는데 결국 다시 이쪽으로 오고 말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밑동만 남은 검을 놈을 향해 던졌다. 던져진 검은 녀석이 휘두른 앞발에 막혀 멀리 튕겨나갔다.
“후욱, 후욱.”
숨이 가빴다. 이대로 죽을 거 같다는 생각과,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떠돌았다.
‘난 살아야 해.’
아직 할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최현의 생사를 확인해야 했다. 열흘이 넘는 동안 탐사했던 대수림의 변화도 보고해야 했다. 최현이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최소한 자신만이라도 살아 돌아가서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
아니 그것이 아니더라도 여기서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진우는 평생 몸에 대해 열등감을 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처럼, 아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좋아진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런데 그 좋은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여기서 허무하게 죽기는 싫었다.
“덤벼라, 빌어먹을 자식아.”
그가 악이 받쳐 욕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케로스가 다시 돌진을 시도했다. 화가 많이 났는지 녀석의 몸 위로 보이는 마나의 색이 어느 때보다도 진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몸속의 마나가 뜨거운 기운으로 변해 맹렬하게 온몸을 자극했다. 돌진하는 녀석의 모습이 아까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양팔에 몸 안의 마나를 전부 끌어 모아 달려오는 녀석의 뿔을 움켜잡았다. 혼미해진 정신과 악만 남은 상황이 빚어낸 무모한 대처였다.
우두두둑
오른팔이 부러지면서 끝내 어깨부터 탈골되는 소리가 들렸다. 토할 것 같은 오른쪽 가슴을 온통 헤집었다. 하지만 진우는 미칠 것 아픔 속에서도 케로스의 뿔을 놓지 않았다. 몸 전체가 돌진에 밀려 놈과 함께 뒤로 날아가더니 등이 트럭에 쿵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팔을 부러뜨리면서까지 막았는데도 놈의 뿔이 오른쪽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가슴을 찢고 생살을 파고드는 녀석의 뿔에서 섬뜩한 살기가 전해졌다.
“먹어라, 이 개자식아아~~~”
아직은 움직이는 왼손을 뒤로 돌려 등에 걸쳐 메고 있던 총을 꺼냈다. 입천장을 찌르는 검 조각 때문에 완전히 다물지 못하고 있는 케로스의 입이 그의 코앞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었다. 진우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엉겁결에 총신을 녀석의 입속으로 깊이 집어넣었다. 총구가 놈의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이 왔다.
“죽어~~.”
탕
케로스의 입 안에서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진우는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케로스가 목을 뒤로 빼려하는 것을 쫒아가며 총대를 밀어 넣고 미친 듯이 손가락을 움직였따.
“케에에엑.”
뱃속을 용암처럼 관통하는 예상치 못한 고통에 놀란 케로스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비틀었다. 진우는 부러진 오른팔 대신 두 발로 놈의 몸을 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철컥 철컥 철컥
탄창이 다 비워진 것도 모르고 방아쇠를 당기던 진우는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진우의 발에서 힘이 빠지며 케로스가 빠져나갔다. 녀석은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듯 비척거리며 숲 쪽으로 기어갔지만 끝내 숲에 이르지도 못한 채 힘을 잃고 쓰러졌다. 쓰러진 케로스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놈의 몸이 바르르 떨더니 잠시 후 모든 움직임이 그쳤다.
* * * * *
혼수상태가 되어 쓰러진 진우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케로스의 입 속에 총구를 넣고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장면이 뒤로 되감겼다. 녀석이 뒤에서 내뿜는 지독한 살기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지나간 일들이 계속해서 하나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대수림 속에서의 맹수들과의 전투, 트럭에서 뛰어내리던 순간, 마나의 각성, 공터에서 몬티와 했던 실전 훈련 장면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진우는 석양이 물든 강가에서 최현과 함께 크롱을 구워먹었다. 행복한 포만감에 웃고 있는데 갑자기 트럭 운전석 밖으로 케로스가 흉포한 표정으로 최현에게 돌격하고 모습이 보였다. 기지에서의 훈련, 헌터 테스트를 받던 날, 정태와의 야구시합... 중학교 졸업식 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주었다. 넋을 잃고 눈을 감은 채 하늘을 쳐다보았다. 문득 얼굴 위로 따뜻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가에 눈물 자욱이 있는 여인이 한없이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사진으로 밖에 보지 못했던 엄마의 얼굴이었다. 사진 속의 엄마 얼굴은 아름다웠다. 늘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여인에게서는 따뜻함과 푸근함, 그리고 안타까움의 느낌이 가슴 저리도록 전해졌다.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웃고 있는 얼굴에서 전해지는 사랑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손을 내밀었다. 한 번이라도 만지고 싶었던 그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이 타는 듯이 답답했다.
‘엄마~~~’
갑자기 잉크가 엎질러진 화선지처럼 사방에서 어둠이 배어나와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 * * * *
호숫가에 해질 무렵의 차가운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다. 한낮의 햇살을 받아 기분 좋은 따뜻함으로 물결치던 호수 위로 차가운 공기가 키 큰 나무들 위로부터 불어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수초 위를 쓸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호수 가장자리에서 일기 시작한 물안개가 넓은 호면을 가로질러 점차 한 가운데의 섬을 향해 밀려들었다. 섬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물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물안개 위로 석양이 잠시 머물다 물러가고 곧 캄캄한 어둠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둠 속에서 진우는 죽어가고 있었다. 케로스에게 받은 배와 가슴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호숫가의 경사를 타고 흘러 부근의 물을 붉게 물들였다. 기괴하게 꺾인 오른팔 뼈는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일부가 살갗을 뚫고 나와 있었다. 이따금 꿈틀대던 몸의 경련이 점차 잦아들고, 거칠던 호흡마저 낮게 가라앉았다. 피가 부족한 얼굴이 푸르스름할 정도로 창백해졌다. 그때 그가 바지 주머니 속에 늘 가지고 다니던 마나스톤이 변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여러 분들이 칭찬과 격려를 해주시는 코멘트를 남겨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