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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20화 (20/235)

20화

정신을 차리고 대수림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최현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소드테일이라는 맹수였다. 미국인 헌터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던 녀석은 작고 통통한 몸집에 비해 자기 몸보다 한배 반가량 되는 긴 꼬리를 달고 있었다. 놈의 꼬리는 넓적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연상케 하는 단단한 뿔처럼 생겼는데, 몸통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만 근육으로 되어 있어 꼬리를 칼처럼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녀석을 처음 발견한 미국인 헌터는 꼬리가 마치 칼날처럼 생겼다는 뜻으로 이름을 소드테일이라고 지었다.

소드테일은 최현을 보고 사납게 달려들었지만 녀석으로서는 상대를 잘못 만난 날이었다. 최현은 부상을 당한 왼손 대신 오른손에만 마나를 잔뜩 부여해 간단하게 놈을 때려잡고 꼬리를 전리품으로 챙겼다. 덕분에 대도에 비할 수야 없지만 나름 아쉬운 대로 쓸 수 있는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소드테일의 꼬리를 손에 든 그는 일주일 동안 대수림을 헤치고 나가 기어코 초원과 숲의 경계를 흐르는 강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강행군을 한 결과였다.

아무리 마나를 각성한 중급 헌터의 몸이 놀라운 회복력과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최현의 강행군은 과도한 것이었다. 트럭에서 떨어지고 대수림을 통과하며 맹수와 마수들에게 얻은 부상은 강가에 도착할 즈음해서 어느 정도 아물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괴조의 부리에 물린 왼팔의 상처는 잘 낫지 않았다. 그 상처에서 오는 고통이 그를 계속 괴롭혔다.

대수림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최현은 강을 건너자마자 기절한 듯 잠에 빠져들었다. 무려 10시간 가까이 잠에 취했던 그는 다음날 아침 물가를 찾은 크롱을 잡아 오랜만에 배가 터질 정도로 포식을 했다. 크롱의 밥통을 잘라 물주머니를 만들고, 놈의 가죽을 꼬아서 만든 끈으로 그것을 등에 질끈 동여맨 그는 다시 기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간간이 만나는 초원의 오아시스를 이정표 삼아 달려간 지 여드레째 되던 날, 드디어 통신기에 신호가 잡혔다. 진우와 헤어진 지 꼭 보름 만이었다. 강건한 중급 헌터로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막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  * * * *

마나가 온몸에 자리를 잡으면서 진우의 오감은 크게 향상되었다. 땅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 소리도 들린다는 황당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전보다 시각과 청각 등이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달라진 것은 마나를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마나를 각성하기 전에도 진우는 눈으로 마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볼 수 있을 뿐 느끼지는 못했다. 가령 최현이 마나를 발현시키면 그 색이 진우의 눈에도 보였다. 그러나 일부러 발현시키지 않은 평소에는 그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최현처럼 체내 마나량이 많은 헌터가 일반인과 함께 있다면 둘 사이에 뭔가 묘하게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케이튼 행성 전초기지처럼 모두가 체내에 마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런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마나를 각성하면서 진우는 온몸으로 마나의 느낌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자 시각뿐만 아니라 육감과 비슷한 방식으로도 주변의 마나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가지고 있었으나 개발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능력이 직접적인 경험에 자극을 받아 순식간에 개화한 것이다. 그 능력이 빈 몸으로 대수림에 버려진 진우의 안전을 지켜주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바스락

뒤에서 땅을 차는 진동과 함께 바닥에 쌓인 마른 나뭇잎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진우는 이미 두 팔과 다리에 마나를 모으고 돌아서고 있었다. 아까부터 자신의 뒤를 몰래 따르고 있는 마나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어떤 생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노리는 것으로 보아 마수이거나 최소한 맹수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뒤로 돌아선 진우의 눈에 뜻밖에도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는 가시 달린 철퇴가 보였다.

“헉”

팔에 잔뜩 힘을 주고 상대를 때려눕히려던 진우는 기겁을 하고 땅 위에 납작 엎드렸다. 철퇴가 머리 위를 휙 지나가더니 어딘가에 쿵 하고 처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철퇴가 지나가자 재빨리 벌떡 일어나서 방금 지나간 놈의 행방을 찾았다. 그가 철퇴라고 생각했던 것이 뒤편의 나무 한 가운데에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농구공 두 배만한 크기의 동그란 몸체에 한 뼘 길이의 단단한 가시가 밤송이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저건 뭐지?”

잠시 후 철퇴처럼 생긴 녀석이 스르르 몸을 펴더니 땅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가시가 촘촘히 박힌 등 거죽 밑에서 고개가 하나 쏙 튀어나왔다. 몸을 가다듬고 진우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맺혀 있었다. 아마 최현이 옆에 있었다면 ‘타마린’이라는 맹수라고 가르쳐 줬을 것이다.

타마린의 온몸에 솟아 있는 가시에서는 마비독이 분비되었다. 몸을 공처럼 말아 자신보다 덩치가 큰 동물에게 돌진해서 가시를 박아 마비시킨 다음 천천히 잡아먹는 놈이었다. 놈의 마비독에는 방부제 효과도 있었다. 타마린은 체구에 비해 힘이 좋아 자신보다 덩치가 큰 다른 맹수나 초식동물들을 사냥한 뒤 둥지로 끌고 가서 두고두고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 길이 없는 진우로서는 처음 보는 생물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언뜻 마땅히 공격을 할 수단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기가 없으니 맨몸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주먹이나 발을 찔러 넣을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저 가시가 얼마나 단단한지도 알 길이 없었고, 혹시 모를 독이라도 발라져 있다면 찔리는 순간 오히려 크게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난감했다. 아무리 마나에 의해 강화된 피부라고 해도 날카로운 가시를 막아낸다는 보장이 없었다.

새로운 맹수와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전개되었다. 공격을 할 마땅한 수단이 없는 진우와는 달리 타마린은 만만한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한 듯 틈만 나면 몸을 말아 무작정 그에게 달려들었다. 마나를 각성한 후 그의 운동 신경은 전보다 다소 빨라졌지만 여전히 인식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 진우의 몸으로는 생각보다 빠른 타마린의 돌진을 완전히 피해내기가 어려웠다. 가시에 스친 상처가 늘어감에 따라 조금씩 몸이 마비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계속 놈의 공격을 피하거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마비 증세와 점점 빨라지는 타마린의 공세에 진우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나를 각성한 뒤로 이제 체력이 밀리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면서 체력과 무관하게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타마린의 공격을 제때 피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그때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던 그의 귀로 물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바라보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제법 깊어 보이는 개울이 보였다. 문득 괜찮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진우는 쓰러진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통나무 하나를 슬그머니 주워들고 천천히 개울 쪽으로 물러섰다.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허벅지 굵기의 통나무에 붙어 있는 잔가지들을 하나씩 손으로 뜯어내었다. 그때 타마린이 갑자기 다가오던 걸음을 뚝 멈추었다. 진우는 녀석을 주시하다가 힐끗 눈을 돌려 개울의 위치를 확인했다. 순간 타마린의 눈에 붉은 빛이 맺혔다.

크악~

엄청난 속도로 진우를 향해 도약한 녀석이 공중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더니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통나무를 번쩍 치켜들어 야구방망이처럼 휘둘렀다. 퍽 하고 타마린의 가시가 통나무에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

진우는 타마린이 박혀있는 통나무를 통째로 끌어안고 달려가 개울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허리어름에 이르는 개울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차가운 물에 몸이 잠기자 마비 때문인지 약간 몽롱해지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타마린을 밑으로 해서 통나무를 개울바닥에 대고 사력을 다해 눌렀다. 통나무에 박힌 채로 물밑에 잠기자 빠져나오기 위해서 기를 쓰고 버둥거리는 놈의 움직임이 나무를 통해 전해졌다. 체구에 비해 힘이 엄청 좋은 놈이었다. 진우는 젖 먹은 힘까지 쥐어짜내는 기분으로 악착같이 통나무를 내리눌렀다. 몸을 숙이고 힘을 주자니 그 역시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통나무를 사이에 두고 짐승과 인간이 서로 살기 위한 발악을 하고 있었다. 5분여가 흘렀다. 폐활량이 전보다 훨씬 늘었다고는 하지만 진우도 점점 숨이 막혀왔다. 그때 통나무를 통해 부르르 떠는 느낌이 전해지면서 녀석이 잠잠해졌다. 그는 그러고도 1분 정도를 숨을 꾹 참고 더 눌러대었다. 마침내 녀석이 죽었다는 확신이 들자 진우는 그제야 물 밖으로 몸을 일으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온몸의 기력이 한순간에 다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마린이 박힌 채로 물 위로 떠오른 통나무를 끌고 개울가로 나와 그대로 쓰러졌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일진 더러운 날이구나.”

개울을 따라 선이 그어진 듯 열려 보이는 하늘 위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사라진 최현이 보고 싶었다.

*  * * * *

다음날 나무에 박힌 타마린을 떼어내던 진우는 통나무에 놈의 가시가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힘을 주어 가시들을 잡아 뺐다. 한 뼘 길이의 그것들에는 마비 성분이 묻어 있으니 여차하면 무기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떼어낸 가시들을 허리띠를 따라 대충 꽂아 넣고는 태양의 위치를 길잡이 삼아 호수로 가는 방향을 가늠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터라 위장이 밥 달라고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괴조에게서 탈출한 지 이틀째에는 특별한 위험이 없었다. 타마린과 목숨을 건 최초의 실전을 벌인 뒤 진우는 마나를 탐색하는 감각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조금이라도 강한 마나가 느껴지는 곳들은 멀리서부터 피해 다녔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째 날은 맹수나 마수와 마주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먹을 것도 전혀 찾지 못했다. 최현이 가르쳐 줬던 식용 과일이나 버섯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긴장과 허기로 시달리던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갔다.

아무래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 같았다. 트럭이 떨어진 장소는 아무리 생각해도 며칠씩 걸릴 만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진우는 이틀 째 트럭의 잔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행운은 둘째 날로 끝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진우는 거의 매일 한 두 차례씩 맹수들과 마주쳤다. 초식 동물의 수는 줄고 맹수와 마수들의 수는 늘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나마 아직 맹수가 아닌 마수와 마주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타났던 맹수들도 타마린처럼 공격하기가 까다로운 놈들은 아니어서 어렵지만 잡아낼 수 있었다. 마나로 강화된 신체와 최현이 시켰던 그간의 무식한 훈련 덕분이었다. 때로는 챙겨두었던 타마린의 가시를 이용하기도 했고, 돌쇠와의 격투 때처럼 무식하게 주먹을 이용하여 때려잡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지 했고, 어떤 것이든지 이용했다. 하루를 더 생존할수록 그만큼 진우의 눈에 서린 독기도 더욱 진해졌다.

사라진 최현에 대한 걱정도 마음을 괴롭혔다. 중급 헌터씩이나 되는 사람이었으니 설마 죽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서 자신을 두고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함을 재울 수가 없었다. 최현의 성격상 뭔가 큰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진우를 두고 혼자 도망쳤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를 챙기지 못할 만큼 다급한 상황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더욱 불안했다.

“후후, 진우 너 많이 컸구나. 이 와중에 남 걱정도 다 하고.”

지금이라도 최현이 불쑥 나타나서 그런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그를 가장 가깝게 챙겨 준 사람이었다. 고된 훈련을 시키고 특별히 따뜻한 말을 해 준 적은 없지만 진우는 본래 감각이 예민한 아이였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서려 있던 대견함, 따뜻함 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신을 마나 각성의 길로 이끌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꼭 받은 것을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어떡하든 먼저 살아남아야 했다.

*  * * * *

대수림에 홀로 떨어진지 열흘이 지나도록 진우는 트럭을 찾지 못했다. 뭔가 방향이 어긋나도 크게 어긋난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열흘 동안 그는 완전히 야생의 전사가 되어 있었다. 머리는 산발하여 까치 둥우리처럼 되고, 씻지 못해 온몸에서 악취가 스멀스멀 풍겼지만 눈빛은 갈수록 생생해졌다. 다만 체력이 문제였다.

초식 동물로 짐작되는 것들을 몇 마리 잡기도 했지만 먹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불을 피울 수 없으니 생으로 씹어 삼켜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최현이 일러 준 과일과버섯 등으로 간신히 허기를 달래기는 했다. 그러나 운동도 아니고 날마다 목숨을 건 전투를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그것들만으로는 힘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몸에 마나가 없었다면 진즉에 탈진했을 터였다.

열흘 째 점심이 되었을 때 앞쪽에서 물비린내가 언뜻 풍겨왔다. 순간 진우는 드디어 호수 근처에 도착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사방으로 마나를 탐색하면서 한 시간 정도 조심스럽게 앞으로 숲을 헤치고 나갔을 때,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한낮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호수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진우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트럭은 호수 근처에 떨어졌다. 이제 호수 주위를 돌며 수색하면 최소한 트럭의 잔해라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무기와 통신기, 하다못해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만이라도 찾을 수 있어도 지금보다는 생존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호숫가에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빠져나와 마주한 호수는 생각보다 넓었다. 호수 건너편이 지평선 근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지난 열흘 동안 나무와 숲만 보며 지내왔던 진우는 넓은 호수와 마주하자 마치 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  * * * *

반나절 가량 호수 주위를 돌며 트럭의 잔해를 찾던 진우는 예상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몇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고개를 물속에 처박고 있는 트럭이 보인 것이다. 트럭이 공중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산산조각이 날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눈에 띈 트럭은 비교적 멀쩡한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우는 전력을 다해 트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트럭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운전석의 지붕이 통째로 뜯겨져 날아간 모습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의 트럭이 맞았다. 다만 무중력 기능을 상실했는지 공중에 떠 있지 않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무중력 장치는 고장 난 건가? 그럼 기지로 타고 돌아갈 수는 없겠네.”

트럭에 도착한 진우는 먼저 배낭과 무기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자신이 쓰던 검과 총은 좌석 옆에 단단히 고정된 채로 남아 있었다. 다만 짐칸에 실려 있던 배낭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괴조들에게 붙잡혔을 때나 추락하는 도중에 어디론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진우는 일단 검과 총을 꺼내들었다. 총을 등 뒤로 비껴 메고 허리에 검을 차니 마음이 절로 든든해졌다. 무기를 챙긴 그는 이어서 무중력 장치를 확인했다. 그런데 장치가 꺼져 있었다. 최현이 일부러 끈 것인지 아니면 충격 때문에 망가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전초 기지를 떠난 뒤로 한 번도 마나 스톤을 보충하지 않았다. 열흘 내내 시동이 걸린 채로 있었다면 동력이 고갈된 것일 수도 있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진우가 막 무중력 장치를 켜려고 하는 순간 뒤편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찌르듯이 전해졌다. 그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을 찾은 기쁨에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 정도로 강한 마나를 미리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는 온몸을 팽팽히 긴장시키며 트럭에서 손을 떼고 뒤로 돌아섰다. 거기에 그 놈이 서 있었다. 초원 막바지에 강가에서 처음 마주쳤던 놈. 케로스가 살기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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